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11의 게시물 표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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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미국올 때 이삿짐을 담고 온 상자들 가운데 쓸만한 것들을 남겨두었었는데, 다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이 아틀란타에서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사용하던 인터넷 서비스도 내일이면 중단되고(1 개월 사용기간을 맞추려다 보니... ^^)  언제 다시 연결될지 몰라, 블로그를 통해 인사드리려고 들어왔습니다.

그 동안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격려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심을 전해 들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웠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사랑인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곧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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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두란노, 2002년)에 실렸던 사진입니다.>
6 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6학년이 예배 드리는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접이식 의자를 펼쳐 놓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아직 의자가 접혀진 채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의자를 펴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 소심한 저는 아마 내가 해도 되나,를 잠깐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의자를 하나하나 펼쳐서 가지런히 줄을 맞추어 놓았고, 그것에 대해서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었고, 예배도 별일 없이 드렸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예배 시간 전에 의자를 펼쳐 놓는 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중등부에 들어가서는 토요일 오후에 지하실에서 방석을 깔고 예배를 드렸는데, 빗자루로 먼지를 먼저 쓸어내고, 걸레질을 한 다음, 방석을 깔아놓으면 되었습니다.
예배와 2부 순서 활동이 끝난 다음에는 방석을 걷어내고, 다시 쓸고 닦아서, 다음 날 있을 주일 어린이 예배에 지장이 없도록 해놓았습니다.

지금의 제 생각에는 어린 아이가 매주 예배 시간 앞뒤로 청소를 하면 누군가 칭찬을 해줄 법도 한데, 이 일로 칭찬을 들은 기억은 없습니다.(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교회 어른들에게 사랑을 엄청 많이 받고 자랐다고 하면, 자기 자랑이 될까요? ^^)
무슨 마음으로 청소를 했는지, 어릴 적 저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긴 시간이 지나버려 잘 모르겠습니다.
이 일은 신학생이 되어 저의 모교회(母敎會)를 떠나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신학생이 되고 나서는 신앙생활 하면서 누리는 자연스러운 기쁨이 많이 사라졌었습니다.
자발적인 신앙생활에서 누리는 편안함 보다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학생 때나 전도사가 되어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는 청소할 기회가 생겨도 전처럼 기꺼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목사의 아내가 되었고, 사역에 대한 책임은 아무래도 목사에게 있으니, 남편보다는 편안한…

힘차게 나아가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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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목회를 시작했던 강화 성은교회입니다.
남편의 고향 마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뒤로는 야트막한 동산이 있고, 앞으로는 들판이 있는 확 트인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좋은 쌀, 감과 밤이 많이 나고, 강화에서도 제법 큰 저수지가 가까이에 있는 경치 좋은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 이름이 남편 이름과 같아서, 남편이 개척한 교회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호호호.
아무리 교회를 개척한다고 해도 자기 이름으로 교회 이름을 지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재미난 질문을 하시는 분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면 아니오, 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자기도 이 교회에서 목회하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해서 그곳에 살 때도 오고 가는 버스가 자주 있지 않은 때였으니, 남편이 어렸을 적에는 어지간한(?) 거리는 거의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한편, 남편은 모태 신앙으로, 어머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목회자로 키우기로 서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은 어려서부터 목사가 되는 꿈만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라던 어린 남편이 성은교회 앞을 지나 걸어갈 때면, 자기 이름이랑 같으니까 이 다음에 커서 이 교회에 와서 목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곤 했답니다.
“예사롭지 않은 끌림이 있었지” 라고 남편은 말합니다.


첫 목회지 성은교회는 신학교를 졸업했다고는 하나 나이도 어리고, 세상 경험도 많지 않은 젊은 목회자를 목회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도록 키워준 부모님 같은 교회였습니다.
하나씩 배워나가는 목회가 서툴고 어설퍼도 교우들은 예쁘게만 봐주셨습니다.
그나마 교육 전도사를 하다가 목회를 나온 터라, 교회학교를 섬기는 일은 나름 참신한 아이디어로 동네 아이들과 중고등부 학생들이 재미있어 했던 것 같습니다.

아! 남편이 목회자로서 듬직해 보이던 것 가운데 하나가 지금 기억났습니다. ^^
농촌이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고, 그래서 초상을 치르는 일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저는…

나루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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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호수에 나가 보았습니다.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좋은 곳입니다.
호수 곳곳에 있는 나루터에는 날씨가 아직은 춥고 궂어서 그런지 크고 작은 배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언제고 배 주인이 와서 배를 타고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빌려주는 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젠가 화창한 날 배를 타고 호수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새번역 / 호세아 6장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