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9/2008

Nice Guy

갑자기 바깥이 흐려지면서 집 안이 어두워지면 기대가 됩니다.
천둥이 우르릉 울리고 번개가 번쩍 하면서 조금 뒤에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질 것처럼 요란을 떱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에서 수십 번을 반복하다가 “쏴아~” 하며 내리쏟는 비가 시원스럽고 좋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가물어서 비가 조금 더 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쉬운 듯 비를 뿌리고는 천둥 소리만 멀리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가 오면 그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버지니아에 사는 친구 부부는 아내와 남편이 똑같이 비 오는 날을 엄청 좋아라 하고 정서적으로 즐기는 모습이 언제나 청년 같습니다.
또 1984년 9월 초,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는데 그것도 모르고 학교가 있는 동인천에서 석바위까지-버스로 30 여분 거리였던 것 같아요-비 맞으며 실내화 신고 함께 걸어갔던 친구가 떠오릅니다.

학교 모자 챙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시선을 고정하고 우산 가지고 학교로 마중 나온 엄마들과 함께 돌아가는 아이들이 부럽지 않은 척, 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척 논길을 걷고 있는 초등학교 때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있기도 합니다.

기질적으로 행동하는 삶 보다는 생각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삶의 구조가 정적(情的)이어서 그런지 이런 저런 혼(魂)의 조각들을 가지고 사는 것 같습니다.

뭔가 글을 써야 될 것 같은 오늘 한나절은 "nice" 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곳에 와서 많이 듣게 된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nice guy"가 되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nice"의 사전적인 의미 1번은 좋은, 괜찮은, 훌륭한, 기분 좋은, 만족스러운, 매력있는 입니다.
대화 속에서는 친절한, 다정한의 의미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나이스한 사람은 보기에 꽤 괜찮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주일 오후 교회에서 일일 가족 휴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찬양 사역팀이 중심이 되어 교우들이 장기 자랑도 하고 열린 음악회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상품이 정말 푸짐해서 마지막 쿠폰 번호를 부를 때까지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장애우를 위한 사역을 하고 있는 JUBILEE에서도 우리 친구들과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이 한 팀이 되어 출연했습니다.
한 형이 찬양을 랩으로 부르고 강산이가 드럼을 치고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이 함께 노래하고 연주했습니다.
연습한 시간이 길지 않았는데 훌륭한 노래와 연주를 보여주었습니다.
랩퍼인 형은 은빛 나는 이른바 갈치 양복으로 멋을 냈고, 찬양을 맡은 선생님은 딸이 입는 찢어진 청바지로 분위기를 띄우시고, 강산이는 교회 연주팀이 사용하는 드럼으로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한가득입니다.


또 다른 형은 이번 주에 생일인 교우들을 위해 실로폰으로 Happy Birthday와 God is so great를 선물했습니다.
연주가 다 끝나고 수줍은 듯 인사하는 형의 얼굴이 더욱 귀엽고 밝아 보였습니다.

무대 옆쪽에는 JUBILEE 팀을 응원하기 위해서 프로그램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친구들과 함께 앉아 계시던 선생님들과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우들은 우리 JUBILEE 친구들에게
“아니, 정말 걔는 뭔가 알고 있다니까요”
“정말 잘해요”
"I’m so proud of you"
“가슴이 찡 했어요”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연약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격려하는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참 나이스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젊게 매력적인 삶을 사는 친구 부부도요.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시147:1)

7/22/2008

함께 크는 집

책을 사면 이름을 써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다른 종이보다 조금 더 두꺼운 표지를 들추고 한두 장을 넘기면 제목, 지은이와 출판사가 찍힌 표지와 거의 비슷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 어딘가에 언제, 어디서, 왜 사게 되었는지 두어 줄로 쓰고 남편과 제 이름 혹은 저와 남편 이름을 적어 놓습니다.
아이들 책에는 형, 동생의 이름을 혹은 강윤이 이름만 남겨 놉니다.

어릴 적 엄마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과 세계백과사전을 사주신 적이 있습니다.
대학 다니기 시작할 무렵 그 책들 가운데 하나를 무심코 폈는데 표지 안쪽에 책을 구입한 날짜와 저와 동생들, 세 남매의 이름이 보였습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오늘에야 돌아보니 자녀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남겨 놓은 엄마의 흔적이 기분 좋았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부터 엄마를 따라 하게 되었고 책꽂이에 자리 잡고 있는 책 가운데 여러 책들에 저의 흔적을 남겨놓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오면서 가지고 있던 책을 거의 지인에게 주거나 재활용으로 버렸습니다.
끝까지 남은 책들은 최근에 관심있게 본 책, 목회에 필요한 교과서 같은 책,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영성(?)과 관련된 책, 그리고 한글과 한국 정서를 기억할 수 있는 아이들 책입니다.

저도 좋아하는 아이들 책을 몇 권 꺼내어 열어보니 그 책들을 갖게 되었던 때가 확 살아납니다.
『짜장 짬뽕 탕수육』 “당당하게 살자” 2002.11.6(수) 강산.강윤
『조커-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엄마가 사주려고 했는데 강윤이가 고른 책” 2005.3.22
『리네아의 이야기3-신기한 식물일기』 강산.강윤 “언제 봐도 해맑은 리네아가 좋다” 2007.5.23
제가 뭘 이야기 하려고 책에다 남들도 많이 하는 싸인(sign) 얘기를 주절주절 하고 있는지....


얼마 전 다시 읽게 된 책 안쪽을 열어보니 “*** 목사님의 저자 소개로 구입하다/2000.11” 라고 쓰여 있습니다.
개신교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의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라는 책입니다.
아마 그때는 십대를 바라보는 지은이의 관점이 궁금해서 그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읽고 나서 구체적인 내용 보다는 전체적으로 “그래, 맞아” 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12개의 작은 제목 하나하나에 대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강요하지 마세요” “왜 날 항상 못 믿으시는 거예요” “엄마 아빤 위선자예요”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

강윤이는 요즘 들어 부쩍 무엇인가를 제안하면 생각이 같거나 하고 싶은 것이어도 “아니” “싫어”가 먼저 나옵니다.
제 생각에는 조정이나 타협 없이 “마땅히” 해야 할 것들도 강윤이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개학하면 중학교에 가게 되는데 해야 할 방학 숙제가 딱 하나 있습니다.
학교에서 제안해준 6권의 책 가운데 하나를 읽고 독후감 같은 것을 자기소개와 함께 쓰는 것입니다.
강윤이는 처음부터 숙제를 하지 않겠답니다.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저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가을에 지은이가 학교를 방문한다는 그 책을 사다 주었습니다.
185 페이지나 되는 영어 소설을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표지에 있는 소개의 글이나 머릿글이라도 함께 읽고 숙제를 해주길 바라는 것이지요.
강윤이는 초지일관입니다.

그렇다면 영어 공부 쪼끔 하느라 도서관에서 빌린 그림책들 가운데 생각나는 부분들을 옮겨보고, 한국에서 읽었던 그림책 가운데 영어로 된 책이 있어 그걸로 숙제를 대신해 보자 제안했습니다.
아직 강윤이에게 이렇다 할 반응이 없습니다.

강윤이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부모의 힘과 지혜를 가지고 통제하는 것이 많았다면 이제는 독특한 강윤이 자신이 되도록 허용할 부분이 커지나 봅니다. 통제와 허용의 경계가 어딘지 조금 혼란스럽지만 깨닫고 경험하게 되겠지요.
유진 피터슨은 “젊은 성인에게 아기가 하나님의 선물인 것처럼, 청소년기 자녀는 중년의 성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면서 자칫 성장이 멈춰버린 중년의 부모가 자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미국에 와서 정기적인 기도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결국은 강윤이를 빌미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때문에 사람과 관계 맺는데 어려움 겪는 것을 보면서 또 그것 때문에 감정이 상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제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기적인 기도인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Summer Camp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강윤이-더불어 가족들 모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제 간절한 소망 받아 주시길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Summer Camp 마지막인데 제 나름대로 정한 40일도 끝날 것 같습니다.
기도할 수 있도록 예민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사랑스러운 강윤이 주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깰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하나님이 우리 강윤이를 엄청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요.
강윤이도 하나님 사랑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게 해주세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되게 해주세요.
강윤이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우리가 깨닫길 원합니다.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지혜도 주세요.
오늘 Summer Camp 즐거운 시간되게 함께 해주세요.
신실하고 정직하고 즐겁게 아이들과 함께 커가는 부모가 되고 싶어요.”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에 오래 전 남겨놓은 메모 위에 이렇게 덧붙여 놓았습니다.
“강산 15세, 강윤 12세-2008.7 아틀란타에서 두 번째 읽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22)

7/15/2008

햇빛이 따갑다고 뛰지 않는 것처럼


강산이는 밀알 선교단(WHEAT MISSION IN ATLANTA)에서 알게 된 태권도 반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태권도장에 가면 사범님이 계시고 자원 봉사자-거의 고등학생들-이 우리 아이들을 돕습니다.
자원 봉사자 가운데 여학생들은 여리고 귀여워 보입니다.
수줍은듯 하면서도 붙임성 있게 우리 아이들을 돌봅니다.
또 남학생들은 말이 별로 없고 무뚜뚝해 보여도 시범도 보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번쩍 안아다가 제자리에 놓아주기도 하면서 성실하게 제 할일을 합니다.

장애우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저의 고등학교 시절과 비교해 보면 밀알에서 만난 자원 봉사자 학생들은 참 훌륭해 보입니다.
게다가 부족한 내 자식을 돌보아 주니 더욱 예뻐보이나 봅니다.

다른 장애우의 어머니들 마음도 저와 다르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태권도반 어머니들은 자봉들-자원 봉사자를 줄여서 "자봉"이라 부릅니다-의 수고에 보답하는 차원으로 하루 나들이를 계획했습니다.

나들이 준비를 맡으신 분들은 조금이라도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려고 김치도 손수 담그고 장을 몇 번씩 봐가며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나들이 장소는 산도 있고 물도 있고 그래서 TUBING도 할 수 있는 HELEN, GEORGIA 입니다.

HELEN에 도착하여 밀알 단장 목사님의 안내로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점심 먹을 짐을 내리고는 바로 폭포(WATER FALLS)를 보러 갔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와서 폭포 있는데 까지 올라 갈 수 있을까 했는데 얘기하며 가다 보니 힘들이지 않고 어느새 폭포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 휠체어를 탄 친구도 자봉들이 밀어주고 올려주면서 함께 갈 수 있었습니다.
잠깐 폭포 주변을 돌아보고 강산이 말처럼 물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폭포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왔습니다.



폭포에 가지 않고 남아 있던 어머니들이 맛난 음식을 다 준비해 놓으셔서 내려오자마자 점심을 먹었습니다.
넉넉하고 한가로운 식사를 마치자 아이들이 하나 둘 계곡 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손에는 컵을 하나씩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보니 뭔가 잡아볼 속셈인가 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작은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돌을 옮기며 놀기도 하고 서로 물을 뿌리며 신나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힐체어를 탄 또 다른 친구도 물에 발을 담구고 놀았습니다.
두 분 어머니도 아이들 한편에 앉아 있다가 강산이가 물을 뿌려 옷을 적시기도 했구요.
굳이 TUBING을 하지 않아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자봉들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많이 함께 오지 못한 것입니다.
적당히 놀고 나서 오후 약속이 있는 분들이 있어 늦은 3시30분쯤 우리가 있던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살짝 잠이 들고 저는 어느 어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주로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에 대한 얘기들이었습니다.
"18개월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예요."
치료받기 위해 그리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가족들과 이곳 저곳 다니며 놀기도 하고 속마음도 털어놓으며 위로 받기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장애는 질병이 아니라 완치가 없다잖아요. "
"그렇죠."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며 짧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가족은 3년 전에 미국으로 왔는데, 아이가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때에 미국에 와서 영어를 새로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을 보니 조금 일찍 올껄 그랬다고 합니다.
또 얼마 전에 영주권 신청에 들어갔는데 요즘은 영주권 받기가 힘들어져서 3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합니다.
게다가 장애가 있는 자녀를 위한 정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시민권자나 영주권을 받은지 5년이 지나야 가능하다고 하니 하루가 아쉬운 것이죠.
저희와 미국에 온 시기는 다르지만 이런 형편과 필요는 저희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주차해 놓은 제 차로 가져온 짐을 옮기려는데 그 어머니가 다가와서 짐을 나누어 들어줍니다.
자기도 챙겨야 할 것들이 있을 텐데 이렇게 마음을 나누어 줄 때는 정말 감동입니다.

햇빛이 따갑다고 뛰어가지 않는 것처럼 그 어머니나 저나 장애우 가족으로써 조급해 하지 않으면서도 행복한 가정에 대한 소망을 품고 건강하고 알찬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언제나 밝고 환하게 잘 웃는 그 어머니와 소박하지만 은은한 향기를 품고 들판이나 아스팔트 틈새나 생명을 피워내는 들꽃같은 저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 계획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7/08/2008

어리버리 해도 좋은 선택을 했습니다



며칠 전에 불꽃 놀이를 한다고 하여 MALL OF GEORGIA 근처에 갔었습니다.
아는 목사님들 가족이 함께 모인다고 하여 여럿이 보면 더 좋을 같아 냉큼 끼어들었습니다.
모이는 곳이 자동차로 30 여분 걸리는 곳이라 저녁 먹고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여기는 자동차를 타지 않고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9시나 9시 반쯤 해가 지고 어두어지면 불꽃 놀이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주 여유롭게 8시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불꽃을 볼 수 있는 거리 주변에 간이 의자나 돗자리를 펴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먹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아마도 더 일찍 나와서 저녁 식사를 하는듯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여유가 있는 주차장에 느긋하게 차를 세워놓습니다.
옆 차를 보니 중년을 조금 넘긴듯해 보이는 부부가 자동차 트렁크 문을 열어 놓고 앉아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습니다.
"우리도 한 번 해 보자"며 흉내를 내보았습니다.

약속한 사람들도 아직 오지 않았고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하는데 강윤이가 주차장 옆에 햄버거 가게가 있는 것을 보더니 금방 저녁을 먹고 왔으면서도 행버거를 먹겠다고 합니다.
더 먹고 싶다는데 딱히 안된다고 할만한 이유가 없고 시간도 넉넉하여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문하려는 번호와 햄버거만 따로 하나 주문하기 위해 햄버거 이름을 단단히 기억하고 거기에 눈치를 보태어 주문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음료수를 담아 오자 주문한 음식이 나옵니다.
강윤이는 봉투 안에 있는 감자 튀김을 보더니 케찹을 가져가자고 합니다.
케찹 넣을 아주 작은 그릇을 하나 빼서 케찹을 부으면 됩니다.
케찹이라고 써 있고 입구가 좁은 수도꼭지처럼 되었는 곳에 그릇을 대놓고 검은색 버튼을 누르는데 버튼이 눌러지지도 않고 케찹은 당연히 나오질 않습니다.
눌러도 보고 돌려도 보지만 안됩니다.

마침 옆에 어느 남자가 냅킨을 가지러 왔길래 "Excuse me. Can I help you?" 했습니다.
그 사람은 강윤이가 꼭지 끝에 그릇을 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얼른 알아채고 검은색 버튼을 쭉 들어 올리더니 아래로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케찹이 그릇에 담길 만큼 적당한 양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제 됐다.'
친철한 그 사람을 바라보며 "Thank you" 하는 순간........
"강윤아, 빨리 나가자."
"왜?"
"야, 엄마가 Can I help you? 그랬어."
강윤이도 무슨 뜻인지 알고는 "그거 엄마가 도와주겠다는 거잖아?" 하며 낄낄대며 웃습니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리 챙피하고 웃기던지 가게를 나와서는 강윤이 하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강윤이는 비밀로 해주겠다며 계속 제 앞에서 "Can I help you?"를 반복합니다.

한국에도 그렇게 케찹 따르는 장치가 없지 않을 것 같은데 일 년에 햄버거 몇 번 먹을까 말까했기에...
거기다 서툰 영어 실력까지 고스란히 들어내고...








아이들이 "웃기는" 햄버거를 먹고 있는 동안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목사님이 여러 가지 간식 꺼리를 가져오셔서 자리 잡고 앉아 먹으며 한참을 기다려 20 여분 동안의 불꽃 놀이를 보았습니다.
불꽃이 펑펑 터지는 동안 말없이 바라보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광화문의 촛불 하나가 되어보았습니다.

이곳에서 오래 사신 분들 가운데 "미국에 오니까 좋아요?" 물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미국이라는 곳에서 이제 겨우 4개월 남짓을 살고는 그 물음에 답할 수가 없어 늘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혼자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곤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꾀하던 시기에 이곳에 오게 되었고, 감히 하나님 뜻이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목회를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나 좋은 선택이었다구요.


*********

강윤이를 한인교회에 데려다 주고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3주 동안 계속될 SUMMER CAMP가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주에 한 번씩 FIELD TRIP이 있는데 오늘은 ALABAMA에 있는 HYUNDAI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이곳에 우리 나라 자동차 공장(?)이 있다는 것이 괜히 좋습니다.
교회에서 3 시간쯤 가야 한다고 하는데 강윤이가 무엇을 보고 올 지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
자동차 공장이 있는 것인지, 일하는 한인들이 많은지, 그 규모는 얼마나 큰 지, 그 모든 것을 돌아 보고 느낌이 어땠는지 강윤이에게 물어보려고 합니다.

7/02/2008

강윤이의 BREAK TIME에 맞추어

이번 주는 강윤이 SUMMER CAMP BREAK 입니다.
방학 중의 방학인 셈이죠.
'집에 있으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 ' 했는데 나름대로 시간을 잘 보내고 있습니다.


월요일에는 남편이 쉬는 날이라 BUFORD DAM에 가서 바람쐬고 왔지요.
댐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그 물이 조금 빠르게 흘러가는 모양을 멀리서 바라보았어요.
그것 뿐이었어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년에 예희네 오면 무엇을 보여주고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를 염두해 두고 나같던 것 같아요.
"예희야, 내년에 꼭 와야할 것 같다, 그지?"


언제부터인가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강윤이를 찍어보려고 장난쳐가며 애쓴 결과 겨우...




그제와 어제, 늦은 5,6시쯤 우리가 사는 동네(subdivision) 안에 있는 수영장에 갔어요.
여기는 동네마다 수영장이나 테니스장.... 같은 편의 시설이 갖추어진 곳이 많이 있나봐요.
수영장이 바로 코 앞이니까 아이들은 수영복 바지 입고 셔츠 입고 수건 한장 가지고 가면 됩니다.
전 그냥 옷 입고 가서 아이들 지켜보면 되구요.
수영장을 보아도 별 맘이 없었는데 막상 가고 보니 북적거리지 않고 한참 지루한 오후에 아이들 기분전환 하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BREAK TIME에 마냥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예요.
강윤이는 틈틈히 영어 공부도 합니다.
영어 공부가 틈나는대로 해서 될 것이 아니지만 강윤이에게 도움이 되려면 즐거운 마음이어야 한다고 여기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정도로 하고 있습니다.
개학해서 학교에 다니면 강윤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日將月就) 하리라 저는 그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밀알에 가서 소식지 발송하는 일을 조금 도와드렸습니다.
일을 마칠 때까지 강산이 강윤이도 거들었습니다.
제게는 기특한 아들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