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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쿠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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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선물로 아주 큰 쿠션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학 친구들이 마음을 모아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올라가 앉을 수 있는, 때로는 몸을 움츠리면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의 넓고 푹신한 깔개 쿠션과 그 크기에 맞게 기댈 수 있는 등받이 쿠션이 한 세트였습니다.
잠깐 낮잠을 청할 때 가볍게 기대어 눈을 붙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저 혼자 앉지 못하던 아기였을 때 거기에 앉혀놓으면 어느 쪽으로 쓰러져도 다칠 걱정 없는 여러 모로 쓸모 있는 쿠션이었습니다.

뜬금없이 그때 그 쿠션을 떠올리게 된 것은 이번 달 밀알 사역자 모임에서 (조신영, 비전과 리더십)이라는 책을 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얘기를 인상 깊게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나 을 읽기 바로 전에 읽은 공지영 작가의 에서도 보게 되었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우리의 성장과 행복은 그 반응에 달려 있다.”(즐거운 나의 집, 179쪽)
여러 자극에 대한 반응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서 그 책들이 저에게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밀알 사역자 모임에 제출했던 독후감(?)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얘기한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을 소재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 책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유산 상속을 놓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과 동화되어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 결론은 바로 자극이 주어지면 반응을 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자극에 대해서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올바른 반응을 선택하는 것이 이 세상을 책임 있고 성숙하게 살아가는 모습(Responsibility)이고 이것이 참된 자유(Liberty)를 누리게 하는 본질입니다.

내면의 힘
자극이 오면 반응을 하기 위한 작용이 이루어지는데, 그곳에서는 과거의 상처나 분노의 뿌…

완벽하기 보다는 진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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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신학생 때 인천 어느 교회에서 봉사하던 때였습니다.
청년부 형님들이 한 달에 한번씩 봉사하러 가는 곳이 있는데 저보고 찬양과 율동을 인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율동을 하려면 마음처럼 잘 되지 않지만 그때는 한참 젊을 때라 봐줄만했는지 부탁을 받았고, 저는 또 부탁해준 것이 고마워서 그러마 했습니다.
그런데 찬양하고 율동하는 것은 괜찮은데 봉사하러 가는 곳은 장애우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장애우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관심도 없던 터라 알 수 없는 부담감이 조금 있었지만, 내가 맡은 것만 하면 되겠지, 했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찾아간 곳은 특수학교였는데 교실 하나에 꽤 많은 장애우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물리치료 기구들이 있는 교실이었는데, 많이 낯설었지만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찬양을 인도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보니, 찬양도 많이 알고 있고 정말 기쁘고 즐거운 모습으로 찬양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해 보였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잘 지나갔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찬양이 끝나고 다음 순서가 진행되는 동안 장애우들과 섞여 앉아 있는데,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들 앞에 조금 서있었다고 서로 제 옆에 와서 앉으려고 하고 저를 만지려고 하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장애우에 대해 관심은 그만두고, 왜 그들이 그곳에 주일 오후에 모여 있었는지, 20명쯤 이었는지, 30명쯤 이었는지, 찬양 인도를 더 부탁 받았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뒤로 그곳에 다시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가 결혼을 했고, 찬양을 엄청 좋아해서 가사와 율동을 아주 많이 외우고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만지려고 하고 껴안기를 잘 하는,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장애우 선교단체인 밀알에서 일을 하고 있고요.
이렇게 자세하게는 아니고 부끄럽지만 교사준비모임 때 이 이야기를 대부분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에 갓 들어간 자원봉사자들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참 좋은 선택을 했습니다” 라고 …

신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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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엄청 많은 한 주가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를 정도입니다.

자서전은 보통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자신의 삶을 조용하게 관조할 수 있을 때 쓰는 이유를 요즘 자주 느낍니다.
이리 쿵 저리 쿵 부딪치면서 삶을 만들어 가는 시기에 이것이 내 삶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한계나 헛점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믿는 것은 주저주저 하며 선뜻 한 걸음 내딛지 못하는 모자란 구석이 있어도, 부족한 것 투성이일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사랑스럽고 존귀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호호호.

한참 잊고 지냈던 팝송 가운데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렀던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자꾸 흥얼거려집니다. .......

sail on, silver girl, sail on by
Your time has come to shine
All your dreams are on their way
See how they shine

Oh if you need a friend
I'll sailing right behi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ease your mind

사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새로운 경험들이 흥미진진 합니다.
세상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맛이 이런 거구나, 이제 알아갑니다.
신나는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주님 안에서.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시편104:24)

거꾸로 붙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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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느라 손톱이 이리 길도록 놔 두었는지….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긴 손톱 끝으로 톡톡 대는 느낌이 별로이고, 흐릿한 머릿속도 정리하려면 먼저 손톱, 발톱을 깍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밀알여름학교가 이번 월요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장애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만들어내는 여름학교입니다.

지난 토요일 자원봉사자들이 모여서 여름학교 준비기도모임을 하고 난 다음 교실에 이런저런 그림들을 붙이며 예배실? 큰 교실?-저는 아직도 그 곳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고 있네요-을 꾸몄습니다.
얼마가 지나고 있는데 같이 일하는 간사님이 큰일 났다며 저를 끌고 갑니다.
“저것 보세요. 어떻게 해요. 어떻게.”
뭘 보라는 것인지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뭐가요?”
“저거요. 저 그림.”
간사님은 길게 붙여 놓은 그림이라고 가르쳐주는데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 보세요. 아래, 위가 바꿨잖아요.”
그렇게 까지 설명을 해주니 그 그림을 거꾸로 붙여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네.”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양면 테이프로 철썩 붙여놓은 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며 몇 초가 흐르고 있는데 한 분이 거드십니다.
“그냥 두죠, 뭐.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아래에서 바라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겠어요.”
그 말도 맞는 것 같고, 누군가 그 그림이 거꾸로 붙여진 것이라는 걸 발견하면 재미도 있을 것 같고, 거꾸로 붙여진 것을 저같이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겠고, 무엇보다 그림을 떼어서 다시 붙이는 수고를 자원봉사자들에게 부탁할 염치가 없어서 그냥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너그러워진 제 자신을 봅니다.
청년 시절 같았으면 아마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사람들과 충돌하는 것이 싫어서 그림을 그냥 그대로 두었을지는 몰라도 그 그림의 위와 아래가 반드시 상식적으로(?) 맞게 걸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돌아가야 해도 횡단보도가 아닌 곳으로 절대(?) 길을 건너지 않으며, 두꺼운 영어 사전에서 한 번 찾은 단어에는 같은 색의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두어야 하고, 책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