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2009

추억 속의 Sweet Music Man


때가 되면 어김 없이 계절이 바뀌고, 해마다 그것을 경험하면서도 늘 느낌이 새롭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기 위해 강산이와 스쿨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선선한 기운이 짙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득 “Sweet Music Man“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알던 친구입니다.
지금까지도 그저 알던 친구, 착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아이라는 정도의 생각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 글을 쓰려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감성이 풍부하고 다재다능하며 무엇보다도 아주 잘 사는 집 아이면서도 잘난 척 하지 않던 꽤 괜찮은 녀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자기가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당시 레코드 테이프나 LP판을 파는 가게에서 자기가 원하는 곡을 뽑아 녹음해 주는 것이 유행이었던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집에 있는 테이프에서 골라 직접 녹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녹음 테이프를 받았을 때는 정성이 들어간 선물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노래 제목들과 틀린 단어는 뒷장에 “틀릴걸 틀려야지…” 라는 귀여운 한 마디 말과 함께 고쳐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제목을 적는 모서리 한 귀퉁이에는 “오랜 세월 듣기 위해서는 자주 듣는 것을 삼가” 라고 친절하게 적어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가 고른 노래들은 잘 알려진 팝송들이었고 안목 있는 선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팝송에 관심도 없었는데 그 녹음 테이프에 담긴 16곡을 알고 난 다음부터 팝송 한 구절 흥얼거릴 수 있는 문화인(?)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그 친구와 인천 월미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카페들과 횟집만 줄지어 있는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였습니다.
길지 않은 거리를 어느 만큼 걷다가 멈추어 바다를 바라보며 얘기하고 있는데 어느 카페에선가 Kenny Rogers의 “Sweet Music Man”이 거리로 크게 흘러나왔습니다.
“어! 저 노래 니가 녹음해준 첫 번째 꺼다” 했습니다.
그 친구가 준 녹음 테이프에 “Sweet Music Man=나” 라고 써 준 것이 기억나면서 그 순간에 그 노래가 그곳에서 들리니 참 신기했습니다.
살짝 유치한 풍경!
그 때는 놀라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혹시 그 녀석의 이벤트가 아니었나’ 하면서 더욱 감미로운 추억으로 각색해 봅니다.
제가 이렇게 미루어 헤아려 보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자기 자동차를 몰고 다녔고, 대학 가서는 자기 소유의 요트를 가지고 인천 송도 어디선가 요트 클럽 활동을 하면서 인천 출신 가수들이나 이벤트 하는 사람들 하고 어울려 지내고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경제적인 면이나 풍부한 감성, 마음 씀씀이가 넉넉했기에...

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저를 쪼끔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저한테는 밥 잘 사주는 편안한 친구였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세계관이 서로 달라서 더욱 가까워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품도 좋고 부잣집 아들인데 어떻게 해볼걸 그랬나요?
ㅋㅋㅋ ㅎㅎㅎ


철이 바뀌면서 점점 스산해지는 바람을 느끼며, 그 친구처럼 누군가에게 진실하고 예의 바르고 편안한 모습으로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바람처럼 다가와 “사랑한다” 말씀해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기대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저에게 그 친구는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기도하는 인형을 사주었습니다.
그 친구 가족은 신앙 생활을 하려나…
좋은 추억을 남겨준 그 친구를 위하여, 어울려 살아가는 이웃을 위하여, 무엇보다 제 신앙의 견고함을 위하여 주님께 가까이 가렵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표준새번역 야고보서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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