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2009

사돈지간



“네 분이 함께?”
“재미있겠다!”
네 분의 부모님이 한국에서 함께 오셨다고 하면 ‘뜻밖이다’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본디 사돈지간은 썩 편하지 않은 관계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하니까 우리 부모님들도 그럴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왜 어려운 관계인지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들이 그런 통상적인 생각을 뒤로 하고 함께 미국까지 오신 것입니다.

물론 지난날 한국에서 부모님들은 자주 만나시곤 했습니다.
생신 때, 어버이 날, 아이들 방학 때, 그리고 가족끼리 축하해야 할 자리에 함께 다니셨습니다.
그런 과거를 바탕으로 미국 여행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셨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달 동안 한 집에서 지내기로 하신 것입니다.
자녀와 손자들을 보고픈 간절한 그리움이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사돈지간의 어려움을 가벼이 여기도록 도운 것 같습니다.

함께 생활한 지 열흘이 훌쩍 넘었습니다.
양쪽 부모님들 사이에서 슬슬 미묘한 감정들이 느껴지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더 긍정적으로 얘기하자면 아주 천천히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다고나 할까요.

아침 식사로 밥을 먹다가 빵으로도 먹어보자 했습니다.
한쪽 부모님은 “빵도 좋다” 하십니다.
다른 한쪽 부모님은 “우유가 몸에 잘 맞지도 않고 아침으로 빵은 왠지 별로지만 먹어 보자” 하십니다.
이틀 아침을 빵으로 먹고 나서는 “아무래도 밥이 좋겠다” 하십니다.
그래서 빵도 좋다 하셨던 다른 부모님은 “그럼 그러자”고 또 하십니다.

한쪽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선물 나누어줄 이 사람 저 사람을 떠올리며 선물을 여러 개 준비하십니다.
다른 한쪽 부모님은 꼭 주어야 할 몇 개만 있으면 된다고 하십니다.

부모님들은 같은 신앙을 가지고 계시는데, 한쪽은 간절함으로, 한쪽은 낙천적 소망으로 그 믿음이 나타납니다.

저는 그분들의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있으려고 하는데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그분들의 수십 년 인생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토를 달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흘러가게 하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내 나름대로 되어지는 판단을 정지하려는 애씀이 아주 쬐끔 많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부모님들과 같이 있는 짧은 시간을 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쪼끔 더 많이 하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흔쾌하고 넉넉하게 섬겨드리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에 걸릴 뿐입니다.
남은 시간 동안 남편과 잘~ 의논하여 후회를 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제 스톤 마운틴에 갔습니다.
부모님들 모두 큰 바위로 된 산을 신기해하시면서, 미국 땅을 밟고 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미국임을 확인해주는 성조기를 뒤로 하고 서시면서 사진을 찍으랍니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동안 그 분들은 공기와 흙과 나무와 꽃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산 중턱에 있는 쉼터 바로 아래에 노란 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시고는 미국 개나리(?)라며 사진을 한 장 찍으라 하셔서 찍고, 산을 다 내려와서는 주차장 한편에 분홍 꽃나무를 발견하시고는 거기서도 사진을 찍으라 하셔서 찍어드렸습니다.
겨우살이를 보시고도, 민들레를 보시고도, 봄을 준비하는 나무의 겨울눈을 보시고도 서로 한 말씀씩 하십니다.
꽃과 나무에 눈길을 줄 수 있는 그런 넉넉한 마음으로, 사돈끼리 미국에서의 남은 시간 동안 멋진 추억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창1:11-13)

1/23/2009

드디어 부모님들이 오시다

<강윤이가 바이올린을 배우는 중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작은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부모님들이 오셨습니다.
남편과 저의 부모님 네 분이 사이좋게 함께 오셨습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우리가 한국을 떠나오던 날부터 계획하셨던 일입니다.

아틀란타 하츠필드-잭슨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한 지 두 시간쯤 지나 땀을 뻘뻘 흘리시며 입국 수속을 마치고 올라오셨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신 모양입니다.
짐 찾을 생각에 한 사람이 오지 않은 것도 모르고 먼저 가버려서 남은 한 분이 난감하기도 하고, 앞장 선 한 분이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 따라 먼저 가버려서 남은 세 분이 어쩔 줄 몰라 하시고 그랬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을 더욱 반가워 하셨습니다.≠≠

저희 집에 들어서면서 풀어놓은 짐이 거실과 주방에 한 가득입니다.
봄이면 며느리가 좋아하는 질경이 나물 해주시려고 캐서 말리고, 여름에는 밭에서 막 따온 싱싱한 호박을 동글게 잘라 말릴 뿐 아니라 고추를 잘 키워 매콤한 고춧가루 만드시고, 가을무가 다니까 무를 잘게 잘라 말려 무말랭이 만들고 상수리나무 열매를 주워다가 묵 가루 만들어서, 겨울 농한기에 먼 곳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저의 엄마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여러 가지를 짐 속에 꾸려오셨습니다.
그리고 동생들도 모두 저희 가족을 위해 넘치는 사랑을 담은 선물들을 잔뜩 보내주었습니다.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 있는 짐 무게에 제한이 있으니 저울에 달아보고 또 달아보며 넣을 수 있는 만큼 담아 오셨습니다.
나라와 나라를 달리 하여 사는 가족을 방문할 때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인 듯싶은데, 그래도 가져오신 물건 하나하나에 담겨진 마음이 느껴져서 그런지 소중하게만 여겨집니다.

부모님들이 월요일에 오셨으니까 이제 닷새째 날이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부모님들은 밥해주시고 청소해주시고 저는 말만 많이 하고 있습니다.
궁금해 하시는 것에 대답도 해드리고 짧은 시간 경험한 이곳 생활도 시시콜콜 이야기해드리고 있습니다.
시간만 나면 앉아서 얘기하고 또 얘기합니다.

저는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수다에 빠져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드려 사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지만 서로에게 충분하지 못했나 봅니다.
부모님들은 이곳 사는 모습이 상상이 잘되지 않으니 저희 생활을 이해하시는 것에 제한이 있었고, 저는 걱정하실 것 같은 일들은 접어두었는데 그런 것들이 맘 놓고 터져 나오는 모양입니다.

잠시 지난 며칠을 돌아보니 이렇게 부모님들께 마음을 한 달 동안 털어내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질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 덕분에 이렇게 편안하고 가뿐한 시간을 보내다가 한 달 뒤에 공항에서 어찌 보내드리나 싶습니다.
아주 먼 곳에서 살다가 오랜 만에 만난 것이 처음이라 그렇겠지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1/16/2009

고요한 기다림


다음 주가 되면 한국에서 네 분의 부모님이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십니다.
영어 공부도 다시 시작됩니다.
그러면 조금 바빠질 것도 같습니다.
게다가 2월이 되면 일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번 한 주간은 태풍의 눈과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태풍 한가운데 있는 태풍의 눈에서는 바람도 고요해지고 파란 하늘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며칠이 지나면 있을 뭔가 새롭고 기대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앞두고 아주 조용한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바쁜 것이 능력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요즘, 저는 바쁘지 않은 이 시간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바빠진다 해도 고요한 기다림의 시간을 남겨둘 것입니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5-26)

1/09/2009

"교회에 날마다 가야지!"




새해 들어 우리 교회에서는 “거룩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2009년”이라는 주제로 신년특별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강해로 담임 목사님이 전하십니다.
1월 한 달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8시에 모입니다.

한편으로는 정해진 시간을 빠지지 않고 예배드리고 싶은 거룩한 부담도 있었으나 저는 어찌어찌 이유를 달아 두 번쯤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강윤이가 “왜 날마다 교회 안가냐”며 자기는 교회에 매일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교회 가야 자기도 갈 수 있다며 말입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다목적실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의자 정리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하러 가고 싶답니다.
나, 참!
몇 명 사귄 친구들 만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예배가 좋은 것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수요일 예배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덧 몇 년이 지난 일이네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으로, 성령이 주시는 능력이 아니고는 제대로 사랑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와 말씀을 의지하여 새 힘 얻기를 바라고 위로도 얻지만 그 은혜는 잠깐뿐이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을 다스리고 주님께 조금이라도 가까이 붙어있으려는 방법이 찬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르고 또 부르고.
그 찬양의 노랫말만 떠올려도 감정을 주체할 수 없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많이 불렀던 찬양을 듣거나 부를 때는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기도 합니다.

이번 주 수요일에도 찬양을 하다 보니 마음이 집중되고 기도하고 싶어졌습니다.
아이들과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는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떴는데 조금 아까까지 졸고 있던 강산이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강산아, 집에 가자.”
낮은 소리로 강산이에게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큰소리로 엉엉 울며 어쩌구 저쩌구 기도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웃음이 나오려다가 너무 서럽게 우는 모습에 등만 쓸어주었습니다.
‘뭐가 저렇게 서러울까.
한국 생각이 나서 그런가.’
달랬다가는 더 크게 울 것 같아 기다려주었습니다.
이건 제 생각인데 예배실에서 들리는 울음 소리가 강산이의 울음 소리인줄 모르는 분들은 ‘누가 저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나’ 하셨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강산이는 안경을 벗고 거칠게 얼굴을 닦더니 벌떡 일어섭니다.
그러더니 강단 쪽을 향하여 “교회 십자가 좋아. 교회 십자가 좋아.”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
강산이가 은혜를 엄청 받은 모양입니다.

오늘도 예배가 끝나고 기도하는 시간에 강산이는 “아버지, 아버지”하며 기도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강산이를 보면서 어떤 기도를 드리는지 전혀 알 수 없으나 강산이의 마음을 받아주시길 옆에서 기도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요즘 우리 아이들이 엄마보다 교회 가는 것을 더 즐겨하고 기도도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예배드리는 것을 좋아하듯 공부하는 것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제 자식 자랑처럼 여겨지실지 모르나 저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게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깨달아 닮아가길 바랄뿐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1/02/2009

제대로 된 불꽃이 될래요


지난 수요일 저녁 저녁을 먹고 나서 송구영신 예배를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창밖이 번쩍하며 꽝꽝 합니다.
비가 올 날씨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누군가 폭죽을 터트렸나 했습니다.
‘여기는 새해를 맞이할 때 동네에서도 폭죽을 터트리는구나.
하려면 제대로 몇 번 더 하지 싱겁게 두 번하고 마네’ 했습니다.

그로부터 20 여분쯤 지나, 옷 갈아입고 교회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계단이 있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주황빛 불빛이 보이고 뭔가 이상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보니 우리 집 앞에 있는 길 건너 잔디 언덕이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놀래라.’
불길이 점점 넓어지는데 사람들 몇몇이 그 가장자리에 서서 “불났나봐”하는 것이었습니다.
큰 불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이면서도 소방서에 누가 연락은 했는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잠시 지켜보고 있는데 소방차가 왔습니다.
사이렌은 울리지 않고 조용하게 와서 한 사람은 쟁기 같은 도구로 불을 덮고 한 사람은 물로 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나서 소방차는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에서는 폭죽을 터트릴 수 없다고 합니다.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다음 날 새해 아침 CNN 뉴스에서는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화려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꾸며진 폭죽들이 터지면서 불꽃놀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환호하며 그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에서는 폭죽은 터트리지 않았지만 새해가 되는 그 때에 100 여명이 넘는 찬양단과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함께 불렀습니다.

같은 폭죽이라도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칠 수도 있고 기쁨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보게된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불꽃놀이에서 처럼 필요한 곳에 쓰여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과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12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