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2011

영화 "127 시간(127 Hours)"을 보고


이 영화는 2003년 6월,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니언을 등반하다가 조난을 당하고, 거기서 극적으로 살아난 아론 랠스톤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아론은 엄마의 수 없는 전화에도 응답을 하지 않고, 어딜 가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개인주의적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랜드 캐니언으로 등반을 여러 번 다닌 듯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협곡 길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여느 날처럼 블루 존 캐니언의 협곡 가운데 하나로 길을 접어들었는데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협곡 입구에 있던 바위가 아래로 구르면서 아론의 팔이 바위와 암벽 사이에 끼어버린 것입니다.

아론은 팔을 빼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바위는 꼼짝도 하지 않고 팔은 점점 감각을 잃어갑니다.
팔의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탈수증과 수면부족, 심리적 절망감으로 점점 지쳐갑니다.
그에게 있는 것은 500ml 정도의 물, 잘 들지 않는 등산용 칼, 긴 로프, 그리고 탈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캠코더, 카메라, 플래시라이터, 짧은 끈들, 시계…따위 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는 첫째, 살고자 하는 본능과 치열한 의지, 지혜, 둘째, 자연의 존재, 셋째, 사람들과의 관계가 주는 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론은 살기 위한 끈질긴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의 노력을 지켜보며, 아론의 어이 없다가, 안타깝다가 하는 마음을 따라가며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를 자꾸 갖게 됩니다.
결국은 바위에 끼인 자신의 팔을 스스로 잘라내고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 그 자체가 주는 거대한 힘도 느껴보았습니다.
넓디 넓은 그랜드 캐니언이 주는 자유로움, 움직일 것 같지 않은 바위가 한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위협적인 힘, 협곡 위로 보이는 작지만 희망적인 하늘, 협곡 안으로 하루에 18분 동안만 비춰지는 따사롭게 위로하는 한줄기 햇빛,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비와 웅덩이 물….

마지막으로, 아론은 127 시간을 힘겹게 견디면서 지칠 때마다 가족, 친구들과 나눈 사랑을 추억하며 힘을 얻습니다.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한 줄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게 됩니다.

아론이 협곡에서 탈출한 후 짧게 지나가는 장면들 가운데, 멀리서 가던 한 가족이 도와 달라는 소리를 듣고 뒤돌아 달려올 때,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여인과 그 아들이 아론 보다 먼저 달려갈 때, 여러 등산객들이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볼 때, 헬기를 타고 온 구조요원이 그를 데리러 뛰어올 때, 조난 당해 상처 입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사람들에게서도 잔잔한 감동이 전해졌습니다.

1월 중순에 있었던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3개 부문(남우주연상, 각본상, 음악상)에 후보로 올라서 더욱 눈길을 끌었었는데, 아쉽게도 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2월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가 있다니 잘 만들어진 영화인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아론 역할을 맡았던 제임스 프랭코는 생애 최고의 연기를 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어서 남우주연상을 기대해 볼만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2월에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보게 되었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도 이겨내도록 힘을 주고 받는 가족이 곁에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새날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8절-10절)

1/21/2011

기꺼운 인내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습니다.
남편과 저는 식탁에 앉은 채로 이야기가 계속 오고 갔습니다.
미국에 오게 된 동기, 미국으로 오는 과정 속에서 기도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움직였는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미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놓친 것은 없는지, 그리고 이곳에서의 목회나 생활에도 똑같은 질문들을 하며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자신의 깊은 곳으로부터 끄집어내는 솔직한 고백들이었습니다.
이런 시간을 갖기로 작정한 것도 아닌데 이날 따라 고백들이 끊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그러기를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외출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말은 교회 행사로 바쁜 땐데 거기서 멀어져 있고, 교회 개척은 시도하는 것들마다 부정적인 대답만 들려오고, 그래서….”
큭--, 참아보려고 했는데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엉엉엉….

마주보고 앉아서 얘기하다가 이렇게 울어버리면 남편이 당황스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치면서, 억지로 울음을 떼어놓았습니다.
“… 그래서 많이 속상하고 날카로워 있었는데, 이제는 점점 차분해지고 괜찮아.”
남편은 말이 없습니다.
눈물이 자꾸 나와서, 세수하고 나가봐야겠다며 일어났습니다.

외출 준비를 하고 내려오니, 남편이 한번 안아보자며 이렇게 말합니다.
“힘들게 해서 미안해. 이 말이 꼭 하고 싶었어.”

*******

지난해 9월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교회에 간 시간에 저는 집에서 참담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한참을 기도하는데, 너희 거덜나기 전에 해결한다, 는 마음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우리 경제적 형편이 거덜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니 올해 안에 혹은 머지 않은 시간에 해결하시겠다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의 시간 안에 뭔가 해결이 된다면 견딜만하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교회개척과 관련되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한 해가 마무리 되고 새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도 연말과 연초에 더욱 초조해지고 날카로워졌던 것 같습니다.

아직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거덜나다, 바닥난다는 말이 경제적인 형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경험…을 포함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주신 감동에 대한 응답이었노라 할만한 간증을 언젠가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요즘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 기도와 말씀 묵상과 신앙 서적을 보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과는 다르게, 이 고난의 시간을 억지로 참고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지금도 그 계획을 실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 1장2절-4절)

저에게 주어진 지금은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으며 기쁘게 인내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 무화과나무는 꽃이 피어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서 2장10절-13절)

또한, 한국에서와는 달리 기도 생활에서 멀어진 저를 하나님이 더욱 가까이 부르시는 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무엇이, 내 계획, 경제적인 형편…이 하나님과의 사귐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장 3절-4절)

1/15/2011

기억 보다 꿈이 크도록 (2)- 코이노니아 공동체


사랑의 집 짓기 운동 국제 본부에서 코이노니아 공동체(Koinonia Farm)까지는 10 여분 걸리는 곳에 있었습니다.
코이노니아 공동체로 가는 왕복 2차선 도로의 양쪽으로는 모양이 거의 비슷한 집들이 여러 채가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코이노니아 방문자 센터에서 만난 이의 말로는 집이 60 채 정도인데, 몇 명이 사는 지는 얘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코이노니아 아웃리치 센터를 지나쳐서 조금 더 가니, 공동체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고, 길 건너편에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저의 눈길은 교회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자동차의 방향도 교회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교회를 멀리서 바라만 보았습니다.
교회에 들어가서 잠시 묵상이라도 하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불편한 마음으로 나선 나들이이기에 그렇게 할만한 생각도 들지 않았고, 생각이 났다 해도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 옆 들판에는 줄 맞춰 서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멋있게 서 있었습니다.
가지런히 심어놓은 걸 보면 누군가 일부러 심어놓은 것일 텐데,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 또한 나중에 공동체에 대한 설명서를 보고 나서야, 코이노니아 공동체의 주요 농작물인 피칸 나무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겨울이라 스산한 모습이었는데 여름에 잎이 무성할 때 보면 더욱 멋질 것 같습니다.

교회 앞에 세워진 표지판에서는 클레런스 조단 부부와 마틴 잉글랜드 부부가 1942년에 코이노니아 공동체를 설립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화주의, 평등, 그리고 인종통합이 그들의 정신인가 보구나 했구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에는 그런 정신을 가진 코이노니아 공동체가 남부지역 사람들로부터는 환영 받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교회 앞 길 건너편, 방문자 센터에서 갔더니 한 여인이 저희를 담담하게 맞아주었습니다.
농장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농장이 그려진 지도와 한 장짜리 설명서를 주면서 돌아보라고 했습니다.
아마 안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들어갔던 것 같은데 마땅한 사람이 없었는지 지도와 설명서를 준 것 같습니다.
방문자 세터를 나오면서 둘째 아이 하는 말이 농장을 돌아보는 비용(안내자가 있을 경우겠지요?)이 한 사람당 $3인지 $4인지 벽에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농장의 마당에 서면, 건물들이 거의 한 눈에 들어오고 건물들 뒤편으로는 나무들과 들판입니다.
포크레인을 타고 일하는 두 사람, 말을 시켜볼 상황이 아닙니다.
지도에서 농장의 가장자리쯤을 가늠해 보려고 그나마 걸어가는 사람에게 게스트 하우스가 어디냐고 했더니 바로 코 앞에 있는 건물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곳을 돌아보는데 10분 정도를 사용하고, 그냥 가기가 아쉬워 방문자 센터로 다시 들어가 기념품을 하나 샀습니다.
방문자 센터는 기념품 가게도 겸하고 있었는데, 물건도 별로 없고 허술해 보였습니다.
그 중에서 그래도 눈에 띄는 것이 청바지 무늬를 넣은 컵이었습니다.
코이노니아 공동체의 설립자인 클레런스 조단을 "청바지를 입은 선지자" 라고 부른 것을 기념하는 컵이었습니다.

사랑의 집 짓기 운동 국제 본부를 구경 못한 허전함을 조금이라도 채워보려고 했지만, 코이노이아 농장을 나서면서 우리가 잠깐 본 것이 전부가 아닐 텐데 하는 아쉬움이 오히려 더해졌습니다.

둘째 아이는 이거 보려고 여기까지 왔냐고 불만스럽게 묻습니다.
남편은 시골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기독교 공동체에서 흘러나온 사랑의 실천이 전세계로 흩어져가는 모습을 그려보라고 대답합니다.
조용하고 단순해 보이는 시골 농장이 커다란 세계를 품는 그림을 둘째 아이가 그려보았을 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이곳 조지아주 남부로 내려올 때처럼 다시 말없는 긴 시간을 보내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준비한 자료들과 코이노이아 농장에서 가져온 자료들이 그곳을 다녀와서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항상 열려 있다는 교회, 박물관, 도서관에도 들어가보고,
농장 사이 사이에 난 흙길들도 걸어다니며,
아름드리 피칸 나무도 가까이 가서 만져도 보고,
또 들판에는  무엇이 심겨졌는지도 살펴보고,
클레런스가 저술 활동을 하던 오두막도 찾아가 보고,
베이커리에서는 거둬들인 피칸을 재료로 해서 만든 점심도 사먹고,
커피하우스에서는 공정거래로 판매하는 커피 맛도 보았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하는 저를 보고 남편은 거기 한번 갈 꺼 아니라,고 합니다.


남편은 강화에서도 들판이 넓은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넓은 들판을 바라보면 정겹고, 가슴이 벅차다고 합니다.
코이노니아 공동체에 도착하기 2,30분 전부터 끝없이 연이어 펼쳐진 넓디 넓은 들을 바라보면서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집사님이 빌려주신 “하나님의 타이밍” 이라는 책을 읽다 보니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기억이 꿈보다 더 클 때, 당신은 무덤을 향하게 된다.”
또 아이들과 “쿵푸 팬더” 라는 만화 영화를 보니까 사부의 사부(The master of the shifu)가 하는 말이 “Yesterday is a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랍니다.
요즘 마음에 남았던 두 문구를, 기억을 발판 삼아, 꿈을 갖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 살아있는 인생이다, 이렇게 해석해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남편은 기억보다 꿈이 더 큰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신앙공동체의 삶을 어떻게 하면 오늘에도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늘 가지고 삽니다.
그런 그의 바람들이 지금은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사는 신앙공동체를 꿈꾸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공동체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이루어질 지, 그렇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그 꿈을 꾸며 걸어가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삶과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눈물이 찔끔 날만큼 힘들고 외롭더라도 잘 견디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문제는 저죠.
무엇인가 시작되기 전의 불안정한 마음이 팥죽 끓듯 좋았다 나빴다, 기뻤다 우울했다 하니까요.

여보, 얘들아, 어쨌든 우리 올해 잘 해보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26절-28절)

*******
클레런스 조단 목사는 조지아대학(UGA)에서 농학을 전공했고, 남침례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배운 농업 지식과 목회를 결합한 코이노이나 농장을 통해,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인종과 계급 없이 평등한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펼치게 됩니다.

평화주의, 평등, 그리고 인종통합의 정신을 가진 코이노니아 공동체는 경쟁과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생활의 대안이 되는 삶을 보여주며,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실현해 나가고 있습니다.

코이노니아 공동체의 홈페이지 주소는 www.koinoniapartners.org 입니다.
방문(2주)과 인턴(3-4개월)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공동체를 경험할 수도 있답니다.

1/08/2011

기억 보다 꿈이 크도록(1) -사랑의 집 짓기 운동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 일 주일 전쯤, 조지아 주 남부에 있는 코이노니아 공동체(Koinonia Farm)와 사랑의 집 짓기 운동(Habitat for Humanity) 국제 본부에 다녀왔습니다.
말 그대로 ‘다녀왔습니다’.

이들 단체가 조지아 주에 있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했습니다.
사랑의 집 짓기 운동은 조지아 주 출신인 지미 카터 대통령이 떠오르면서 어려운 이웃에게 집을 지어주는 활동을 하는 정도로 알고 있고, 코이노니아 공동체에 대해서는 그 활동 내용을 더 알지 못했습니다.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시간을 보내면서 남편은 그곳에 가보고 싶어 했습니다.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사는 공동체를 늘 꿈꾸는 남편은 아마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런 남편의 속마음을 헤아리면서도 막상 가자고 했을 때는, 나는 가기 싫으니 가고 싶으면 애들 데리고 다녀오든가 하라, 고 퉁명을 떨었습니다.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잘 풀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잘 견디다가도 강퍅해지는 제 자신을 그대로 방치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한가로이 구경 삼아 나들이 가는 것도 마음 내키지 않고, 게다가 공동체라고 하니, 남편이 마치 꿈에서만 사는 것 같아 탐탁스럽지 않은 반응을 보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자나고, 제 마음도 편치 않고, 무엇을 얼마나 느끼고 올는지 알 수 없지만 길을 나섰습니다.
여전히 화난 사람 같은 마음을 가지고요.
3시간 30분을 조지아 주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낯선 풍경들도 눈에 들어오건만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 말도 없이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편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도착한 사랑의 집 짓기 운동 국제 본부.
시골 조그만 마을에 제법 큰 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할 정도로 한가해 보였습니다.

남편이 자동차에서 내려, 건물 입구에 이르러 문을 열려는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그냥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문이 닫혀있다면서요.
어찌 이런 일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저도 차에서 내려 건물로 다가갔습니다.
건물을 여는 시간을 확인해봐도 일요일이나 공휴일도 아니고, 이르거나 늦은 시간도 아닌데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나중에 코이노니아 공동체의 방문자 센터에서 만난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그 사람도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건물 입구에 붙여놓은 지도를 확인하고 본부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볼거리(Grobal Village)가 있는 것 같다며 자동차를 조심스럽게 돌렸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모양의 집들이 있었고, 집들 정면에 이름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더 이상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

바깥에서만 자동차로 훑어보듯 지나 다시 본부 건물로 돌아왔습니다.
이거 보자고 여기까지 왔나 하는 뾰로통한 분위기를 남편은 느꼈는지, 아직 더 가볼 곳이 있다며 코이노니아 공동체를 설명해 놓은 자료를 내밀었습니다.

진짜로는 자세하게 읽어서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지만 저는 까칠하게 됐다, 며 그 자료에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냥 돌아서기에는 시간이며 연료비가 아까워 사진이라도 찍어야 되겠다는 마음에, 사진으로 몇 장을 남겼습니다.

저라는 인간이 이렇습니다.
남편이 뭐 하자고 하면 꾸물꾸물 더디게 따라 하다가, 나중에 그것에 대한 의미는 제가 더 부여하고 계속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편이 신중하게 주도하고, 저는 지속하며 주도하는 모양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티 나게 툴툴거리면 남편은 누가 이럴 줄 알았냐고 더 큰소리로 분위기를 험악하게 할 것이 뻔하므로 저는 여전히 말을 안으로만 삼켰습니다.
남편 기분도 맞춰주고 마음도 조금만 여유롭게 나두면 될 것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황당한 상황에서 먼저 가자고 제안한 남편은 미안하게 되었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20 년을 살아도 어찌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또 다른 목적지가 있어서 간다니 자동차가 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을 뿐 기대가 없습니다.
그래도 남편이나 아이들이 너무 허전하게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떤 상황이 펼쳐져 있어도 허전함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야 될 것 같은 작은 마음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 이 글에 이어서 쓸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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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짓기 운동은 미국 변호사였던 밀라드 풀러와 그의 아내 린다 풀러 부부에 의해 1976년 조지아주 섬터 카운티 아메리커스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풀러 부부는 1969년 코이노니아 공동체(1942년 시작)에 참여하게 되는데, 코이노니아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던 시절을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코이노니아 공동체를 법인으로 만들고, 저비용 무이자 건축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택을 건설하고, 토지도 확장하고요.
그리고 나서 코이노니아 공동체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무렵인 1976년에 사랑의 집 짓기 운동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코이노니아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는데,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랑의 집 짓기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국제적인 단체로 더욱 성장합니다.

국제 해비타트 한국 운동 본부는 1992년에 시작되었습니다.

혹시 이곳에 가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웹싸이트(www.habitat.org/gvdc)나 전화(229-410-7937)로 미리 확인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10명 이상 단체로 관람을 원할 경우, 관람료를 한 사람당 5-4불 정도 지불을 하면, 세계 여러 나라에 지어진 해비타트 집들, 그 안에 갖추어진 가구들, 장식, 옷도 볼 수 있고, 나라에 따라 다른 건축 방법도 배우고, 벽돌 만들기 체험 따위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육지창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 각 준령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이사야 30장 20절-2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