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햇빛과 바람


동생에게

동생 편지를 받고 곧 답장을 했지만 동생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어줍잖은 내 생각이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어.

여기는 여름 끝자락에 비가 엄청 많이 오더니 흐린 날도 많고 비도 자주 오고 있어.
그러는 사이에 철이 바뀌었고 아침, 저녁 기온도 뚝뚝 떨어지고 말이야.
오늘은 바람도 꽤 불더라구.

바람도 불고 동생 생각도 떠나지 않아서 그랬나?
이솝 우화 가운데 “해와 바람”이라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어.
이야기가 섬세하게 생각이 나질 않네. --;
해와 바람이 누가 힘이 더 센가 내기를 했나?
그래서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누가 벗기는가로 힘 센 것을 가늠하기로 했지.
바람은 있는 힘껏 바람을 불었는데 나그네는 옷이 벗겨질까봐 옷을 더 꽉 끌어 안았고.
해는 따뜻하게 그 빛을 비춰주자 나그네가 옷을 벗어 해가 이겼다는 이야기.
이거 맞나?

이 이야기를 두고 <패러독스 이솝 우화> 책에서는, 그 다음에는 나그네의 옷을 누가 다시 입히는가 내기를 했는데 물론, 바람이 이겼다는 거야.
이야기가 이렇게 풀리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괜한 힘 겨루기는 쓸모 없다, 뭐 이런 교훈을 주고 싶은 것이리라 여겨져.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싶어.
나그네의 옷을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보면, 관계를 맺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따뜻한 햇빛이지 몰아치는 바람이 아니라고 말이야.
살다가 관계의 어려움과 마주치면 난 이 얘기가 떠오르곤 하더라.
내 수준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할만한 그릇이 안 되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따뜻한 친절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거지.
--;

동생의 성품을 볼 때 이런 수준은 이미 뛰어넘은 것 같아.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아파하고 있으니 말이야.
참 착하다, 동생!

얘기하다 보니 동생한테 주고 온 그림책들 생각난다.
그림책 모으는 즐거움이 꽤 컸는데.
아이들도 읽고 나도 읽고.
그림책은 짧은 글 속에 온갖 감정이 실려 있으면서 유익한 교훈들도 들어 있고, 그런 내용이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참 좋았는데…
동생한테 그 그림책이 짐이나 안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크리스찬의 스트레스 해결”(???) 이런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
그 시간에 자기 취미를 얘기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림책 읽는 것이라고 했어.
그랬더니 그 교수님은 아무 대꾸도 해 주지 않는 거야.
아마 어른이 그림책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낌이 다가오지 않으셨나봐. ^^

같은 햇빛과 바람이라도 한국에서 느끼는 것 하고 아틀란타에서 느끼는 것 하고 조금 다른 것 같아.
사진에 담아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 손끝에서는 멋진 사진이 찍히지 않더라구.
기술 부족!!!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라도 찍어볼까 했는데 스틸 사진에 바람이 머무르질 않네.
강산이 머리카락이라도 바람에 날리면 어떨까 해서 데리고 나갔는데 모자를 안 벗겠다는 거야.
겨우 달래서 모자를 벗었는데 머리카락이 모자에 눌려 있었던지라 그것도 잘 안 되고.

맘 아프면 몸도 아프게 돼.
아프지 말고 늘 건강하길 바래.

강산이와 내가 찍은 사진 보며 잠깐이라도 웃어봐.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 / 그 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 /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개역개정, 욥기 28:23-28)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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