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폰의 옆모습을 바라본 순간

<그 날 밤을 재현해 보았습니다. 호호호>

지난 주 화요일쯤인가요.
늦은 저녁,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셀폰이 빠꼼히 옆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셀폰은 삼성 제품으로 검은색 슬라이드형이었습니다.
이동통신 회사를 바꾸어 새로 가입하면 쓰던 번호는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조금 유행이 지난 모델의 셀폰을 거저 주는 행사 때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 때 받은 셀폰이 유행이 지났다고는 하나, 한국 셀폰은 새 모델이 빨리 빨리 나오기 때문에 출시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셀폰의 단순한 외형, 편리함-계속 삼성 제품만 사용했으므로 사용방법이 거의 비슷해서-, 글자체, 다운받아 깔아놓은 벨소리와 통화연결음 따위가 제가 썼던 셀폰 가운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오느라 얼마 사용하지 못하고 놓고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와서는 셀폰을 구입하려면 재정 상태에 대한 크레딧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 기록이 없으므로 셀폰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두 달 정도는 남편이 출근하면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습니다.
늘 사용하던 집전화나 셀폰도 없고, 어딜 갈 수도 없고요.
사실 요즘도 어쩌다 보면 하루에 한 통화도 안 하는 날도 있는데….
하긴 언제든 전화하고 싶으면 할 수 있고, 차를 타고 나갈 수도 있게 되었으니 심정적으로 갑갑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런 상황을 아신 어느 권사님께서 어찌어찌 하여 셀폰을 한 달 동안 빌려주셨는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 정착하는데 참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은 분들에게 받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 권사님께 셀폰을 돌려드리면서 남편은 저의 셀폰을 마련해 가지고 왔습니다.
참 사람 마음이 이상하죠?
셀폰이 생긴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하는데, 새 셀폰을 받아들고 이리 보고 저리 돌려보아도 모양이며 색깔이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 셀폰에 정이 들만도 한대, 그걸 볼 때마다 공짜로 받아서 얼마 쓰지도 않은 한국 셀폰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빠른 시간 안에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마음을 편안한 쪽으로 가닥을 잡는 편인데, 새로운 셀폰에 대해서 만큼은 제 마음도 맘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주 어느 날 늦은 밤에 바지 주머니를 비집고 나와 있는 셀폰의 옆모습을 무심코 내려다보게 된 것입니다.
셀폰을 바라보는 몇 초 아니 순간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분한 듯 세련된 은색의 몸체와 버튼과 선들. 내 셀폰이 이렇게 세련되었었나. 이런 훌륭한 셀폰을 나 같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다니, 이런 제품을 사용해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맘에 들어 하지 않던 셀폰을 보고 이런 과장된 듯한 생각을 왜 했는지….
셀폰에 두었던 눈길을 거두고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별 시답지 않은 소리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죽음에 대한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오래 오래 살아서 적어도 강산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다가 남편이 나이가 많지(?) 않아 죽게 된다면 담담히 받아들이겠노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알 듯도 하면서 무책임하고 허황된 얘기라고 면박(面駁)을 주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10년 전쯤 대장암으로 수술하신 어머님과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그 병을 이기며 살아오셨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 철이 없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니까요.(영양제-Fe-를 잘 안 챙겨 먹어서 그런가??? ㅋㅋㅋ)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 말하던 대로 강산이는 강산이의 삶이 있는 것인데, 제가 오래 살아야 될 이유를 강산이의 삶에 기대어 찾을 것이 아니로구나, 는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로는 그렇다 여겨도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것이었는데, 그날 밤 날숨과 함께그런 마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맘에 들든 그렇지 않든 셀폰을 비롯하여 지금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많으므로, 감사한 마음에 죽어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여겼나 봅니다.
늘 감사해도 이렇게 까지는 아니었는데….
이런 마음은 자꾸 더 가지고 싶고 안주하고 싶은 마음의 반작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또 하나는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그리 흔쾌한 느낌이 아니었는데 그저 삶의 일부려니 싶으면서, 주님은 참 대단하시구나 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과 함께 하시니 말입니다.
이미 주신 것에 죽어도 좋을 만큼 감사하다면,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 주님께서 기뻐하실 행복한 모습 보여드려야지요.

지난 주 어느 늦은 밤의 생각들을 그냥 접어두려다가 자꾸 떠올라 정리를 해보긴 했는데 꿈보다 해몽인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시편63:3,4)

댓글

  1. 참새 다섯 마리가 2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중 참새 한 마리까지도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진정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시는 분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들보다 더 귀하다. 눅 12:6-7

    이 구절이 생각나 적습니다.목사님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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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oldman님의 관심과 기도에 마음 깊이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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