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즘 자동차를 운전할 때마다 CD를 틀어놓습니다.
어느 영어 회화 책과 함께 있는 CD입니다.
같은 CD 한 장을 거의 2개월 넘게 들은 것 같습니다.
운전하고 다니는 길이 집, 일터, 교회와 마트 정도이니 운전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 CD 플레이어에 그냥 놔둬보았습니다.
이 CD를 8개월 전에 사서 들었을 때는 영 귀에 들어오지 않고 시끄럽게만 들리더니 요즘은 들을만 합니다.
하지만 들을 때는 “아 요럴 때 이렇게 써먹으면 되겠다” 하면서도 잘 외워지지도 않고 활용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집을 나서면서 그 CD를 빼고 CCM CD를 집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부르신 찬양 CD인데 기분이 마땅찮을 때 들으면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주님의 손 날 일으켜 주시고 풍랑 위를 나 걷게 하시네
주 어깨에 기대어 있으니 이전보다 더 강하게 되리~”

오늘 구름이 많이 낀 날씨라 기분이 가라앉았나?
“월남 국수 먹고 싶지 않아?” 하며 남편이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은 국수 종류의 음식을 좋아하는데 처음에 그 국수를 먹었을 때는 영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또 먹고 싶지 않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오늘처럼 흐린 날은 월남 국수가 먹고 싶어진답니다.

늦은 밤인 지금 밖에서 천둥 소리가 연이어 들립니다.
감각이 저보다 예민한 남편의 미각이 들어 맞은 것 같습니다.

제 노트북을 요즘 포맷(format: 틀 잡기, 형식에 따라 배열하다) 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쯤부터 없던 디렉토리(directory)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맘에 들지 않는 작동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노트북에 문제기 생기기 시작한 것은 남편이 뭘 더 좋게 해준다고 만지다가 그런 것 같은데 본인은 한사코 아니라고 합니다.
남편은 노트북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자 뜯고 어쩌고 하다가 저장해 놓은 자료들 가운데 일부가 없어졌고 결국은 모든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 포맷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저보다 컴퓨터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니 처분만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저희 가족의 삶도 포맷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내용들을 새로운 형식에 맞추어 배열하고, 그래서 실행 키(key)를 누르면 적절한 과정을 거쳐 창조적인 내용으로 끄집어 내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남편은 사역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저는 일터에서요.

언제쯤이면 “처음, 시작, 포맷…” 이런 말을 쓰지 않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제 스스로 그런 말들 하는 것이 질릴 때가 오겠죠?

이곳에서 새로이 경험하는 만남과 헤어짐, 잉태와 죽음, 사귐과 외로움, 협력과 경쟁…이 잘 정리되고 저장되고 처리되어 아름답고 유익한 결과물로 출력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 밤 비가 시원스럽게 내려주고, 낡은 노트북이 고쳐지면 꿀꿀한 기분이 한결 나아지겠지요?
내일은 어떤 CD에 손이 갈려나...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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