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2009

어머님의 글을 조금 옮겨 적다

며느리가 가끔 생활이야기를 써서 교회 홈페이지(한국)에 올린 것을 보시더니 언젠가부터 어머님의 이야기도 써보시겠다고 하셨더랬습니다. 그러시더니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올 때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주시면서 네가 잘 정리해 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 죄송해요. 미국 온 지 2년이 가까워오는 오늘에서야 어머님이 쓰신 글을 꺼내 보았어요. 제가 이래요. 그래도 오늘이라도 열어보았으니 괜찮죠? 히히히. 늘 마음에 담고 있었어요.”

여선교회 공문으로 받은 A4 크기의 종이와 그 크기와 똑같게 자른 교회 달력 뒷면에 가지런히 적어놓으신 글이 세어보니 28장이나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아끼고 절약하는 어머님이시기에 이런 종이를 사용하신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강화 망월에서 60 여년을 사시면서 100년도 넘은 교회를 한결같이 섬기신 어머님에게 28장은 너무 적은 분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머님 글을 제 블로그에 사용할 목적(^^)으로 타이핑을 시작했습니다.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2008년 2월에 씀)

나는 지금 66세에 들어섰다. 요즘 자꾸만 마음 속에 지나온 일들이 새록새록 머리에 떠올라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이 못난 딸을 주님께서 부르시어 주님의 깊으신 사랑을 깨닫게 하셨고 그 많은 생명들 중에 나를 구속하여 생명의 길을 찾게 하셨기에, 살아온 발자국마다, 임마누엘 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여 그 누구에게라도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소심하고 담대하지 못하여 늘 자신 없고 교회 공동생활 하는데도 앞장서기 보다는 뒤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늘 부족한 사람이다.
우리 교회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주님을 만나보셨습니까? 성령을 체험했습니까?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질문하실 때마다, 재작년 성경을 읽다가 큰 감동을 받은 신명기 33장 29절 말씀을 마음 속으로 대답하곤 했지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전에도 읽었던 말씀이건만 그날따라 신명기 말씀이 나를 향한 말씀임을 알았지요. 주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부족한 죄인을 돌보시고 늘 어려움에 닥칠 때마다 주님 앞에 무릎 끓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 늘 도우시고, 위로해 주시고, 말씀으로, 기도로, 찬송으로, 이 못난 자를 이끌어주심을 감사하며 필(筆)을 들게 됨을 감사 드립니다.

나는 고향이 바다 건너 이북에 있는 황해도 연안 칠리라는 동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업을 하셨고 어머니, 언니, 동생들과 나, 이렇게 여섯 식구였다. 4 형제 가운데 둘째였다.
그 당시 홍역이라는 무서운 병이 동네에 들어와 많은 어린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아갔다. 우리 가정 역시 나와 두 동생이 홍역에 걸렸다. 나와 여동생은 거의 죽어가 부모님이 포기했었고 내 밑에 남동생 봉수는 아들이 죽을까봐 아버지와 어머니는 안절부절 살리려고 병원에 다녔지만 결국 아들은 죽고 죽어가던 딸 둘은 살아났다. 부모님은 너무나 큰 슬픔에 신음하던 끝에 살던 곳을 떠나기로 결심하시고 12월에 강화로 이사를 하였다.
그 때 나는 7세였다. 이북 연안은 수리조합이 있어서 농사 짓는 것이 잘 되었지만 강화에 이사오니 물이 없고 흉년이 들어 동네 사람들은 굶기가 일쑤였고 배고픈 시기였다. 그리고 그 해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북에 사시던 이웃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피난 오시어 사랑방에는 피난민들로 가득했고 부모님은 그분들을 맞아들여 재워주시고, 큰 가마니 솥으로 밥을 한 솥씩 해서 대접했다. 그러는 사이 된장 단지, 고추장 단지도 다 거덜났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 집은 이사올 때 쌀을 많이 싣고 왔기 때문에 보리 방아 쪄서 양식을 삼아 지내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간 분도 많았다.

강화 망월에 이사오니 돌로 지은 조그마한 예배당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예수 믿는 집이 많지 않았다. 언니는 이웃 동무들을 따라 교회에 다녔고 나 또한 언니를 좇아 교회에 나갔다. 아버지는 언니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무척 반대하시면서, 성경책도 아궁이에 태우시고 언니의 뺨도 때리셨다. 하지만 언니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주일학교 교사 하다가 이웃 동네에 있는 오상교회 장로님댁 며느리로 시집갔다. 언니가 믿음의 길을 닦아 놓고 시집을 갔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 핍박 없이 교회에 잘 다니게 되었다. 망월로 이사 와서 태어난 여동생이 하나 더 있어서 4 자매가 되었는데, 남은 두 동생과 함께 언니처럼 교회학교 교사도 하면서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딴 집들은 온 가정이 교회에 나가는데 우리 가정은 그렇지 않아 그것이 늘 기도제목이었다. 아버지는 일 잘 하시고 농사도 잘 지으시고 양심적으로 사시는 것 같은데 하나님을 모르시는 것이 우리 자매들 마음에는 늘 안타까웠다. 가을이 되어 추수감사절이 돌아오면 하나님이 햇빛 주시고, 바람 주시고, 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아버지가 모르시는 것 같아 아버지께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말씀 드리면 쓸데 없는 소리 한다고 하셨다. 새벽마다 기도를 간절히 했다. 우리 가정도 하나님 믿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렸다. 아버지를 설득하던 중 오히려 어머니께서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부끄럽다고 하셨지만 우리 자매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성경 말씀을 들려 드리며 “어머니는 이제부터 천국에 갈 수 있잖아요. 감사하세요” 했다. 그래도 온 가정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제일 부러웠다.

나는 몸이 약했지만 열심히 일하고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 정말 기뻤다. 마음 속 깊이 원하는 소원이 생겼는데, 이 세상에서 예수 잘 믿는 청년을 인생의 동반자로 만나는 것이었다. 그 때는 왜 그렇게도 연애편지가 마음을 꼬여보려고 여기 저기서 날아들었는지…. 나에겐 시험인 것 같았다. 학교 선생으로부터, 부잣집 아들, 동창들, 여기저기서 나를 꼬였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못났어도 주님 섬기는 청년만을 선택하리라 기도하며 마음 먹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가장 친한 친구가 권사님네 아들을 소개해주어 비밀로 하고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이 비밀 만남을 아시고 반대하셨다. 반대하는 결혼은 자신 없다 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 만남이 인연이었던지 3년 후 어느 장로님 부인이 우리 아버지에게 사람을 한 명 소개했는데 전에 만났던 그 청년이었고 장로님 부인은 아버지 마음을 바꾸어 놓으셨다. 6월26일 약혼을 하고 10월18일에 결혼하였다. 시집살이 3년 하고 큰 아들 첫 돌날 이웃에 조그맣게 집을 지어 세간을 났다.
시어머니 권사님이 믿음이 좋으셨다. 큰 아들 가졌을 때 어머니께서 기도하시던 중에 자부가 임신한 지 일곱 달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 종으로 첫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다고 하시기에 마음 속으로 아멘 하였다. 열심히 신앙 생활하면서 두 아들 주심에 감사하며, 두 아들을 저에게 맡기신 주님, 이 땅에서 꼭 필요한 생명들이 되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왜 그렇게 간절하게 눈물로 호소하게 되는지요…. 주님께서 복 주시어 온 가정이 건강하고 살림도 남부럽지 않게 늘어나갔다.

**어머님 글에 <찬송 305장 쓰세요> 라고 되어 있네요. ^^

1.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지 즐거운 동산이라
2.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도 함께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여기까지 옮겨 적고는 그 다음 내용은 읽어보고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머님이 정하신 제목처럼 성령 체험을 통해 신유의 은사를 받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한 이야기들과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동안 어머님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러다 끝에 몇 장 남겨두고는 쪽수가 다시 (1)로 시작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뒷부분 4장은 저희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특히 남편과 강산이에 대한 어머님의 마음들이 담겨 있기에 일부분을 다시 옮겨 적어봅니다.
********

첫째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서울에서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 사는 언니네로 보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형부가 세광교회 장로님이셨고 언니는 권사였고 사촌 형들이 둘이 있었다. 5학년인 둘째 아들도 함께 보냈다. 아들들이 집을 떠났어도 믿음의 가정으로 갔으니 마음이 놓였고 남편과 나는 열심히 농사지어 자녀들 교육비 대는 것에 전념하였다.
큰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감신대를 가기 위해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 때는 막내 동생네로 애들을 옮겼고 친정 어머니가 외손주들을 돌보고 계셨다. 첫 새벽에 시험장에 아들과 함께 갔다가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동생네 골방에서 하루 종일 음식을 전폐하고 기도 드렸다. 주님, 도와 주세요. 주님께 맡깁니다. 그 이튿날 집에 돌아왔다. 시험 발표날이 다가와 소식만 기다리게 되었다. 가슴이 졸여왔다. 저녁 때 전화가 왔다. 합격하였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주님께 감사 드렸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났다. 아들이 신학 3학년 때 데모하는데 휩쓸리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에 정보부에서 왔다고 남자 두 사람이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누구세요, 물으니 아들 김성은 집이냐고 부모님들이냐고 한다. 우리 부부는 누구시냐고 또 물었으나 다짜고짜 방으로 들어가더니 책꽂이를 살피더니 조사를 하면서 교회 나가시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다. 그 남자들은 아들이 데모하다가 붙잡혀서 남부경찰서에 들어갔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우리 아들은 그런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공부만 열심히 하고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그럴 리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도 않고 그런 줄 알라고 하면서 건국대학교에서 데모하다가 2 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감되었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면서 여보, 이런 일이 왜 일어났어요. 서울 동생네랑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사실이었다. 남편과 나는 동생들과 만나 서울시남부경찰서에서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유리 안으로 얼굴을 보며 건강하냐고 물으니 걱정 말라고 하며 안심시켰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이 무거웠다. 잠도 안 오고, 갑자기 입술이 부르트고, 속이 타니 변비도 생기어 화장실에 가면 대변이 막히어 꼬챙이로 파내어 피가 나기도 하였고, 마음이 편치 않으니 음식도 다 맛이 없었다. (이 일 때문인지 어머님은 2000년도에 대장암 수술을 받기도 하셨어요) 첫째 부끄러움은 동네 사람들에게 였고, 소문이 귀에 들려오기는 성은이가 데모하다가 들어갔대 하며 교회에서도 수군대는 눈치였다. 저녁이면 잠이 안 와서 교회에 나가 울며 불며 하나님, 막아주시지 왜요, 기도하다 새벽기도 마치면 돌아오곤 하였다. 담요를 싸가지고 오산리 기도원으로 갔다. 첫 시간에 응답을 주셨다. 예레미야 33장3절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뜰에 갇혔을 때에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는 말씀이었다.
금식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면회를 갔다. 아들이 나왔다.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걱정 말라고 잘 있으니까, 하는 말 뿐이다. 나는 예레미야 33장3절 말씀을 보고 그 속에서 기도하며 부르짖으라고 하니 알았다고 한다. 면회 시간이 다 되어 금방 들어가는 것을 보니 너무나 허무했다. 아들 말로는 독재 정치가 물러가고 민주주의 정치를 위한 호소였다. 속히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반성문을 쓰는 사람은 나오는데 반성문을 쓰라고 하니 무얼 잘못했냐며 쓰지 않아서 재판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다.

재판 전날 꿈을 꾸니 아들이 대여섯 살쯤 되었는데 큰 웅덩이에 빠졌는데 물은 없었다. 남편을 찾아 다니며 저기 아들이 떨어졌다고 하다가 꿈이 깼다.
남편과 나는 재판 받는 아들을 보려고 갔다. 복도에서 두 사람이 가운데 있는 죄수를 싸고 들어간다. 조금 있으니 아들이 동아줄로 손을 꽉 묶인 채로 들어오는 것을 보니 기가 막혔다. 나는 가슴이 떨렸다. 재판이 끝나 아들과 고개만 끄떡 하고 헤어져 죄수들 차에 실려 교도소로 간다. 나는 갑자기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가 생각났다. 마리아는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며 아팠을까. 그 때처럼 마리아를 존귀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리아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마리아를 생각하며 위로 받았다. 며칠 후에 아들이 쓴 편지를 받았는데 재판 받고 나올 줄 알았는데 마음이 괴로운 편지였다.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 편지였다. 나중에 6 개월 만에 나왔다.
그 이듬해 학교에서 행사를 하다가 그 때도 또 감옥에 갔다가 3개월 만에 나왔다. 9개월을 옥살이 했다. 노태우 대통령 때 6.29가 선포되고 민주화 항쟁들이 유리하게 뉴스가 흘러나왔다. 학교에서 그런 학생들에게 나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민주화보상법이 통과되어 장학금(보상금)도 탔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아들에게 당부 또 당부했다.

대학 졸업을 하고 종교교회 교육전도사로 있었다. 대학원 1년 된 해 가을에 결혼하여 첫 목회지인 강화 성은교회로 오게 되었다. 시골에 작은 교회. 성도는 약 70명, 장로님 두 분이 계신 곳이다. 우리 부부는 어린 종이 목회를 잘 감당하여 양들을 잘 보살피는 목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성은교회 성도님들은 어린 종을 사랑으로 격려해주며 사랑으로 감싸주셨다.

1993년 1월에 첫 손주를 맞게 되었다. 아들이었다. 모두들 기뻐했다. 자연분만으로 병원에서 낳고 우리 집에 와서 일주일 있다가 친정 인천으로 가서 친정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건강하여 우리 집에 다시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였다. 한 달이 지나면 애기가 얼굴도 몸도 목욕시키기가 편안한데 그것이 아니었다. 목사와 사모는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아기를 보고 의아해하니 목사가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름은 김강산이라고 지었는데 강산이가 몸이 약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큰 병원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떨렸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목사와 사모에게 기도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일이니 기도하자 하고 돌려보냈다. 우리는 가끔 손주를 보러 갔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만 기다리는데 사모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 강산이가 안 좋대요, 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못한다. 가슴이 덜컹 주저 앉은 기분이었다. 주님 저희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이 있습니까. 목회자의 아들이 이게 말이 됩니까. 성도들에게 본이 됩니까. 항의 기도인지 원망 기도인지 나도 모르게 울며 부르짖어 기도하였지만 마음이 답답했다.(병 이름은 다운증후군) 새벽녘에 찬송으로 응답을 주셨다.

찬송 462장
1.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이 이배의 사공이라
2.큰 풍랑이 이배를 위협하면 저 깊은 물 입벌려 달려드나
이 바다에 노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이 이배의 사공이라
3.큰 소리로 물결을 명하시면 이 바다는 고요히 잠자리라
저 동녘이 환하게 밝아올 때 나 주함께 이바다 건너가리
(후렴)
나 두렴없네 두렴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목사와 사모는 금식 기도에 들어갔다. 기도가 끝난 후 집에 왔다. 종교교회에서 사역하던 시절 함께 계시던 부목사님이 읽어보라고 주신 책을 가지고 왔다. 목사와 사모는 금식하면서 응답 받고 힘을 얻은 것 같았다. 책 제목은 “작은 햇살”. 영국의 어느 천주교 신도가 아주 흉악한 기형아를 낳은 것이다. 둘째 아기를 낳았는데 둘째도 그렇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기를 사랑하며 온 가정이 사랑의 가족이 된 것을 쓴 체험적 수기였다. 그 아기 부모는 책을 쓰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는 하늘이 내린 천사로 생각되었다. 책을 읽고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 인간들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저울질 하고 판단하고 저주하고 죄값으로 태어났다고 결론 짓는다. 그 책을 읽고 인간이 갖추어야 할 참사랑을 깨닫게 해주었다.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아기를 통해서 참사랑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것을 깨달았다.

강산이를 보면서 하나님 뜻이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산이를 보며 미운 맘이 생기면 죄 받을 것 같고 동생 강윤이는 얼마나 똑똑하게 태어났는데도 강산이가 더 사랑스럽고 사랑을 깨우쳐주는 인간 천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도가 바뀌었다. 강산이가 자라면서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강산이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감사를 드린다. 작은 목장 안에 힘 없는 어린 양을 보면서 위로하고 싸매주고 도와주면서 성도들에게 사랑의 마음이 싹트어 자랄 때 사랑의 성도, 천국 백성이 된다면 강산이에게 도리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략)
아들 목사가 여기서 공부하는 것이 있는데 미국에 갈 일이 생겼단다. 사모와 함께 15일 동안 다녀온다 하였다. 미국에 다녀온 후 문제가 생겼다. 미국에 있는 큰 교회에서 목사 한 분을 초빙하는데 어느 목사님이 소개하였고 부모님 의사는 어떠냐고 물었다. 남편 장로와 나는 반대했다. 고생하러 가느냐고. 그전에는 미국에 관심도 전혀 없던 아들 목사가 외국으로 나간다는 말을 들으니 당황했다. 아들 목사는 주님 뜻에 맡기고 가게 되도 안 가게 되도 하나님 뜻에 맡기고 기도한다고 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니 하나님 뜻인듯 하여 비자 내고 바쁘게 일이 추진되었다. 2월20일이면 고국을 떠나 목양지가 바뀌게 되니 앞으로의 일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할 뿐이다.

1월28일 우리 교회 부흥회가 있었다. 감사헌금을 간절하게 드리고 싶었다. 지방여선교회 연합회장직이 끝나면 기념으로 금반지 3돈을 해주는 전례가 있다. 옛날 결혼 때 남편으로부터 금반지 3돈 받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팔아서 쓰게 되어 없었다. 지방여선교회로부터 금반지 3돈을 받아 손에 끼어 보았다. 주님이 주신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옛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나도 이 반지를 자녀를 위해 바치리라 기도 중에 결정했다. 낮 예배 때 바쳤다. 마음이 기뻤다.

찬송 353장
1.내 주예수 주신은혜 한없건만 내 주앞에 이적은 것
다 드리니 주예수여 내 정성을 받으소서
2.주 날위해 보배로운 피흘리사 그 귀하신 생명까지
다 주시니 내천한몸 이 생명을 왜 아끼랴
3.주 예수께 빚진 것이 한없건만 나 주위해 갚은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
4.날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리사 주 예수의 은혜로써
인치시고 내 모든 것 주의 소유 삼으소서
5.주 날위해 그 귀하신 몸버리사 이 내몸을 피값으로
사셨으니 내 생명도 주 예수께 바칩니다(끝)

10/23/2009

그 녀석들을 바라보다가


주말(週末)은 언제부터 시작이지?
금요일 저녁 아니면 토요일….
주말이라고 해서 뭐 특별할 것은 별로 없고 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이지만 주말이 주는 여유로움을 그래도 조금 더 길게 가지려면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그 동안 정리가 필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를 마무리 했습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 좋은 책을 선정하여 음성 녹음한 CD를 언제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목록을 작성하고, CD를 여러 개 복사해서, 레이블을 만들어 붙이고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해 놓는 것입니다.
몇 시간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것이라 그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조금씩 하다 보면 급하지 않고 덩치가 큰 일은 뒤로 미루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시간이 허락되어 도서 녹음 CD(밀알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와 관련된 일들을 집중해서 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음 먹은 일이 거의 마무리되고 보니 홀가분합니다.
혼자 뿐인 사무실에서 맘껏 기지개를 켜며 “아~” 소리를 내어봅니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이고 날씨는 곧 비가 올 것처럼 흐리고 나무는 알록달록 물들어가니 차 한잔 마시면 딱 어울릴 분위기입니다.
주방에 가서 둥글레차 한 잔을 타가지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게 되었습니다.

어라, 저 녀석 왜 저기 있는 거지?
으잉? 목에 줄도 안 묶여 있네.
어쩌자고….
일터 앞쪽에 있는 중고센터(재활용센터?) 사장님네 개 같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차에서 내릴 때면 그 녀석이 빤히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 녀석에게 눈길은 주지도 않고 묶여 있는지 확인한 다음,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져 사무실로 내려옵니다.
조그만 강아지도 아니고 누런 빛을 가진 개인데 앉아 있다가 제가 지나갈 때 벌떡 일어서면 살짝 움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거추장스러운 목줄에 묶여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라도 할 모양으로 사무실로 내려오는 길에 철버덕 누워 자고 있는 것입니다.

이따가 어떻게 차 있는 데로 가지?
걱정이 아주 잠깐 되다가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그 녀석은 사무실에서 4, 5 미터 떨어진 곳에 있고 사무실 철문은 닫혀 있는데 내가 소리를 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 왕” 하고 큰 개인 것처럼(???) 소리를 내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녀석이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아직까지 본 적 없는 똘망 똘망한 얼굴로 두리번거립니다.
재미있다 싶어 발도 굴러보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내어보니 녀석은 귀를 쫑긋 세우고 더욱 고개를 이리저리 돌립니다.

그러는 중에 중고센터 사장님 부인(그냥 또 다른 사장님이라고 할까 봐요)이 창고에 무엇을 넣어두려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앗, 사장님 옆에 언제나 봐왔던 개가 묶인 채로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가 한 마리가 아니었나 봅니다.
사장님이 물건을 넣고 가게 쪽으로 가시니 아주 길게 길게 묶여 있는 개가 따라가고 풀려 있던 녀석도 촐싹대며 따라갑니다.
흉내낼 수 있는 개 소리가 좀더 많았더라면 더 장난칠 수 있었는데….
개들은 사라지고 부디 가서 이쪽으로 오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또 궁금해졌습니다.
그 녀석이 다시 와서 누워 있으려나?
그렇다면 사진으로 찍어 증거를 남겨두리라.
사진기를 들고 창문 곁으로 가보니 두 녀석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기다려보았는데 잘 보이던 묶인 녀석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장님이 이쪽을 힐끔 보고 가셨는데 혹시 사람 있는 줄 아시고 녀석들 단속하시나 싶게 집에 올 때까지 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제 보았다고 아는 척 꼬리치며 달려드는 개나 모르는 사이라고 짖어대는 개나 반갑지도 않고 무섭기도 합니다.
온갖 호강 속에 사는 애완견도 예쁘지 않습니다.
아마 애완견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이들은 저 같은 사람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함이 지금의 제겐 어떤 의미인지, 그 의미 있는 사랑을 어떻게 살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주말 저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몇 번의 주말 저녁을 보내고 있기도 하구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8:37-39)
<윗 글을 쓰고 며칠 뒤에 찰칵!!!>

10/16/2009

나누고 싶은 햇빛과 바람


동생에게

동생 편지를 받고 곧 답장을 했지만 동생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어줍잖은 내 생각이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어.

여기는 여름 끝자락에 비가 엄청 많이 오더니 흐린 날도 많고 비도 자주 오고 있어.
그러는 사이에 철이 바뀌었고 아침, 저녁 기온도 뚝뚝 떨어지고 말이야.
오늘은 바람도 꽤 불더라구.

바람도 불고 동생 생각도 떠나지 않아서 그랬나?
이솝 우화 가운데 “해와 바람”이라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어.
이야기가 섬세하게 생각이 나질 않네. --;
해와 바람이 누가 힘이 더 센가 내기를 했나?
그래서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누가 벗기는가로 힘 센 것을 가늠하기로 했지.
바람은 있는 힘껏 바람을 불었는데 나그네는 옷이 벗겨질까봐 옷을 더 꽉 끌어 안았고.
해는 따뜻하게 그 빛을 비춰주자 나그네가 옷을 벗어 해가 이겼다는 이야기.
이거 맞나?

이 이야기를 두고 <패러독스 이솝 우화> 책에서는, 그 다음에는 나그네의 옷을 누가 다시 입히는가 내기를 했는데 물론, 바람이 이겼다는 거야.
이야기가 이렇게 풀리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괜한 힘 겨루기는 쓸모 없다, 뭐 이런 교훈을 주고 싶은 것이리라 여겨져.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싶어.
나그네의 옷을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보면, 관계를 맺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따뜻한 햇빛이지 몰아치는 바람이 아니라고 말이야.
살다가 관계의 어려움과 마주치면 난 이 얘기가 떠오르곤 하더라.
내 수준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할만한 그릇이 안 되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따뜻한 친절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거지.
--;

동생의 성품을 볼 때 이런 수준은 이미 뛰어넘은 것 같아.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아파하고 있으니 말이야.
참 착하다, 동생!

얘기하다 보니 동생한테 주고 온 그림책들 생각난다.
그림책 모으는 즐거움이 꽤 컸는데.
아이들도 읽고 나도 읽고.
그림책은 짧은 글 속에 온갖 감정이 실려 있으면서 유익한 교훈들도 들어 있고, 그런 내용이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참 좋았는데…
동생한테 그 그림책이 짐이나 안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크리스찬의 스트레스 해결”(???) 이런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
그 시간에 자기 취미를 얘기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림책 읽는 것이라고 했어.
그랬더니 그 교수님은 아무 대꾸도 해 주지 않는 거야.
아마 어른이 그림책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낌이 다가오지 않으셨나봐. ^^

같은 햇빛과 바람이라도 한국에서 느끼는 것 하고 아틀란타에서 느끼는 것 하고 조금 다른 것 같아.
사진에 담아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 손끝에서는 멋진 사진이 찍히지 않더라구.
기술 부족!!!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라도 찍어볼까 했는데 스틸 사진에 바람이 머무르질 않네.
강산이 머리카락이라도 바람에 날리면 어떨까 해서 데리고 나갔는데 모자를 안 벗겠다는 거야.
겨우 달래서 모자를 벗었는데 머리카락이 모자에 눌려 있었던지라 그것도 잘 안 되고.

맘 아프면 몸도 아프게 돼.
아프지 말고 늘 건강하길 바래.

강산이와 내가 찍은 사진 보며 잠깐이라도 웃어봐.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 / 그 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 /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개역개정, 욥기 28:23-28)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22)

10/09/2009

기꺼이 하는 약속


지난 5월 우리교회 한국학교 종업식을 하고 교사와 보조 교사들이 공원에 모여 점심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거기에 교사의 자녀들이 같이 있기도 했는데 제 둘째 아들 강윤이도 끼어 있었습니다.
얼추 그 식사 자리가 정리되고 교회 Youth 오케스트라 모임 시간이 다 되어 중고등부 아이들 대여섯 명을 태우고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로 오는 동안, 그 가운데 한 아이가 셀폰을 잃어버렸는데 집에 있는 세계위인전 60권을 다 읽는 동안 셀폰을 찾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이 다시 셀폰을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웃으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위인전이라는 말에 살짝 끼어들어 “그 책 우리 강윤이도 빌려주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책은 글씨도 크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강윤이한테는 너무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강윤이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것을 마음에 두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어, 그래도 괜찮아. 강윤이도 위인전은 많이 읽지 않아서.”
“야, 너 그러면 히틀러 알아?”
“응~~~”
“몰라?”
“그러면 장영실은 알아?”
“뭐 만든 사람.”
“야, 너~”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서로 대가며 아는 둥 모르는 둥 할 때마다 “oh, my goodness!” 를 외쳐대며 낄낄 깔깔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아이들이 물어볼 때마다 강윤이가 너무 대답을 못해서 ‘이거 괜히 책 빌려 달라고 해서 애 기죽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아이들은 “그럼 세종대왕은 알아? 이순신은 알아?” 하며 거의 놀리는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운전을 하며 뒤에서 들려 오는 강윤이의 목소리만으로 가만히 가늠해보니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계속 대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먼저 알고 나중 아는 것일 뿐, 모르는 것은 필요하면 배우고 익혀서 알면 되는 것이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라면 일찍부터 알고 깨닫는 것이 좋겠지만요.^^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강윤이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그 친구가 위인전을 빌려준다고 하면 한번 읽어 볼래? 그거 다 읽고 한국에서 가져온 역사책 5권까지 다 읽으면 너도 셀폰 사 줄게.”
“정말?”
언제 얻게 될 지 모르는 셀폰을 사 준다고 하니 해볼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강윤이 친구는 선뜻 위인전을 빌려주었고 5월말부터 책이 두 집을 오고 갔습니다.
방학 중이라 조금 느슨하게 책을 읽는다 싶었는데 그 친구가 8월에 다른 주(州)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갔다가 들어오는 강윤이 손을 보니 큰 가방에 위인전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친구에게, 조금 있으면 이사 가니 나머지 책들을 다 달라고 했답니다.
그러더니 책장에 꽂힌 역사책 4권도 뚝딱 읽어버렸습니다.
나머지 한 권도 마저 읽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분명히 4권이라고 들었다며 더는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저도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아 2 주 전에 셀폰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셀폰을 얻을 수 있는 힌트도 주고, 책도 빌려준 친구에게는 더 없이 고마울 뿐 아니라 자동차 안에서 책을 읽도록 자극을 준 교회 형들을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강윤이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강윤이가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 가운데 하나인 성경 말씀 66권을 컴퓨터로 모두 타이핑 하면 노트북을 사 주기로요.
장(章)과 절(節)을 표시하면서 한글로 타이핑 하기로 했습니다.
타이핑 하다가 모르는 내용이 있거나 타이핑을 더 빨리 하기 위하여 미리 한 권 한 권의 내용을 알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해 두었습니다.
강윤이 생활 속에서 성경을 보다 가까이 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과제를 포기하지 않고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도로 도우려고 합니다.


강산이 선생님으로부터 Home Checklist를 받았습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연습하는데,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훈련이 이어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침대 정리를 하고, 자기 물건들을 사용한 다음에는 제자리에 갖다 두고, 이 닦고 샤워한 후에 뒤처리와 빨래감을 세탁실에 가져다 두고, 식사 후에 식탁 정리, 숙제나 선생님과 학부모의 편지를 잘 처리하고 전달하는지…. 날마다 체크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용을 더 보태거나 빼도 좋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대로 좋다고 하여 9월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통계를 내서 잘 했으면 주말에는 한 시간 늦게 자도록 허락한다든지, 비디오 게임 하는 시간을 조금 더 준다든지, 주말 아침을 맥도날드에서 먹는다든지 하는 상(reward)을 고려해보는 것도 제안해 주셨습니다.

체크 리스트 가운데는 이미 강산이가 잘 하고 있는 것도 있었고, 침대 정리나 세탁실을 이용하는 것은 거의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새벽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시간 안에 침대 이불을 깔끔하게 펴놓고 벗은 옷은 세탁 바구니에 갔다 놓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아마 학교에서 배운 모양입니다.
Thank you, our Lord!

강산이에게는 어떤 상을 주면 좋을까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강산이가 고장난 아이팟(i-pod)을 찾아와 “이거 사 줘” 합니다.
강윤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학교에서 타 온 조그만(1GB) 아이팟인데, 주머니 속에 든 것을 모르고 빨래를 해서 고장난 것을 어디선가 찾은 것 같습니다.
날마다 두어 시간씩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듣는 강산이는 CD나 CD 플레이어, 그리고 강윤이의 아이팟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강윤이의 새로운 셀폰 때문에 왁자지껄 했던 터라 강산이도 뭔가 새로운 것을 갔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잠깐 생각한 다음 강산이에게도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체크 리스트에서 하라는 대로 잘 해서 체크를 받은 숫자가 모두 합하여 300개가 되면 아이팟을 사주겠다고 몇 번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도 강산이와 약속한 내용을 적어 보내면서 강산이를 격려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강산이가 이 약속을 잘 이해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체크를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강산, 체크!” 하고 말하면 행동을 수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낸 그 날 저녁에는 체크 리스트 한 장 곳곳에 자기가 체크를 미리 다 해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깔깔깔.
강산이가 분명히 알고 있던 것입니다.

요즘은 “강산아, 300개야, 300개!” 하고 있습니다.
한 주에 45~50개쯤 체크가 되니까 300개가 되려면 6~7주 정도가 걸릴 것이고, 이번 주까지 모두 보태면 250개가 조금 넘게 되니까 다음 주말에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도 잘 알 수 없는(--!), 강산이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 동안 바뀐 강산이 생활 태도가 쭉 이어지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저에게도 좋은 아이디어 주시면 더욱 감사, 아니 주실 줄로 믿고 미리 감사 드려요.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3:15-17)

10/02/2009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지금 이 시간 한국에서는 어제 준비한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추석날 아침 식사를 하셨을 겁니다.
추석 아침 식사가 지나고 많은 설거지를 마친 다음 조금 한가해지는 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드려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예희네가 들렸다 갔어.
예희네 작은 아빠가 복숭아도 한 상자 사오시고 형 대신이라며 용돈도 주고 가셨어.
형 대신이라고…………….
고맙다고 전화 한번 해.
다른 얘기는 나중에 하자.”
전화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다지 밝지 않은 것 같아 강윤이에게 다시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손자 목소리를 들려주면 좋아하시려나 했는데 지금 송편 만들고 있다며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십니다.
우리 가족이 곁에 없어서 허전하신지…

강화 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할아버지, 난 강윤이.”
“그래, 강윤이구나.’
“응.”
“응이 뭐야. 존댓말 해야지!”
“아빠 바꿀게요.”
“저예요.”
“(흐뭇한 웃음) 그래, 그래.”
아버님은 손자보다 아들이 더 좋으신가 봅니다.
강화 부모님들을 제 나름대로 이해해 보면 이렇습니다.
조금 특별한 첫 손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시는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고, 둘째 손자를 맞이해서는 첫째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 그대로 지내다 보니 손자들과 많은 정을 나누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자잘한 정을 나누는데 서투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목회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아깝지 않게 헌신하신 부모님들이십니다.
어머님은 미국에 다녀가신 후, 강산이를 위해서는 그 동안 기도를 많이 했는데 강윤이를 위해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주시는 모든 것들은 아들이든 손자든 다 우리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인 것을 압니다.

예희네 목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사돈 어른-그러니까 제 부모님이시죠-용돈까지 챙기는 서방님과 동생(동서) 부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어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정말 감동입니다.
보통 때도 가족들에게 늘 베풀고 나누는데 인색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서방님이나 동생이나 장애우에 대한 깊은 이해로 그들을 가르치는 사랑 많은 특수교육 교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누리는 복이 참으로 큽니다.


그리고…
올 추석에는 아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멀리 있는 딸네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시는지 전화도 잘 받으려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아빠 사촌들까지 다섯, 여섯 집에 걸쳐 딸이 저 하나라고 참으로 귀하고 예쁘게 키워주셨습니다.
연세도 들어가가시고 사랑을 많이 주신 딸이라 자꾸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명절 오후에 아빠를 찾아가면 작은 술상을 앞에 두시고, 말이 많지도 않으신 분이 이런 저런 얘기도 하시고 재미난 추석 특집 영화도 보시곤 합니다.
그럴 때 그냥 아빠 곁에 앉아서 말도 가끔 거들어 드리고 술상에 놓인 안주도 함께 먹으면 좋아하십니다.
맛있게 먹으면 아빠는 더 먹으라고 제 앞으로 밀어놓으십니다.
그래서 저는 명절 음식을 잔뜩 먹어 배가 불러도 더 먹기도 합니다.
교회에 다니시면서부터는 저에게 술을 권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도 한잔 주세요” 하면 아빠가 좋아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드셔도 실수가 없으신 아빠 앞이라 조심스럽기도 하면서, 명절 전날의 바쁨과는 달리 명절 오후에 느끼는 어떤 허탈감-제 생각에는 아빠의 직계 가족에 대한-을 아빠와 저는 이심전심으로 그렇게 메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
다시 한번 미국을 방문하실 마음을 갖고 계시다니, 그것을 소망 삼아 기쁘게 지내시면 좋겠어요.
조금 여유 있게 오셔서 한국에서처럼 아이들 데리고 낚시 가요.
여기서는 얼음 낚시는 어렵겠지만 호수들이 여기 저기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교동으로 낚시 갔을 때는 부탄가스가 얼어 부르스타에 점화가 안 될 정도로 추웠잖아요.
그래서 승합차 안으로 들어가 라면 끓여먹고요.
아빠, 행복했던 때만 기억하세요.
저도 아빠 다시 뵐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어머님, 아버님, 엄마, 아빠, 예희네, 태영이, 준서네, 그리고 명절이면 오고 가는 모든 친척들, 모두 즐거운 추석 되시길 기도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