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2009

기꺼이 하는 약속




지난 5월 우리교회 한국학교 종업식을 하고 교사와 보조 교사들이 공원에 모여 점심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거기에 교사의 자녀들이 같이 있기도 했는데 제 둘째 아들 강윤이도 끼어 있었습니다.
얼추 그 식사 자리가 정리되고 교회 Youth 오케스트라 모임 시간이 다 되어 중고등부 아이들 대여섯 명을 태우고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로 오는 동안, 그 가운데 한 아이가 셀폰을 잃어버렸는데 집에 있는 세계위인전 60권을 다 읽는 동안 셀폰을 찾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이 다시 셀폰을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웃으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위인전이라는 말에 살짝 끼어들어 “그 책 우리 강윤이도 빌려주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책은 글씨도 크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강윤이한테는 너무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강윤이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것을 마음에 두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어, 그래도 괜찮아. 강윤이도 위인전은 많이 읽지 않아서.”
“야, 너 그러면 히틀러 알아?”
“응~~~”
“몰라?”
“그러면 장영실은 알아?”
“뭐 만든 사람.”
“야, 너~”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서로 대가며 아는 둥 모르는 둥 할 때마다 “oh, my goodness!” 를 외쳐대며 낄낄 깔깔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아이들이 물어볼 때마다 강윤이가 너무 대답을 못해서 ‘이거 괜히 책 빌려 달라고 해서 애 기죽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아이들은 “그럼 세종대왕은 알아? 이순신은 알아?” 하며 거의 놀리는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운전을 하며 뒤에서 들려 오는 강윤이의 목소리만으로 가만히 가늠해보니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계속 대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먼저 알고 나중 아는 것일 뿐, 모르는 것은 필요하면 배우고 익혀서 알면 되는 것이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라면 일찍부터 알고 깨닫는 것이 좋겠지만요.^^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강윤이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그 친구가 위인전을 빌려준다고 하면 한번 읽어 볼래? 그거 다 읽고 한국에서 가져온 역사책 5권까지 다 읽으면 너도 셀폰 사 줄게.”
“정말?”
언제 얻게 될 지 모르는 셀폰을 사 준다고 하니 해볼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강윤이 친구는 선뜻 위인전을 빌려주었고 5월말부터 책이 두 집을 오고 갔습니다.
방학 중이라 조금 느슨하게 책을 읽는다 싶었는데 그 친구가 8월에 다른 주(州)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갔다가 들어오는 강윤이 손을 보니 큰 가방에 위인전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친구에게, 조금 있으면 이사 가니 나머지 책들을 다 달라고 했답니다.
그러더니 책장에 꽂힌 역사책 4권도 뚝딱 읽어버렸습니다.
나머지 한 권도 마저 읽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분명히 4권이라고 들었다며 더는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저도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아 2 주 전에 셀폰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셀폰을 얻을 수 있는 힌트도 주고, 책도 빌려준 친구에게는 더 없이 고마울 뿐 아니라 자동차 안에서 책을 읽도록 자극을 준 교회 형들을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강윤이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강윤이가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 가운데 하나인 성경 말씀 66권을 컴퓨터로 모두 타이핑 하면 노트북을 사 주기로요.
장(章)과 절(節)을 표시하면서 한글로 타이핑 하기로 했습니다.
타이핑 하다가 모르는 내용이 있거나 타이핑을 더 빨리 하기 위하여 미리 한 권 한 권의 내용을 알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해 두었습니다.
강윤이 생활 속에서 성경을 보다 가까이 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과제를 포기하지 않고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도로 도우려고 합니다.





강산이 선생님으로부터 Home Checklist를 받았습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연습하는데,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훈련이 이어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침대 정리를 하고, 자기 물건들을 사용한 다음에는 제자리에 갖다 두고, 이 닦고 샤워한 후에 뒤처리와 빨래감을 세탁실에 가져다 두고, 식사 후에 식탁 정리, 숙제나 선생님과 학부모의 편지를 잘 처리하고 전달하는지…. 날마다 체크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용을 더 보태거나 빼도 좋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대로 좋다고 하여 9월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통계를 내서 잘 했으면 주말에는 한 시간 늦게 자도록 허락한다든지, 비디오 게임 하는 시간을 조금 더 준다든지, 주말 아침을 맥도날드에서 먹는다든지 하는 상(reward)을 고려해보는 것도 제안해 주셨습니다.

체크 리스트 가운데는 이미 강산이가 잘 하고 있는 것도 있었고, 침대 정리나 세탁실을 이용하는 것은 거의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새벽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시간 안에 침대 이불을 깔끔하게 펴놓고 벗은 옷은 세탁 바구니에 갖다 놓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아마 학교에서 배운 모양입니다.
Thank you, our Lord!

강산이에게는 어떤 상을 주면 좋을까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강산이가 고장난 아이팟(i-pod)을 찾아와 “이거 사 줘” 합니다.
강윤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학교에서 타 온 조그만(1GB) 아이팟인데, 주머니 속에 든 것을 모르고 빨래를 해서 고장난 것을 어디선가 찾은 것 같습니다.
날마다 두어 시간씩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듣는 강산이는 CD나 CD 플레이어, 그리고 강윤이의 아이팟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강윤이의 새로운 셀폰 때문에 왁자지껄 했던 터라 강산이도 뭔가 새로운 것을 갔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잠깐 생각한 다음 강산이에게도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체크 리스트에서 하라는 대로 잘 해서 체크를 받은 숫자가 모두 합하여 300개가 되면 아이팟을 사주겠다고 몇 번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도 강산이와 약속한 내용을 적어 보내면서 강산이를 격려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강산이가 이 약속을 잘 이해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체크를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강산, 체크!” 하고 말하면 행동을 수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낸 그 날 저녁에는 체크 리스트 한 장 곳곳에 자기가 체크를 미리 다 해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깔깔깔.
강산이가 분명히 알고 있던 것입니다.

요즘은 “강산아, 300개야, 300개!” 하고 있습니다.
한 주에 45~50개쯤 체크가 되니까 300개가 되려면 6~7주 정도가 걸릴 것이고, 이번 주까지 모두 보태면 250개가 조금 넘게 되니까 다음 주말에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도 잘 알 수 없는(--!), 강산이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 동안 바뀐 강산이 생활 태도가 쭉 이어지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저에게도 좋은 아이디어 주시면 더욱 감사, 아니 주실 줄로 믿고 미리 감사 드려요.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3:15-17)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