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에 심은 나무 한국학교를 마치는 즈음에


우리 교회 부설기관인 “냇가에 심은 나무 한국학교”에서 우리 반 아이들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함께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학기에는「가방 들어주는 아이」(고정욱 지음, 사계절)라는 창작 동화를 읽으면서 서술어를 익히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조사(助詞)를 배워볼 생각으로 앞뒤 문맥이 이해하기 쉬운 「아낌없이 주는 나무」(쉘 실버스타인, 시공주니어)로 시작을 했습니다.
아이들도 한번쯤 읽어본 적이 있고 내용이 이해하기 쉽다고 여겨져 그 책을 선택한 것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으로, “사랑은 이런 거야”를 보여주는 좋은 책으로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결혼 전에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소년이 자라나 나무를 떠나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무를 찾아갈 때마다 무엇인가를 요구하면 나무는 다 내주었습니다.
나무는 소년이 와서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사과를 주고, 집이 필요하다고 하면 가지를 내어주고, 배 한 척을 만들어 멀리 떠나고 싶다고 하면 줄기를 베어가도록 합니다.

이 부분에서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잠시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주고 싶어서 다 줘 놓고는 정말 행복한 것은 아니라니?’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나이가 든 소년은 나무를 다시 찾아옵니다.
소년이 무엇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무는 줄 것이 없어 미안해합니다.
“이젠 나도 필요한 게 별로 없어.
그저 편안히 앉아서 쉴 곳이나 있었으면 좋겠어.
난 몹시 피곤하거든.”
소년이 말합니다.

그러자 밑동 밖에 남지 않은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몸뚱이를 펴면서 말합니다.
“자, 앉아서 쉬기에는
늙은 나무 밑동이 그만이야.
얘야, 이리로 와서 앉으렴.
앉아서 쉬도록 해.”
소년이 그렇게 하자 나무는 행복해합니다.

나무는 소년과 함께 있어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소년에게 뭔가 해줄 것이 있어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나무가 부모님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뭘까?”
한 친구가 얼른 손을 번쩍 듭니다.
“부모님 사랑이요.”
이럴 수가!
저는 결혼해서 아이들 키우며 이제야 알듯 모를 듯한 그것을 그 친구는 자신 있게 대답하다니...

우리 반 아이들보다 조금 더 먼저 살아온 저는 그 책에 나오는 소년이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나무처럼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사랑은 아닐지라도, 한 학년 동안 저와 함께 한국말을 배운 우리 반 친구들에 대한 사랑 비스름한 것들을 느낍니다.

우리말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통하여 한국 문화와 역사에 더욱 관심 갖기를 바랬고 그래서 자랑스런 Korean-American으로 자라나는데 적은 지식이나마 우리 반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귀엽고 예의 바른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어느새 두 학기를 마치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비록 일주일에 한번이지만 가르치는 곳에 설 수 있어서 좋았고 어리고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언젠가는 성경 말씀도 이렇게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며 나이 들어가고 싶어지는걸요.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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