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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넉넉해진 성탄절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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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ck City에서. 호호호 ***

어머님이 써주신 글을 옮겨 적다보니 8주가 지나갔습니다.
어머님 글을 타이핑하고, 교정하고, 블로그에 올려놓고 다시 읽어보는 시간 동안 그 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어머님의 신앙 열정을 다시 한번 엿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글을 써야 하는 에너지를 조금 아낄 수 있기도 했습니다.
그 아낀 에너지를 요즘 영어책(???) 들여다 보는데 사용했거든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언어와 문화를 익혀야 잘 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영어와 친해져 보려고 다시 애쓰는 중이랍니다.
또 한편으로는 모임이나 볼만한 것들을 찾아 다니면서 자꾸 경험해보려고 합니다.

성탄절 밤을 보내고 있는 지금, 지난해를 떠올려보니 그 때보다 생활이나 마음이나 관계에 있어서 훨씬 넉넉한 성탄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첫 해는 긴장 속에 살았던 것 같고, 두 번째 해는 쉽지는 않았어도 여유가 조금 생겼고, 이제 또 한 해를 살면 이곳 삶에 더욱 익숙해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더 나아가서는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더 깊어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립보서3:12-16)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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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마지막)

2000년도에는 병원마다 파업이었다. 의사들이 거리에 나가 병원이 텅 비었다. 예약 수술 환자도 다 집으로 돌려보내고 기별하면 다시 오라는 것이다. 병원 안에 예배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수술을 안 받겠다고 하니 작은 아들이 쓸데없는 말씀한다고 야단이다.
의사와 상의하여 수술 날짜를 겨우 6월 19일로 잡았는데, 앞에 환자가 수술이 잘 되어야 내 차례가 오지만 앞에 환자가 늦어지면 내 수술이 없다는 것이다. 마취과 의사가 다 거리로 나가서 수술이 계속 없다. 나는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기도뿐이었다.
수술 날짜가 되어 남편과 큰 아들이 올라왔다. 오후 1시쯤 되니 간호사가 와서 아주머니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어서 준비합시다, 하였다. 나는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주님께 이 몸을 맡깁니다, 하였다. 1995년도에 치질 수술을 간단하게 한 적이 있었고 대수술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술하고, 마취 깨고 하는 시간이 7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대장암 말기라고 했다. 딴 데 전이되지는 않았고 한 군데 주먹만한 것이 있었다고 하였다.
입원실로 돌아왔다. 언니와 동생이 나를 보호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니 내 머리 속에 복음성가 “주만 바라볼찌라”가 머리에 입력된 것을 알았다. 완전히 가사는 못 외워도 곡조는 좀 알았다. 가사를 더듬어 보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이 가사를 머리에 떠올리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가사를 다시 생각하며 오, 주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막 가슴이 미어지면서 눈물이 억제할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만 바…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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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일곱번째)

그 이듬해 봄에 차가 한 대 서고 아줌마들이 댓 분 내리더니 계세요, 하고 문을 노크한다. 남편과 같이 왔던 신림동 권사님이다. 창후리 “마라의 쓴 물” 목욕탕에 왔다가 들렸다고 한다. 어떻게 오셨느냐, 하였다. 어느 분이 아기를 갖기 위해 기도를 원했다. 딸이 일곱 살 되었는데 동생이 안 생겨서 기도 받겠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주님 이런 사람을 왜 보냈나요, 했다. 하지만 오신 분들에게 우리 예배 드리고 기도합시다, 하고 간증도 하고 기도를 해주었다. 내일 또 오겠다는 것을, 본 제단에서 목사님께 안수 받고 본인이 새벽기도 나가시고 하세요.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으니 구하세요, 했다. 다들 돌아갔다.
사흘 후에 그 엄마와 딸이 왔다. 한 번 더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렸다. 믿으세요, 믿음 달라고 기도하세요, 부탁했다.
3 개월이 지나서 그 교회 집사님들이 왔다. 기도 받고 간 그 엄마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서, 또 다른 집사님이 자기도 아기를 원한다고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 집사님은 딸이 둘이고 둘째가 일곱 살인데 아기를 가지려고 해도 안 들어선다며 아들을 낳아야 된다고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니 아들 낳게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집사님에게 주님께 매달리세요. 나는 아픈 사람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며 만류했다. 하지만 먼저 집사님은 해주셨으면서 왜 그러세요, 야단들이다. 나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지요. “이 집사님은 아들을 꼭 나야 된답니다.”
기도를 끝마치고 그 집사님에게 말했다. “하나님에게는 아들이나 딸이나 다 귀중한 생명인데 왜 그러세요?” 그 집사님 하는 말이,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성공회에 나가시는데 감리교로 나오시라고 해도 성공회는 큰 집이다 하시면서 마음을 안 바꾸신다는 것이다. 이번에 아들을 주셔야 담대하게 시부모님께 말씀드릴 거라며 기도해 주세요 했다. 자기는 세 번 기도 받기로 …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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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여섯번째)

초가을이었다. 이른 찰벼 타작을 하는 날이라 분주하게 일꾼들 식사를 준비하는데 승용차가 마당으로 온다. 젊은 부부(50대)의 아들이 운전하고 온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즉 천주교회에 나가는 분들이었다. 남편이 아파서 온 것이다. 혈압도 있지만 병 이름을 몰라 병원에 가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과장이었는데 회사도 쉬고 해서, 화도면 남쪽에 선산이 있어 벌초를 하러 왔다가 형님이 기도를 받으라고 해서 찾아온 것이다.
나는 천주교인은 처음이었다. 부인의 믿음은 좋은 것 같았다. 간신히 시간을 내어 기도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주머니에 담배가 있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담배를 끊으시고 정성을 쏟으십시다, 하니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부인에게 주며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하였다. 그리하고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했다. 주님이 간절함을 주시길래 기도하고, 속으로 주님 알아서 하세요, 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분들은 갔다.
한 달쯤 지났을까. 강화읍에 갈 일이 있어 남편과 함께 갔다 왔는데 거실에 들어가니 사과 한 짝이 보인다. 누가 우리 집에 왔었을까 궁금하였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한달 전에 아들과 함께 공항에서 와서 남편이 기도 받고 갔는데, 감사하여 찾아왔다가 아무도 없어서 목사님께 찾아왔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나아서 회사에 복직했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갔노라 일러주라고 했다고 하셨다. 또 12월 25일 성탄날, 조그만 선물을 우체부가 주고 가길래 뜯어보니 가죽장갑이었다. 누가 했을까 궁금했다. 저녁에 전화가 와서 받으니 이분들이었다. 나는 전화번호를 몰라서, 먼저 우리 집에 오셨다 가신 것을 인사도 못했노라고 하니, 그분은 남편이 나아 너무 감사하고 한권사님하고 자기 이름하고 같다고 권**이라고 했다. 평생 잊지 못할 일이라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천주교인도 기적을 주시는구나, 하면서 주님께 감사 드렸다.

그 이듬해 여름, 모를 다…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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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giving을 앞두고 밀알에서 마지막 사역자 미팅을 했습니다. 미팅 때마다 정해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서로 나눕니다. 거기서 나눈 글을 옮겨봅니다.



전병욱 목사님의 책 “권능”의 첫 장을 열었을 때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글이 더 이상 읽혀지지 않아 책을 덮었다. 핑계를 찾아본다면 밀알 스탭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이번 달까지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생각이 많아져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였으리라. 그래서 전병욱 목사님의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전목사님의 책 “권능”과 같은 맥락을 이룰 수 있는, 요즘 경험한 성령이 주시는 능력의 증거들을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주일에 하는 장년 성경공부가 있는데 이번 하반기에 사도행전의 절반을 공부하였다. 교우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초대교회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그 권능이 오늘날 교회(믿는 지체들)와 얼마나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지를 보았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중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 각 나라 방언으로 말하게 된 사건(2:4), 성전 미문의 지체장애인을 성령의 권능과 경건(3:12)으로 걷게 함, 베드로가 산헤드린 의회 앞에서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4:8),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함으로 개인의 소유를 나누게 됨(4:33),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헬라파 유대인 일곱 집사가 선택됨(6:5), 그 가운데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6:8)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순교의 현장에서도 성령이 충만한 모습(7:56),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큰 능력을 나타내고(8:13), 빌립이 전도한 사마리아 성에 사도들이 방문하여 기도할 때 믿는 자들이 성령 받음(8:17),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을 지시하시는 성령(8:26), 병거로 가까이 가게 하심(8:29), 내시에게 세례를 준 후 주의 영이 빌립을 다른 곳으로 이끌어 가심(8:39), 사울의 회심…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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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첫 목회지에 있던 남편과 결혼하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친구들이 놀러 왔습니다.
지금 경기도 이천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와 워싱턴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 부부였습니다.
강화는 수리시설과 농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고장입니다.
그래서 저수지도 곳곳에 많은데, 그 때 살던 곳에서 가까운 곳에 내가면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저수지 둑을 걸으며 깊어가는 가을을 한껏 느껴 보았습니다.

저수지 옆 소나무 숲에 잠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얘기하면서 떨어진 참나무 잎을 긁어 모았습니다.
아주 작은 더미를 만들어 불을 붙였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제대로 가을 분위기를 내고 있을 무렵, 그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던 제 친구는 구성지게 노래 한가락을 뽑아 올렸습니다.

“우리가 산다는 건”

우리가 산다는 건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 탄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불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 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마침내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우리가 산다는 건
장작불 같은 거야

장작 몇 개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여러 놈이 엉켜 붙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침내 활활 타올라 쇳덩이를 녹이지
(백무산 시 / 백창우 곡)

이 늦은 가을, 친구들 보고픈 마음이 간절합니다.
친구가 불러주는 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삶의 의지를 다잡는데 힘이 될 것 같은데….
“희야, 내가 너 업어주고 그랬는데 노래 한마디 들려줄 수 없겠니?
혹시 이 글을 보거든 너 농사 짓는 밭 한가운데 나가 나지막하게 불러주렴.
내가 듣고 있을게.”

요즘, 하잖은 제 습관 하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어머님이 써주신 글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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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네번째)

목사님이 갑자기 가시는 바람에 공백이 한 달 좀 있게 되니 장로님들이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하셨다. 목사님 모실 분을 찾으러 장로님들은 여기저기 다니게 되었다. 목사님이 결정되어 2월에 오시게 되었다. 서** 목사님이시었다. 목사님은…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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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기도를 많이 하시고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 결혼 초기에는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강산이를 낳고 나서인가요?
남편에게 배가 아프다고 하니 어머님께 기도를 받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도 어릴 적에 배가 아프면 어머니가 기도해주시곤 했다면서요.
저보다 훨씬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남편이 권하길래 내키지 않는 맘 반, 호기심 반으로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처음 목회하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시던 어머님과 아버님은 곧 찾아오셨고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궁금했는데 기도가 다 끝나도 별일은 없었습니다.
어머님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다지 스트레스 쌓인 것도 없거니와 누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고 난 뒤에 배가 아프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기도해서 나았다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로부터도 몇 년을 어머님의 신앙과 저의 신앙은 공통점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다른 빛깔로 살았습니다.
목회지가 바뀌어 영성(靈性)에 관심 갖게 되고, 교회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정말 감사하게도 저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게 되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어머님의 신앙도 이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졌습니다.
^^
어머님이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을 여러 차례 지켜보기도 하고 함께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아픈 사람의 배에 손을 얹고 찬송을 부르시고, 떠오르는 성경 말씀도 찾아 읽게 하시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아픈 곳을 주물러주시기도 하구요.
어머님은 정말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오랜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하십니다.
부족한 제가 볼 때는 하나님께서 어머님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것은 그 “간절함” 때문이지 싶습니다.
(어머님에 대하여 느낀 것을 쓴 윗 글은 어머님의 글을 읽기 전에 쓴 것입니…

어머님이 만난 하나님 2

어머님의 글을 계속 옮겨보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 올린 글 가운데 앞부분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제가 보는 어머님의 신앙 열정은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돕는 일을 기쁘고 성실하게 감당하십니다.
다른 교우들보다 앞서지도 않으시고 그렇다고 뒤지지도 않습니다.
어머님은 하나님 은혜에 대한 사모하심이 큽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님을 알기 훨씬 전에 병 고치는 은사를 받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이 은사를 병이 낫길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 겸손하게 사용하십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곁에서 돕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아들이 있습니다.

어머님이 써주신 글의 내용을 맞춤법 몇 개만 손을 보고 나머지는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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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두번째)

4월(아마 1970 년대) 양**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시게 되었다. 그분은 다녀가신 목사님들 가운데 특별하게 느껴졌다. 목사님께서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영적인 말씀을 늘 선포하셨다. 성도들의 얼굴을 보시면 영적 병듦을 아시고, 병원에 가야 할 병과 기도로 해결해야 할 병을 분별하시고 기도로 성도들에게 체험과 영적 각성을 주셨다. 목사님은 신유(神癒) 은사를 받으신 분이셨다. 많은 성도들이 약을 팽개치고 기도를 받기 시작했다. 성도들은 많은 체험을 하고 믿음들이 뜨겁게 바뀌었다.
나에게도 체험을 주셨다. 어느 날 새벽에 교회에 가려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숨을 크게 쉬지도 못하고 숨이 막힐 것만 같아 그냥 자리에 누워 몸을 안정시켰다. 조금 숨을 크게 쉬면 가슴이 결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이 강화읍에 약을 지으러 갔다. 그런데 누가 밖에서 한속장 안에 있어, 하고 불렀다. 나는 말도 크게 할 수가 없었다. 여선교회 회장이 새벽기도에 안 나와서 찾아온 것이다.(송** 속장님)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찾아왔다고 하였다. 나는 손짓으로 내 가슴을 가리키면서 흉내 내었다. 나를 부축하여 일으키더니 목사님께 가서 기도 받자고 하…

어머님의 글을 조금 옮겨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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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가끔 생활이야기를 써서 교회 홈페이지(한국)에 올린 것을 보시더니 언젠가부터 어머님의 이야기도 써보시겠다고 하셨더랬습니다. 그러시더니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올 때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주시면서 네가 잘 정리해 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 죄송해요. 미국 온 지 2년이 가까워오는 오늘에서야 어머님이 쓰신 글을 꺼내 보았어요. 제가 이래요. 그래도 오늘이라도 열어보았으니 괜찮죠? 히히히. 늘 마음에 담고 있었어요.”

여선교회 공문으로 받은 A4 크기의 종이와 그 크기와 똑같게 자른 교회 달력 뒷면에 가지런히 적어놓으신 글이 세어보니 28장이나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아끼고 절약하는 어머님이시기에 이런 종이를 사용하신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강화 망월에서 60 여년을 사시면서 100년도 넘은 교회를 한결같이 섬기신 어머님에게 28장은 너무 적은 분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머님 글을 제 블로그에 사용할 목적(^^)으로 타이핑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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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예수님- 라파의 하나님>(2008년 2월에 씀)

나는 지금 66세에 들어섰다. 요즘 자꾸만 마음 속에 지나온 일들이 새록새록 머리에 떠올라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이 못난 딸을 주님께서 부르시어 주님의 깊으신 사랑을 깨닫게 하셨고 그 많은 생명들 중에 나를 구속하여 생명의 길을 찾게 하셨기에, 살아온 발자국마다, 임마누엘 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여 그 누구에게라도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소심하고 담대하지 못하여 늘 자신 없고 교회 공동생활 하는데도 앞장서기 보다는 뒤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늘 부족한 사람이다.
우리 교회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주님을 만나보셨습니까? 성령을 체험했습니까?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질문하실 때마다, 재작년 성경을 읽다가 큰 감동을 받은 신명기 33장 29절 말씀을 마음 속으로 대답하곤 했지요. “이스라엘이…

그 녀석들을 바라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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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週末)은 언제부터 시작이지?
금요일 저녁 아니면 토요일….
주말이라고 해서 뭐 특별할 것은 별로 없고 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이지만 주말이 주는 여유로움을 그래도 조금 더 길게 가지려면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그 동안 정리가 필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를 마무리 했습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 좋은 책을 선정하여 음성 녹음한 CD를 언제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목록을 작성하고, CD를 여러 개 복사해서, 레이블을 만들어 붙이고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해 놓는 것입니다.
몇 시간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것이라 그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조금씩 하다 보면 급하지 않고 덩치가 큰 일은 뒤로 미루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시간이 허락되어 도서 녹음 CD(밀알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와 관련된 일들을 집중해서 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음 먹은 일이 거의 마무리되고 보니 홀가분합니다.
혼자 뿐인 사무실에서 맘껏 기지개를 켜며 “아~” 소리를 내어봅니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이고 날씨는 곧 비가 올 것처럼 흐리고 나무는 알록달록 물들어가니 차 한잔 마시면 딱 어울릴 분위기입니다.
주방에 가서 둥글레차 한 잔을 타가지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게 되었습니다.

어라, 저 녀석 왜 저기 있는 거지?
으잉? 목에 줄도 안 묶여 있네.
어쩌자고….
일터 앞쪽에 있는 중고센터(재활용센터?) 사장님네 개 같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차에서 내릴 때면 그 녀석이 빤히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 녀석에게 눈길은 주지도 않고 묶여 있는지 확인한 다음,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져 사무실로 내려옵니다.
조그만 강아지도 아니고 누런 빛을 가진 개인데 앉아 있다가 제가 지나갈 때 벌떡 일어서면 살짝 움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거추장스러운 목줄에 묶여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라도 할 모양으로 사무실로 내려오는 길에 철버덕 누워 자고 있는 것입니다.

이따가 어떻게 차 있는 데로 가지?
걱정이 아주 잠깐 되…

나누고 싶은 햇빛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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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동생 편지를 받고 곧 답장을 했지만 동생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어줍잖은 내 생각이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어.

여기는 여름 끝자락에 비가 엄청 많이 오더니 흐린 날도 많고 비도 자주 오고 있어.
그러는 사이에 철이 바뀌었고 아침, 저녁 기온도 뚝뚝 떨어지고 말이야.
오늘은 바람도 꽤 불더라구.

바람도 불고 동생 생각도 떠나지 않아서 그랬나?
이솝 우화 가운데 “해와 바람”이라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어.
이야기가 섬세하게 생각이 나질 않네. --;
해와 바람이 누가 힘이 더 센가 내기를 했나?
그래서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누가 벗기는가로 힘 센 것을 가늠하기로 했지.
바람은 있는 힘껏 바람을 불었는데 나그네는 옷이 벗겨질까봐 옷을 더 꽉 끌어 안았고.
해는 따뜻하게 그 빛을 비춰주자 나그네가 옷을 벗어 해가 이겼다는 이야기.
이거 맞나?

이 이야기를 두고 책에서는, 그 다음에는 나그네의 옷을 누가 다시 입히는가 내기를 했는데 물론, 바람이 이겼다는 거야.
이야기가 이렇게 풀리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괜한 힘 겨루기는 쓸모 없다, 뭐 이런 교훈을 주고 싶은 것이리라 여겨져.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싶어.
나그네의 옷을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보면, 관계를 맺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따뜻한 햇빛이지 몰아치는 바람이 아니라고 말이야.
살다가 관계의 어려움과 마주치면 난 이 얘기가 떠오르곤 하더라.
내 수준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할만한 그릇이 안 되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따뜻한 친절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거지.
--;

동생의 성품을 볼 때 이런 수준은 이미 뛰어넘은 것 같아.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아파하고 있으니 말이야.
참 착하다, 동생!

얘기하다 보니 동생한테 주고 온 그림책들 생각난다.
그림책 모으는 즐거움이 꽤 컸는데.
아이들도 읽고 나도 읽고.
그림책은 짧은 글 속에 온갖 감정이 실려 있으면서 유익한 교훈들도 들어 있고, 그런 내용이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참 좋았는…

기꺼이 하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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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우리교회 한국학교 종업식을 하고 교사와 보조 교사들이 공원에 모여 점심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거기에 교사의 자녀들이 같이 있기도 했는데 제 둘째 아들 강윤이도 끼어 있었습니다.
얼추 그 식사 자리가 정리되고 교회 Youth 오케스트라 모임 시간이 다 되어 중고등부 아이들 대여섯 명을 태우고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로 오는 동안, 그 가운데 한 아이가 셀폰을 잃어버렸는데 집에 있는 세계위인전 60권을 다 읽는 동안 셀폰을 찾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이 다시 셀폰을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웃으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위인전이라는 말에 살짝 끼어들어 “그 책 우리 강윤이도 빌려주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책은 글씨도 크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강윤이한테는 너무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강윤이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것을 마음에 두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어, 그래도 괜찮아. 강윤이도 위인전은 많이 읽지 않아서.”
“야, 너 그러면 히틀러 알아?”
“응~~~”
“몰라?”
“그러면 장영실은 알아?”
“뭐 만든 사람.”
“야, 너~”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서로 대가며 아는 둥 모르는 둥 할 때마다 “oh, my goodness!” 를 외쳐대며 낄낄 깔깔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아이들이 물어볼 때마다 강윤이가 너무 대답을 못해서 ‘이거 괜히 책 빌려 달라고 해서 애 기죽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아이들은 “그럼 세종대왕은 알아? 이순신은 알아?” 하며 거의 놀리는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운전을 하며 뒤에서 들려 오는 강윤이의 목소리만으로 가만히 가늠해보니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계속 대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먼저 알고 나중 아는 것일 뿐, 모르는 것은 필요하면 배우고 익혀서 알면 되는 것이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라면 일찍부터 알고 깨닫는 것이 좋겠지만요.^^

그…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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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간 한국에서는 어제 준비한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추석날 아침 식사를 하셨을 겁니다.
추석 아침 식사가 지나고 많은 설거지를 마친 다음 조금 한가해지는 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드려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예희네가 들렸다 갔어.
예희네 작은 아빠가 복숭아도 한 상자 사오시고 형 대신이라며 용돈도 주고 가셨어.
형 대신이라고…………….
고맙다고 전화 한번 해.
다른 얘기는 나중에 하자.”
전화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다지 밝지 않은 것 같아 강윤이에게 다시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손자 목소리를 들려주면 좋아하시려나 했는데 지금 송편 만들고 있다며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십니다.
우리 가족이 곁에 없어서 허전하신지…

강화 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할아버지, 난 강윤이.”
“그래, 강윤이구나.’
“응.”
“응이 뭐야. 존댓말 해야지!”
“아빠 바꿀게요.”
“저예요.”
“(흐뭇한 웃음) 그래, 그래.”
아버님은 손자보다 아들이 더 좋으신가 봅니다.
강화 부모님들을 제 나름대로 이해해 보면 이렇습니다.
조금 특별한 첫 손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시는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고, 둘째 손자를 맞이해서는 첫째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 그대로 지내다 보니 손자들과 많은 정을 나누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자잘한 정을 나누는데 서투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목회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아깝지 않게 헌신하신 부모님들이십니다.
어머님은 미국에 다녀가신 후, 강산이를 위해서는 그 동안 기도를 많이 했는데 강윤이를 위해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주시는 모든 것들은 아들이든 손자든 다 우리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인 것을 압니다.
예희네 목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사돈 어른-그러니까 제 부모님이시죠-용돈까지 챙기는 서방님과 동생(동서) 부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어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정말 감동입…

블랙(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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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Black)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영화라 낯설지 않을까 했는데, 그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 때문에 오히려 친밀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는 인도판 헬렌 켈러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작 헬렌 켈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저 들어서 아는 한 두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장애우, 애니 설리번 선생님…
사전 지식 없이 영화 자체를 보아서도 그렇고, 제 삶과 연결 고리가 많아서 그랬는지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8월27일에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입니다.
블랙(Black)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마다 요즘에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라는 것을 꼭 덧붙이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한국 상영관 개봉작이라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저는 한국 상황과 동떨어지는 것이 아직은 낯선가 봅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번 주 밀알 사역자 모임에서 나누었습니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 블랙(Black, 2005년, 인도)
감독, 각본 - 산제이 릴라 반살리
미셀 맥날리 역(라니 무커르지), 데브라이 사하이 역(아미타브 밧찬)

맥날리 가족을 보며
장애를 가진 자녀를 맞이하고 함께 성장해 가는 가족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장애를 가진 딸 미셀을 존엄한 한 생명으로 보기 보다는 불쌍하게 여기고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둔다. 그러다 보니 8세까지 멋대로 자란 미셀은 집안에서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아버지는 미셀을 기관으로 보내려고 한다. 기관에 보내기 전에 마지막 희망으로 특수교사인 사하이 선생님을 초청하게 되고, 미셀이 사하이 선생님과 관계를 형성하고 블랙의 세상에서 빛으로 나아오기까지 부모님은 걱정, 기대, 신뢰, 여유 있는 웃음과 눈물로 그들을 지켜보며, 끝까지 미셀의 곁에 남아 자랑스런 딸로 받아들인다. 동생 사라도 부모의 관심이 온통 언니 미셀에게 가 있어 질투도 하고 외로움도 느끼지만 결…

캠프힐(Camphill)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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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벨리토빈 캠프힐>
-캠프힐(Camphill)은 장애우를 위해 만든 생활공동체로, 1940년 슈타이너의 인지학(발도르프 교육으로 알려져 있다)에 깊은 영향을 받은 칼 쾨니히 박사가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애버딘에 처음 설립했고, 지금은 100여 개의 공동체가 세계 각국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어제는 하루 종일 캠프힐(Camphill)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틀란타 밀알 선교단이 내년 1월이면 창립 10주년이 됩니다.
저야 지난 해에 밀알을 알게 되었지만 그 동안 밀알과 10년을 함께 해온 분들은 장애우 가운데 어릴 적 만났던 친구들이 어느새 커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고등학교 마지막 12학년을 다니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으로 공교육을 마치게 되면 어떤 선택이 있는지 아직 잘 모르지만 직업을 갖는 친구들도 있고 가정에 머무르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밀알에서는 지난 날들의 결과물들을 발판으로 새로운 꿈을 꾸어보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성인 장애우를 위한 주간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주간 프로그램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애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왠지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딱딱하게 들리고 형식적인 단어처럼 여겨졌습니다.
성인 장애우들을 위한 것이라면… 활동… 생활… 지속적이고 창조적인 삶… 하며 생각을 이어가다가 캠프힐에 생각이 가 닿았습니다.

게으르기도 하지!
언젠가 밀알 어머니들이 한국 방송에서 장애인 공동체에 대해 방송하는 것을 보았다며 몇 분이 얘기하는 것을 듣기도 하고, 얼마 전 동생과 전화하면서 그 방송 내용이 캠프힐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 아직도 찾아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 공동체에 대한 어렴풋한 꿈을 꾸어보기도 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그런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어쨌는지...


90년대에는 같은 대학을 졸업한 선후배 10 가정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아이들이 잠든 밤에는 아내들과 남편들이 따로 …

추억 속의 Sweet Music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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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어김 없이 계절이 바뀌고, 해마다 그것을 경험하면서도 늘 느낌이 새롭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기 위해 강산이와 스쿨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선선한 기운이 짙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득 “Sweet Music Man“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알던 친구입니다.
지금까지도 그저 알던 친구, 착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아이라는 정도의 생각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 글을 쓰려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감성이 풍부하고 다재다능하며 무엇보다도 아주 잘 사는 집 아이면서도 잘난 척 하지 않던 꽤 괜찮은 녀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자기가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당시 레코드 테이프나 LP판을 파는 가게에서 자기가 원하는 곡을 뽑아 녹음해 주는 것이 유행이었던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집에 있는 테이프에서 골라 직접 녹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녹음 테이프를 받았을 때는 정성이 들어간 선물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노래 제목들과 틀린 단어는 뒷장에 “틀릴걸 틀려야지…” 라는 귀여운 한 마디 말과 함께 고쳐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제목을 적는 모서리 한 귀퉁이에는 “오랜 세월 듣기 위해서는 자주 듣는 것을 삼가” 라고 친절하게 적어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가 고른 노래들은 잘 알려진 팝송들이었고 안목 있는 선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팝송에 관심도 없었는데 그 녹음 테이프에 담긴 16곡을 알고 난 다음부터 팝송 한 구절 흥얼거릴 수 있는 문화인(?)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그 친구와 인천 월미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카페들과 횟집만 줄지어 있는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였습니다.
길지 않은 거리를 어느 만큼 걷다가 멈추어 바다를 바라보며 얘기하고 있는데 어느 카페에선가 Kenny Rogers의 “Sweet Music Man”이 거리로 크게 흘러나왔습니다.
“어! 저 노래 니가 녹음해준 첫 번째 꺼다” 했습니다.
그 친구가…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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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주간 드라마를 꼭 챙겨보는 모습이 조금 재미있기도 하고, 뭔가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텔레비전 드라마 가운데 두어 개쯤은 늘 시청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기서처럼 “반드시” 보아야만 하루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구요.
오히려 텔레비전 보지 않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한국 방송을 신청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볼까 싶어서(ㅎㅎ) 어쩌다 눈에 띄는 드라마 하나 정도 골라 보는 재미를 누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선덕여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총 50부작 가운데-62부작으로 늘렸다는 얘기도 있어요- 이번 주에 30회까지 방송을 보았습니다.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이 주연과 조연으로 등장하고,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 대부분이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드라마 한편 한편이 흥미진진하고 다음 내용이 기다려집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아주 짧게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둘째 공주(덕만)가 황실에 쌍둥이가 태어나면 남자의 씨가 마른다는 미완성의 예언 때문에, 왕권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어 시녀의 손에 맡겨져 낯선 나라에서 자신의 신분을 모른 체 자라게 됩니다.
덕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남장을 하고 계림(신라)으로 돌아와 화랑의 낭도가 되어 궁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지혜와 용기가 있는 덕만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자신이 버려진 공주인 것을 알게 되고, 29회 방송에서는 드디어 공주의 신분으로 궁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선과 악이 공존하듯이 신실한 덕만의 대적으로 미실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미실은 진흥왕, 진지왕, 그리고 덕만의 아버지 진평왕까지 가까이 한 첩(궁주)이었고, 진흥왕이 미실을 아껴 임금의 옥새를 맡겼다 해서 새주라고 불렸다 하니 그 권세가 어떠했는지 드라마에서 한껏 보여주고 있습니다.
귀족과 군사권을…

비가 내리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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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비 오는 모습이 좋습니다.
먹빛 구름이 큰 숨을 들이쉬고 잔뜩 참았다가 한꺼번에 내뱉는 것처럼, 비가 그렇게 옵니다.
아주 거세고 힘차게 내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잠깐이든 한나절이든 오던 비가 그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맑아집니다.
비가 내렸으면서도 끈적한 습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아 더 신기합니다.

또 하나 좋은 것은 맑은 날의 하늘빛과 구름입니다.
청명한 하늘빛 바탕에 풍성한 구름이 어울려 있는 모습은 그대로 명화가 될법합니다.
하늘은 왜 그렇게 끝없이 넓어 보이는지요.
그런 하늘을 보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날마다 보는 하늘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살만한가 봅니다.
뜬 구름 얘기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할찌어다 /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찌어다 /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찌어다 /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찌어다 /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시편148:1-5)

예,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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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니 몇 달 전부터 “예” 할 때와 “아니오” 할 때는 언제일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예, 아니오 하는 것이 좋을까, 자꾸 생각해봅니다.

눈길이 닿는 그 무엇을 보다가도 그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오릅니다.
운전을 하다가 빨강색 신호등을 보고 멈추어 섰다가, 신호등 불빛처럼 분명한 자기 표현이 좋은 거야 해봅니다.
신호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능력인 빨강, 노랑, 초록의 빛을 적절한 때에 바꾸어 교통의 흐름을 조절하듯, 자기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로 예와 아니오가 너무 분명한 사람은 능력 있어 보이고 깔끔해 보이지만 인간적인 맛이 덜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교회 화단에 중고등부가 심어놓은 꽃들 가운데 여러 가지 빛깔로 조화롭게 피어 있는 꽃에 눈길이 머물면서, 분명한 자기 색깔은 없어도 저렇게 예쁠 수 있는데, 해봅니다.

우리 집에서 교회를 가다가 둘루스 시내쯤 되는 곳에 속도 제한이 35마일로 바뀌는 곳이 있습니다.
보통은 45마일로 달릴 수 있는데 그곳에 가면 갑자기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길가에 상가들이 있어 사람들의 통행이 다른 길보다 많을 수 있어서인지(?)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 길에 들어서면 달리던 속도를 확인하게 되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운전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그곳에 서 있는 속도 제한 표지판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신보다는 이웃을 향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는데 예와 아니오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능력이 있지만 조금 천천히 가는 길을 선택하는 아름다운 사람도 있는데, 하면서 생각의 고리를 이어갑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어지럽습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의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Yes)하고 아니라(No)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Yes)만 되었느니라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Yes)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융통성 없는 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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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학교 뜰에서>

고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그 당시 70여 년의 역사가 있는 학교였는데, 전통이 오래된 만큼 학교 본관 건물도 많이 낡아 있었습니다.
교실과 복도 바닥은 나무 마루로 되어 있었고, 나무 바닥을 보호하기 위하여 왁스로 걸레질을 해야 했습니다.
청소는 분단별로 나누어 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며칠 동안 모두가 청소를 했고 선생님은 꼼꼼하게 검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청소 시간에 바닥 닦을 손걸레를 개인적으로 마련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청소 시간이 되어 보니, 어떤 친구는 헝겊으로 만든 걸레를 가져 왔고 어떤 친구는 문방구에서 파는 스폰지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차!
깜빡 잊고 걸레를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문방구에서 파는 스폰지를 살 돈도 없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도 교문 밖을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청소 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쓸고 나르고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딴 생각을 할망정 청소 시간에 딴청 부리는 것은, 제겐 자연스럽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이제 왁스로 나무 바닥을 닦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잠시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하고 있는데, “야, 담임 온다!” 하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군데 군데 모여서 수다 떨던 아이들이 모두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그 중에 걸레를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은 옆 친구가 가져온 스폰지를 반으로 잘라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 교실은 교무실 옆에 옆에 있었기에 선생님이 곧 나타났습니다.
교실 앞 복도에 서있던 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저는 어떻게 할 지를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습니다.
나름대로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걸레를 가져오지 않고 가져온 것처럼 하는 것은 자신과 선생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청소 시간에 한눈 팔아본 적이 없으니, 걸레 한번 안 가져온 실수는 선생님이 어여삐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되지도 않는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