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2009

사람 찾아 떠나는 휴가



그럴듯한 휴가를 보냈습니다.
일주일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꽉 차게 썼습니다.

우리 가족이 어디 가서 어떻게 쉴 것인가를 결정하는 첫 번째 방법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를 떠올리면 됩니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는지, 재워줄 수 있는지, 주변에 볼거리가 있으면 더욱 좋고, 없어도 괜찮고, 거리가 조금 멀어도 문제 없다고 여기며, 남편은 전화로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친구들은 한 가족을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기도 할 텐데 한국에서도 그랬고 미국까지 와서도 우리 가족에게 기꺼이 잠자리를 내어주고 맛난 것 나눠먹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염치 없는 줄 알면서도 으레 친구네 머무르는 것으로 생각하고 떠납니다.
이그, 고마워라. ^^!

친구들을 만날 기대와 81번과 66번 고속도로를 따라 한없이 이어진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가다 보니 지루하지 않게 버지니아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버지니아에 사는 친구들네 가서는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대통령들의 기념관과 박물관을 돌아보았고 Luray 동굴도 보았습니다.
친구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동행해주었기에 새로운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늦은 저녁 시간에는 싸가지고 간 이야기 보따리를 턱 풀어 놓기도 하고 또 소중한 얘기들은 다시 고이고이 담아오기도 했습니다.


버지니아를 떠나서는 뉴햄프셔에 계시는 선배님을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뉴욕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배 목사님은 남편과 같은 교회에서 전도사 시절을 함께 보냈던 사이이고, 그 선배님 부부는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춘천에서 딱 한번 만나 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선배님들 덕분에 플러싱 한인 거리, 퀸즈, 롱아일랜드가 어디에 붙어 있는 곳인지 알게 되었고 여관(Inn)에 묵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과 정직한 원칙을 가지고 목회하시는 모습을 엿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날 선배님은 집으로 돌아가셨고 우리 가족은 뉴욕에 남아 맨해튼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뉴욕을 어찌 돌아다닐 것인지 정보가 그다지 없는 우리는 타임 스퀘어에서 뉴욕 관광을 할 수 있는 이층 버스를 잡아 탔습니다.
버스를 타고만 있으면 이름난 곳들을 알아서 가주니 돈은 좀 들지만 우리에게 딱이었습니다.
다운 타운을 구경하고 뉴욕에서 파는 피자를 점심으로 먹고 업 타운을 돌아보고 이번에는 부륵클린에 사는 선배 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 선배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의 언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선배님의 동생, 그러니까 제 고등학교 친구가 어학연수를 위해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연합감리교회 목사님이 되었고 친구는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웃고 떠들다보니 한참 꿈 많던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그러다 정말로 10대, 20대로 돌아간 줄 알고 뉴욕 밤거리를 거닐었다니까요. ㅋㅋㅋ
우리가 버스 타고 구경하다가 보지 못하고 놓친 곳이 있다고 하니까 또 언제 와보겠냐며 두 자매가 하도 떠미는(?) 바람에 못이기는 척 따라나선 것입니다.
건강하게 열심히 살자며 서로 꼬옥 안아주고 부륵클린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다시 버지니아 친구네로 돌아와 주일예배를 함께 드렸습니다.
피곤한지 눈이 자꾸 감기려해서 눈에 힘도 줘보고 주보에 메모도 해보면서 예배를 마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는 언제나 그렇듯이 알지 못할 서글픈 눈빛을 주고 받으며 잘 있어라, 잘 가라, 말도 못하고 입은 꼭 다문 채 손만 흔들고는 일상의 삶을 향하여 달려 내려왔습니다.
또 금방 다시 볼 텐데, 그치요?

미국에서 사는 사람과 생활에 아주 쪼끔 더 눈이 뜨여진 것도 같습니다.
적절한 때에 쉼을 얻고 다시 일할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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