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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많았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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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찍어놓은 사진입니다. 제 사진기는 너무 낡아서...>

올해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인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던 해입니다.
태어난 나라를 떠나 전혀 낯선 나라에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어 당황스럽고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알게 된 교우들과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데 목회자 가정이라는 것과 조금 특별한 강산이 덕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아주 잠깐 동안 같아서, 정말 때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후회가 덜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마무리 될 때든지, 요즘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라야 정신 차리고 이런 다짐도 해보지만 마음과는 달리 생활 속에서 느슨해질 때가 많습니다.
뭔가 보려고 길을 나섰으나 정확히 무엇을 보고자함인지 모르거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자신과 자주 마주치는걸 보면 그렇습니다.

성탄절 아침입니다.
딱히 무엇을 할 계획이 없는지라 잠 자리에 그저 누워있었습니다.
남편이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서야 몸이 움직여졌습니다.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일을 하는 동안 이번엔 반대로 남편이 곤한 잠에 빠졌습니다.
강산이는 자기 방에서 음악 듣느라 보이지도 않습니다.
언젠가 강산이에게 CD에 담긴 찬양을 맘대로 들을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사주마 약속했던 것을 이번 성탄에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소유의 조그만 CD 플레이어를 가지고는 한나절 동안 방에서 나오질 않습니다.
강윤이는 컴퓨터 게임.
언제나 봐왔던 것과 비슷한 성탄절 풍경입니다.

어느 정도 잤는지 남편은 점심 먹고 어디든 나갔다오자며 스모키 마운틴을 제안합니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러자 했습니다.
점심 먹고 탁자 위에 놓인 과자, 쵸코파이, 바나나 2개, 그리고 물과 쥬스를 챙겨 길을 나섰습니다.
성탄절에는 식당이나 가게 문을 열지 않는다고…

빈 마음으로 맞이하는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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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가 교회 Jubilee에서 만든 카드입니다.>

곧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바로 크리스마스 캐럴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빨강과 초록빛의 성탄 장식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오심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좋은 소식을, 큰 선물을 주실 것을 바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선물을 주셨고, 새롭고 놀라운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하시고 계시는 넉넉한 분임을 믿기에 언제나 이 맘 때가 되면 들뜨는가 봅니다.
또 그 선물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풍성하게 여겨집니다.

아기 예수님이 찾아오실 수 있도록 마음 한 구석 치워놓으려 합니다.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구주의 나심을 전해주었을 때,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모두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2:15,16,20)

저는 어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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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정, 직장, 교회, 친구, 동호회 따위에서 그 역할에 맞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여성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 엄마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합니다.
여성학, 여성신학, 여성해방에 관심이 있을 때는 그리고 결혼해서도 한참 동안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이기보다 의식적으로 제 이름을 사용하려고 했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팔,구년 전쯤 폴 투르니에의 <여성 그대의 사명은>을 읽을 즈음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몇 번을 읽는 동안 내가 목사의 아내이고 아이들의 엄마이고 교회에서 사모인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축복이라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걸 상담에서 사용하는 "통합(integration)"의 과정이라고 쳐주신다면 제가 그 언저리쯤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어제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강산이가 흥얼흥얼 찬양을 합니다.
“해가 뜨는 아침에 주를 찬양하리
햇빛 찬란한 낮에 주를 찬양하리
별빛 반짝일 때에 주를 찬양하리
캄캄한 밤에도 주를 나 찬양하리라”
한국에서 할머니들 오시면 불러드리겠답니다.

오늘은 “일어나라 일어나라” 해도 꿈지럭대더니 결국은 스쿨버스를 놓쳤습니다.
버스 기사에게 먼저 가라 했더니 “~bring him" 뭐라고 합니다.
나보고 데리고 오겠냐고 하는 것 같아 “그러겠다”고 얼떨결에 대답했습니다.

버스가 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텐데 강산이 방에 가보니 부시럭 부시럭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모른 척하고 “너 오늘 학교 안가지?” 하고는 켜있던 전등을 다 껐습니다.
그런데 계속 소리가 들리는걸 보면 먹고 씻고 입고 있나 봅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리, 차고로 나가는 문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 날까 싶어 얼른 뒤따라 내려가며 ‘이걸 그냥.... 아까 버스 기사한테 대답만 안했으면...’ 해봅니다.

아침 나절…

수다스럽고 뇌쇄적인 여행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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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보면 꿈만 같습니다.

이 곳에 오면서 여러 가지 기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에서도 가까이 지내던 친구네 가족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나 아이들까지도 모두 똑같이 “만남”에 대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찾아가면 되겠지만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 집까지 가는데 자동차로 10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운전하는 여건이 좋을 경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서 10시간 정도의 운전은 할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남편들끼리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주고 받다가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가네 그들이 오네 했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그 친구네가 플로리다로 여행을 가면서 가고 오는 길에 우리 집에서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게다가 더욱 먼 곳에 사는 친구도 함께 플로리다로 여행을 하기 위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풀어 있었는데, 플로리다에서 머무를 집에 방이 여럿이라며 여건이 되면 여행을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나게 좋은 제안이었지만 혹시라도 가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할 수 있는 3일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얼씨구!!! ㅋ ㅋ ㅋ’

친구네 두 가족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함께 먹을 것들을 사서 먼저 플로리다로 출발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 늦게 그들과 합류할 예정입니다.

그날 저녁...
남편은 교회에서 무슨 교육이 있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들과 저는 저녁을 먹고 슬슬 짐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새벽 일찍이 떠나기 위해서입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짐 챙겨서 교회로 9시까지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강윤이가 바라던 대로 밤에 출발할 모양입니다.

우리는 밤10시 가까이 되어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소풍 떠나는 들뜬 마음이 차 안 가득합니다.
자야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