5/27/2011

남편 머리를 깎으며






남편이 문득 머리를 깎아야겠다고 합니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는데 머리가 너무 덥수룩하여 더 더워 보인다며 머리를 깎아달라고 합니다.
푸하하~
남편이 뭘 믿고 저한테 머리 깎는 것을 맡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직접 깎아주기는 했어도 남편은 깎아 준 적이 없습니다.
큰 아이가 어릴 때 미용실에 가면 낯선 환경이기도 하고, 머리 깎는 기계 소리가 싫었는지 많이 울었습니다.
집에서는 울어도 남의 눈치 안 보고 맘껏 달래며 깎을 수 있어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또 그때는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과 지속 가능한 자연 친화적인 삶,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고민과 실험을 하던 때라, 의식주 생활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 여러 도전을 했었습니다.
머리 깎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고, 재봉틀을 사용해서 생활 한복이나 생활 소품들을 만들어 썼고, 가벼운 병은 음식, 민족생활건강, 수지침으로 달래고, 아이들 교육도 함께 하고요.
저는 이런 정도에 머물렀지만 어떤 친구들은 더 나아가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도농(도시와 농촌) 직거래를 통한 유통, 산야초를 효소로 만들어 그 효능을 인정받기도 하고, 직접 집도 지어 마을 공동체로 나아가기도 하고, 좋은 책을 골라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열기도 했습니다.

아이고~ 말이 옆길로 샜습니다.
아직까지 나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요즘은 자꾸 많지도 않은 제 나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진짜 나이 든 것이라는데 말입니다.
뭘 기록하는 것을 잘 하고 단기 기억력은 좋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까먹는 횟수가 늘어나고, 건강은 타고났나 보다 했는데 예전 같지 않은 미세한 신체의 변화들이 느껴지고, 지금처럼 주제에서 벗어나 옛날 얘기나 하고 있고요.
*^^* 이것이 지금의 나인가 보다, 하며 그저 한 번 웃고 지나갑니다.

크게 접힌 신문지 한 장의 가운데를 오려내서 아이들 머리에 쑥 끼워 목에 얹혀놓고, 솜씨는 없어도 꽤나 신중한 표정을 지어가며 머리를 깎던 재미있는 사진이 사진첩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몇 해 동안 아이들 머리를 깎였어도 남편에게 머리 깎아주겠다는 말도 안 해보았고, 남편 역시 자기 머리를 맡기지 않았습니다.
저의 머리 깎는 솜씨는 누가 보아도 영 미덥지가 않았던 것이죠. ^^




그로부터 15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남편이 먼저 나서서 자기 머리를 깎아 달라는 것입니다.
콜럼비아로 이사 오고 나서의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럽게도 간단한 머리 손질은 집에서들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옛날 해 봤던 기억을 되살려 집에서 아이들 머리를 깎아줘 볼까 싶어 교회 어느 집사님에게 머리 깎는 기계를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할만하면 하나 장만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집사님은 빌려 달라고 한 지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니, 어느 날 머리 깎는 기계를 보여주시며 이건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고 저건 저럴 때 사용하는 것인데 사용설명서를 보면 쉽게 할 수 있게 되어 있다며 가져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만 보니 기계가 새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거 새것 아니에요, 하고 여쭈어보니 그냥 두고 쓰세요, 하셨습니다.
집사님 것을 빌려서 연습 한 번 해보고 어찌 할까 결정하려고 했는데 새 기계를 사주시는 바람에 오랫동안 두고 사용해야 하는 기분 좋은 부담이 생긴 것입니다.

기계도 생기고 해서 오래 전에 쓰던 가위들도 꺼내어 이번 달 초에 남편과 첫째 아이 머리를 조심 조심 깎아보았습니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 깎는 것은 이제부터 저보고 하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머리를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도 멋지지 않은, 깎은 티도 안 나는 첫 번째 이발이었습니다.
이번 두 번째는….
남편이 저를 믿어주며 마구 용기를 주길래 머리카락을 팍팍 잘라내었습니다.
이상하게 잘라지면 어쩌나 했는데 오히려 깔끔하니 머리 깎은 티가 납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머리 깎기 시작할 때 마음속으로 기도도 했습니다.
예쁘게 자르도록 도와 달라구요.
두루두루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 집사님께, 남편에게.

머리 두 번 깎은 것을 핑계로 예전처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다른 힘(특히 돈)을 쉽게 빌리지 않고 얼마나 지속하고 있는가 돌아보니 많이 게을러진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연 환경과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요?
생각만 하다 세월 다 보내면 안 되는데….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장26절-28절)

5/20/2011

부부의 날

한국에선 5월을 가정의 달로 여기고 가정과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때로 삼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입양의 날, 그리고 부부의 날.

그 가운데 부부의 날은 바로 내일입니다.
부부의 날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 가자는 취지로 2007년 제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날짜는 해마다 5월 21일입니다.
5월 21일에는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부부의 날은 핵가족시대의 가정의 핵심인 부부가 화목해야만 청소년문제 • 고령화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법정기념일이다, 고 네이버 백과사전은 그 유래를 밝히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아내로써, 남편으로써 좋은 사람 되는데 비추어 볼 수 있는 부부십계명이라는 제목의 글들이 있어서 옮겨 봅니다.


<100년 전,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부십계명>

1. 남편 되는 이, 밖에서 불편했던 얼굴로 집안 식구를 대하지 마시오.
2. 남편 되는 이, 무단으로 나가 자거나 밤늦게 돌아오지 마시오.
3. 남편 되는 이, 자녀가 있는 곳에서 아내의 허물을 책하지 마시오.
4. 남편 되는 이, 의복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지 마오.
5. 남편 되는 이, 친구의 접대로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마오.
6. 아내 되는 이, 남편의 부족한 일이 있으면 조용히 권고하고 결코 군소리 하지 마시오.
7. 아내 되는 이, 물건이 핍박해도 소리 내기를 절도 있게 하시오.
8. 아내 되는 이, 남편이 친구하고 이야기할 때 뒤에서 엿보지 마시오.
9. 아내 되는 이, 함부로 남편에게 의복 구하기를 일삼지 마시오.
10. 아내 되는 이, 항상 목소리를 크게 해 역하게 하지 마시오.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의 부부십계명>

1. 두 사람이 동시에 화내지 말라.
2. 집에 불이 났을 때 외에는 고함지르지 말라.
3. 눈이 있어도 흠은 보지 말며, 입은 있어도 실수를 말하지 말라.
4.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
5. 아픈 곳을 긁지 말라. (아픔은 감싸라)
6. 분을 품고 침상에 들지 말라.
7. 처음 사랑을 잊지 말라.
8. 결코 단념하지 말라. (먼저 손을 내밀라)
9. 숨기지 말라. (서로에게 진실하자)
10. 본래의 중매자를 따돌리지 말자. (기독교적 의미에서의 하나님)
- 책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최일도 목사)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부부십계명>

1. 배우자가 완벽할 거라는 생각을 버려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2. 위임하라.
-배우자가 요리나 청소와 같은 집안일을 더 많이 돕도록 하라.
3.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하라.
-배우자의 고집을 불평하지 말고 덜 공격적인 단어로 말하라.
4. 당신의 장점을 믿으라.
-대표 장점을 잘 살리면 결혼생활도 더 잘할 수 있다.
5. 반응하며 듣는 방법을 연습하라.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긍정적인 격려를 자꾸 하라.
6. 화자와 청자 방식을 활용하라.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끼어들지 말고 ‘당신’이라는 2인칭보다 ‘나’라는 1인칭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라.
7. 대답할 여지가 있도록 질문하라.
-상대방이 자신의 관점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질문하라.
8. 낙천적인 사람이 되라.
-염세주의자 커플은 힘든 일이 발생할 때마다 행복 수준이 하강할 수밖에 없다.
9. 나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라.
-자율성을 가져라.
10. 부부가 함께 관계 지도’를 작성하라.
-서로의 생활에 더 관심을 가져라.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의 부부십계명>

1. 새로운 프러포즈로 서로를 감동시키자.
2. 부부가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자.
3. 부부가 서로 러브레터를 전하자.
4. 남편은 처가, 아내는 시댁에 안부를 여쭈자.
5. 자녀 앞에서 서로에 대한 칭찬보약을 선물하자.
6. 내 아내, 내 남편의 이름을 부르자.
7. 첫 데이트 장소로 서로를 불러내자.
8. 앨범 속으로 추억의 여행을 떠나보자.
9. 꽃바구니 대신 유머 꽃을 선물하자.
10. 촛불 대화를 통해 마음 속 여행을 떠나자.


<세계 부부의 날 위원회의 부부 롱런(Long-Run) 십계명>

1. 인내하며 다툼을 피하라. 
2. 칭찬에 인색치 말라.
3. 웃음과 여유를 가지고 대하라.
4. 서로 기뻐할 일을 만들라.
5. 사랑을 적극 ‘표현’하라.
6. 같이 즐기는 오락이나 취미를 만들라.
7. 금연, 절주하고 건강을 지켜라. - 건강한 부부는 부부관계도 건강하다.
8. 서로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 - 경제적, 심리적으로 적당히 독립하라.
9. 매년 혼약갱신선언을 하자. - 이혼할 틈을 주지 말라.
10. 부부교육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자. - 투자한 만큼 거둔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1서 4장7절-11절)

5/13/2011

교우들과 신혼기를 보내며


이번 주일은 어머니의 날을 지키는 어머니 주일이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어머니 주일에는 남선교회가 어머니들에게, 아버지 주일에는 여선교회가 아버지들에게 드시고 싶은 것을 대접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주일인가 아버지들께서 어머니들한테 무엇이 드시고 싶은 지 물어오셨습니다.
어머니들은 갈비와 삼겹살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들은 갈비 고기를 사서 아버지 권사님께서 미리 양념도 해 놓으시고, 삼겹살도 두툼한 것으로 준비하셨습니다.
어머니 주일 아침에는 교회에 일찍 오셔서 숯불에 갈비를 초벌구이 해 놓으셨습니다.
점심 시간에 분주할 것을 대비하신 것 같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어서는 아버지들께서 삼겹살을 구워, 식사를 하고 있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삼겹살과 갈비를 주시는 대로 맛있게 먹고 나니 아버지들은 그제서야 식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몇 개의 식탁에서는 덩치가 크고 건장한 한 청년이 그릇들을 치우고 걸레질을 하여 더 이상 손 가지 않게 마무리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기특하고, 성실하고,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여선교회에서는 어머니들께 꽃을 달아 드렸고, 60 세 이상 어머니들께는 선물도 드렸습니다.
어머니들은 이렇게 대접을 잘 받았으니 아버지들께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거야!, 하셔서 웃었습니다.
아버지 주일에는 블루 크랩이 가득히 쌓인 식탁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들께서 많이 오셔서 함께 드시면 좋겠습니다.


교회, 교우들과 신혼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즐거운 일들이 이어지고, 서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좋은 쪽만 보이고, 그러면서 어떤 사람인지 서로 탐색하기도 하는 신혼 시절 말이죠.
하지만 석 달 가까이 교우들과 만나면서 경험한 편안하고 사랑 많은 모습들은 좋은 것만 보여주려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삶이었습니다.

이탈리아 파비아대학 과학자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도파민, 페로몬, 아드레날린 같은 화학물질과 호르몬 작용에 의하여 생기는 것으로, 6 개월에서 1 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발표를 2005년에 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CBS 방송을 통해 처음 사랑의 감정이 결혼 후에도 몇 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뉴욕 스토니 브룩대학의 연구 결과가 발표 되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는 사랑의 초기 단계에 있는 커플들과 장기간 관계를 지속해 온 커플들의 뇌를 스캔 해서 분석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사랑에 유효 기간이 있네, 짧네, 기네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사랑은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혼기를 보내고 있는 교회, 교우들과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의 모범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을 닮아가려고 애쓰는 사랑이라고 감히 말해 보렵니다.

낭만적인 사랑이든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이든 그 만남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신혼기를 지나게 될 것이고, 때로는 고난이나 어려운 문제들도 만나는 권태기 혹은 갈등기를 거치게 될 것입니다. -삶은, 사람은 단순하지 않으므로.
그렇다 하더라도 진실되게 최선을 다해 사랑하다 보면, 정도 들고, 신뢰도 쌓이고, 지체로서 각자의 사명이나 역할도 알아 가고, 강점과 약점도 알아 세워주고 덮어주는 것도 자연스러워질 테고, 어려운 문제를 만난다 해도 해결사, 예수님이 계시고, 그때에는 지혜와 마음을 모으고 서로를 의지하여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려움의 터널을 함께 헤치고 나아간 이들은 서로 오래 참아 주고, 더욱 깊이 이해 하고, 모든 것 감싸 주고, 소중히 여기는 성숙한 사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아직 있지도 않은 문제를 놓고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고(^^), 이 신혼기를 기쁘게 보내려고 합니다.
우리교회 교우들끼리 더욱 사랑하고, 그 사랑이 차고 넘치게 되어 이웃에게 넉넉하게 흘러가게 되길 소망해 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에베소서 2장19절-22절)

5/06/2011

식물에 담아 보는 땡큐


우리 교회에는 여기 한인사회에서 연세가 제일 많으신 어르신이 계십니다.
95 세이신 할머니 권사님이십니다.
권사님은 작은 체구에 힘이 없으실 것 같은데, 말씀도 똑 부러지게 잘 하시고, 몸도 부지런히 움직이십니다.
목사 취임예배가 있던 날도 예배가 끝나고 식사하는 시간에 교회 안팎을 계속 돌아다니셨습니다.
그런 권사님이 눈에 띄길래 슬쩍 다가가 권사님, 식사하시죠, 라고 했더니 오신 손님들 가운데 혹시 식사를 안 하고 가실까 봐 살피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손님을 그냥 가시게 하면 예의가 아니라면서요.
아마 그 날도 행사가 다 끝나고 식사를 하신 것 같습니다. (식사하셨나요, 진짜? 생각이 가물가물.)

권사님은 언제부턴가 목사님이 새로 이사 오셨는데 가 보지도 못했다며 한 번 가봐야 되는데, 라고 하셨습니다.
이전에 계시던 목사님들이 이사 오는 날이면 이사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시곤 하셨답니다.
목사네 집 방문을 벼르고 계시던 권사님께서 드디어 이번 주에, 역시나 연세가 많으신 따님들과 함께 찾아주셨습니다.
권사님은 손수 키우시던 산세비에리아도 지난번에 주셨고, 이번에는 채송화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권사님네 뜰에 채송화가 있다고 하셔서 가지러 가야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시고 여러 개 화분에 정성껏 심어 주신 것입니다.

채송화 화분은 집 현관 앞에 두었습니다.
언제나 꽃이 피려나, 얼른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집을 드나들 때마다 기분이 밝아질 것 같습니다.
땡큐, 권사님.


또 다른 권사님, 음~ 이번엔 중년의 권사님이 수요예배에 오시면서 들깨와 고추 모종을 가져오셨습니다.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면서요.

그런 거 심어서 먹어보는데 관심은 있으나 슬픈 기억이 있어서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전에 살던 집에서 들깨 모종을 뒤뜰에 심어놓은 적이 있는데, 잔디 깎는 사람이 자취도 없이 깎아 버린 가슴아픈 사건이 생각나서…. ^^
화분에 심어보라고 하시는데, 심을만한 화분도 없고, 화분을 사자니 이사할 짐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들깨와 고추 모종을 하나씩 집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주인이 가꿔놓은 듯한 화단이 뒤뜰에 있는데, 거기는 잔디가 안 깔려 있으니까, 뭘 심어도 깎일 것 같지 않다는 판단으로 말이죠.
이 동네의 다음 잔디 깎는 날이 지나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 모종을 심어 놓았거던요.

더운 여름 날, 깻잎에 밥 한술 얹고, 고추에 고추장 푹 찍어 함께 얹어 쌈 싸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요?
거기에 돼지불고기 반찬이라도 있으면 임금님 밥상이 부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미리 땡큐, 권사님.


같은 날 수요예배 때 젊은(저와 나이가 같으니 젊다고 해야 될 것 같아서. ^^) 집사님 한 분은 집에서 거둔 배추를 한~ 소쿠리 가져오셨습니다.
겉절이를 하든지, 김치를 담그든지, 드시라면서요.
여러 교우가 나누어 가졌는데, 저한테는 어찌어찌 하여 두 뭉치를 주셨습니다.
저는 배추를 데쳐서 된장국 끓여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져온 배추는 데쳐서 한 덩어리는 얼려놓고, 한 덩어리는 된장국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집사님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텃밭에 식물들을 심어 가꾸시며 집사님에게 밭일을 때때로 시키셨답니다.
그때는 왜 귀찮게 이런 일을 시키시나 했는데, 지금은 집사님이 아버지처럼 텃밭을 돌보고 있노라고 하셨습니다.
집사님은 부지런히 채소도 잘 기르시고, 음식도 잘 하신다고 교회 어른들 칭찬이 많은 분입니다.

오늘 우연히 스페인 음식 문화를 소개한 영상을 보면서 집사님이 거기 나오는 요리사 가운데 한 사람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페인의 작은 어촌, 산 폴 델 마르라는 곳에 있는 산 파우 식당(RESTAUTANT SANT PAU)의 수석 요리사 카르멘 루스카예다.
그는 유럽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뽑히는 여성 요리사라고 합니다.
카르멘은 농부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계절마다 유기농으로 농산물이 재배되고 길러지는 것을 지켜본 것이, 제철 식물과 식물의 색깔 등을 잘 사용하는 일류 요리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도 카르멘 같은 요리사니,
곁에서 어슬렁 대다가 맛난 음식 얻어 먹을 생각에,
땡큐, 집사님.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세기 1장29-3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