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2011

청소

<"빛과 소금" (두란노, 2002년)에 실렸던 사진입니다.>


6학년 때였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조금 일찍 도착하였습니다.
접이식 의자를 펼쳐 놓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아직 의자가 접혀진 채였습니다.
의자를 펴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 소심한 저는 내가 해도 되나,를 잠깐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의자를 하나하나 펼쳐서 가지런히 줄을 맞추어 놓았습니다.
그다음 주에도, 또 그다음 주에도 예배 시간 전에 의자를 펼쳐 놓는 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중등부에 들어가서는 토요일 오후에 지하실에서 방석을 깔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빗자루로 먼지를 먼저 쓸어내고 걸레질을 한 다음, 방석을 깔아놓으면 되었습니다.
예배와 2부 활동이 끝난 다음에는 방석을 걷어내고, 다시 쓸고 닦아서 다음 날 있을 어린이 예배에 지장이 없도록 해놓았습니다.

지금의 제 생각에는 어린 아이가 매주 예배 시간 앞뒤로 청소를 하면 누군가 칭찬을 해줄 법도 한데, 이 일로 칭찬을 들은 기억은 없습니다.(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교회 어른들에게 사랑을 엄청 많이 받고 자랐다고 하면 자기 자랑이 될까요? ^^)
무슨 마음으로 청소를 했는지 어릴 적 저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긴 시간이 지나버려 잘 모르겠습니다.
이 일은 신학생이 되어 저의 모교회(母敎會)를 떠나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신학생이 되고 나서는 신앙생활 하면서 누리는 자연스러운 기쁨이 많이 사라졌었습니다.
자발적인 신앙생활에서 누리는 편안함 보다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학생 때나 전도사가 되어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는 청소할 기회가 생겨도 전처럼 기꺼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목사의 아내가 되었고, 사역에 대한 책임은 아무래도 목사에게 있으니 남편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를 돌보아야 할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청소였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교회 청소하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할 때는 이유가 없어도 기꺼이 하던 일인데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이유가 많아집니다.
남편이 더 부지런히 잘 하니까 굳이 안 나서도 되고, 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하라고 시키면 그것이 싫어서 안하고, 임신해서 입덧이 심해서 못하고, 추워서 더워서 못 하겠고, 그냥 하기 싫으니까 안 하고….

교회 청소는 교인들 수가 많든 적든 하는 사람만 하는 것 같습니다.
또 뭐, 교인이라고 해서 꼭 교회 청소를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기쁘게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교회를 건축하고 나서, 몸이 불편한데도 교회 청소만큼은 빠지지 않는 권사님을 보면서, 일하는 시간을 조정하여 교회 청소 시간에 달려오는 권사님을 보면서, 내 집같이 꼼꼼하게 교회를 살피는 아빠와 엄마를 보면서, 화장실 청소를 맡아 하는 집사님들을 보면서, 교회 청소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 저희 아이들을 보면서, 이전과는 다른, 청소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말끔해진 예배당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집을 돌보고 이렇게 주일을 준비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교회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주시는 위로와 기쁨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우시나 봅니다.

남편과 저희 가족은 새로운 목회지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감당할 사역 위에 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과의 교제를 기대하며 저희 영혼의 그릇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합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만군의 주님,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참새도 주님의 제단 곁에서 제 집을 짓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셀라)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뵐 것입니다.
주 만군의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야곱의 하나님,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셀라)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신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주 하나님은 태양과 방패이시기에, 주님께서는 은혜와 영예를 내려 주시며, 정직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내려 주십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새번역 / 시편 84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