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2009

좀 더 넉넉해진 성탄절을 보내며

*** Rock City에서. 호호호 ***

어머님이 써주신 글을 옮겨 적다보니 8주가 지나갔습니다.
어머님 글을 타이핑하고, 교정하고, 블로그에 올려놓고 다시 읽어보는 시간 동안 그 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어머님의 신앙 열정을 다시 한번 엿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글을 써야 하는 에너지를 조금 아낄 수 있기도 했습니다.
그 아낀 에너지를 요즘 영어책(???) 들여다 보는데 사용했거든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언어와 문화를 익혀야 잘 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영어와 친해져 보려고 다시 애쓰는 중이랍니다.
또 한편으로는 모임이나 볼만한 것들을 찾아 다니면서 자꾸 경험해보려고 합니다.

성탄절 밤을 보내고 있는 지금, 지난해를 떠올려보니 그 때보다 생활이나 마음이나 관계에 있어서 훨씬 넉넉한 성탄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첫 해는 긴장 속에 살았던 것 같고, 두 번째 해는 쉽지는 않았어도 여유가 조금 생겼고, 이제 또 한 해를 살면 이곳 삶에 더욱 익숙해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더 나아가서는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더 깊어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립보서3:12-16)

12/18/2009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 마지막

<아기 예수님이 오신 의미를 되새기며 모두 모두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마지막)

2000년도에는 병원마다 파업이었다. 의사들이 거리에 나가 병원이 텅 비었다. 예약 수술 환자도 다 집으로 돌려보내고 기별하면 다시 오라는 것이다. 병원 안에 예배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수술을 안 받겠다고 하니 작은 아들이 쓸데없는 말씀한다고 야단이다.
의사와 상의하여 수술 날짜를 겨우 6월 19일로 잡았는데, 앞에 환자가 수술이 잘 되어야 내 차례가 오지만 앞에 환자가 늦어지면 내 수술이 없다는 것이다. 마취과 의사가 다 거리로 나가서 수술이 계속 없다. 나는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기도뿐이었다.
수술 날짜가 되어 남편과 큰 아들이 올라왔다. 오후 1시쯤 되니 간호사가 와서 아주머니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어서 준비합시다, 하였다. 나는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주님께 이 몸을 맡깁니다, 하였다. 1995년도에 치질 수술을 간단하게 한 적이 있었고 대수술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술하고, 마취 깨고 하는 시간이 7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대장암 말기라고 했다. 딴 데 전이되지는 않았고 한 군데 주먹만한 것이 있었다고 하였다.
입원실로 돌아왔다. 언니와 동생이 나를 보호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니 내 머리 속에 복음성가 “주만 바라볼찌라”가 머리에 입력된 것을 알았다. 완전히 가사는 못 외워도 곡조는 좀 알았다. 가사를 더듬어 보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이 가사를 머리에 떠올리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가사를 다시 생각하며 오, 주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막 가슴이 미어지면서 눈물이 억제할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만 바라볼께요.”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말씀이 생각나면서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볼찌라, 그 찬송 구절만 부르게 되었지요.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솟구쳤다. 의사가 무조건 운동해야 하니 걸어 다니라고 하여 병원 복도를 다니며 그 찬송만 했다. 보름 후에 상처가 아물었다. 퇴원하고 20일 후에 항암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항암치료 받는 것이 아주 힘들다고 하는데 그 고비를 어떻게 넘어야 하나, 걱정이 되어 항암치료를 안 받겠다고 했다. 남편이랑, 아들들, 형제들까지도 받아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집에 돌아왔다. 새벽예배에 나갔는데 목사님이 찬송을 선택하시는데 462장을 부르게 되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옛날에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462장 찬송을 주셔서 위로 받았는데, 그 때도 성령님이 나에게 위로주심을 감사 드렸다. 찬송 462장 후렴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 저 영원한 나라에 이르리라” 목사님, 사모님, 여선교회 회원들이 심방 오셨다. 병원에도 많이들 오셨는데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길래…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날짜가 되어 항암주사를 닷새를 맞고 집에 돌아왔다. 일 주일이 지나니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는 것이다. 입술이 다 헤어지고 음식도 못 먹고 너무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 강화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있는데 두 여자 권사님이 방문했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를 믿으라고 한다. 나는 기가 막혔다. 보혈의 피를 믿습니다, 하며 따라 하라는 것이다. 나는 따라 하며 웃었다. 그들은 돌아갔다. 이렇게 아프니까 나의 믿음을 영적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들렸다. 나는 이 권사님들만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를 저울질 하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일 주일 있다가 퇴원하고 다시 집으로 왔다. 사모님이 머리 빠진 모습이 안 되었는지 밤을 세워 모자를 떠 오셨다. 사모님 고맙습니다. 가끔 밥을 못 먹으니 죽도 쑤어 오셨다. 나는 성도들의 사랑을 너무 받았다.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음식을 갖다줄 때마다 너무도 죄송하고 미안했다. 어떤 권사님은 권사님이 살아야지. 안 믿는 자에게 전도문이 막힌다, 는 것이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정식으로 항암주사를 맞지 못했다. 너무 힘들어서 웬만치 넘어갔다. 2001년 2월에 다 끝났다.

전에 우리 교회 계셨던 은혜 받았던 양목사님께 전화 드렸다. 목사님 저 아팠어요, 하니 깜짝 놀라신다. 어데가 아팠냐고 하시어 말씀 드렸더니 수술 했으면 됐어, 하시면서 “야채 스프와 현미차” 해서 먹는 법을 복사해서 보내주셨다. 3년을 거르지 않고 정성껏 복용했다.
몸은 1년이 되니 건강하여 농사 일도 전과 같이 열심히 했다. 주님 은혜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나에게 또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주님께 감사 드렸다. 이 못난 것 아직 쓰시려고 이 땅에 생명을 남겨두신 것을 생각하며, 남은 여생 주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이른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를 시작하면서 제단을 위해, 몸이 아픈 자를 위해서, 목회하는 아들 목사 가정을 위해서, 특수교사 하는 작은 아들 내외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지방 여선교회 계삭회가 12월 강화제일교회에서 열렸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연합회장을 하라는 것이다. 부족한 나였기에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러면 계삭회에 안 간다고 했다. 권사님들이 계삭회에 가자고 왔다. 우리 교회에 회장이 안 가면 되냐고 어서 가자고 하여 마지못해 갔다. 총회를 하는데 연합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나는 어깨가 무거웠다. 전에도 몇 번 회장될 기회가 있었지만 앞장설 자격이 못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주님이 왜 나를 세우셨을까, 이른 새벽에 나가 기도 드렸다. 마음 속에 뜨거운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나를 살려준 주님께 뜨거운 헌신을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알았다.
첫 번째 계삭회를 우리 교회에서 하기로 했다. 시험이 왔다. 계삭회 날짜와 동네 청장년 관광 가는 날과 한 날이다. 기도 드렸다. 주님 어떡합니까. 감리사 직인 아래 공문도 띄우고 했는데 그냥 밀고 나가야 합니다. 목사님은 계삭회 날을 다른 날로 정해도 된다고 한다. 권사님들은 관광을 많이들 가기 때문에 계삭회 때 누가 음식을 장만하냐는 것이다. 나는 감리사님께 관광 가는 문제로 계삭회 날짜를 물린다는 것이 떳떳하지 못해 그냥 밀고 나갔다. 관광갈 사람은 다들 가시고 전날 와서 음식 준비 좀 해놓고 다들 가라고 했다. 손을 꼽아보니 12명쯤 남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편이 말을 도왔다. 하나님은 다 할 수 있어. 염려 마라, 하는 것이다. 너무도 힘들었다. 왜 그리 말이 많은지. 어느 한 사람 와서 위로하는 자가 없었다.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꿈을 꾸었다. 담대했다. 주님 도우심을 확신했다.
계삭회 날이 왔다. 어쩌면 전날도 바람이 불고 했는데 계삭회 날 아침부터 햇빛이 찬란하며 날이 잔잔하고 따뜻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각 교회에서 많이들 참여하게 해주세요. 각 교회 여선교회 회원님들이 많이 왔다. 음식도 잘 대접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장로님 사모님이 미국에 있는 아들네 갔다가 계삭회 전날 온 것이다. 병원에 있던 권사님도 오고, 행사 치르는 사람이 많았다. 주님의 도우심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꼈다.

2년 동안 사랑의 쌀도 배나 모아지고, 자금도 넉넉히 돌아가고, 임원들도 잘 협조하여 많은 일을 했다. 협조가 잘 되니 재미 있고 신났다. 나는 회원들에게 짧은 간증을 했다. “죽음의 문턱에 서보셨습니까? 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그 때 나의 마음 속 깊이 떠오르는 생각은 건강했을 때 더 뜨겁게 헌신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지요. 이제 남은 생은 주님께 헌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건강할 때 최선을 다 합시다. 후회 없는 생애가 되도록 우리 열심히 합시다. 제단에 기도의 불씨가 되어 기도의 불을 붙이며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됩시다.” 회원들이 아멘, 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목사님이 새로 오셨다. 지목사님이 우리 집에 처음 대심방이 되어 오시게 되었다. 누구든지 처음 오신 목사님은 우리 가정 상황에 대해 모르시니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이 처음에 무슨 말씀을 주실까 기대하고 있는데 욥기서를 읽어주시면서 고난을 극복한 욥은 나중에 영육에 더 큰 복이 왔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목사님께 저희 집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했다. 목사님은 부임한 지 몇 일 됐다고 압니까, 하셨다. 주님이 목사님께 말씀 주신 것을 감사하며 새 힘이 났다.
고난은 축복의 열쇠라는 것을,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잠시 잊었었나 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다시금 큰 웅덩이에 넣으셨다가 살 수 없는 상황에서 건져주시어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다시금 알게 해주신 것 같아 깊은 감사를 드렸다.
기도의 제목, 나의 소원. 첫 아들 주님께 바치면서 이 시대에 진실한 사랑의 종, 능력의 종, 기도의 종, 말씀의 종이 되기를 소원하며 주님 장중에 붙잡힌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요. 아들 목사님도 많은 체험 주셨고,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역사하시고 도우시는 주님의 섭리를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을 들을 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작은 아들 내외도 특수교사로, 연약한 장애인들에게 친구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보람 있는 생애가 된 것 같아 감사했지요. 진심으로 모든 영광 주님께 돌립니다.

찬송 404장
1. 그 크신 하나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 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후렴)
하나님의 크신 사랑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 윗 글이 끝나고 제 블로그에 첫 번째로 올린 어머님 글이 덧붙어 있었습니다.

12/11/2009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7

<미국 오셨을 때 찍은 사진 가운데 어머님 얼굴이 제일 밝은 사진으로 골라봤어요. 큰 아들이 곁에 있어서 좋아서 그러신 것 같은데요!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일곱번째)

그 이듬해 봄에 차가 한 대 서고 아줌마들이 댓 분 내리더니 계세요, 하고 문을 노크한다. 남편과 같이 왔던 신림동 권사님이다. 창후리 “마라의 쓴 물” 목욕탕에 왔다가 들렸다고 한다. 어떻게 오셨느냐, 하였다. 어느 분이 아기를 갖기 위해 기도를 원했다. 딸이 일곱 살 되었는데 동생이 안 생겨서 기도 받겠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주님 이런 사람을 왜 보냈나요, 했다. 하지만 오신 분들에게 우리 예배 드리고 기도합시다, 하고 간증도 하고 기도를 해주었다. 내일 또 오겠다는 것을, 본 제단에서 목사님께 안수 받고 본인이 새벽기도 나가시고 하세요.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으니 구하세요, 했다. 다들 돌아갔다.
사흘 후에 그 엄마와 딸이 왔다. 한 번 더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렸다. 믿으세요, 믿음 달라고 기도하세요, 부탁했다.
3 개월이 지나서 그 교회 집사님들이 왔다. 기도 받고 간 그 엄마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서, 또 다른 집사님이 자기도 아기를 원한다고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 집사님은 딸이 둘이고 둘째가 일곱 살인데 아기를 가지려고 해도 안 들어선다며 아들을 낳아야 된다고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니 아들 낳게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집사님에게 주님께 매달리세요. 나는 아픈 사람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며 만류했다. 하지만 먼저 집사님은 해주셨으면서 왜 그러세요, 야단들이다. 나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지요. “이 집사님은 아들을 꼭 나야 된답니다.”
기도를 끝마치고 그 집사님에게 말했다. “하나님에게는 아들이나 딸이나 다 귀중한 생명인데 왜 그러세요?” 그 집사님 하는 말이,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성공회에 나가시는데 감리교로 나오시라고 해도 성공회는 큰 집이다 하시면서 마음을 안 바꾸신다는 것이다. 이번에 아들을 주셔야 담대하게 시부모님께 말씀드릴 거라며 기도해 주세요 했다. 자기는 세 번 기도 받기로 했다고 하며 또 온다고 하면서 갔다. 일 주일 있다가 또 왔다. 또 기도를 했다. 삼 일 있다가 또 왔다. 우리들은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간증하고 서로 헤어졌다.
가을이었다. 그 교회 권사님이 마라의 쓴 물에 목욕하러 왔다가 또 들렸다고 하면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중 온 엄마도 임신했고 둘 다 아들이라고 하면서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좋으신 분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이듬해 아기를 낳아서 백일이 지나 데리고 왔는데 이름을 에녹이라 지었다고 한다. 딸 둘 하고 남편하고 같이 인삼액을 사가지고 왔다. 나는 주님께 감사해야지 사람한테 하면 안 돼요, 하였더니 교회에도 뜨겁게 감사했다고 해서 받았다.
“먼저 아기 엄마는 오셨나요” 물으니 “아니요. 그 아기는 걸어 다니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열심히 신앙 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주님께 감사합니다.” 한다.

어느 날 3시쯤 되어 한 청년이 왔다. 초면이었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기만 하고 말을 안 한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기도를 원했다. 어데가 아프냐고 해도 말을 안 하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무슨 사연인지 몰라 가슴 심장을 만져 손을 얹고, 주님 이 청년의 사정을 아시오니 원하는 것을 들어주세요, 간절히 기도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기도를 마치고 대화도 없이 그 청년은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까운 이웃 동네에서 온 청년인데 폐결핵으로 아파서 온 것이다. 기도하던 그 때 가슴이 뜨거웠다고 하면서 병이 나아 신학교에 가서 목사님이 되었다고 하였다.

찬송 405장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음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우리 집 옆에 경상도에서 이사온 아주 가난한 부부가 딸 하나 데리고 움막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가정을 전도 대상으로 정하고 기도했다. 애기 아빠는 술에 취하면 주사가 있어서 싸움을 하고 동네를 시끄럽게 하면 부인은 어쩔줄 몰라 속을 끓이며 살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어머니가 무당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집을 위해 큰 도움은 못 주었지만 불쌍히 여기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염려하고, 음식이랑 옷이랑 변변치 않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나누어 먹고 사랑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아기 아빠가 우리도 교회 나가자고 하면서 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도 받고 술도 끊고 신앙 생활을 잘했다. 그러다가 이 가정이 저 아래 지방 평택으로 이사를 갔는데 나라에서 개간한 땅을 얻어 농사를 많이 경작하게 되었다.
3년이 지나 봄이 되어 수리조합을 통해 물이 풍부하여 모내기를 마쳤는데 여기서 이사간 사람들이 사는 평택 지역은 이제 모내기가 시작되어 우리 동네에서 그 지역으로 모내기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남편에게 나도 간다고 하니 못 가게 하여 포기하고 있었는데, 가는 날 아침 새벽기도회가 마친 후 불시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남편을 잘 설득하여 여럿이 그 집을 향해 갔다.
서로 반갑게 만나 저녁에는 이야기들로 밤이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 하다가 그 엄마가 시험이 들어 교회를 쉬고 있다고 해서 권면했다. 새벽 종도 치고 열심히 신앙 생활 했는데 마음에 상처를 받아 일 년이 넘게 신앙 생활을 멈추게 되었고, 그만 병이 들어 음식도 못 먹고 몸이 바싹 마른 상태였다. 동네 분들이 경* 엄마를 위해 기도 좀 해 주라고 하여, 낮에는 모내기 하고 밤에는 기도를 사흘 저녁 했다. 우리는 친정 어머니 무당 마귀가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알아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렸더니, 주님께서 결박했던 사탄이를 풀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나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 경* 엄마를 위해 갑자기 아침에 모내기 하러 갈 마음을 주신 것이 정말 감사했다.
닷새 만에 집에 오는 날 차를 타려고 차 종점에서 기다리는데 가게집 아줌마가 나오더니 우리들에게 어데서 왔느냐고 물었다. 강화에서 왔다고 하니 그러세요, 하면서 얼굴을 살피더니 나를 향해, 저 아주머니는 은혜를 많이 받았구먼, 하는 것이다. 나는 미소 지으며 가만히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네. 맞아요, 하니까 자기도 전에 신앙 생활 하면서 은혜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울먹이더니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이상하여 차도 아직 안 오고 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그 아줌마는 고개를 푹 땅에 박고 훌쩍 훌쩍 우는 것이다. 왜 그러세요, 물었다.
그 아줌마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목사님과의 관계에서 상처가 있어서 교회를 쉬고 있고 남편과 함께 온 가정이 열심 하였다는 것이다. 어느 날 시간이 늦어 목사님이 설교 하실 때 헐레벌떡 들어 갔는데 말씀으로 만민 중에 무안을 주시면서 책망하셔서 교회도 안 나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아주머니 안 돼요. 그 시험에서 이기세요. 저도 그런 과거가 있었지만 이기고 나왔더니 주님이 영적으로 더 크게 역사하셨지요.”
이야기를 하는데 차 온다고 하면서 어서 오라고 하여 차를 타고 강화로 오게 되었다. 나는 그 아줌마에게 더 자세히 권면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묵상하며 기도하는데 지혜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 그래 집에 가서 편지로 권면하자, 하고 마음으로 위로 받았다. 집에 오는 중 이웃 아줌마들이 한권사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수근수근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주님께 이 못난 딸을 평택까지 보내신 것이 너무 고마워 눈물의 감사 기도가 나왔다.
집에 와서 편지를 써 보냈다. 만리장성으로 어데서 생각이 나는지 나도 놀랬다. 나중에 답장이 왔다. 나는 기뻤다. 교회에 나간다니 말이다.

큰 집 사춘네가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우리가 경작을 하게 되었다. 3년을 했다. 기계화가 되어 옛날 같이 힘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 손이 많이 갔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했다. 두 아들 대학, 대학원 다니는 것 뒤드는데 잘 감당이 됐다. 그래도 늘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남의 집에 돈 꾸러 간 적은 없으니까요. 신앙 생활 하면서 빛 되게 살지도 못하고 주님 앞에 늘 죄송한 마음으로 살면서 어려운 일 만날 때마다 기도하면 또 용서해 주시고, 항상 기도 무릎은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른 새벽 세 시만 되면 뒤척거리다가 잠이 깨어 주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 취미가 됐지요.

2000년, 그 해도 모내기를 다 마치고 두 번째 주는 비료도 다 주고 앞으로 농약이나 줄 때가 되면 하면 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몸에 힘이 없고 몸살난 것 같이 아팠다. 남편이 병원 가서 보혈주사(? 포도당 링거)나 맞자고 하여 맞았지만, 힘이 없어서 그런지 소화가 안 되고 약방에 가서 약을 사먹어도 낫지 않았다. 강화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찍었는데 의사와 남편이 말을 주고 받더니 CT 좀 찍자고 하여 찍었더니 큰 병원에 가라고 하여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수술만 하면 됩니다, 안위시키길래 안심했다.
집에 와서 누웠는데 남편이 전화를 하는데 밖에 나가서 광으로 쓰는 방에 들어가 하는 거예요. 나는 수상해서 나가서 물었다. 아니야, 하면서 아이들에게 큰 병원을 알아보라는 거다. 작은 아들은 특수 교사다. 마침 학부형을 만나 이야기 하는 중에 병원을 알아보던 형수 전화를 받은 것이다. 작은 아들은 선생님들에게 알아보겠다고 하니 듣고 있던 학부형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어머니가 큰 병원을 찾습니다.” 했단다. 그 분이 “염려 마십시오. 저는 아산병원(서울 잠실) 약 대주는 사람입니다. 내일 11시에 병원에서 만나시죠.”, 연락이 되었다. 남편과 나와 큰 아들 목사와 함께 그 분을 만나니 그 분이 다 알아서 입원실도 즉시로 알선해 주고, 다시 진찰을 하니 대장암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나는 마음이 암담했다. ‘암이라니, 주님 딴 병도 아니고 암이라니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남편과 두 아들도 어이가 없는 듯 침묵하더니, 두 아들이 하는 말, “어머니 걱정 마세요. 지금은 의학이 발달되어 암도 많이 나아요.” 위로했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울음이 쏟아졌다.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길래 이렇게 큰 아픔을 줍니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남의 병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가 암에 걸리다니요.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됩니까, 주님. 주님.”
한참을 울고 나서 “주님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깨닫게 해 주세요. 제가 기도한다고 교만했습니까? 항상 부족함을, 나는 주님의 도구일 뿐이다. 자랑치도 않고, 간증도 자랑이 될까봐 조심 조심 했잖아요. 제가 물질을 탐냈습니까? 누가 감사헌금 내면 가서 본제단에 바치라고 가르쳐주고, 물질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씀 속에 항상 조심했는데요. 기도해 주고 식사까지 대접하면 남편은 기도해 주었으면 됐지 하며 핍박도 많이 받았는데요.”
울음은 한이 없고 가슴이 아팠다. 울음이 진정되더니 과거가 생각났다. 지난 날 아플 때를 더듬어 보았다. 그 때 기도하기를, 주님 저에게 히스기야 왕처럼 15년만 연장시켜 주면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성장하여 어머니의 사명도 조금 하고 가지 않겠습니까, 했다. 그로부터 연 수를 따져보니 15년 살게 해주시고 8년 6개월을 더 살게 해주신 것을 알게 되니 23년 6개월을 더 살게 해주셨다. 나는 양심에 더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주님 뜻이겠지, 하며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했다. 마음이 안정되면서 이 병으로 주님 부르신 거지. 뜻대로 하옵소서, 했다.

찬송 431장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은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12/04/2009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6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보라색으로 열매 맺은 나무가 있네요.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여섯번째)

초가을이었다. 이른 찰벼 타작을 하는 날이라 분주하게 일꾼들 식사를 준비하는데 승용차가 마당으로 온다. 젊은 부부(50대)의 아들이 운전하고 온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즉 천주교회에 나가는 분들이었다. 남편이 아파서 온 것이다. 혈압도 있지만 병 이름을 몰라 병원에 가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과장이었는데 회사도 쉬고 해서, 화도면 남쪽에 선산이 있어 벌초를 하러 왔다가 형님이 기도를 받으라고 해서 찾아온 것이다.
나는 천주교인은 처음이었다. 부인의 믿음은 좋은 것 같았다. 간신히 시간을 내어 기도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주머니에 담배가 있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담배를 끊으시고 정성을 쏟으십시다, 하니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부인에게 주며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하였다. 그리하고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했다. 주님이 간절함을 주시길래 기도하고, 속으로 주님 알아서 하세요, 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분들은 갔다.
한 달쯤 지났을까. 강화읍에 갈 일이 있어 남편과 함께 갔다 왔는데 거실에 들어가니 사과 한 짝이 보인다. 누가 우리 집에 왔었을까 궁금하였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한달 전에 아들과 함께 공항에서 와서 남편이 기도 받고 갔는데, 감사하여 찾아왔다가 아무도 없어서 목사님께 찾아왔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나아서 회사에 복직했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갔노라 일러주라고 했다고 하셨다. 또 12월 25일 성탄날, 조그만 선물을 우체부가 주고 가길래 뜯어보니 가죽장갑이었다. 누가 했을까 궁금했다. 저녁에 전화가 와서 받으니 이분들이었다. 나는 전화번호를 몰라서, 먼저 우리 집에 오셨다 가신 것을 인사도 못했노라고 하니, 그분은 남편이 나아 너무 감사하고 한권사님하고 자기 이름하고 같다고 권**이라고 했다. 평생 잊지 못할 일이라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천주교인도 기적을 주시는구나, 하면서 주님께 감사 드렸다.

그 이듬해 여름, 모를 다 내고 삼밭에서 마늘 밭을 매는데, 두 분이 차에서 내리더니 여기가 한권사님네인가요, 한다. 해가 뜨거워 수건을 쓰고 얼굴에는 땀 범벅이었다. 누구신가요, 물으니, 지나간 가을에 고모님이 여기 오셨다가 남편이 나으셔서 권사님을 찾아가라고 하여 왔다고 하였다. 나는 얼른 가서 세수를 하고 부끄럽습니다, 인사를 하니, 서울 신림동에서 왔다고 한다. 부인은 큰 교회 성가대 지휘자이고, 남편은 연세대학교 나오고, 남편이 너무나 믿음이 없어서 기도도 받고 간증도 듣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들어가시자고 하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주님 저런 분들을 보내면 어떡해요. 저는 무식쟁이인데 저 사람들에게 무슨 말씀을 드려요, 부담이 갔다.
예배를 드렸다. 기도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고 음료수를 내면서 간증을 했다. 그들은 진지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말주변도 없는데 그들은 재미있게 듣는다. 나도 모른다. 이상하게 말도 잘 나왔다. 그들은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이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하며 서로 헤어졌다.

그 여름에 아들 목사네를 가서 자게 되었다. 집에서 남편이 전화를 했다. 저번에 신림동에서 왔다간 분이 나를 대접하고 싶어 모시러 온다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우리 집사람은 그런 대접 받는 것 절대 싫어한다고, 집에 없다고 하니, 어데 가셨냐고 하여 아들 목사네 갔다고 하니, 또 어데냐고 물어서 신림동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분은 잘 됐습니다. 가까운데 있으니 대접하라고 하셨다,면서 목사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여 대주었다고 했다. 나는 무어라 가르쳐주었냐고 했다. 조금 있으니 전화가 오길래 안 받았다. 며느리 사모더러 전화 받고 없다고 하라고 했더니, 사모가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전화 바꾸라고 한다고 받으세요, 하였다. 나는 그분에게 싫습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대접 받은거나 다름 없습니다,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가 어데쯤 되느냐고 묻길래 나는 모른다고 하니, 사모한테 전화를 바꾸라고 하여 사모가 알려주었다. 그는 아들네로 찾아와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음식을 장만하여 다 준비해놓아 대접을 잘 받았다. 그 집에 들어가니 집도 좋고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마음 속으로 주님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 주세요, 기도 드렸다.

찬송 409장
1. 목마른 내영혼 주가 이미 허락한 그 귀한 영생수 주여 갈망합니다
그 약속 따라서 힘써 간구하오니 오 주여 내기도 어서 들어주소서
2. 주내게 약속한 큰비 내려주시려 은혜의 저구름 건너편에 떠올라
그 귀한 징조가 내게 밝히보이니 나 힘을 다하여 주께 간구합니다
3. 은혜의 소낙비 지금 흡족히 내려 구원의 큰강물 흘러 차고넘쳐서
내 추한 모든죄 모두 씻어버리니 나 지금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네
4. 그 차고 넘치는 주의 은혜의 물결 힘차게 밀려와 내게 만족하오니
오 할렐루야로 주를 찬송하오니 내 맘에 기쁨이 항상 충만함이라
(후렴)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여름이었다. 웬 오토바이가 집으로 온다. 남자 분이다. 누구세요, 물으니 강화중앙교회 박** 장로님이시란다. 기도 좀 받고 싶어서 왔다고 하시길래 사양했다. 안 됩니다. 어떻게 장로님을. 안 됩니다, 하니 몸이 아프시다는 것이다. 속이 아프고 약도 썼지만 치료가 안 돼서 오셨다는 것이다. 나는 부담이 갔다. 나의 부족을 먼저 주님께 아뢰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다.
그 분은 가셨다. 며칠 후에 또 오셨다. 아직 편찮으시냐고 하니, 어데 좀 같이 가자고 하시면서 오토바이에 타라는 것이다. 싫습니다, 거절했지만 그 분을 이길 수가 없었다.
강화읍 인항차부 사장네라고 하면서 장로교 집사님이었다. 사장이 늑막염에 걸렸는데, 믿음은 없고 병에 짓눌려 바싹 말라 있었다. 집은 잘 사는 것 같은데 사장의 교만이 눈에 보이게 심령이 메마른 것을 느꼈다. “마음 문 열고 주님 모시어 드리세요.” 계속 전도하며 간증을 했다.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땅에 떨어진다고 성경에 있습니다. 주님께 진심으로 회개하시고 예수님 영접하세요.”
내일 또 읍으로 들어오라고 장로님이 간곡히 부탁을 하여 들어갔다. 여전히 마음은 깨어지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회개할 마음도 그 영혼이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에게 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튿날 또 들어오라는 것을 가지 않았다. 며칠 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분은 육체가 사는 것만 바라보고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을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한의원 하는 권사님이다. 옛날에 망월에서 살던 분인데 강화읍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분이다. 그 여자 권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강화읍에 들어오면 자기네 집에 들르라고 하였다. 나는 마음에 부담이 갔다.
그 권사님네 옆집 권사님네 기도 갔는데 한의원 사모님이 오시더니 나를 무조건 끌고 갔다. 말씀을 들으니 한의원 권사님이 술에 취해 있어 항상 가정이 불만이다. 여자 권사님 말씀이 맑은 정신으로 환자들의 약을 지어 주어야 하는데 늘 술에 취해 있어서, 술 좀 끓게 기도 좀 부탁하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권사님쯤 되면 술도 끊을 줄 알아야지 별난 일도 있네, 하면서 마음에 싫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했다. 나도 처음 있는 일이다. 기도 중에 술을 끊지 않으면 한방으로 다스릴 수 없는 일이 온다고 하였다. 나는 기도를 해놓고도, 말이 헛 나간다. 큰일났네, 속으로 걱정을 했다. 음료수를 대접 받고 있는데, 한의원 권사님은 아까 기도 중에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다고 하면서 처음 체험하노라고 하면서 기뻐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하는데 전화가 온다. 한의원 권사님이다.
“권사님, 아까 기도 중에 술을 안 끊으면 한약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고 하셨죠.”
“죄송해요, 권사님. 제가 실수했어요, 용서하세요.” 전화에 대고 빌었다.
“아닙니다. 저는 은혜 받았습니다. 술을 끊어야지요.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이다. 부인 권사님을 만났는데 내 손을 꽉 잡으면서 말씀하신다.
“남편이 술을 끊었다가 요즘은 환자들이 대접한다고 술을 사주면 손님 대접하느라 반잔 밖에 안 먹어요. 그것만으로도 난 좋습니다. 술 때문에 부부싸움 하면서 이혼 말까지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가정 천국이에요. 감사합니다.”
“반 잔도 안 되는데요. 반 잔이 씨앗이 되어 안 되죠. 주님은 아주 안 드시는 것을 좋아하실텐데요.”
“그러면 좋은데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부인 권사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3년이 흘렀다. 여름 7월쯤에 전화가 왔다. 한의원 부인 권사님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즉,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하며 남편 권사님이 권사님 한번 들어오시라고 한다고 사정을 했다. 어데가 아프시냐고 하니, 간염으로 눈까지 노랗고 황달 끼가 있고, 자기가 약을 지어 먹어도 효험이 없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한의원에 잘 부탁을 해서 약을 지어 먹어도 낫지 않아 권사님이 3년 전에 와서 기도할 때 한 이야기가 생각나서 오시라고 한다는 것이다.
강화읍 종합병원 특실을 찾아갔다. 부인 권사님이 반겨 맞아주시면서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한의원 권사님에게 하나님은 권사님을 사랑하셔서 깨닫게 하신 거지요, 말했다. 요한1서 5장 3절 말씀을 읽어 드리고 간절히 기도 드렸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에 전화가 왔다. 권사님이 눈에 황달도 없어지고 퇴원하셨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났다. 여름이었다. 한의원 권사님 친구가 망월에 사시는데, 그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나는 혼자 마음 속으로 술을 또 드셨나 보다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영혼구원과 함께 육체구원까지 받는 분이 있고, 어떤 분은 영혼구원만 받는 분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찬송 403장
1. 나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2. 예수 안에 있는 우리 한량없이 즐겁고
주 성령의 위로함이 마음 속에 차도다
천국음악 소리 같은 은혜로운 그말씀
끊임없이 듣는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3. 이 세상의 모든 풍파 쉬지않고 불어도
주님 안에 보호받는 우리 마음 편하다
늘 깨어서 기도하고 저 천국을 바라며
주님만을 기다리니 어찌 찬양 안할까

저녁을 먹고 남편과 함께 있는데 전화가 왔다. 옆에 오상교회 남자 권사님이었다(조**권사). 부인은 나와 친구이다. 망월서 시집을 갔다. 전화를 받으니 남편이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고 소대변 받아내고 한다고 오라는 것이다. 나는 거절했다. 거기 교회 목사님도 어렵고 친구 남편이어서 더욱 거절했다. 한 번만 와 달라는 것이다. 안 가겠다고 하니 친구가 울먹거리며 하는 말이 친구 남편 문병도 올 텐데 서운하다고 한다. 그땐 거기 교회 목사님이 어려워서 싫다고 하니, 밤에 몰래 왔다가 가라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저렇게 울먹이면서 하니 어떡하냐고, 하여 가기로 했다.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누가 볼세라 조심조심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니 남편이 누워 일어나지를 못한다. 언제부터 그러느냐고 하니 한 보름 되었다고 하며 약을 지어 먹어도 안 낫는다고 한다. 우리는 합심하여 찬송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돌아왔다.
또 전화가 왔다. 오라는 것이다. 나는 거절했다. 모낼 준비하려고 논도 쓸고 바쁘다고 핑계를 하니, 자기가 망월에 동생이 사니까 망월 가서 있으면 저녁에만 와서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고단해서 밤에 못해, 하지만 그 친구는 내일 간다, 그러면 좋은 거지, 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 이튿날 저녁에 동생네 왔다고 저녁 먹고 오라는 것이다. 나는 부담이 갔다. 주님 어떡해요, 하는데 말씀을 주셨다. “너는 가기만 하라.” 담대해졌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반가이 맞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만 가서 기도하는데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일을 하니 앉아 있게 되었다. 점점 차도가 보이니 친구는 염치 없이 매어 달린다. 또 일주일을 했다. 이제는 나아서 밖에 나가 다니게 되었다. 15일만에 문제가 해결되어 토요일에 돌아갔다. 영육이 힘들었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낫게 되니 감사할 뿐이다.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면 그 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비밀은 없다. 그 소문이 났다. 그 이웃에 있는 분들이 속이 아픈 사람, 허리 아픈 사람, 다리 아픈 사람, 목사님 몰래 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목사님께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겨울이었다. 그 마을 산 너머 가난한 할머니가 아셨나 보다. 저녁에 오라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둘이 사시는 분이다. 조그마한 초가집에 마음이 아팠다. 불쌍한 마음에 기도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주님은 이러한 분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죠. 고쳐주세요.” 할머니도 같이 우셨다. 그래서인지 간절히 기도를 했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돌아오느라 추웠지만 마음은 흐뭇했다. 주님 알아서 하시겠지. 나중에 그 할머니가 나으셨다는 말을 듣고 전심으로 주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감사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다.

찬송 516장
1. 맘 가난한 사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천국이요
애통을 하는 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으리라
2.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 땅이 기업이 될것이요
의 사모하는 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로다
3. 긍휼히 여기면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으리라
맘 청결한 사람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 볼것이라
4. 화평케 하는 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 아들이요
핍박을 받는 이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임이라
5. 주 위해 욕보면 복이 있나니 하늘의 큰 상을 받으리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 영원히 돌리세 할렐루야 (아멘)

11/27/2009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5

<우리 교회에서 만든 주일 장년 성경공부 교재입니다.>

Thanksgiving을 앞두고 밀알에서 마지막 사역자 미팅을 했습니다. 미팅 때마다 정해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서로 나눕니다. 거기서 나눈 글을 옮겨봅니다.

<권능>

전병욱 목사님의 책 “권능”의 첫 장을 열었을 때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글이 더 이상 읽혀지지 않아 책을 덮었다. 핑계를 찾아본다면 밀알 스탭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이번 달까지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생각이 많아져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였으리라. 그래서 전병욱 목사님의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전목사님의 책 “권능”과 같은 맥락을 이룰 수 있는, 요즘 경험한 성령이 주시는 능력의 증거들을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주일에 하는 장년 성경공부가 있는데 이번 하반기에 사도행전의 절반을 공부하였다. 교우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초대교회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그 권능이 오늘날 교회(믿는 지체들)와 얼마나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지를 보았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중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 각 나라 방언으로 말하게 된 사건(2:4), 성전 미문의 지체장애인을 성령의 권능과 경건(3:12)으로 걷게 함, 베드로가 산헤드린 의회 앞에서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4:8),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함으로 개인의 소유를 나누게 됨(4:33),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헬라파 유대인 일곱 집사가 선택됨(6:5), 그 가운데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6:8)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순교의 현장에서도 성령이 충만한 모습(7:56),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큰 능력을 나타내고(8:13), 빌립이 전도한 사마리아 성에 사도들이 방문하여 기도할 때 믿는 자들이 성령 받음(8:17),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을 지시하시는 성령(8:26), 병거로 가까이 가게 하심(8:29), 내시에게 세례를 준 후 주의 영이 빌립을 다른 곳으로 이끌어 가심(8:39), 사울의 회심과 아나니아의 만남에서 보여주는 성령의 충만함(9:17), 이방인 선교의 시작을 알리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따라가도록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성령(10:19), 베드로의 말씀을 듣는 고넬료를 포함한 함께 있던 이방인에게 내려오시는 성령(10:44), 아가보라는 선지자를 통해 흉년을 예고하셔서(11:28)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게 되는 연합의 사건….
사도행전에 기록된 많은 말씀을 들었음에도 성령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던 나에게 성경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사도행전 사건마다 인도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그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다. 또한 초대 교회 때의 온갖 시련과 박해 가운데에서도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나에게까지 미치는 엄청난 감격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권능의 증거들을 교우들과 함께 나누면서 놀라워하고,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많은 증거들을 나누면서 감격하였다. 또 성경공부를 통해 처음 만나는 교우들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낯설은 분위기에서 시작하여 12주 과정이 다 끝났을 때는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다음 학기에 다시 만나게 되길 바라는 교제의 풍성함과 주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성경에 대하여가 아니라 성경 그 자체를 읽을 때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것이다.
밀알에서의 짧은 사역을 돌아볼 때 비슷한 것을 깨닫는다. 밀알에 대하여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썩어지는 밀알이 될 때 능력 있는 사역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내 안에 밀알 보다 내가 더 많기에 물러나려고 한다. 하지만 성령의 권능이 히브리파 유대인이나 헬라파 유대인 모두에게서 나타났고 각각의 역할에 충실했을 때 복음이 세상 곳곳에 증거된 것처럼, 밀알이나 나나 각각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령의 권능으로 감당한다면 모두 장애인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리에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

다시 읽어보니 마지막 부분이 무슨 의미인지....--!
스스로 꾸짖어보기도 하고, 스스로 용기도 주어보려는 애씀이라고 봐주세요.^^;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다섯번째)

2월, 우리 동네에서 집안네(친척) 할머니 환갑날이었다. 그 집에 가서 일을 도와주는데 손님이 온다고 남편이 나를 찾아왔다.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한 청년이 그의 엄마와 여자 아이(5학년)를 태우고 왔는데 어머니는 그냥 기다리시라고 하고 동생 여자 아이를 앉고 들어왔다. 이야기를 들은즉,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는데 다리가 아파 억지로 집에 와서 엄마, 나 다리가 아파 죽겠어요, 했다는 것이다. 막둥딸은 그 이튿날 일어나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가서 인천 길병원에 입원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병명을 알지 못해 쓰는 약도 없고 다리에다 무거운 쇠를 달아 놓고 소변, 대변을 다 받아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집으로 교인들이 심방을 와서 듣고 있다가 어느 집사님이 망월 권사님한테 기도 좀 받아보면 어떠냐고 해서 어제 데려 와서 오늘 이렇게 왔노라고 했다. 우리는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 드리고 그 아이에게 일어나 보라고 하니 일어났다.
한 다리를 들고 10번 세고, 쉬었다가 이쪽 다리 10번 세고, 반복해서 20번씩 번갈아, 나중에는 한 다리를 들고 50번 세고, 쉬었다가 두 다리로 서서 세어보라고 하니 10번, 20번, 50번, 100번 세는 거예요. 우리는 놀라서 주님, 할렐루야, 손뼉 치면서 좋아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와 오빠는 돌아가고 그 아이는 우리 집에 두고 갔다. 다리가 나으니 막내둥이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방안에 책상 서랍을 열고 왔다 갔다, 자기도 신기한지 좋아하는 것을 보았다.
그 이튿날 어머니와 오빠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딸을 보더니 딸을 품에 안고 좋아했다. 그 오빠는 성결교신학을 다니는데 아버지는 교회에 안 다니시고, 농사도 많고, 인삼밭도 하는데, 어머니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남편이 사람도 좋고 어려운 사람도 다 도와주곤 하는데 교회에 안 다니는 것이 흠이라고 했다. 이제 주님 앞에 나가시라고 하세요, 권면했다. 그 어머니 말씀이 우리 아들이 결혼을 해야 하는데 여기 참한 처녀가 있으면 소개하라고 해서, 알아보겠다고 했다. 군청에 다니는 권사님 딸을 소개하여 서로 만나게 했더니, 몇 번 만나더니 결혼 약속을 하여 결혼하였다. 지금 인천에서 목회하는데 교회도 잘 짓고 목사님, 사모님 잘 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리십시요, 인사하고 돌아갔다.

농번기가 되어 한참 모내기를 하였다. 점심 때 집에 들어오니 낯 모르는 젊은 엄마와 9세 된 남자 아이가 있었다. 점심을 같이 해 먹고 이야기를 들은즉 아이가 피부병에 걸려 온몸이 붉게 되어 병원에 다녔지만 낫지 않아 먼저 집사님 말을 듣고 온 모양이다. 나는 간단히 기도해주고 또 논으로 나갔다. 우리 집에서 성경 보고 있으라고 하고 나는 저녁에 들어온다고 하니, 그러라고 하여, 논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와서 다시 기도해주고 돌려보냈다. 주님이 알아서 하셔요, 들에 나가서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했다.
사흘 후에 전화가 왔다. 아들이 나았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하세요, 했다.

우리 교회가 부흥회가 정월 달에 있었다. 외삼촌댁이 당산리에 사시는데, 우리 교회 부흥회가 열리니 은혜 받으러 오시라고 했더니 그 교회 권사님을 모시고 왔다. 그 때는 월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부흥회를 했는데 그네들은 우리 집에서 자면서 모두들 은혜를 많이 받았다. 외삼촌댁이 데리고 온 권사님은 장로님 부인이었고, 여선교회 회장이었고, 남편은 국민학교 교장이었다. 그 권사님은 항상 신원이 고단하고 약을 써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나와 같은 병 증세였는데, 심하지는 않았지만 영적으로 병이 들은 것을 알았다. 그 권사님이 기도를 원했다.
합심해서 기도를 하는데, 혀를 한 뼘이나 내밀고 눈이 뒤로 넘어가는 것처럼 발작을 일으켰다. 우리는 뜨겁게 찬송하며 기도했다. 입으로 불면서 하는 말이 성수말영이다 하면서, 나는 이제 어디로 가나, 나를 이 집에서 쫓아내니 어디로 가나 하며 우는데, 슬퍼서 우는 울음이 아니라 가증스럽게 울면서 하는 말이었다. 이 집안을 망하게 해놓으려 했더니 이제 어떡하나 하며 칭칭 쾡쾡 하며 중얼거린다.
한참 기도하고 끝난 후 물어보았더니 그 권사님 하는 말씀이, 결혼하여 사는데 어느 해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아들이 바닷가에 나가보니 웬 보따리가 둥둥 떠오더라는 것이다. 그 아들이 돈보따리인가 보다 하고 건져서 집에 가져와 풀으니 무덩(무당)이 쓰는 부채와 방울이었다. 집안에 큰일났다 하며 굿을 해야 된다고 하여 집안들이 둘려가며 굿을 했다. 그런 분위기의 집안으로 이 권사님이 시집을 갔는데 시름시름 어디가 아픈지 약을 써도 낫지 않고 있는데, 그 마을에 할머니 집사님이 교회에 나가자고 하여 예수 믿게 되었다고 한다.
부흥회가 끝났는데도 이 권사님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간다고 하면서 안 가는 것이다. 주일 예배를 보러 들어가는데 또 발작을 한다. 권사님의 남편 장로님이 놀라는 것이다. 남편 장로님에게 회개하라고 소리친다. 권사님부터 회개하라고 우리들은 다그쳤다. 기도를 마치고 장로님만 가셨다.
내일은 권사님 생일인데 가시라고 해도 생일이 문제냐고 하면서 안 가신다. 그 때 우리 집에 커다란 수탉이 있었다. 남편에게 닭을 잡으라고 하여 그 이튿날 미역국을 끓여 먹는데, 손님들이 오는데 그 권사님 딸들이 들어온다. 딸들도 예수님을 잘 믿는 딸들이었다. 딸들이 권사님 죄송해서 어떡하냐고 하면서 몸둘 바를 모른다. 주님 일을 하는데 무얼 걱정해요, 염려 말고 어머니를 위해 중보기도하자고 부탁했다. 그들은 돌아갔다.
어머니 권사님은 일주일 더 있다가 돌아갔다. 그 권사님은 주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느냐고 하면서 손에 낀 반지를 빼어 놓고, 지갑에 든 13,000원을 돈 몽땅이라고 하면서 내놓는 것이다. 나는 그 권사님에게 말했다. 나에게 줄려면 그냥 가져가서 교회 제단에 바치라고 했다. 그 권사님은 이 제단에서 은혜 받았으니 이 교회에 내겠노라고 하여 새벽기도 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보았다. 그 권사님은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할렐루야 손을 흔들며 집으로 돌아갔다.

부흥회 새벽 시간에 강사님이 발표하는데 유**권사님이 귀한 예물을 드린다고 하시면서 축복기도 해주시었다. 나는 주님 감사합니다, 믿음의 어머니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찍 아침을 먹고 큰집에 가니 어머니가 힘이 없이 누워계셨다. 어머니 어디 편찮으셔요, 하니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어머니 오늘 새벽에 귀한 예물 바치신 것, 너무 감사해요. 주님께 믿음의 어머니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고 울었어요.”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하시는 말씀이, “얘야,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기도하는데 주님이 너 귀한 것 바쳐라 하시길래, 나에게 귀한 것이 어디 있어요. 주님이 장롱 속에 작은 아들이 환갑 때 해준 금반지 있지 아니 하냐. 그래서 바쳤더니 집에 와서 아침을 먹는데 큰며느리가, 어머니 작은 동서가 큰맘 먹고 해준 것을 왜 바쳤냐고, 성질을 내길래 그 말을 듣고 보니 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마음이 괴로웠는데 네가 그렇게 말을 하니 고맙다. 이 다음에 막내 아들 결혼할 때 보탤라구 했는데 주님이 바치라고 해서 그랬다” 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삼촌 예물은 우리가 다 책임질테니 염려 마세요, 했더니 좋아하셨다.
그 일로 인해서인지, 어떤 분들은 기도를 받으면 금반지를 제단에 바치는 거예요. 모*이 할머니도 5돈을 바쳤고, 며느리도 바쳤고, 상*도 기도 받더니 금패물 바쳤고, 명* 기도할 때도 그 어머니가 바쳤고, 수*네 할머니도 바쳤고, 이** 권사, 김** 권사도 많은 분들이 바치는 것을 보았다. 금예물을 제단에 바치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 속으로 주님께 감사 드렸다.

어느 겨울 날이었다. 그 날도 손님들이 많이 왔다. 기도를 해드리고 점심 때는 국수를 삶아 대접을 하고 기도가 끝난 후에 3시쯤 되어 또 남자 두 분이 들어왔다. 한 분은 망월 사시다가 강화읍으로 이사 가서, 지금은 강화중앙교회 송** 장로님이 되었다.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니 강** 권사님을 모시고 왔다면서, 공동변소가 집 앞에 있어서 거기 다닌 것 밖에는 없는데, 갑자기 남자들 성기구가 탁탁 쏘면서 밤잠을 못 자게 쑤시고 아파서 병원에 가라고 목사님이 심방 오셨다. 강권사님은 강화중앙교회에서 전도를 제일 많이 하는 권사이고 일년 동안 전도를 제일 많이 해서 테레비를 시상품으로 탔다고 하였다. 아프다는 말을 듣고 송권사님은 병원에 가더라도 기도 받고 가자고 하여 데리고 온 것이다. 우리들은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끝났다.
사흘이 지났다. 강권사님은 부인 권사님과 함께 오셨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면서 보름 동안 아픔을 인하여 잠도 못 잤는데, 이젠 잠도 잘 자고 아픈 것도 싹 사라졌다고 했다. 주님께서 체험을 주시니 더 전도 잘 하라고 하신 것이라고, 고백하는 말을 듣고 주님께 감사드렸다.

12월에 있었던 일이다. 메주를 쑤는데 전화가 왔다. 강화읍교회 나가는 성도님인데, 남편은 교회에 안 다니고, 우리 망월에 그의 언니가 산다. 영*이네 이모님이다. 조집사가 와서 동생이 아프다는 것이다. 내일 좀 가보자고 하셔서 가기로 약속을 하고, 김권사님과 함께 방문했다.
세상에 깜짝 놀랐다. 이 성도님은 사람 눈에 보이는 데가 얼굴로부터 손발이 다 부스럼덩이다. 눈도 부어서 잘 안 보이고 진물이 흘러서 눈으로 보니 흉측스러웠다. 처음 보는 일이라 너무도 황당했다. 성경 말씀에 문둥병도 말씀으로 고치신 주님이시지만 마음 속에 의심이 들어온다. 주여 보시옵소서, 속으로 기도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끝났다. 우리들은 피곤했고, 누우라고 하여 다들 누었다. 잠이 들었다.
그런데 3시간쯤 지났을 것 같은데, 그 성도님 말씀이 눈이 조금 보인다며 좋아한다. 가만히 얼굴을 살피는데 진물이 걷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손등이랑 얼굴이랑 진물이 마르니 살이 땡긴다. 우리가 옛날에 도배를 할 때 손등에 풀이 묻었을 때 풀이 마르면 살이 땡기는 것처럼, 눈으로 보게 되니 너무나 신기했다. 우리들은 신이 나서 더욱 간절히 기도가 나왔다. 이른 저녁을 먹고 친정 어머니를 모셔다 놓고 있는데 밥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
사흘쯤 지난 후 망월에 사는 그의 언니가 저녁에 우리 집엘 왔다. 동생이 나아서 부스럼이 꾸득꾸득 떨어졌다고 했다. 자기 남편이 동생을 방문했는데, 기적은 있는걸, 했다는 것이다. 언니는 좋아하면서 함께 주님 감사합니다, 영광 돌렸다.

11/20/2009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4



이미 첫 목회지에 있던 남편과 결혼하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친구들이 놀러 왔습니다.
지금 경기도 이천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와 워싱턴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 부부였습니다.
강화는 수리시설과 농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고장입니다.
그래서 저수지도 곳곳에 많은데, 그 때 살던 곳에서 가까운 곳에 내가면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저수지 둑을 걸으며 깊어가는 가을을 한껏 느껴 보았습니다.

저수지 옆 소나무 숲에 잠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얘기하면서 떨어진 참나무 잎을 긁어 모았습니다.
아주 작은 더미를 만들어 불을 붙였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제대로 가을 분위기를 내고 있을 무렵, 그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던 제 친구는 구성지게 노래 한가락을 뽑아 올렸습니다.

“우리가 산다는 건”

우리가 산다는 건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 탄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불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 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마침내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우리가 산다는 건
장작불 같은 거야

장작 몇 개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여러 놈이 엉켜 붙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침내 활활 타올라 쇳덩이를 녹이지
(백무산 시 / 백창우 곡)

이 늦은 가을, 친구들 보고픈 마음이 간절합니다.
친구가 불러주는 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삶의 의지를 다잡는데 힘이 될 것 같은데….
“희야, 내가 너 업어주고 그랬는데 노래 한마디 들려줄 수 없겠니?
혹시 이 글을 보거든 너 농사 짓는 밭 한가운데 나가 나지막하게 불러주렴.
내가 듣고 있을게.”

요즘, 하잖은 제 습관 하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어머님이 써주신 글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네번째)

목사님이 갑자기 가시는 바람에 공백이 한 달 좀 있게 되니 장로님들이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하셨다. 목사님 모실 분을 찾으러 장로님들은 여기저기 다니게 되었다. 목사님이 결정되어 2월에 오시게 되었다. 서** 목사님이시었다. 목사님은 좋으신 분 같았고 사모님도 서글서글,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과 동갑이었다.
그때에 큰 아들은 서울 언니네로 가서 공부하게 되어 올라갔다. 작은 아들도 같이 가서 공부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해서 애들 학비를 준비했고, 살림은 점점 늘어 땅도 우리 힘으로 할 만큼 복을 주셨다.
나는 큰집에 가는 것이 일쑤였고 음력 2월 같다. 큰집에 가고 싶어서 들어가니 어머닌 혼자 안방에 앉아 계셨다. 형님은 어데 마을 가셨나요, 여쭈니 어머니가 퉁명스럽게 하시는 말씀이 며느리가 아프다면서 윗동네 이웃교회 권사님이 병기도 하시는데 기도 받으러 갔다고 하시면서 침묵하셨다. 형님이 항상 아픔이 심해, 전에는 어머니 기도로 해결되곤 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갈등이 조금 있었다. 어머니 말씀을 듣는 순간 주님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교회에서 세간난 교회인데 우리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작은 교회가 하다니, 기도가 나왔다. 주님 우리 교회도 목사님을 통해 이런 문제가 해결되게 도와주세요.
조금 후에 대문 소리가 나더니 형님이 들어오시는데, 마누라 안에 있나, 하며 술이 취한 상태로 시어머니에게 말하는 거예요. 어머니와 나는 깜짝 놀라, 왜 그러세요, 하니 완전히 시아버지 행세를 하면서 힘이 어찌 많은 지 당할 수가 없었다. 시아버님은 항상 술을 좋아하셨는데 돌아가실 때에야 회개하시었다.
어머니는 평상시에 하시듯 찬송을 부르시면서 마귀 쫓는 찬송을 부르시길래 함께 뜨겁게 부르면서 기도하였다. 힘이 어찌 많은 지 당할 수가 없던 차에 마침 남편이 나를 찾아 왔길래 그 광경을 보고 함께 열심히 기도하며 이 영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했다. 마귀가 나가니 힘이 다 어데로 갔는지 바람 빠진 공처럼 힘이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웃 권사님한테 기도 받는데 마귀가 제 입으로 말하기를 닷새 있다 나간다 불었고, 큰길로 집에 오면서 시아버지 술 취한 모습이 그대로 자기 몸으로 나타나면서 집에 왔고 이제 정신이 든다고 괜찮다고 했다.

주일이 되어 저녁에 여선교회 월례회를 하게 되었는데, 회원들에게 우리 큰집 뒷집에 사기는 권** 집사가 위암이 걸려 수술 받았지만 앞으로 3 개월 밖에 못 산다는 결과로 인해 집에 와서 있는데, 여러 회원님들 기도할 때마다 권집사님을 위해 기도하자고 광고했다. 새벽기도 때 그 집사님을 위해 기도하는데, 주님 그 딸 생명을 연장시켜 주세요. 늦게 아들을 주셨는데 아직 여덟 살 밖에 안 되었는데 주님 그 아이를 보아서라도 생명을 연장시켜 주세요, 했다. 배 속에서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간절함으로 불쌍히 여겨달라고 눈물로 부르짖게 되었다. 그렇게도 간절함을 주시는 기도, 정말 우리 형제가 아플 때 기도한 것처럼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에 스치는 생각, 이 간절함이 식기 전에 권집사를 찾아가라는 마음을 주었다. 집에 가서 밥을 하는데, 이 간절함 식기 전에 어서 어서, 마음의 재촉이 오는 거예요. 남편에게, 여보 나 이것 잘못된 거지?, 새벽기도에서 간절히 기도했던 것과 마음에 자꾸 드는 생각을 애기했다. 남편은 집안 형님인데 문병도 갈 텐데 가도 괜찮아, 하길래 얼른 식사를 하고 찾아갔다. 방문을 여니 형님은 누우셨고 남편은 그 옆에 앉아 있다. 새벽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 형님이 내 손을 굳게 잡으며 하는 말이, 여보 나는 자네 말이라면 다 믿어, 하시며 인정해 주었다. 먹는 것도 죽물 조금이고, 마시면 설사로 다 쏟는 것이다. 밤에도 몇 번 일어나는데 지금처럼 보일러 시설도 안 되는 때이라 방은 차가웁고 괴롭다고 하면서 간절한 기도를 원했다. 그 형님을 위해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집에 왔다. 저녁에 목사님께 말씀 드리고 사모님, 권사님들 모시고 뜨겁게 기도하고 돌아왔다.

찬송 344장
1.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2.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 없이 살아갈 때에 누리 소원 주안에서 이루리
3.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한 주하나님 아버지는 참 미쁘다
그 귀한 모든 약속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무슨 일일 있을까
(후렴)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그 이튿날 큰집에 갔더니, 어제 밤에 심방들 갔었니, 어머니가 말씀하시길래 예, 하고 말씀 드렸다. 어제 저녁에는 단잠 자고 한 번도 설사를 안 했다더라,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형제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는 우리 주님을 생각할 때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기도는 계속 힘이 솟구치며 간절한 기도가 되었다.

이 소식이 전해져서 몸이 아픈 사람들이 찾아와서 기도를 해달라고 했다. 남편이 말하기를, 목사님께 말씀 드리고 질서를 지켜야 돼. 목사님을 찾아 갔다. 목사님은 허락하셨고, 사모님과 함께 아픈 분들을 찾아 다니면서 위로하고 기도하고 믿음을 주었다. 속이 아픈 사람, 허리 아픈 사람, 골 아픈 사람, 다 체험을 하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모여 기도하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저에게 절제 하라고 하시어 예 알았습니다, 순종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마음을 몰라 주었다. 목사님의 말씀도 이해 못 했다. 나는 아픈 사람들에게 목사님 말씀을 이해시키고 앞으로는 목사님께 안수 받으라고 했다. 성경에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될 거라고 하면서 우리 집을 찾아오는 이들을 목사님께 보냈다.
3개월 밖에 못 산다는 위암 걸린 집사님이 한 여름을 나고 초겨울에 몸이 좀 아프다고 찾아왔다. 나는 거절했다. 목사님께 안수 기도 받으시라고 했더니 받았다고 하면서 사정하니, 남편이 안 돼요, 목사와 장로 사이에 문제가 되면 교회 질서가 안 됩니다, 하며 그냥 돌려 보냈다.
그 겨울에 부흥회가 있었다. 어떤 집사님이 자궁 염증으로 병원에 가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고 나를 보더니 기도 부탁을 했다. 내일부터 부흥회가 열리니 간절히 주님께 매달리라고 하고 거절하고,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그 집사님 부흥회 때 은혜 받고 낫게 해달라고 중보기도 했다.
최** 목사님이 강사님이었는데 모든 성도님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다. 자궁 염증으로 앓던 분이 기도 중에 다 쏟고 나았다고 간증하고, 너의 병은 자궁암인데 다 나았다고 주님이 말씀했다고 간증하고, 한국에 안 다닌 곳이 없게 교회가 초청하면 간증하고 미국까지 초청 받아 갔다. 이 집사님은 성격이 대범하고 나같이 소심하지 않고 담대하게 목사님께 가서도 말했다. 목사님네가 서울로 이사가시게 되었다. 이집사님도 그 교회로 가서 목사님을 도와 기도하고 재정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었다.

새 목사님이 오셨다. 어느 날이었다. 초가을인데 어느 속장님이 나를 보고 목사님이 찾으신다고 유집사님네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유집사님이 정신이 이상해서 목사님이 심방오셔서 기도하시는 중이었다. 마귀가 발작하여 그 집사님이 나를 오지 말고 가라고 손으로 뿌리쳤다. 하지만 목사님과 나는 그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니 마귀가 나가고 조용해지며 이제 괜찮아요, 해서 안심했다. 새로 오신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활용하라고 부탁하시면서 승락하셨다.

어느 집사님 남편이 교회에 안 나오는데 병이 들어 병원에 가도 낫지를 않았다. 집사님이 꿈을 꾸었는데 기도 받을 병이라고 남편에게 권면했지만 반대했다. 딸 다섯에 아들이 그 집사님 남편 한 분. 누나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아무리 약을 대도 낫지 않았다. 안양에 사는 누나가 데려다가 일주일 동안 병원에 다녔지만 아무 효험이 없고 속이 아파 못 먹고 하니 키가 큰 분인데 몸이 많이 쇠약해져서 누나가 걱정을 많이 했다. 토요일, 아무 차도가 없고 더 아프니, 그 동생은 누나, 집에 가서 아내 말대로 기도 받아야 나을 병인가봐 했다. 그래서 누나가 집으로 데리고 와서 목사님께 심방 오시라고 해서 목사님, 권사님들과 함께 기도하고 왔다. 그 이튿날 권사님과 찾아갔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부인 집사님에게 물어보았다. 집사님이 방긋이 웃으면서 죽 한 공기 잡수셨고 속도 안 아프고 이젠 나은 것 같다고 해서 우리들은 들어가서 기도 드리고 왔다. 그는 깨끗이 언제 아팠드냐는듯이 나아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어느 날 전화가 와서 받으니 그 분이 하는 말이 강화읍에서 미장원 하는 여자 권사인데, 남편이 화장실에서 쓰러져서 병원에 가니 집에 모시고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원 없이 뇌수술을 받으면 어떨까 했으나 병원에서는 장담 못한다고 하면서 한 달이나 병원에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전화를 하신 남자 권사님이 그분 병문안을 갔다가 사정을 듣고 수술을 하드래도 기도를 한번 받고 하든지 하라고 하고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강화읍 터미널에서 저녁 5시에 만나기로 하여 갔더니, 어느 분이니 찾아와 망월에서 온 권사님입니까, 그런데요,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하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아픈 분은 병원에서 나와서 화곡동 큰집에 계신다고 하면서 택시를 타고 갔다. 방에 들어가니 과거에 남편이 술고래였고 이번 기회에 회개하고 고침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좋겠다고 아내 권사님이 말했다. 남편을 위해 얼마나 간절한지, 성경 말씀을 들려 드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키가 큰 분이 입으로 중얼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다 쓸데 없는 말 같았다. 부인 권사님 말씀을 들어보니 횡설수설, 입은 가만히 안 있고 중얼거리고, 삐꺽질(딸꾹질)은 쇳소리가 나듯이 연거퍼 계속 하는데, 그런 환자는 처음 보았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데 삐걱질이 없어지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습니다.
전화한 남자 권사님과 아내 권사님과 같이 그 방에서 눈을 조금 붙이고 4시쯤 깨어 보니 남편은 쿨쿨 자고 있었다. 권사님 말씀에 잠도 안 자고 삐꺽질만 계속하고 중얼거리는 분이 저렇게 잘 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을 믿는다고 하시면서 좋아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주님께 감사한지 몰랐다.
5시쯤 되어 남편이 깨어 두 손을 높이 들면서 체조를 하면서, 아, 상쾌하다, 아, 잘 잤다, 한다. 우리는 또 합심해서 기도를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3일 후에 전화가 왔다. 아내 권사님이 기쁜 목소리로, 권사님, 할렐루야, 우리 남편 나았어, 하나님이 고쳐주셨어요.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요. 이제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좋아했다. 얼마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남편이 예배 때에 목사님이 설교하시면 아멘의 목소리가 제일 크다고 했다. 아내 권사님은 이 은혜를 사람에게 갚으려고 만나자고 하길래, 하나님께 하시라고 하나님이 고쳐주셨는데 무슨 소리냐고, 나는 안 만났다.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 이 말씀을 꼭 마음에 품고 오늘까지 살아왔다.

어느 날 아침에 교회 갔다 와서 밥을 하는데 낯 모르는 아줌마와 예쁜 딸 처녀를 데리고 찾아왔다. 어디서 오셨지요, 들어 가시자고 하고 그 분의 말을 들은즉 딸이 피부병에 걸려 온몸이 빨갛게 두들두들 솟아오르고, 가려워서 손을 대면 한이 없어, 병원에 가서 약도 쓰고 주사를 맞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며 기도 좀 해주세요, 했다. 눈에 보이는 얼굴과 손은 멀쩡한데 몸만 그래서 다행이라며 처녀가 얼굴과 보이는데가 그러면 얼마나 흉하겠냐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장로교 집사, 딸은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하는데, 너무 마음이 착해서 딸들 중에 제일 얌전하고 잘 하는데 그러네요, 했다. 간절히 기도 드리고 그들은 갔다.
그 이튿날 전화가 와서 받으니 권사님, 우리 **이 나았어요, 몸이 붉었던 것이 가라앉고 비듬이 몸에서 하얗게 떨어졌어요, 나았어요, 좋아하시는 어머니 집사님이었다. 그 딸은 목사님 사모님이 되었다. 부천에서 목회하고 있다.

찬송410장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3.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4.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후렴)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11/13/2009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3

<올 초, 저희 집에 오셨을 때 갔던 곳이에요. 어딘지 아시겠어요?>

어머님이 기도를 많이 하시고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 결혼 초기에는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강산이를 낳고 나서인가요?
남편에게 배가 아프다고 하니 어머님께 기도를 받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도 어릴 적에 배가 아프면 어머니가 기도해주시곤 했다면서요.
저보다 훨씬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남편이 권하길래 내키지 않는 맘 반, 호기심 반으로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처음 목회하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시던 어머님과 아버님은 곧 찾아오셨고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궁금했는데 기도가 다 끝나도 별일은 없었습니다.
어머님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다지 스트레스 쌓인 것도 없거니와 누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고 난 뒤에 배가 아프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기도해서 나았다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로부터도 몇 년을 어머님의 신앙과 저의 신앙은 공통점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다른 빛깔로 살았습니다.
목회지가 바뀌어 영성(靈性)에 관심 갖게 되고, 교회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정말 감사하게도 저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게 되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어머님의 신앙도 이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졌습니다.
^^

어머님이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을 여러 차례 지켜보기도 하고 함께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아픈 사람의 배에 손을 얹고 찬송을 부르시고, 떠오르는 성경 말씀도 찾아 읽게 하시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아픈 곳을 주물러주시기도 하구요.
어머님은 정말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오랜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하십니다.
부족한 제가 볼 때는 하나님께서 어머님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것은 그 “간절함” 때문이지 싶습니다.
(어머님에 대하여 느낀 것을 쓴 윗 글은 어머님의 글을 읽기 전에 쓴 것입니다. 어머님의 글을 읽다보니 제 생각하고 아주 비슷한 글이 써 있네요. 어머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헤아려본 제가 기특해서 말을 덧붙여봅니다.)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세번째)

그런데 나에게 큰 아픔이 찾아왔다. 몸이 바싹 마르고 밥을 먹으면 소화도 안 되고, 항상 복부는 괴롭고 어린애 6, 7 개월 된 것 같은 모양으로 누우면 무덤 위에 누운 것처럼 괴로웠다. 남편이 약을 사와서 먹어보기도 하고, 병원에도 가고, 어머니 기도도 받아보고, 어머니와 철야기도도 해보고,목사님께 기도도 받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어 낫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의 시험이 더 컸다. 누가 암 걸렸대,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암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나는 억눌렀다. 하루는 너무 아파 목사님께 또 달려가 울면서 꿇어 엎디었다.
“저 기도 좀 해주세요. 너무 속이 아파요. 철수세미로 오장을 쑤시는 것 같아요.”
목사님이 안수해 주시는데 토했다. 그런데 붉은 물을 토하니 목사님은 빨리 병원에 가라고 하신다.
친척을 통해 세브란스 병원에 속히 들어가게 되었다. 몸에는 일어설 기운도 없었다. 몸을 다 진찰하고 시티(CT)도 찍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누워서 입 속으로 “주님, 나를 버리셨나요. 성령의 불로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라는 체험 주시고 꿈으로도 알려주시고 하시면서 왜 내 몸의 병은 안 고쳐주시나요.” 울고 또 울고 한없이 울다가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오후 3시쯤 되었다.
밭에 나가보니 마늘 밭에 풀이 많았다. 쭈그리고 앉아 풀을 뽑으며 기도했다.
“주님, 내 마음 속에 이 잡초처럼 뽑아 버릴 거시 있다면 다 뽑아 성령의 불로 태워주세요. 주님 저는 지금 죽어도 괜찮지만 저에게 맡겨주신 두 아들에게는 어머니의 보살핌과 기도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때 큰 아들은 중학교 1학년,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나는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큰 아들 주의 종으로 바치라고 하시면서, 그에게는 어머니의 기도가 있어야 되잖아요.”
한없는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방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게 되었다. 책들을 보는 순간, 책 제목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가 눈에 띄었다. 책을 뽑아서 읽는 중에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내용은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었는데 나를 감동시켰다. 포도즙을 만들기 위해서 주인은 포도를 발로 밟아 으깬다. 자기 몸이 밝히는 포도는 아프다. 나중에 주인은 온전한 포도즙을 만들기 위해서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긴다. 숙성을 시킨다. 숙성시킨 포도는 주인의 손에 의해 걸러져서 가라앉힌다.
“맞아. 주님이 나를 참 포도즙으로 만들어 헌신의 그릇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주님이 나를 연단시키는 거야.바로 이것이 나야. 나는 이 과정을 잘 이겨야 한다.” 어디서 오는 힘인지 불끈 힘이 솟았다.
“주인에게 쓰이는 그릇이 되라”는 부흥회를 할 때 은혜 받고 철야기도 하면서, 정말 주님의 깨끗한 그릇이되어 쓰임 받게 하소서, 했던 일이 생각났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7절)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지만 질그릇에 담긴 보배인 믿음이 주님께 붙잡힌 바 되면 천한 그릇이라도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된다는 확신을 주는 말씀을 묵상했다.
나는 기도 줄을 붙잡았다. 주인이 쓰시는 깨끗한 그릇이 되자. 나를 정결케, 세속에 속하지 않고 주님께 속한 자, 세상 등지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 섬기리라. 어머니께 달려가서 책을 읽을 때 힘이 솟고 확신 주고 한 체험을 말씀 드리고 어머니와 함께 철야기도 하기로 했다. 내 입에서는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늘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몸은 더 아프지 않고 몸의 생기가 솟아오름을 느끼면서 점점 나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3년을 몸이 아픈 시련을 겪게 하시더니 건강을 찾아 완쾌되었다. 아플 때마다, 주님, 저에게 건강 주시면 몸이 아픈 성도들을 함께 위로해주고, 기도로 도와주고, 연약한 자에게 힘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얼마나 다짐의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목사님이 갑자기 12월30일 딴 교회로 가신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슬펐다. 주님, 영력 있는 목사님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좋았는데 딴 데로 보내시나요, 울며 기도했지만 이미 목사님은 결심하신 것 같았다. 주님의 뜻으로 돌리고 마음을 편하게 갖게 되었다.

찬송377장
1.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2. 해를 당하거나 우리 고생할 때 주가 곧 없이 하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3.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항상 축복해 주시리라
4. 우리 받은 것을 다드리면 크신 사랑을 깨닫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은혜 풍성케 하시리라
5. 주의 힘을 입어 말 씀 잘배우고 주를 모시고 살아가세
주를 의지하며 항상 순종하면 주가 사랑해 주시리라
(후렴)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초여름이었다. 모내기도 다 마치고 오랫들(집 주변 뜰) 풀이 많아 김을 매고 있는데 40대쯤 되는 여인이 찾아왔다. 두 손을 허리에 대고 가만가만히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데서 오시었나요, 물으니 화도면에서 왔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즉 부락에서 관광을 갔었는데 스트레스를 푸느라고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내어 자기도 일어나 흥이 나게 춤을 추다가 허리가 삐끗한 것 밖에는 없다고 하였다. 관광 갔다 와서 낫기를 바랐으나 더해서 교회도 빠지고 했는데, 마음에 집사가 세상 쾌락에 흥해서 사니 하나님께서 깨달으라고 주신 것 같아 회개하면서 기도를 했는데도 낫지를 않고, 약을 써도 낫지 않아 괴로워하는 것을 보던 친구가 목사님께 기도 받으라고 했단다. 하지만 부끄러워 목사님께 말씀도 못 드렸다고, 기도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춤을 세게 추었으면 그래요, 했더니 하나님이 벌 주셨나 봐요, 하는 것이다. 깨달았으면 회개하세요. 허리를 만지면서 누르면서 안마하면서 기도했다. 그는 시원하다고 하면서 허리를 폈다 구푸렸다 하면서 나은 것 같아요, 하며 웃으면서 돌아갔다.

그 이듬해 정월 하순경이다. 키가 자그마하고 통통한 청년이 지팡이를 집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다리를 절룩절룩 하였다. 들어가자고 하여 방에 들어와 앉았다. 그 청년은 군대 입대할 날이 며칠 안 남았다고 한다. 아무 일 없이 다친 데도 없는데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서 약을 써도 안 낫고, 침을 맞아도 낫질 않는다고 하며, 누가 망월에 가서 한권사를 찾아가 기도를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왔다고 한다. 집은 국정에 사는 청년이고 성공회에 나가는 청년이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간절히 했다. “주님, 이 청년은 나라의 부름을 받은 청년인데 이 다리를 고쳐주셔야 군대에 갈텐데 도와주세요.” 다리를 눌러주면서 도와주세요, 주님,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많이 나은 것 같다고 하면서 내일 한번 더 오겠다는 것이다.
그 이튿날은 비가 많이 오는데, 해태 비, 땅을 녹이느라 오는 비였다. 안 오겠지…. 점심을 먹고 났는데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여니 그 청년이 우산을 쓰고 발을 걷어 부치고 지팡이 없이 들어오는 것이다. 발을 씻으라고 수건을 주면서 보니 발이 물에 젖어 새빨갛게 시린 발이었다.
어서 이 아랫목으로 오라고 하면서 덮개를 주며 덮으라고 하여 한참 동안 그대로 있더니 이제야 발이 안 시렵다고 하며 웃었다. 다른 때는 병원에 갔다가 집이 있는 산언덕에 올라가면 지팡이 없이는 못 올라가고 했는데 어제는 지팡이 없이 언덕을 잘 올라갔다고 하며 오늘도 지팡이를 버리고 왔다고 하면서 좋아했다. 오늘 한번만 더 기도하면 군대에 입대할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사모하여 간절히 기도하였다.
전화가 왔다. 군대에 입대하였다고 청년 부모님이 전화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 영광 돌렸다.

송해면 말머리에 사는 할머니와 집사님들이 오셨다. 정월이었다. 떡국을 끓여 냈다. 돌아가면서 여기저기 아픈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할머니 기도 차례였다. 할머니는 일년에 두 번, 세 번씩 일어나는 가슴앓이 병이 29년 되었다는데, 그 병만 일어나면 어찌나 가슴 통증이 심한지 방바닥을 삥삥 돌면서 아픈데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 이튿날 또 오셨다. 할머니 이제 또 아프면 주님 살려주세요 하시고 천국 가도록 믿음 달라고 기도하세요, 했다. 2년이 지났다. 그 동네에서 사람들이 왔다. 그 할머니 돌아가셨냐고 물으니 아니오, 한다. 그 할머니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한번도 가슴앓이 병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원면에 사는 어느 며느리의 친정이 망월이다. 60대 권사님이 갑자기 코피가 걷잡을 수 없이 난다는 것이다. 그 집엘 갔다. 몸만 움직이면 코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데 병원에 가도 소용이 없단다. 온 가정이 둘러 앉아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일어나면 코피가 나니 반듯하게 드러누워 기도를 받았다. 그 권사님 머리 맡에 6살 먹었을 것 같은데 외손녀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둘러앉은 분들이 놀랬다. 예배를 간절히 드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주님 코피가 멈추게 해주세요. 이 어린 손녀 딸 얼마나 기특합니까, 합심해서 통성으로 기도하고 끝났다.
함께 기도한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권사님이 일어나신다고 하니 어머니 일어나지 마세요, 해도 일어나셨다. 모두들 놀랬다. 코피가 멈춘 것이다. 고개를 숙여도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도 코피가 안 나왔다. 모두들 할렐루야 하며 박수를 쳤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돌려드렸다. 주님 감사합니다.

여선교회 총회가 있었다. 회장과 임원을 선출하는데 회장으로 선택되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말주변도 없고, 무식하고, 성격도 내성적이고 회원을 통솔하는 능력도 없다. 주님께 기도 드렸다. 주님의 도구로 써주소서. 여선교회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주세요. 나의 부족을 주님께 아뢰면서 교회의 부흥을 위해 여선교회가 도움이 되는 기관이 되게 해달라고 얼마나 간절하게 눈물로 기도하였는지 모른다.
주님은 도와주셨다. 지혜도 주셨다. 집에서 주야로 일하면서 여선교회 회원들이 헌신하는 회원 되기를 기도 드렸다. 먼저 내가 본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 온 교인이 점심 식사 할 일이 생겨서 콩나물을 한 시루 길러 가져가면, 회원들이 어쩌면 이렇게 뿌리도 안 나고 잘 키웠다고 사모님이랑 말씀하셨다. 회원들이 잘 따라주었다.
기도 중에 찬양대 가운을 갈고 싶었다. 회원들과 의논하여 쌀을 걷어 많이 모였다. 회비와 함께 쌀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여 회원들과 함께 시장에 가서 필을 끊어다가 자주색 가운을 만들었다. 찬양대원들이 입고 찬양을 부를 때 너무나 기뻤다. 또 여름 가운이 필요하여 그때는 회비 자금으로 시장에 가서 여름 천을 끊어다가 여러 회원들의 의견을 들어 회원 중에 잘 하는 사람에게 맡기어 시원한 흰색 가운을 만들게 되었다. 찬양대가 입으니 천사들과 같았다. 나는 힘이 났다. 한 가지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주님이 도우심으로 얼마나 마음이 흐뭇하고 보람을 느꼈다.
겨울이 되었다. 겨울에는 농한기여서 한가하였다. 회원들과 의논하여 화문석 자리를 짜게 되었다. 서로 화문석 짜는 재료를 내놓게 되었다. 두 팀이 되어 조를 짜서 월요일, 화요일, 토요일까지 푸주(?)를 짰다. 두 개를 짜서 시장에 나가 팔으니 이십만 원이 넘었다. 80년대에 이십만 원은 큰 돈이었다. 회비를 보태어 회원들과 의논하여 제단에 빨간 카페트를 깔게 되었다. 너무나 기뻤다. 목사님, 장로님들 모두 기뻐하셨다. 화문석 짤 때에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간식과 떡국을 먹어가며 협력하여 일체가 되어 봉사하는 기쁨을 모두에게 주신 주님께 감사 드렸다.
회원들과 의논하여 환경보호 하는 비누를 만들게 되었다. 잿물을 사다가 비누를 만들어 회원들이 사서 쓰면 자금이 생기게 되었다. 가을이면 생강도 시장에서 떼어다가 김장철에 팔아 자금을 마련하였다. 여름이면 지금은 기계화가 되었지만 그때는 사람들이 서로 품앗이로 모를 내었다. 일손이 모자라는 집은 사람을 사서 모내기를 하였다. 일손 없는 집에 회원들이 가서 모를 내주면 그 집에서 품삯을 준다. 자금이 모아졌다. 옆마을 창후리까지 목사님, 사모님도 함께 가서 어려운 집에 봉사로 해주었다.
그런데 좋은 일엔 꼭 마귀가 틈탄다. 겨참(새참)을 주는데 빵을 받게 되었다. 권사님 부인이 빵을 먹고 체했다 한다. 불평하는 회원들도 있었다. 그런 일을 믿음으로 이기면 되는데 그런 말을 할 땐 힘이 빠졌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봉사하는 기쁨이 얼마나 값 있는지 모른다. 가난한 가정의 어린 학생에겐 장학금도 마련하여 작지만 여선교회가 도우면서 그 학생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서 기뻤다.
여름인 것 같다. 안권사님이 병이 나셨다. 음식을 잡수시면 설사로 다 나갔다. 약을 써도 안 났다.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일 주일이 넘도록 낫지 않았다. 음식을 잡수시면 토하기도 하여 못 드셨다. 나는 안권사님과 영적으로 통하는 데가 많았다. 목사님과 사모님, 회원들과 심방을 갔다.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어느 회원이 전화로 병원차를 부르길래 우리 기도해 보고 안 나으면 병원 가자고 하니 안권사님이 기도를 해달라고 하셨다.
안권사님 복부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토하는 것도 없어졌고, 설사를 하다가 나중에는 혈변이 나와서 병원에 가려고 했었는데 설사도 막혔지만 혈변도 멈추게 되어 깨끗이 나았다. 정말 주님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형제를 위하여 헌신하려고 할 때 도우시는 것을 체험하면서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마음을 쓸 때 주님은 그 마음을 보고 도우시는 것 같다.

찬송480장
1. 기도하는 이시간 주께 무릎 끓고 우리 구세주 앞에
다 나옵니다 믿음으로 나가면 주가 보살피사
2. 기도하는 이시간 주가 곁에 오사 인자하신 얼굴로
귀 기울이네 우리 자신 버리고 그 발아래 꿇면
3. 기도하는 이시간 주께 엎디어서 은밀하게 구할 때
곧 응답받네 잘못된 것 아뢰면 측은히 여기사
4. 기도하는 이시간 주를 의지하고 크신 은혜 구하면
꼭 받으리라 의지하는 마음에 근심 사라지리
(후렴)
크신 은사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 속에 기쁨 충만하네

11/06/2009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2

어머님의 글을 계속 옮겨보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 올린 글 가운데 앞부분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제가 보는 어머님의 신앙 열정은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돕는 일을 기쁘고 성실하게 감당하십니다.
다른 교우들보다 앞서지도 않으시고 그렇다고 뒤지지도 않습니다.
어머님은 하나님 은혜에 대한 사모하심이 큽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님을 알기 훨씬 전에 병 고치는 은사를 받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이 은사를 병이 낫길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 겸손하게 사용하십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곁에서 돕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아들이 있습니다.

어머님이 써주신 글의 내용을 맞춤법 몇 개만 손을 보고 나머지는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두번째)

4월(아마 1970 년대) 양**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시게 되었다. 그분은 다녀가신 목사님들 가운데 특별하게 느껴졌다. 목사님께서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영적인 말씀을 늘 선포하셨다. 성도들의 얼굴을 보시면 영적 병듦을 아시고, 병원에 가야 할 병과 기도로 해결해야 할 병을 분별하시고 기도로 성도들에게 체험과 영적 각성을 주셨다. 목사님은 신유(神癒) 은사를 받으신 분이셨다. 많은 성도들이 약을 팽개치고 기도를 받기 시작했다. 성도들은 많은 체험을 하고 믿음들이 뜨겁게 바뀌었다.
나에게도 체험을 주셨다. 어느 날 새벽에 교회에 가려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숨을 크게 쉬지도 못하고 숨이 막힐 것만 같아 그냥 자리에 누워 몸을 안정시켰다. 조금 숨을 크게 쉬면 가슴이 결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이 강화읍에 약을 지으러 갔다. 그런데 누가 밖에서 한속장 안에 있어, 하고 불렀다. 나는 말도 크게 할 수가 없었다. 여선교회 회장이 새벽기도에 안 나와서 찾아온 것이다.(송** 속장님)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찾아왔다고 하였다. 나는 손짓으로 내 가슴을 가리키면서 흉내 내었다. 나를 부축하여 일으키더니 목사님께 가서 기도 받자고 하며 나를 애기 데리고 가듯 천천히 발을 옮겨 디뎠다.
목사님께서 간절히 기도해주시면서 일어나라고 하셨다. 나는 놀랬다. 일어나는데 언제 그랬냐는듯이 멀쩡하였다. 숨도 크게 쉬어보고 몸도 이리저리 흔들어보기도 하고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해보았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신기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내 입에서는 찬송이 절로 나왔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하며 찬송하였다.
체험을 하니 목사님 설교하시는 말씀이 마음 밭에 아멘, 아멘이었다. 어느 날 설교 말씀에 여러분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아무리 부자로 잘 먹고 잘 입고 산다 해도 주님 모르면 헛사는 거다,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인생살이 길게 산다고 해야 70, 80 사는데 주님 모르면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가난해도 성경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는 천국간 것처럼 이 세상에 너무 집착하여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 말고 예수님의 인정받는 자 되어 천국 백성이 됩시다, 하시면 나는 아멘, 아멘 하며 마음이 불끈불끈 뜨거워지는 것을 체험했다. 목사님이 아픈 자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마다 우리들은 그 자리에 참여하여 사탄이가 쫓겨나갈 때 눈으로 보며 귀로 들었다. 아, 주님의 능력의 역사가 있는 것을 깨닫고 더욱 더 마음 속에 주님을 사모하며 사탄이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 받는 딸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자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굳게 다짐하면서 하나님 사랑받는 딸이 되리라, 새벽마다 간절한 기도로 주님께 호소했다.

남편은 권사로서 동네 이장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이 집에 찾아오셨다. 목사님이 대학원에 가시게 되면 새벽 설교도 남편에게 가끔씩 시키곤 하셨다. 목사님은 남편에게 앞으로 장로 후보로 선정할 것이니 못한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자 남편은 펄쩍 뛰면서 두 번 다시 그런 말씀 말라고 했는데, 타이르시면서 기도 중에 정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가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했다.
당회가 돌아와 남편이 장로로 선택되었다. 나는 가슴이 떨리고 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두렵고 부족하여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양무리의 본이 되는 장로님이 되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했지만 실수와 허물투성이인 것을 알면서도, 믿음으로 구원 받은 말씀을 생각하며 위로 받곤 했다.

찬송 376장
1. 내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2. 꿈같이 헛된 세상일 취할 것 무어냐
이수고 암만 하여도 헛된 것 뿐일세
3. 불 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4.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보배 되도다
이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5. 살같이 빠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몸과 맘을 바치고 힘써서 일하세

목사님은 한 달에 한 번씩 속별로 돌아가면서 대청소를 하게 하셨다. 가을이 되어 추수하느라 바빴다. 영적으로 잘 통하는 세 친구가 있었는데, 토요일 저녁에 셋이서 대청소 하기로 하고 저녁을 일찍 먹고 교회에 가서 걸상은 다 위로 올려놓고 물을 사택에서 길어다가 청소를 했다. 열심히 청소를 다하고나니 마을은 고요히 잠든 시간이었다. 우리 셋은 제단 앞에 앉아서 기도하고 가자고 하였다.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흐뭇한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성령이 임했다. 셋은 나중 먼저가 없이 똑 같은 시간에 똑 같은 방언이 터져 나왔다. 우리 셋은 너무나 기쁘고 좋았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일심동체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이 정말 감사했다. 우리는 자주 남모르게 봉사했다. 어떤 때는 교회 자부덩(방석)도 남이 알까봐 몰래 리어카로 실어다가 우리 안뜰에서, 국수를 삶아 먹으면서 빨래를 했다.
우리 교회는 부흥회를 일 년에 한 번씩 겨울 농한기에 열곤 했다. 강사님은 이**목사님이셨고 주제는 “주인에게 쓰이는 그릇이 되라” 였다. 낮에는 아가서를 강론하셨고, 새벽, 저녁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 속장으로 있을 땐데, 여러분은 겉장이 되지 말고 정말 속을 위한 일꾼이 되십시오, 속장은 그 속의 작은 목자입니다, 하셨다. 나는 눈물로 주님께 회개했다. 내 가정, 내 자녀만 위해서 기도한 것이 너무도 주님 앞에 부끄러웠다. 이제 속의 가정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은혜 받고 열심히 여선교회 일, 교회 일, 속장 일, 참 신나게 했다.
그런데 한 친구 남편이 장로님이셨는데 목회로 나가시게 되어, 여선교회 회장이 나에게 위임되었다. 친구 한 명이 없어져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르는데 또 한 친구가 인천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셋이 만나면 은혜 이야기를 밤이 새는 줄 모르고 하였는데, 주님 저는 앞으로 어떡해요, 다 보내면 어떡해요, 울며 기도하는데 주님이 마음에 위로를 주시며, 내가 있지 않냐, 하시며 마음에 평화를 주시고 담대함을 주셨다. 여선교회 일도 열심히 하느라고 했지만 주님은 연약함을, 부족함을 보시고 웃으셨겠지요.
부흥회 강사님이 주의 종을 잘 섬기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어느 시골 성도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할머니는 집에서 닭이 알을 낳으면 주일에 사택에 들어가시어, 목사님 설교하러 나가실 때 가슴에서 계란 한 개를 꺼내어 따뜻한 알을 드리면, 목사님이 드시고 제단에서 힘내어 설교하시는 것을 보면서 흐뭇하고 기쁘고 은혜 받게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맞어, 나도 할 수 있어, 조그만 일부터 시작하는 거야, 결심했다.

찬송278장
1.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주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2.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온갖 충성 다 바쳐서
외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네
우리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3.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피 받아 한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닭이 5 마리가 있었다. 정성껏 알을 모아 한 줄을 주일 사택에 몰래 들어가서 놓고 남의 눈을 피하여 나오곤 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남편도 애들도 계란에 대해선 신경도 안 쓰는 거예요. 30 년 전에는 계란이 귀한 때였다.

나는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마다 말씀을 딴데로 빼앗길까봐 열심히 청종하여 들으니, 그 말씀이 다 나의 말씀이 되어 마음에 심겨졌다. 아멘, 아멘 하였다. 목사님은 영력이 있어야 사탄을 이길 수 있고 물리칠 수 있다는 말씀과 기도 외에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간절한 기도와 부르짖음이 있었다.
어느 날 친구와 둘이서 제단 앞에서 철야기도를 하였다. 교회 안은 캄캄했다. 그런데 마음에 무서움과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집안 큰 조카가 연세대 4학년 때 암에 걸렸는데 저녁 기도 나와서 기도하다가 운명했는데, 그 조카 생각이 나서 머리가 쭈뼛쭈뼛 하면서 무서움이 왔다. 주님 믿습니다, 입으로는 주님 믿습니다, 하면서 한쪽 마음에는 내 옆에는 친구가 있지, 하며 마음을 달랬다. 또 무서움이 오면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데 갑자기 내 뒤통수를 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이 바보야 너는 입으로는 믿습니다. 하면서 마음은 친구를 의지하는구나, 바보, 바보, 하면서 성령님이 나를 회개시키셨다. 만국을 통치하시는 아버지를 믿어라, 말씀과 함께 강한 능력이 나를 진동시키면서 입이 무거움과 동시에 믿습니다, 하니 성령의 불이 온 몸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무릎을 꿇었는데 온 몸이 떴다 내렸다 절제하기가 힘들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촛불을 켜서 한속장 왜 그래, 응, 왜 그래, 하며 나를 쳐다보자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주님의 강한 능력을 체험하면서부터 무서움이 사라지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했다. 교회에서 혼자 기도해도 무서움은 없고 주님이 나를 안으시는 느낌, 편안하고 주님이, 왔니, 하고 격려하시는 것 같아 기뻤다.
성령 체험을 하니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할 때마다 확신과 믿음이 강해지게 되며, 이제는 나를 위한 삶보다 내 생명을 주신 주님께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생각하게 되었다. 가롯 유다처럼 너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했다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있으나 마나 한 생명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되는 고귀한 생명이 되기를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니와 여자 집사님과 나는 철야기도를 하게 되었다. 제단 밑에서 어머니는 가운데 계시고 집사님과 나는 어머니 양 옆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어머님이 눈물 섞인 간절한 목소리로 아버지, 아버지, 하시는데 옆에 있는 집사님이 어머니 흉내를 내면서 마귀 짓을 했다. 어머니는 기도하시다가 그 집사님을 붙들고,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니, 일어나 서로 씨름을 하는 것이었다. 얼른 촛불을 켜고 보니 서로 엎치락뒤치락 한판 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그 집사님을 붙들고 찬송을 강하게 부르고 기도하면서 싸움을 하는데 갑자기 집사님의 몸에서 힘이 쭉 빠지더니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승리의 기쁨을 체험했다.
어머니는 일찍 신유 은사를 받아 성도들이 아프면 어머니를 부르시어 밤중에라도 달려가 기도로 도와주시곤 하셨다. 양목사님은 환자가 있으면 꼭 어머니를 부르시어 함께 기도하셨다. 큰 동서 동생 청년이 마귀가 들리어 어머니가 사돈네 가서 며칠 동안 기도하셨는데, 그 집에서 몇 분이 모여 예배가 시작되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송해교회 창설자는 어머니 유** 권사님이라는 것을 송해교회가 증명할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무슨 문제가 있으면 교회 가서 엎디어 철야기도하곤 했다.(망월교회 100년사 책을 보면 성령 운동을 한 분으로, 송해교회를 시작한 분으로 유** 권사님을 소개하고 있다.)

10/30/2009

어머님의 글을 조금 옮겨 적다

며느리가 가끔 생활이야기를 써서 교회 홈페이지(한국)에 올린 것을 보시더니 언젠가부터 어머님의 이야기도 써보시겠다고 하셨더랬습니다. 그러시더니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올 때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주시면서 네가 잘 정리해 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 죄송해요. 미국 온 지 2년이 가까워오는 오늘에서야 어머님이 쓰신 글을 꺼내 보았어요. 제가 이래요. 그래도 오늘이라도 열어보았으니 괜찮죠? 히히히. 늘 마음에 담고 있었어요.”

여선교회 공문으로 받은 A4 크기의 종이와 그 크기와 똑같게 자른 교회 달력 뒷면에 가지런히 적어놓으신 글이 세어보니 28장이나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아끼고 절약하는 어머님이시기에 이런 종이를 사용하신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강화 망월에서 60 여년을 사시면서 100년도 넘은 교회를 한결같이 섬기신 어머님에게 28장은 너무 적은 분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머님 글을 제 블로그에 사용할 목적(^^)으로 타이핑을 시작했습니다.
*********

<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2008년 2월에 씀)

나는 지금 66세에 들어섰다. 요즘 자꾸만 마음 속에 지나온 일들이 새록새록 머리에 떠올라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이 못난 딸을 주님께서 부르시어 주님의 깊으신 사랑을 깨닫게 하셨고 그 많은 생명들 중에 나를 구속하여 생명의 길을 찾게 하셨기에, 살아온 발자국마다, 임마누엘 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여 그 누구에게라도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소심하고 담대하지 못하여 늘 자신 없고 교회 공동생활 하는데도 앞장서기 보다는 뒤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늘 부족한 사람이다.
우리 교회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주님을 만나보셨습니까? 성령을 체험했습니까?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질문하실 때마다, 재작년 성경을 읽다가 큰 감동을 받은 신명기 33장 29절 말씀을 마음 속으로 대답하곤 했지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전에도 읽었던 말씀이건만 그날따라 신명기 말씀이 나를 향한 말씀임을 알았지요. 주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부족한 죄인을 돌보시고 늘 어려움에 닥칠 때마다 주님 앞에 무릎 끓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 늘 도우시고, 위로해 주시고, 말씀으로, 기도로, 찬송으로, 이 못난 자를 이끌어주심을 감사하며 필(筆)을 들게 됨을 감사 드립니다.

나는 고향이 바다 건너 이북에 있는 황해도 연안 칠리라는 동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업을 하셨고 어머니, 언니, 동생들과 나, 이렇게 여섯 식구였다. 4 형제 가운데 둘째였다.
그 당시 홍역이라는 무서운 병이 동네에 들어와 많은 어린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아갔다. 우리 가정 역시 나와 두 동생이 홍역에 걸렸다. 나와 여동생은 거의 죽어가 부모님이 포기했었고 내 밑에 남동생 봉수는 아들이 죽을까봐 아버지와 어머니는 안절부절 살리려고 병원에 다녔지만 결국 아들은 죽고 죽어가던 딸 둘은 살아났다. 부모님은 너무나 큰 슬픔에 신음하던 끝에 살던 곳을 떠나기로 결심하시고 12월에 강화로 이사를 하였다.
그 때 나는 7세였다. 이북 연안은 수리조합이 있어서 농사 짓는 것이 잘 되었지만 강화에 이사오니 물이 없고 흉년이 들어 동네 사람들은 굶기가 일쑤였고 배고픈 시기였다. 그리고 그 해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북에 사시던 이웃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피난 오시어 사랑방에는 피난민들로 가득했고 부모님은 그분들을 맞아들여 재워주시고, 큰 가마니 솥으로 밥을 한 솥씩 해서 대접했다. 그러는 사이 된장 단지, 고추장 단지도 다 거덜났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 집은 이사올 때 쌀을 많이 싣고 왔기 때문에 보리 방아 쪄서 양식을 삼아 지내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간 분도 많았다.

강화 망월에 이사오니 돌로 지은 조그마한 예배당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예수 믿는 집이 많지 않았다. 언니는 이웃 동무들을 따라 교회에 다녔고 나 또한 언니를 좇아 교회에 나갔다. 아버지는 언니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무척 반대하시면서, 성경책도 아궁이에 태우시고 언니의 뺨도 때리셨다. 하지만 언니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주일학교 교사 하다가 이웃 동네에 있는 오상교회 장로님댁 며느리로 시집갔다. 언니가 믿음의 길을 닦아 놓고 시집을 갔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 핍박 없이 교회에 잘 다니게 되었다. 망월로 이사 와서 태어난 여동생이 하나 더 있어서 4 자매가 되었는데, 남은 두 동생과 함께 언니처럼 교회학교 교사도 하면서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딴 집들은 온 가정이 교회에 나가는데 우리 가정은 그렇지 않아 그것이 늘 기도제목이었다. 아버지는 일 잘 하시고 농사도 잘 지으시고 양심적으로 사시는 것 같은데 하나님을 모르시는 것이 우리 자매들 마음에는 늘 안타까웠다. 가을이 되어 추수감사절이 돌아오면 하나님이 햇빛 주시고, 바람 주시고, 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아버지가 모르시는 것 같아 아버지께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말씀 드리면 쓸데 없는 소리 한다고 하셨다. 새벽마다 기도를 간절히 했다. 우리 가정도 하나님 믿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렸다. 아버지를 설득하던 중 오히려 어머니께서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부끄럽다고 하셨지만 우리 자매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성경 말씀을 들려 드리며 “어머니는 이제부터 천국에 갈 수 있잖아요. 감사하세요” 했다. 그래도 온 가정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제일 부러웠다.

나는 몸이 약했지만 열심히 일하고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 정말 기뻤다. 마음 속 깊이 원하는 소원이 생겼는데, 이 세상에서 예수 잘 믿는 청년을 인생의 동반자로 만나는 것이었다. 그 때는 왜 그렇게도 연애편지가 마음을 꼬여보려고 여기 저기서 날아들었는지…. 나에겐 시험인 것 같았다. 학교 선생으로부터, 부잣집 아들, 동창들, 여기저기서 나를 꼬였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못났어도 주님 섬기는 청년만을 선택하리라 기도하며 마음 먹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가장 친한 친구가 권사님네 아들을 소개해주어 비밀로 하고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이 비밀 만남을 아시고 반대하셨다. 반대하는 결혼은 자신 없다 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 만남이 인연이었던지 3년 후 어느 장로님 부인이 우리 아버지에게 사람을 한 명 소개했는데 전에 만났던 그 청년이었고 장로님 부인은 아버지 마음을 바꾸어 놓으셨다. 6월26일 약혼을 하고 10월18일에 결혼하였다. 시집살이 3년 하고 큰 아들 첫 돌날 이웃에 조그맣게 집을 지어 세간을 났다.
시어머니 권사님이 믿음이 좋으셨다. 큰 아들 가졌을 때 어머니께서 기도하시던 중에 자부가 임신한 지 일곱 달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 종으로 첫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다고 하시기에 마음 속으로 아멘 하였다. 열심히 신앙 생활하면서 두 아들 주심에 감사하며, 두 아들을 저에게 맡기신 주님, 이 땅에서 꼭 필요한 생명들이 되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왜 그렇게 간절하게 눈물로 호소하게 되는지요…. 주님께서 복 주시어 온 가정이 건강하고 살림도 남부럽지 않게 늘어나갔다.

**어머님 글에 <찬송 305장 쓰세요> 라고 되어 있네요. ^^

1.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지 즐거운 동산이라
2.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도 함께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여기까지 옮겨 적고는 그 다음 내용은 읽어보고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머님이 정하신 제목처럼 성령 체험을 통해 신유의 은사를 받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한 이야기들과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동안 어머님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러다 끝에 몇 장 남겨두고는 쪽수가 다시 (1)로 시작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뒷부분 4장은 저희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특히 남편과 강산이에 대한 어머님의 마음들이 담겨 있기에 일부분을 다시 옮겨 적어봅니다.
********

첫째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서울에서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 사는 언니네로 보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형부가 세광교회 장로님이셨고 언니는 권사였고 사촌 형들이 둘이 있었다. 5학년인 둘째 아들도 함께 보냈다. 아들들이 집을 떠났어도 믿음의 가정으로 갔으니 마음이 놓였고 남편과 나는 열심히 농사지어 자녀들 교육비 대는 것에 전념하였다.
큰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감신대를 가기 위해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 때는 막내 동생네로 애들을 옮겼고 친정 어머니가 외손주들을 돌보고 계셨다. 첫 새벽에 시험장에 아들과 함께 갔다가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동생네 골방에서 하루 종일 음식을 전폐하고 기도 드렸다. 주님, 도와 주세요. 주님께 맡깁니다. 그 이튿날 집에 돌아왔다. 시험 발표날이 다가와 소식만 기다리게 되었다. 가슴이 졸여왔다. 저녁 때 전화가 왔다. 합격하였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주님께 감사 드렸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났다. 아들이 신학 3학년 때 데모하는데 휩쓸리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에 정보부에서 왔다고 남자 두 사람이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누구세요, 물으니 아들 김성은 집이냐고 부모님들이냐고 한다. 우리 부부는 누구시냐고 또 물었으나 다짜고짜 방으로 들어가더니 책꽂이를 살피더니 조사를 하면서 교회 나가시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다. 그 남자들은 아들이 데모하다가 붙잡혀서 남부경찰서에 들어갔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우리 아들은 그런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공부만 열심히 하고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그럴 리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도 않고 그런 줄 알라고 하면서 건국대학교에서 데모하다가 2 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감되었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면서 여보, 이런 일이 왜 일어났어요. 서울 동생네랑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사실이었다. 남편과 나는 동생들과 만나 서울시남부경찰서에서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유리 안으로 얼굴을 보며 건강하냐고 물으니 걱정 말라고 하며 안심시켰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이 무거웠다. 잠도 안 오고, 갑자기 입술이 부르트고, 속이 타니 변비도 생기어 화장실에 가면 대변이 막히어 꼬챙이로 파내어 피가 나기도 하였고, 마음이 편치 않으니 음식도 다 맛이 없었다. (이 일 때문인지 어머님은 2000년도에 대장암 수술을 받기도 하셨어요) 첫째 부끄러움은 동네 사람들에게 였고, 소문이 귀에 들려오기는 성은이가 데모하다가 들어갔대 하며 교회에서도 수군대는 눈치였다. 저녁이면 잠이 안 와서 교회에 나가 울며 불며 하나님, 막아주시지 왜요, 기도하다 새벽기도 마치면 돌아오곤 하였다. 담요를 싸가지고 오산리 기도원으로 갔다. 첫 시간에 응답을 주셨다. 예레미야 33장3절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뜰에 갇혔을 때에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는 말씀이었다.
금식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면회를 갔다. 아들이 나왔다.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걱정 말라고 잘 있으니까, 하는 말 뿐이다. 나는 예레미야 33장3절 말씀을 보고 그 속에서 기도하며 부르짖으라고 하니 알았다고 한다. 면회 시간이 다 되어 금방 들어가는 것을 보니 너무나 허무했다. 아들 말로는 독재 정치가 물러가고 민주주의 정치를 위한 호소였다. 속히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반성문을 쓰는 사람은 나오는데 반성문을 쓰라고 하니 무얼 잘못했냐며 쓰지 않아서 재판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다.

재판 전날 꿈을 꾸니 아들이 대여섯 살쯤 되었는데 큰 웅덩이에 빠졌는데 물은 없었다. 남편을 찾아 다니며 저기 아들이 떨어졌다고 하다가 꿈이 깼다.
남편과 나는 재판 받는 아들을 보려고 갔다. 복도에서 두 사람이 가운데 있는 죄수를 싸고 들어간다. 조금 있으니 아들이 동아줄로 손을 꽉 묶인 채로 들어오는 것을 보니 기가 막혔다. 나는 가슴이 떨렸다. 재판이 끝나 아들과 고개만 끄떡 하고 헤어져 죄수들 차에 실려 교도소로 간다. 나는 갑자기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가 생각났다. 마리아는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며 아팠을까. 그 때처럼 마리아를 존귀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리아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마리아를 생각하며 위로 받았다. 며칠 후에 아들이 쓴 편지를 받았는데 재판 받고 나올 줄 알았는데 마음이 괴로운 편지였다.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 편지였다. 나중에 6 개월 만에 나왔다.
그 이듬해 학교에서 행사를 하다가 그 때도 또 감옥에 갔다가 3개월 만에 나왔다. 9개월을 옥살이 했다. 노태우 대통령 때 6.29가 선포되고 민주화 항쟁들이 유리하게 뉴스가 흘러나왔다. 학교에서 그런 학생들에게 나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민주화보상법이 통과되어 장학금(보상금)도 탔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아들에게 당부 또 당부했다.

대학 졸업을 하고 종교교회 교육전도사로 있었다. 대학원 1년 된 해 가을에 결혼하여 첫 목회지인 강화 성은교회로 오게 되었다. 시골에 작은 교회. 성도는 약 70명, 장로님 두 분이 계신 곳이다. 우리 부부는 어린 종이 목회를 잘 감당하여 양들을 잘 보살피는 목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성은교회 성도님들은 어린 종을 사랑으로 격려해주며 사랑으로 감싸주셨다.

1993년 1월에 첫 손주를 맞게 되었다. 아들이었다. 모두들 기뻐했다. 자연분만으로 병원에서 낳고 우리 집에 와서 일주일 있다가 친정 인천으로 가서 친정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건강하여 우리 집에 다시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였다. 한 달이 지나면 애기가 얼굴도 몸도 목욕시키기가 편안한데 그것이 아니었다. 목사와 사모는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아기를 보고 의아해하니 목사가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름은 김강산이라고 지었는데 강산이가 몸이 약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큰 병원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떨렸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목사와 사모에게 기도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일이니 기도하자 하고 돌려보냈다. 우리는 가끔 손주를 보러 갔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만 기다리는데 사모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 강산이가 안 좋대요, 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못한다. 가슴이 덜컹 주저 앉은 기분이었다. 주님 저희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이 있습니까. 목회자의 아들이 이게 말이 됩니까. 성도들에게 본이 됩니까. 항의 기도인지 원망 기도인지 나도 모르게 울며 부르짖어 기도하였지만 마음이 답답했다.(병 이름은 다운증후군) 새벽녘에 찬송으로 응답을 주셨다.

찬송 462장
1.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이 이배의 사공이라
2.큰 풍랑이 이배를 위협하면 저 깊은 물 입벌려 달려드나
이 바다에 노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이 이배의 사공이라
3.큰 소리로 물결을 명하시면 이 바다는 고요히 잠자리라
저 동녘이 환하게 밝아올 때 나 주함께 이바다 건너가리
(후렴)
나 두렴없네 두렴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목사와 사모는 금식 기도에 들어갔다. 기도가 끝난 후 집에 왔다. 종교교회에서 사역하던 시절 함께 계시던 부목사님이 읽어보라고 주신 책을 가지고 왔다. 목사와 사모는 금식하면서 응답 받고 힘을 얻은 것 같았다. 책 제목은 “작은 햇살”. 영국의 어느 천주교 신도가 아주 흉악한 기형아를 낳은 것이다. 둘째 아기를 낳았는데 둘째도 그렇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기를 사랑하며 온 가정이 사랑의 가족이 된 것을 쓴 체험적 수기였다. 그 아기 부모는 책을 쓰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는 하늘이 내린 천사로 생각되었다. 책을 읽고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 인간들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저울질 하고 판단하고 저주하고 죄값으로 태어났다고 결론 짓는다. 그 책을 읽고 인간이 갖추어야 할 참사랑을 깨닫게 해주었다.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아기를 통해서 참사랑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것을 깨달았다.

강산이를 보면서 하나님 뜻이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산이를 보며 미운 맘이 생기면 죄 받을 것 같고 동생 강윤이는 얼마나 똑똑하게 태어났는데도 강산이가 더 사랑스럽고 사랑을 깨우쳐주는 인간 천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도가 바뀌었다. 강산이가 자라면서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강산이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감사를 드린다. 작은 목장 안에 힘 없는 어린 양을 보면서 위로하고 싸매주고 도와주면서 성도들에게 사랑의 마음이 싹트어 자랄 때 사랑의 성도, 천국 백성이 된다면 강산이에게 도리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략)
아들 목사가 여기서 공부하는 것이 있는데 미국에 갈 일이 생겼단다. 사모와 함께 15일 동안 다녀온다 하였다. 미국에 다녀온 후 문제가 생겼다. 미국에 있는 큰 교회에서 목사 한 분을 초빙하는데 어느 목사님이 소개하였고 부모님 의사는 어떠냐고 물었다. 남편 장로와 나는 반대했다. 고생하러 가느냐고. 그전에는 미국에 관심도 전혀 없던 아들 목사가 외국으로 나간다는 말을 들으니 당황했다. 아들 목사는 주님 뜻에 맡기고 가게 되도 안 가게 되도 하나님 뜻에 맡기고 기도한다고 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니 하나님 뜻인듯 하여 비자 내고 바쁘게 일이 추진되었다. 2월20일이면 고국을 떠나 목양지가 바뀌게 되니 앞으로의 일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할 뿐이다.

1월28일 우리 교회 부흥회가 있었다. 감사헌금을 간절하게 드리고 싶었다. 지방여선교회 연합회장직이 끝나면 기념으로 금반지 3돈을 해주는 전례가 있다. 옛날 결혼 때 남편으로부터 금반지 3돈 받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팔아서 쓰게 되어 없었다. 지방여선교회로부터 금반지 3돈을 받아 손에 끼어 보았다. 주님이 주신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옛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나도 이 반지를 자녀를 위해 바치리라 기도 중에 결정했다. 낮 예배 때 바쳤다. 마음이 기뻤다.

찬송 353장
1.내 주예수 주신은혜 한없건만 내 주앞에 이적은 것
다 드리니 주예수여 내 정성을 받으소서
2.주 날위해 보배로운 피흘리사 그 귀하신 생명까지
다 주시니 내천한몸 이 생명을 왜 아끼랴
3.주 예수께 빚진 것이 한없건만 나 주위해 갚은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
4.날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리사 주 예수의 은혜로써
인치시고 내 모든 것 주의 소유 삼으소서
5.주 날위해 그 귀하신 몸버리사 이 내몸을 피값으로
사셨으니 내 생명도 주 예수께 바칩니다(끝)

10/23/2009

그 녀석들을 바라보다가


주말(週末)은 언제부터 시작이지?
금요일 저녁 아니면 토요일….
주말이라고 해서 뭐 특별할 것은 별로 없고 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이지만 주말이 주는 여유로움을 그래도 조금 더 길게 가지려면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그 동안 정리가 필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를 마무리 했습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 좋은 책을 선정하여 음성 녹음한 CD를 언제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목록을 작성하고, CD를 여러 개 복사해서, 레이블을 만들어 붙이고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해 놓는 것입니다.
몇 시간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것이라 그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조금씩 하다 보면 급하지 않고 덩치가 큰 일은 뒤로 미루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시간이 허락되어 도서 녹음 CD(밀알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와 관련된 일들을 집중해서 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음 먹은 일이 거의 마무리되고 보니 홀가분합니다.
혼자 뿐인 사무실에서 맘껏 기지개를 켜며 “아~” 소리를 내어봅니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이고 날씨는 곧 비가 올 것처럼 흐리고 나무는 알록달록 물들어가니 차 한잔 마시면 딱 어울릴 분위기입니다.
주방에 가서 둥글레차 한 잔을 타가지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게 되었습니다.

어라, 저 녀석 왜 저기 있는 거지?
으잉? 목에 줄도 안 묶여 있네.
어쩌자고….
일터 앞쪽에 있는 중고센터(재활용센터?) 사장님네 개 같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차에서 내릴 때면 그 녀석이 빤히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 녀석에게 눈길은 주지도 않고 묶여 있는지 확인한 다음,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져 사무실로 내려옵니다.
조그만 강아지도 아니고 누런 빛을 가진 개인데 앉아 있다가 제가 지나갈 때 벌떡 일어서면 살짝 움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거추장스러운 목줄에 묶여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라도 할 모양으로 사무실로 내려오는 길에 철버덕 누워 자고 있는 것입니다.

이따가 어떻게 차 있는 데로 가지?
걱정이 아주 잠깐 되다가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그 녀석은 사무실에서 4, 5 미터 떨어진 곳에 있고 사무실 철문은 닫혀 있는데 내가 소리를 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 왕” 하고 큰 개인 것처럼(???) 소리를 내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녀석이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아직까지 본 적 없는 똘망 똘망한 얼굴로 두리번거립니다.
재미있다 싶어 발도 굴러보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내어보니 녀석은 귀를 쫑긋 세우고 더욱 고개를 이리저리 돌립니다.

그러는 중에 중고센터 사장님 부인(그냥 또 다른 사장님이라고 할까 봐요)이 창고에 무엇을 넣어두려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앗, 사장님 옆에 언제나 봐왔던 개가 묶인 채로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가 한 마리가 아니었나 봅니다.
사장님이 물건을 넣고 가게 쪽으로 가시니 아주 길게 길게 묶여 있는 개가 따라가고 풀려 있던 녀석도 촐싹대며 따라갑니다.
흉내낼 수 있는 개 소리가 좀더 많았더라면 더 장난칠 수 있었는데….
개들은 사라지고 부디 가서 이쪽으로 오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또 궁금해졌습니다.
그 녀석이 다시 와서 누워 있으려나?
그렇다면 사진으로 찍어 증거를 남겨두리라.
사진기를 들고 창문 곁으로 가보니 두 녀석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기다려보았는데 잘 보이던 묶인 녀석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장님이 이쪽을 힐끔 보고 가셨는데 혹시 사람 있는 줄 아시고 녀석들 단속하시나 싶게 집에 올 때까지 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제 보았다고 아는 척 꼬리치며 달려드는 개나 모르는 사이라고 짖어대는 개나 반갑지도 않고 무섭기도 합니다.
온갖 호강 속에 사는 애완견도 예쁘지 않습니다.
아마 애완견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이들은 저 같은 사람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함이 지금의 제겐 어떤 의미인지, 그 의미 있는 사랑을 어떻게 살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주말 저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몇 번의 주말 저녁을 보내고 있기도 하구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8:37-39)
<윗 글을 쓰고 며칠 뒤에 찰칵!!!>

10/16/2009

나누고 싶은 햇빛과 바람


동생에게

동생 편지를 받고 곧 답장을 했지만 동생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어줍잖은 내 생각이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어.

여기는 여름 끝자락에 비가 엄청 많이 오더니 흐린 날도 많고 비도 자주 오고 있어.
그러는 사이에 철이 바뀌었고 아침, 저녁 기온도 뚝뚝 떨어지고 말이야.
오늘은 바람도 꽤 불더라구.

바람도 불고 동생 생각도 떠나지 않아서 그랬나?
이솝 우화 가운데 “해와 바람”이라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어.
이야기가 섬세하게 생각이 나질 않네. --;
해와 바람이 누가 힘이 더 센가 내기를 했나?
그래서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누가 벗기는가로 힘 센 것을 가늠하기로 했지.
바람은 있는 힘껏 바람을 불었는데 나그네는 옷이 벗겨질까봐 옷을 더 꽉 끌어 안았고.
해는 따뜻하게 그 빛을 비춰주자 나그네가 옷을 벗어 해가 이겼다는 이야기.
이거 맞나?

이 이야기를 두고 <패러독스 이솝 우화> 책에서는, 그 다음에는 나그네의 옷을 누가 다시 입히는가 내기를 했는데 물론, 바람이 이겼다는 거야.
이야기가 이렇게 풀리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괜한 힘 겨루기는 쓸모 없다, 뭐 이런 교훈을 주고 싶은 것이리라 여겨져.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싶어.
나그네의 옷을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보면, 관계를 맺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따뜻한 햇빛이지 몰아치는 바람이 아니라고 말이야.
살다가 관계의 어려움과 마주치면 난 이 얘기가 떠오르곤 하더라.
내 수준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할만한 그릇이 안 되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따뜻한 친절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거지.
--;

동생의 성품을 볼 때 이런 수준은 이미 뛰어넘은 것 같아.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아파하고 있으니 말이야.
참 착하다, 동생!

얘기하다 보니 동생한테 주고 온 그림책들 생각난다.
그림책 모으는 즐거움이 꽤 컸는데.
아이들도 읽고 나도 읽고.
그림책은 짧은 글 속에 온갖 감정이 실려 있으면서 유익한 교훈들도 들어 있고, 그런 내용이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참 좋았는데…
동생한테 그 그림책이 짐이나 안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크리스찬의 스트레스 해결”(???) 이런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
그 시간에 자기 취미를 얘기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림책 읽는 것이라고 했어.
그랬더니 그 교수님은 아무 대꾸도 해 주지 않는 거야.
아마 어른이 그림책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낌이 다가오지 않으셨나봐. ^^

같은 햇빛과 바람이라도 한국에서 느끼는 것 하고 아틀란타에서 느끼는 것 하고 조금 다른 것 같아.
사진에 담아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 손끝에서는 멋진 사진이 찍히지 않더라구.
기술 부족!!!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라도 찍어볼까 했는데 스틸 사진에 바람이 머무르질 않네.
강산이 머리카락이라도 바람에 날리면 어떨까 해서 데리고 나갔는데 모자를 안 벗겠다는 거야.
겨우 달래서 모자를 벗었는데 머리카락이 모자에 눌려 있었던지라 그것도 잘 안 되고.

맘 아프면 몸도 아프게 돼.
아프지 말고 늘 건강하길 바래.

강산이와 내가 찍은 사진 보며 잠깐이라도 웃어봐.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 / 그 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 /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개역개정, 욥기 28:23-28)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22)

10/09/2009

기꺼이 하는 약속


지난 5월 우리교회 한국학교 종업식을 하고 교사와 보조 교사들이 공원에 모여 점심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거기에 교사의 자녀들이 같이 있기도 했는데 제 둘째 아들 강윤이도 끼어 있었습니다.
얼추 그 식사 자리가 정리되고 교회 Youth 오케스트라 모임 시간이 다 되어 중고등부 아이들 대여섯 명을 태우고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로 오는 동안, 그 가운데 한 아이가 셀폰을 잃어버렸는데 집에 있는 세계위인전 60권을 다 읽는 동안 셀폰을 찾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이 다시 셀폰을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웃으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위인전이라는 말에 살짝 끼어들어 “그 책 우리 강윤이도 빌려주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책은 글씨도 크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강윤이한테는 너무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강윤이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것을 마음에 두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어, 그래도 괜찮아. 강윤이도 위인전은 많이 읽지 않아서.”
“야, 너 그러면 히틀러 알아?”
“응~~~”
“몰라?”
“그러면 장영실은 알아?”
“뭐 만든 사람.”
“야, 너~”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서로 대가며 아는 둥 모르는 둥 할 때마다 “oh, my goodness!” 를 외쳐대며 낄낄 깔깔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아이들이 물어볼 때마다 강윤이가 너무 대답을 못해서 ‘이거 괜히 책 빌려 달라고 해서 애 기죽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아이들은 “그럼 세종대왕은 알아? 이순신은 알아?” 하며 거의 놀리는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운전을 하며 뒤에서 들려 오는 강윤이의 목소리만으로 가만히 가늠해보니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계속 대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먼저 알고 나중 아는 것일 뿐, 모르는 것은 필요하면 배우고 익혀서 알면 되는 것이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라면 일찍부터 알고 깨닫는 것이 좋겠지만요.^^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강윤이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그 친구가 위인전을 빌려준다고 하면 한번 읽어 볼래? 그거 다 읽고 한국에서 가져온 역사책 5권까지 다 읽으면 너도 셀폰 사 줄게.”
“정말?”
언제 얻게 될 지 모르는 셀폰을 사 준다고 하니 해볼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강윤이 친구는 선뜻 위인전을 빌려주었고 5월말부터 책이 두 집을 오고 갔습니다.
방학 중이라 조금 느슨하게 책을 읽는다 싶었는데 그 친구가 8월에 다른 주(州)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갔다가 들어오는 강윤이 손을 보니 큰 가방에 위인전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친구에게, 조금 있으면 이사 가니 나머지 책들을 다 달라고 했답니다.
그러더니 책장에 꽂힌 역사책 4권도 뚝딱 읽어버렸습니다.
나머지 한 권도 마저 읽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분명히 4권이라고 들었다며 더는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저도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아 2 주 전에 셀폰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셀폰을 얻을 수 있는 힌트도 주고, 책도 빌려준 친구에게는 더 없이 고마울 뿐 아니라 자동차 안에서 책을 읽도록 자극을 준 교회 형들을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강윤이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강윤이가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 가운데 하나인 성경 말씀 66권을 컴퓨터로 모두 타이핑 하면 노트북을 사 주기로요.
장(章)과 절(節)을 표시하면서 한글로 타이핑 하기로 했습니다.
타이핑 하다가 모르는 내용이 있거나 타이핑을 더 빨리 하기 위하여 미리 한 권 한 권의 내용을 알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해 두었습니다.
강윤이 생활 속에서 성경을 보다 가까이 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과제를 포기하지 않고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도로 도우려고 합니다.


강산이 선생님으로부터 Home Checklist를 받았습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연습하는데,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훈련이 이어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침대 정리를 하고, 자기 물건들을 사용한 다음에는 제자리에 갖다 두고, 이 닦고 샤워한 후에 뒤처리와 빨래감을 세탁실에 가져다 두고, 식사 후에 식탁 정리, 숙제나 선생님과 학부모의 편지를 잘 처리하고 전달하는지…. 날마다 체크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용을 더 보태거나 빼도 좋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대로 좋다고 하여 9월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통계를 내서 잘 했으면 주말에는 한 시간 늦게 자도록 허락한다든지, 비디오 게임 하는 시간을 조금 더 준다든지, 주말 아침을 맥도날드에서 먹는다든지 하는 상(reward)을 고려해보는 것도 제안해 주셨습니다.

체크 리스트 가운데는 이미 강산이가 잘 하고 있는 것도 있었고, 침대 정리나 세탁실을 이용하는 것은 거의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새벽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시간 안에 침대 이불을 깔끔하게 펴놓고 벗은 옷은 세탁 바구니에 갔다 놓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아마 학교에서 배운 모양입니다.
Thank you, our Lord!

강산이에게는 어떤 상을 주면 좋을까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강산이가 고장난 아이팟(i-pod)을 찾아와 “이거 사 줘” 합니다.
강윤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학교에서 타 온 조그만(1GB) 아이팟인데, 주머니 속에 든 것을 모르고 빨래를 해서 고장난 것을 어디선가 찾은 것 같습니다.
날마다 두어 시간씩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듣는 강산이는 CD나 CD 플레이어, 그리고 강윤이의 아이팟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강윤이의 새로운 셀폰 때문에 왁자지껄 했던 터라 강산이도 뭔가 새로운 것을 갔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잠깐 생각한 다음 강산이에게도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체크 리스트에서 하라는 대로 잘 해서 체크를 받은 숫자가 모두 합하여 300개가 되면 아이팟을 사주겠다고 몇 번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도 강산이와 약속한 내용을 적어 보내면서 강산이를 격려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강산이가 이 약속을 잘 이해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체크를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강산, 체크!” 하고 말하면 행동을 수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낸 그 날 저녁에는 체크 리스트 한 장 곳곳에 자기가 체크를 미리 다 해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깔깔깔.
강산이가 분명히 알고 있던 것입니다.

요즘은 “강산아, 300개야, 300개!” 하고 있습니다.
한 주에 45~50개쯤 체크가 되니까 300개가 되려면 6~7주 정도가 걸릴 것이고, 이번 주까지 모두 보태면 250개가 조금 넘게 되니까 다음 주말에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도 잘 알 수 없는(--!), 강산이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 동안 바뀐 강산이 생활 태도가 쭉 이어지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저에게도 좋은 아이디어 주시면 더욱 감사, 아니 주실 줄로 믿고 미리 감사 드려요.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3:15-17)

10/02/2009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지금 이 시간 한국에서는 어제 준비한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추석날 아침 식사를 하셨을 겁니다.
추석 아침 식사가 지나고 많은 설거지를 마친 다음 조금 한가해지는 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드려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예희네가 들렸다 갔어.
예희네 작은 아빠가 복숭아도 한 상자 사오시고 형 대신이라며 용돈도 주고 가셨어.
형 대신이라고…………….
고맙다고 전화 한번 해.
다른 얘기는 나중에 하자.”
전화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다지 밝지 않은 것 같아 강윤이에게 다시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손자 목소리를 들려주면 좋아하시려나 했는데 지금 송편 만들고 있다며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십니다.
우리 가족이 곁에 없어서 허전하신지…

강화 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할아버지, 난 강윤이.”
“그래, 강윤이구나.’
“응.”
“응이 뭐야. 존댓말 해야지!”
“아빠 바꿀게요.”
“저예요.”
“(흐뭇한 웃음) 그래, 그래.”
아버님은 손자보다 아들이 더 좋으신가 봅니다.
강화 부모님들을 제 나름대로 이해해 보면 이렇습니다.
조금 특별한 첫 손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시는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고, 둘째 손자를 맞이해서는 첫째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 그대로 지내다 보니 손자들과 많은 정을 나누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자잘한 정을 나누는데 서투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목회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아깝지 않게 헌신하신 부모님들이십니다.
어머님은 미국에 다녀가신 후, 강산이를 위해서는 그 동안 기도를 많이 했는데 강윤이를 위해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주시는 모든 것들은 아들이든 손자든 다 우리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인 것을 압니다.

예희네 목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사돈 어른-그러니까 제 부모님이시죠-용돈까지 챙기는 서방님과 동생(동서) 부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어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정말 감동입니다.
보통 때도 가족들에게 늘 베풀고 나누는데 인색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서방님이나 동생이나 장애우에 대한 깊은 이해로 그들을 가르치는 사랑 많은 특수교육 교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누리는 복이 참으로 큽니다.


그리고…
올 추석에는 아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멀리 있는 딸네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시는지 전화도 잘 받으려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아빠 사촌들까지 다섯, 여섯 집에 걸쳐 딸이 저 하나라고 참으로 귀하고 예쁘게 키워주셨습니다.
연세도 들어가가시고 사랑을 많이 주신 딸이라 자꾸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명절 오후에 아빠를 찾아가면 작은 술상을 앞에 두시고, 말이 많지도 않으신 분이 이런 저런 얘기도 하시고 재미난 추석 특집 영화도 보시곤 합니다.
그럴 때 그냥 아빠 곁에 앉아서 말도 가끔 거들어 드리고 술상에 놓인 안주도 함께 먹으면 좋아하십니다.
맛있게 먹으면 아빠는 더 먹으라고 제 앞으로 밀어놓으십니다.
그래서 저는 명절 음식을 잔뜩 먹어 배가 불러도 더 먹기도 합니다.
교회에 다니시면서부터는 저에게 술을 권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도 한잔 주세요” 하면 아빠가 좋아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드셔도 실수가 없으신 아빠 앞이라 조심스럽기도 하면서, 명절 전날의 바쁨과는 달리 명절 오후에 느끼는 어떤 허탈감-제 생각에는 아빠의 직계 가족에 대한-을 아빠와 저는 이심전심으로 그렇게 메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
다시 한번 미국을 방문하실 마음을 갖고 계시다니, 그것을 소망 삼아 기쁘게 지내시면 좋겠어요.
조금 여유 있게 오셔서 한국에서처럼 아이들 데리고 낚시 가요.
여기서는 얼음 낚시는 어렵겠지만 호수들이 여기 저기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교동으로 낚시 갔을 때는 부탄가스가 얼어 부르스타에 점화가 안 될 정도로 추웠잖아요.
그래서 승합차 안으로 들어가 라면 끓여먹고요.
아빠, 행복했던 때만 기억하세요.
저도 아빠 다시 뵐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어머님, 아버님, 엄마, 아빠, 예희네, 태영이, 준서네, 그리고 명절이면 오고 가는 모든 친척들, 모두 즐거운 추석 되시길 기도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5:8)

9/25/2009

블랙(b,l,a,c,k)


블랙(Black)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영화라 낯설지 않을까 했는데, 그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 때문에 오히려 친밀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는 인도판 헬렌 켈러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작 헬렌 켈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저 들어서 아는 한 두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장애우, 애니 설리번 선생님…
사전 지식 없이 영화 자체를 보아서도 그렇고, 제 삶과 연결 고리가 많아서 그랬는지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8월27일에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입니다.
블랙(Black)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마다 요즘에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라는 것을 꼭 덧붙이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한국 상영관 개봉작이라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저는 한국 상황과 동떨어지는 것이 아직은 낯선가 봅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번 주 밀알 사역자 모임에서 나누었습니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
블랙(Black, 2005년, 인도)
감독, 각본 - 산제이 릴라 반살리
미셀 맥날리 역(라니 무커르지), 데브라이 사하이 역(아미타브 밧찬)

맥날리 가족을 보며
장애를 가진 자녀를 맞이하고 함께 성장해 가는 가족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장애를 가진 딸 미셀을 존엄한 한 생명으로 보기 보다는 불쌍하게 여기고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둔다. 그러다 보니 8세까지 멋대로 자란 미셀은 집안에서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아버지는 미셀을 기관으로 보내려고 한다. 기관에 보내기 전에 마지막 희망으로 특수교사인 사하이 선생님을 초청하게 되고, 미셀이 사하이 선생님과 관계를 형성하고 블랙의 세상에서 빛으로 나아오기까지 부모님은 걱정, 기대, 신뢰, 여유 있는 웃음과 눈물로 그들을 지켜보며, 끝까지 미셀의 곁에 남아 자랑스런 딸로 받아들인다. 동생 사라도 부모의 관심이 온통 언니 미셀에게 가 있어 질투도 하고 외로움도 느끼지만 결혼을 앞두고 미셀이 언니로서 동생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알고 화해에 이른다.


데브라이 사하이 선생님을 보며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선생님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미셀을 가르치기 위해 부모의 반대에도 소신 있게 헌신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배우지 못한 장애우 미셀을 보며 가슴 아파하며 최선을 다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 간다. 미셀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격려하며, 독립적인 삶을 위하여 공부를 계속하도록 돕고, 실패를 축하할 수 있는 자존감을 심어주어 목적한 것을 이루게 하고, 품격을 잃지 않는 태도로 사랑의 감정도 알게 한다. 사하이 선생님은 오랜 시간 장애우 제자와 함께 하며 그 삶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장애우 미셀 맥날리를 보며
자칫 아무 것도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블랙의 세상에 갇혀 있을 뻔 했지만 사하이 선생님을 신뢰하면서 자신만의 어둠의 세상을 깨치고 나오는 밝고 씩씩한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파티에서 가수의 입을 손으로 읽으며 춤을 추고, 대학 공부하다가 눈 오는 날 거리에서 좋아라 춤을 추는 모습에서 미셀의 깨끗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며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한편 사하이 선생님이 알츠하이머 병으로 기억을 잃게 되자 이제는 선생님의 어둠(블랙)과 싸우는 제자가 되어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갚는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것이 행복한 것임을 선생님이 알려 주셨다고 생각하는 겸손함도 보여준다.


아쉬운 것들
하나, 미셀의 집안 배경을 보면 계급 사회인 인도에서 꽤나 신분이 높은 것 같다. 성(城) 같은 집, 몇 십년 동안 개인 교사를 둘 정도의 부유함… 인도 영화이고 장애우를 소재로 희망을 얘기하려면 그 정도의 신분이 배경으로 설정 되어야만 했는지 잘 모르겠다. 평범한 혹은 가난한 삶을 사는 장애우를 소재로 했다면 어떤 희망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이미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 영화를 두고 쓸데 없는 사족(蛇足) 같은 생각인줄 알면서도 자꾸 물음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둘, 장애우를 가르치는 이로서 모범 같이 보여지는 사하이 선생님 생각의 한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정규 대학 학장과 만나 미셀을 그 대학에 보내고 싶다고 한다. 그러자 그 학장은 특수학교에서도 많은 것을 가르친다고 대답한다. 이에 대해 사하이 선생님의 응답은 “아침 식사를 만들고 카펫을 터는 거 말이군요”다. 사하이 선생님은 미셀이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가 있을 뿐 정신지체는 아니라고 영화 처음 부분에서 미셀의 부모에게 언급한다. 그렇다면 정신 지체 장애에 대한 사하이의 생각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미셀이 대학 교육을 통해 지식을 얻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정신 지체 장애우들에게 생활 교육을 통해 아침 식사를 만들고 카펫을 터는 일이 독립적인 삶을 사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하이 선생님은 그 중요성의 무게감 측정을 너무 한쪽으로 기울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화 블랙에서 장애우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해 받았다. 또 장애우 부모로서, 밀알에서 일하는 이로서 장애우의 가능성을 보고 끈임 없이 헌신하는 자세도 도전 받았다. 블랙을 보고 내가 느끼는 아쉬움은 그저 자격지심(自激之心)이지 싶다.

*************************************************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디모데후서3:24-25)

9/18/2009

캠프힐(Camphill)을 보고

<아일랜드 벨리토빈 캠프힐>
-캠프힐(Camphill)은 장애우를 위해 만든 생활공동체로, 1940년 슈타이너의 인지학(발도르프 교육으로 알려져 있다)에 깊은 영향을 받은 칼 쾨니히 박사가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애버딘에 처음 설립했고, 지금은 100여 개의 공동체가 세계 각국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어제는 하루 종일 캠프힐(Camphill)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틀란타 밀알 선교단이 내년 1월이면 창립 10주년이 됩니다.
저야 지난 해에 밀알을 알게 되었지만 그 동안 밀알과 10년을 함께 해온 분들은 장애우 가운데 어릴 적 만났던 친구들이 어느새 커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고등학교 마지막 12학년을 다니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으로 공교육을 마치게 되면 어떤 선택이 있는지 아직 잘 모르지만 직업을 갖는 친구들도 있고 가정에 머무르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밀알에서는 지난 날들의 결과물들을 발판으로 새로운 꿈을 꾸어보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성인 장애우를 위한 주간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주간 프로그램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애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왠지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딱딱하게 들리고 형식적인 단어처럼 여겨졌습니다.
성인 장애우들을 위한 것이라면… 활동… 생활… 지속적이고 창조적인 삶… 하며 생각을 이어가다가 캠프힐에 생각이 가 닿았습니다.

게으르기도 하지!
언젠가 밀알 어머니들이 한국 방송에서 장애인 공동체에 대해 방송하는 것을 보았다며 몇 분이 얘기하는 것을 듣기도 하고, 얼마 전 동생과 전화하면서 그 방송 내용이 캠프힐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 아직도 찾아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 공동체에 대한 어렴풋한 꿈을 꾸어보기도 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그런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어쨌는지...


90년대에는 같은 대학을 졸업한 선후배 10 가정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아이들이 잠든 밤에는 아내들과 남편들이 따로 혹은 같이 정해진 책을 읽어와서 토론하며 밤을 지새곤 했습니다.
토론의 내용은 공동체로 살기, 생명운동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그 모임에 함께 하는 가정 가운데 몇 가정은 실제로 농촌에서 여럿이 어울려 일하며 공동체로 살고 있었고-지금도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고요. 보고 싶다-몇 가정은 도시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농촌에 사는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에 사는 이들도 텃밭을 일구며 유기농으로 먹을 것을 키워보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옷(특히 생활한복)도 만들어 입어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집도 지어 거기서 살고 있답니다.
이 모든 생활에 어른과 아이가 함께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들과 함께 놀며 배우는 공동육아도 서너해 동안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캠프힐에 대한 방송을 보면서 그 동안 경험해보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그 안에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 자급자족의 생활, 발도르프 교육, 일과 놀이와 배움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삶의 평화로움이 그 방송을 다시 보게 하고 또 다시 보게 하고 그랬습니다.

밀알에서 성인 장애우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숙제입니다.

*캠프힐 방송을 볼 수 있는 주소입니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597774

*캠프힐 웹사이트(북아메리카와 세계 곳곳에 있는 캠프힐) 주소입니다. http://www.camphill.org/

*한국에서 특수교육 교사였던 분이 스코틀랜드 캠프힐을 방문하고 쓴 책이구요.

내일은 아틀란타 밀알 선교단에서 일일 찻집을 하는 날입니다.
어머니들은 음식 바자회를 위하여 바쁜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음식 만드는 것, 청소, 테이블 세팅…으로 힘을 보태셨습니다.

요즘 날이 흐리고 비가 많이 오는데, 내일도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보았습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분위기 있게 따뜻한 차와 떡 한 조각, 그리고 부침개와 어묵국이 딱 어울릴 것입니다.
해가 나서 맑은 날이라면 시원한 냉커피로 더위를 물리고, 떡볶이로 여름의 끝자락에서 이열치열(以熱治熱)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나만의 원칙(?$@!&%) 때문에 더 이상 생각이 나아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 같지 않은 원칙을 핑계로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또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2:44-47)

9/11/2009

추억 속의 Sweet Music Man


때가 되면 어김 없이 계절이 바뀌고, 해마다 그것을 경험하면서도 늘 느낌이 새롭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기 위해 강산이와 스쿨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선선한 기운이 짙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득 “Sweet Music Man“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알던 친구입니다.
지금까지도 그저 알던 친구, 착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아이라는 정도의 생각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 글을 쓰려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감성이 풍부하고 다재다능하며 무엇보다도 아주 잘 사는 집 아이면서도 잘난 척 하지 않던 꽤 괜찮은 녀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자기가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당시 레코드 테이프나 LP판을 파는 가게에서 자기가 원하는 곡을 뽑아 녹음해 주는 것이 유행이었던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집에 있는 테이프에서 골라 직접 녹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녹음 테이프를 받았을 때는 정성이 들어간 선물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노래 제목들과 틀린 단어는 뒷장에 “틀릴걸 틀려야지…” 라는 귀여운 한 마디 말과 함께 고쳐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제목을 적는 모서리 한 귀퉁이에는 “오랜 세월 듣기 위해서는 자주 듣는 것을 삼가” 라고 친절하게 적어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가 고른 노래들은 잘 알려진 팝송들이었고 안목 있는 선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팝송에 관심도 없었는데 그 녹음 테이프에 담긴 16곡을 알고 난 다음부터 팝송 한 구절 흥얼거릴 수 있는 문화인(?)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그 친구와 인천 월미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카페들과 횟집만 줄지어 있는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였습니다.
길지 않은 거리를 어느 만큼 걷다가 멈추어 바다를 바라보며 얘기하고 있는데 어느 카페에선가 Kenny Rogers의 “Sweet Music Man”이 거리로 크게 흘러나왔습니다.
“어! 저 노래 니가 녹음해준 첫 번째 꺼다” 했습니다.
그 친구가 준 녹음 테이프에 “Sweet Music Man=나” 라고 써 준 것이 기억나면서 그 순간에 그 노래가 그곳에서 들리니 참 신기했습니다.
살짝 유치한 풍경!
그 때는 놀라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혹시 그 녀석의 이벤트가 아니었나’ 하면서 더욱 감미로운 추억으로 각색해 봅니다.
제가 이렇게 미루어 헤아려 보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자기 자동차를 몰고 다녔고, 대학 가서는 자기 소유의 요트를 가지고 인천 송도 어디선가 요트 클럽 활동을 하면서 인천 출신 가수들이나 이벤트 하는 사람들 하고 어울려 지내고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경제적인 면이나 풍부한 감성, 마음 씀씀이가 넉넉했기에...

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저를 쪼끔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저한테는 밥 잘 사주는 편안한 친구였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세계관이 서로 달라서 더욱 가까워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품도 좋고 부잣집 아들인데 어떻게 해볼걸 그랬나요?
ㅋㅋㅋ ㅎㅎㅎ


철이 바뀌면서 점점 스산해지는 바람을 느끼며, 그 친구처럼 누군가에게 진실하고 예의 바르고 편안한 모습으로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바람처럼 다가와 “사랑한다” 말씀해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기대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저에게 그 친구는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기도하는 인형을 사주었습니다.
그 친구 가족은 신앙 생활을 하려나…
좋은 추억을 남겨준 그 친구를 위하여, 어울려 살아가는 이웃을 위하여, 무엇보다 제 신앙의 견고함을 위하여 주님께 가까이 가렵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표준새번역 야고보서 3:16-17)

9/04/2009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 즐거움


드라마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주간 드라마를 꼭 챙겨보는 모습이 조금 재미있기도 하고, 뭔가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텔레비전 드라마 가운데 두어 개쯤은 늘 시청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기서처럼 “반드시” 보아야만 하루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구요.
오히려 텔레비전 보지 않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한국 방송을 신청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볼까 싶어서(ㅎㅎ) 어쩌다 눈에 띄는 드라마 하나 정도 골라 보는 재미를 누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선덕여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총 50부작 가운데-62부작으로 늘렸다는 얘기도 있어요- 이번 주에 30회까지 방송을 보았습니다.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이 주연과 조연으로 등장하고,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 대부분이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드라마 한편 한편이 흥미진진하고 다음 내용이 기다려집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아주 짧게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둘째 공주(덕만)가 황실에 쌍둥이가 태어나면 남자의 씨가 마른다는 미완성의 예언 때문에, 왕권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어 시녀의 손에 맡겨져 낯선 나라에서 자신의 신분을 모른 체 자라게 됩니다.
덕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남장을 하고 계림(신라)으로 돌아와 화랑의 낭도가 되어 궁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지혜와 용기가 있는 덕만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자신이 버려진 공주인 것을 알게 되고, 29회 방송에서는 드디어 공주의 신분으로 궁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선과 악이 공존하듯이 신실한 덕만의 대적으로 미실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미실은 진흥왕, 진지왕, 그리고 덕만의 아버지 진평왕까지 가까이 한 첩(궁주)이었고, 진흥왕이 미실을 아껴 임금의 옥새를 맡겼다 해서 새주라고 불렸다 하니 그 권세가 어떠했는지 드라마에서 한껏 보여주고 있습니다.
귀족과 군사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격물(과학)을 이용하여 무지한 백성을 속이고 천신황녀라 불리우며 신권도 장악하고 있는 절대 권력자의 모습입니다.
한편 실제 미실의 미모가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역할을 맡은 배우 고현정의 미모가 보태져 드라마가 정말 볼만합니다.
배우 고현정이 그렇게 잘 생겼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답니다.


궁에 들어와 신분을 회복한 덕만 공주는 미실과 팽팽한 대립을 합니다.
공주로서 첫 번째 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신권을 포기하고, 격물을 이용하여 무지한 백성들을 속여 사익(私益)을 취하는 이가 없도록 첨성대를 세워 백성들에게 하늘의 주기를 스스로 알게 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미실은 “백성들은 환상을 원한다. 가뭄에 비를 내리고 흉사를 막아주는 초월적인 존재를 원한다. 그 환상을 만들어야 통치할 수가 있다. 그들에게 안다는 것은 피곤하고 괴로운 일이다”, 라고 합니다.
하지만 덕만은 꿋꿋하게 “희망은 그런 피곤과 고통을 감수하게 한다. 희망과 꿈을 가진 백성은 신국을 부강하게 할 것이다. 그런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 신라를 만들겠다”, 고 합니다.
생각했던 대로 미실은 자신이 최고 실력자 황녀가 되고 싶은 욕구에 머물러 있지만 덕만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진흥왕이 죽으면서 남긴 말은 이 드라마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천하의 주인이 된다.”
드라마가 30회가 진행되는 동안, 미실의 사람들이 있었으며 덕만의 사람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미실은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필요 없어지면 생명 거두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하지만 덕만은 신의(信義)와 진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지금까지 온갖 고난을 이기고 나아간 평범한 백성 덕만의 삶은 인간 승리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성골(聖骨)의 신분을 회복한 공주로서,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사람을 얻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선덕여왕이나 고구려 시조 주몽 이야기에 나오는 소서노가 보여주듯이 삼국시대까지, 아마 고려 시대 초반까지 여성의 지위는 조선 시대의 남녀유별(男女有別), 부부유별(夫婦有別)과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는 것도 작은 재미가 될 것 같습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언11:30)

8/28/2009

비가 내리길래...


여기 비 오는 모습이 좋습니다.
먹빛 구름이 큰 숨을 들이쉬고 잔뜩 참았다가 한꺼번에 내뱉는 것처럼, 비가 그렇게 옵니다.
아주 거세고 힘차게 내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잠깐이든 한나절이든 오던 비가 그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맑아집니다.
비가 내렸으면서도 끈적한 습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아 더 신기합니다.

또 하나 좋은 것은 맑은 날의 하늘빛과 구름입니다.
청명한 하늘빛 바탕에 풍성한 구름이 어울려 있는 모습은 그대로 명화가 될법합니다.
하늘은 왜 그렇게 끝없이 넓어 보이는지요.
그런 하늘을 보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날마다 보는 하늘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살만한가 봅니다.
뜬 구름 얘기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할찌어다 /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찌어다 /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찌어다 /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찌어다 /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시편148:1-5)

8/21/2009

예, 아니오




요즘, 아니 몇 달 전부터 “예” 할 때와 “아니오” 할 때는 언제일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예, 아니오 하는 것이 좋을까, 자꾸 생각해봅니다.

눈길이 닿는 그 무엇을 보다가도 그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오릅니다.
운전을 하다가 빨강색 신호등을 보고 멈추어 섰다가, 신호등 불빛처럼 분명한 자기 표현이 좋은 거야 해봅니다.
신호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능력인 빨강, 노랑, 초록의 빛을 적절한 때에 바꾸어 교통의 흐름을 조절하듯, 자기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로 예와 아니오가 너무 분명한 사람은 능력 있어 보이고 깔끔해 보이지만 인간적인 맛이 덜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교회 화단에 중고등부가 심어놓은 꽃들 가운데 여러 가지 빛깔로 조화롭게 피어 있는 꽃에 눈길이 머물면서, 분명한 자기 색깔은 없어도 저렇게 예쁠 수 있는데, 해봅니다.


우리 집에서 교회를 가다가 둘루스 시내쯤 되는 곳에 속도 제한이 35마일로 바뀌는 곳이 있습니다.
보통은 45마일로 달릴 수 있는데 그곳에 가면 갑자기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길가에 상가들이 있어 사람들의 통행이 다른 길보다 많을 수 있어서인지(?)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 길에 들어서면 달리던 속도를 확인하게 되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운전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그곳에 서 있는 속도 제한 표지판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신보다는 이웃을 향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는데 예와 아니오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능력이 있지만 조금 천천히 가는 길을 선택하는 아름다운 사람도 있는데, 하면서 생각의 고리를 이어갑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어지럽습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의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Yes)하고 아니라(No)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Yes)만 되었느니라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Yes)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19-20)

8/14/2009

융통성 없는 정직

<친구들과 학교 뜰에서>

고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그 당시 70여 년의 역사가 있는 학교였는데, 전통이 오래된 만큼 학교 본관 건물도 많이 낡아 있었습니다.
교실과 복도 바닥은 나무 마루로 되어 있었고, 나무 바닥을 보호하기 위하여 왁스로 걸레질을 해야 했습니다.
청소는 분단별로 나누어 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며칠 동안 모두가 청소를 했고 선생님은 꼼꼼하게 검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청소 시간에 바닥 닦을 손걸레를 개인적으로 마련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청소 시간이 되어 보니, 어떤 친구는 헝겊으로 만든 걸레를 가져 왔고 어떤 친구는 문방구에서 파는 스폰지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차!
깜빡 잊고 걸레를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문방구에서 파는 스폰지를 살 돈도 없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도 교문 밖을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청소 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쓸고 나르고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딴 생각을 할망정 청소 시간에 딴청 부리는 것은, 제겐 자연스럽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이제 왁스로 나무 바닥을 닦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잠시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하고 있는데, “야, 담임 온다!” 하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군데 군데 모여서 수다 떨던 아이들이 모두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그 중에 걸레를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은 옆 친구가 가져온 스폰지를 반으로 잘라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 교실은 교무실 옆에 옆에 있었기에 선생님이 곧 나타났습니다.
교실 앞 복도에 서있던 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저는 어떻게 할 지를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습니다.
나름대로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걸레를 가져오지 않고 가져온 것처럼 하는 것은 자신과 선생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청소 시간에 한눈 팔아본 적이 없으니, 걸레 한번 안 가져온 실수는 선생님이 어여삐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되지도 않는 기대를 가지고 말입니다.

선생님은 모두 쥐 죽은듯 조용히 바닥을 닦고 있는데 손을 놀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던 제가 눈에 금방 띄었나 봅니다.
“야, 너 뭐해. 일어나! 이리 와.”
그 선생(이 부분에서는 “님”을 생략하렵니다)은 손으로 제 머리를 쿡쿡 쥐어박으며 어쩌구 저쩌구 했습니다.
복도 한가운데 여러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건 제 생각일 뿐, 선생님 편에서는 그럴 만도 합니다.
가져오라는 걸레는 가져 오지도 않고, 다들 열심히 바닥을 닦는데 뭐 잘한 것이 있다고 가만히 있냔 말이죠.
얼마나 뻔뻔해 보였겠어요.

정말, 융통성, 순발력, 눈치 같은 것들은 엿장수에게 주고 엿하고 바꿔 먹은 게 분명합니다.
아니, 저에게 융통성 같은 것들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아마 후천적으로 개발된 것이지, 타고난 DNA 어느 구석에도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말하고 보니,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저와 비슷한 강산이가 제 아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미안, 강산.”

고등학교 청소 시간 그때로 지금의 제가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걸레 가져오라는 지시를 적은 종이 쪽지를 방 여기저기에 붙여놓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스폰지 걸레를 가져온 친구의 스폰지를 반의 반이라도 잘라내 청소하는 척 했을까요.
아니면 교무실에서 걸어 나오는 선생님에게 달려가 팔짱이라도 끼면서(여선생님이셨으니까) “선생님, 깜박 잊고 걸레를 안 가져왔거든요. 쫌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하면서 애교를 떨었을까요.
그도 아니면 양말이라도 벗어서 걸레를 만들어 나무 바닥을 닦고 앉아 있었을까요.

80년대 초 경직된 분위기의 고등학교 청소 시간에 융통성 없는 정직함을 선택해서 부끄러움을 당한 제 자신이 그다지 싫지 않다고 여기는, 이처럼 아직도 지혜가 부족하며 융통성도 없는 이런 사람을 자녀로 삼아주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분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시편6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