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7/2008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강산이를 태운 스쿨버스가 오면 빨리 나가기 위해 기다리는 곳이예요>

어제부터 강산이가 스쿨버스를 탑니다.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는 시간이 6시15분으로 정해졌습니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 될 것 같습니다.
강산이는 스쿨버스를 탄다는 새로운 사실에 어제, 오늘 아침 시간을 잘 지켜주었습니다.

아직 어둑한 새벽에 소리 없는 사이렌 불빛 같은 것이 번쩍거리면서 길모퉁이를 돌아오는 스쿨버스가 보입니다.
버스 기사와 강산이의 약속이 지켜지는 순간입니다.
버스 기사 아줌마와 “Good morning" 인사하면 기분이 더욱 좋습니다.

일이 하나 하나 해결되어 나가니 또한 좋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필요하다고 얘기해야 하고, 서류를 작성해야 하면 잘 써서 갖다 내야하고, 또 여기에 교우들의 도움이 보태질 때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도움을 주시는 분들의 그 사랑을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목회자 가정이라는 것 때문에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하나님께 그리고 같은 신앙의 길을 가는 교우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얼마 전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학교(우리 교회) 교사로서 이력서를 내야 했습니다.
이력서를 언제 써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저의 경력을 소개하면서 어떻게든 제 부족함을 메꾸어 보려고 이것저것 적어 넣었습니다.

삶을 수직적인 연대기로 살펴보는 이력서를 쓰면서 몇 년 전에 Hi Family의 가정사역 아카데미에 다닌 것도 적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성격 심리” 과목이 끝날 때 A4 한 장 반에 제출했던 짧은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 글대로 살지도 못하고 있고 그렇게 살아갈 자신도 점점 없어질 뿐 아니라 다분히 선언적인 느낌까지 나는데 왜 생각났는지....
상대적으로 제가 누리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조화로운 삶
“성숙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과제를 받고 내내 무엇일까, 무엇일까를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조화로운 삶이다’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과 조화로운 삶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조화롭게 살 수 있는지를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나 스스로가 성숙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늘 가까이에 두고 빛으로 삼는 몇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삶은 많은 사람들이 닮고 싶어하며 모범으로 삼기도 하니 저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헨리 나웬, 마더 테레사와 티벳의 라다크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들의 살았던 흔적을 잠시 살펴보며 제가 생각하는 성숙한 삶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헨리 나웬 (1932-1996)

나웬의 인생은 화려한 경력들이 많습니다. 화란에서 심리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에서 가르쳤으며, 평균 일년에 한 권 이상씩 책을 썼고,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의 경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웬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의 여정에 있습니다.
나웬은 명문대학의 종신 교수직을 버리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라쉬(L'Arche Community)의 상주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곳은 데이브레이크(Daybreak)라는 곳이었습니다. 정신지체인들의 공동체인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로 살아갑니다. 나웬은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위해 자신을 부른다고 느낍니다. 나웬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기 위해서, 그리고 넘쳐서가 아니라 모자라서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데이브레이크에서 아담이라는 청년을 돌보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아담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20대의 중증장애인 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명예를 가진 나웬은 모두가 식물인간,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한 젊은이를 위해 사역했습니다. 이 관계 속에서 대부분의 유익을 얻는 것은 아담이 아니라 나웬 자신이었음을 점차 깨달아 갔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통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마더테레사 (1910-1997)

사람들은 마더 테레사를 ‘살아있는 성인’ ‘캘커타의 성인’ ‘사랑의 심장과 철의 의지를 가진 사람’ 이라고 합니다. 마더 테레사가 가난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산 삶을 보면 노력해서 애써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흘러 넘치는 능동적인 사랑이기에 감동적입니다. 마데 테레사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1백만 달러를 준다 할지라도 나병환자를 만지고 싶지 않다’고 어떤 사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돈 때문이라면 2백만 달러를 준다 할지라도 지금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기쁘게 그 일을 합니다.”
한번은 마더 테레사가 일본에 가서 강연을 합니다. 큰 감동을 받은 자원봉사자가 캘커카에 가겠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봉사하기 위해 일부러 캘커타까지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들 이웃에 캘커타가 있으니 그 캘커타를 위해 일해 주십시오.”
마더 테레사는 종종 “가정 안의 캘커타”는 없는지 살펴보라고 일깨워 줍니다.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하고 가정에서 지속되며 가정에는 사랑할 영역이 항상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실천할 첫 번째 활동분야가 가정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라다크 사람들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라다크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천년 넘게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 왔는데, 그것이 깊은 생태적 지혜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제 마음을 잡고 있는 부분입니다. 라다크 사람들은 낭비란 없이 모든 것을 재순환 시킵니다. 다 낡아 바느질도 할 수 없는 옷은 진흙에 뭉쳐서 수로의 약한 부분에 끼워 넣어 물이 새지 않도록 합니다. 또 설거지 한 물도, 잡초들도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동체로 살면서 개인적 억압을 느끼기 보다는 깊은 안정감을 주는 곳,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무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는 곳, 적은 자원으로 완전에 가까운 자립 생활 등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영적인 깊이를 더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 아이들과 더불어 라쉬같은 장애우 마을 공동체 이루는 것을 올해 우리 가족의 사명으로 선언했습니다. 나웬과 함께 했던 아담과 같이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우리 아이가 있는 한 오랜 동안 그 사명을 간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헨리 나웬이나 마더 테레사나 라다크 사람들 마냥 그들을 흉내 내며 살다보면 지금 보다 성숙한 삶을 살게 될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12월 2002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막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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