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 마지막

<아기 예수님이 오신 의미를 되새기며 모두 모두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마지막)

2000년도에는 병원마다 파업이었다. 의사들이 거리에 나가 병원이 텅 비었다. 예약 수술 환자도 다 집으로 돌려보내고 기별하면 다시 오라는 것이다. 병원 안에 예배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수술을 안 받겠다고 하니 작은 아들이 쓸데없는 말씀한다고 야단이다.
의사와 상의하여 수술 날짜를 겨우 6월 19일로 잡았는데, 앞에 환자가 수술이 잘 되어야 내 차례가 오지만 앞에 환자가 늦어지면 내 수술이 없다는 것이다. 마취과 의사가 다 거리로 나가서 수술이 계속 없다. 나는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기도뿐이었다.
수술 날짜가 되어 남편과 큰 아들이 올라왔다. 오후 1시쯤 되니 간호사가 와서 아주머니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어서 준비합시다, 하였다. 나는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주님께 이 몸을 맡깁니다, 하였다. 1995년도에 치질 수술을 간단하게 한 적이 있었고 대수술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술하고, 마취 깨고 하는 시간이 7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대장암 말기라고 했다. 딴 데 전이되지는 않았고 한 군데 주먹만한 것이 있었다고 하였다.
입원실로 돌아왔다. 언니와 동생이 나를 보호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니 내 머리 속에 복음성가 “주만 바라볼찌라”가 머리에 입력된 것을 알았다. 완전히 가사는 못 외워도 곡조는 좀 알았다. 가사를 더듬어 보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이 가사를 머리에 떠올리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가사를 다시 생각하며 오, 주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막 가슴이 미어지면서 눈물이 억제할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만 바라볼께요.”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말씀이 생각나면서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볼찌라, 그 찬송 구절만 부르게 되었지요.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솟구쳤다. 의사가 무조건 운동해야 하니 걸어 다니라고 하여 병원 복도를 다니며 그 찬송만 했다. 보름 후에 상처가 아물었다. 퇴원하고 20일 후에 항암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항암치료 받는 것이 아주 힘들다고 하는데 그 고비를 어떻게 넘어야 하나, 걱정이 되어 항암치료를 안 받겠다고 했다. 남편이랑, 아들들, 형제들까지도 받아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집에 돌아왔다. 새벽예배에 나갔는데 목사님이 찬송을 선택하시는데 462장을 부르게 되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옛날에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462장 찬송을 주셔서 위로 받았는데, 그 때도 성령님이 나에게 위로주심을 감사 드렸다. 찬송 462장 후렴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 저 영원한 나라에 이르리라” 목사님, 사모님, 여선교회 회원들이 심방 오셨다. 병원에도 많이들 오셨는데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길래…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날짜가 되어 항암주사를 닷새를 맞고 집에 돌아왔다. 일 주일이 지나니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는 것이다. 입술이 다 헤어지고 음식도 못 먹고 너무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 강화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있는데 두 여자 권사님이 방문했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를 믿으라고 한다. 나는 기가 막혔다. 보혈의 피를 믿습니다, 하며 따라 하라는 것이다. 나는 따라 하며 웃었다. 그들은 돌아갔다. 이렇게 아프니까 나의 믿음을 영적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들렸다. 나는 이 권사님들만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를 저울질 하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일 주일 있다가 퇴원하고 다시 집으로 왔다. 사모님이 머리 빠진 모습이 안 되었는지 밤을 세워 모자를 떠 오셨다. 사모님 고맙습니다. 가끔 밥을 못 먹으니 죽도 쑤어 오셨다. 나는 성도들의 사랑을 너무 받았다.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음식을 갖다줄 때마다 너무도 죄송하고 미안했다. 어떤 권사님은 권사님이 살아야지. 안 믿는 자에게 전도문이 막힌다, 는 것이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정식으로 항암주사를 맞지 못했다. 너무 힘들어서 웬만치 넘어갔다. 2001년 2월에 다 끝났다.

전에 우리 교회 계셨던 은혜 받았던 양목사님께 전화 드렸다. 목사님 저 아팠어요, 하니 깜짝 놀라신다. 어데가 아팠냐고 하시어 말씀 드렸더니 수술 했으면 됐어, 하시면서 “야채 스프와 현미차” 해서 먹는 법을 복사해서 보내주셨다. 3년을 거르지 않고 정성껏 복용했다.
몸은 1년이 되니 건강하여 농사 일도 전과 같이 열심히 했다. 주님 은혜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나에게 또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주님께 감사 드렸다. 이 못난 것 아직 쓰시려고 이 땅에 생명을 남겨두신 것을 생각하며, 남은 여생 주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이른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를 시작하면서 제단을 위해, 몸이 아픈 자를 위해서, 목회하는 아들 목사 가정을 위해서, 특수교사 하는 작은 아들 내외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지방 여선교회 계삭회가 12월 강화제일교회에서 열렸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연합회장을 하라는 것이다. 부족한 나였기에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러면 계삭회에 안 간다고 했다. 권사님들이 계삭회에 가자고 왔다. 우리 교회에 회장이 안 가면 되냐고 어서 가자고 하여 마지못해 갔다. 총회를 하는데 연합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나는 어깨가 무거웠다. 전에도 몇 번 회장될 기회가 있었지만 앞장설 자격이 못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주님이 왜 나를 세우셨을까, 이른 새벽에 나가 기도 드렸다. 마음 속에 뜨거운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나를 살려준 주님께 뜨거운 헌신을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알았다.
첫 번째 계삭회를 우리 교회에서 하기로 했다. 시험이 왔다. 계삭회 날짜와 동네 청장년 관광 가는 날과 한 날이다. 기도 드렸다. 주님 어떡합니까. 감리사 직인 아래 공문도 띄우고 했는데 그냥 밀고 나가야 합니다. 목사님은 계삭회 날을 다른 날로 정해도 된다고 한다. 권사님들은 관광을 많이들 가기 때문에 계삭회 때 누가 음식을 장만하냐는 것이다. 나는 감리사님께 관광 가는 문제로 계삭회 날짜를 물린다는 것이 떳떳하지 못해 그냥 밀고 나갔다. 관광갈 사람은 다들 가시고 전날 와서 음식 준비 좀 해놓고 다들 가라고 했다. 손을 꼽아보니 12명쯤 남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편이 말을 도왔다. 하나님은 다 할 수 있어. 염려 마라, 하는 것이다. 너무도 힘들었다. 왜 그리 말이 많은지. 어느 한 사람 와서 위로하는 자가 없었다.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꿈을 꾸었다. 담대했다. 주님 도우심을 확신했다.
계삭회 날이 왔다. 어쩌면 전날도 바람이 불고 했는데 계삭회 날 아침부터 햇빛이 찬란하며 날이 잔잔하고 따뜻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각 교회에서 많이들 참여하게 해주세요. 각 교회 여선교회 회원님들이 많이 왔다. 음식도 잘 대접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장로님 사모님이 미국에 있는 아들네 갔다가 계삭회 전날 온 것이다. 병원에 있던 권사님도 오고, 행사 치르는 사람이 많았다. 주님의 도우심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꼈다.

2년 동안 사랑의 쌀도 배나 모아지고, 자금도 넉넉히 돌아가고, 임원들도 잘 협조하여 많은 일을 했다. 협조가 잘 되니 재미 있고 신났다. 나는 회원들에게 짧은 간증을 했다. “죽음의 문턱에 서보셨습니까? 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그 때 나의 마음 속 깊이 떠오르는 생각은 건강했을 때 더 뜨겁게 헌신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지요. 이제 남은 생은 주님께 헌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건강할 때 최선을 다 합시다. 후회 없는 생애가 되도록 우리 열심히 합시다. 제단에 기도의 불씨가 되어 기도의 불을 붙이며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됩시다.” 회원들이 아멘, 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목사님이 새로 오셨다. 지목사님이 우리 집에 처음 대심방이 되어 오시게 되었다. 누구든지 처음 오신 목사님은 우리 가정 상황에 대해 모르시니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이 처음에 무슨 말씀을 주실까 기대하고 있는데 욥기서를 읽어주시면서 고난을 극복한 욥은 나중에 영육에 더 큰 복이 왔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목사님께 저희 집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했다. 목사님은 부임한 지 몇 일 됐다고 압니까, 하셨다. 주님이 목사님께 말씀 주신 것을 감사하며 새 힘이 났다.
고난은 축복의 열쇠라는 것을,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잠시 잊었었나 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다시금 큰 웅덩이에 넣으셨다가 살 수 없는 상황에서 건져주시어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다시금 알게 해주신 것 같아 깊은 감사를 드렸다.
기도의 제목, 나의 소원. 첫 아들 주님께 바치면서 이 시대에 진실한 사랑의 종, 능력의 종, 기도의 종, 말씀의 종이 되기를 소원하며 주님 장중에 붙잡힌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요. 아들 목사님도 많은 체험 주셨고,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역사하시고 도우시는 주님의 섭리를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을 들을 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작은 아들 내외도 특수교사로, 연약한 장애인들에게 친구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보람 있는 생애가 된 것 같아 감사했지요. 진심으로 모든 영광 주님께 돌립니다.

찬송 404장
1. 그 크신 하나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 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후렴)
하나님의 크신 사랑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 윗 글이 끝나고 제 블로그에 첫 번째로 올린 어머님 글이 덧붙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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