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2008

“어머님, 저 김치 담궜어요!”

결혼한 지 17년이 되었는데 이제야 김치를 담궈봅니다.
부모님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미국 땅에서 어쩔 수 없이 담근 김치입니다.

결혼을 하면 집안 일 가운데 김치는 담굴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치를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김치 먹지 못했어요.--!
양념을 많이 넣으면 맛있을 줄 알고 생강을 듬뿍 넣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뒤로 김치를 한 번도 담그지 않았어요.
그 때는 음식 만들기를 포함한 집안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더 중요한 이유는 교우들이 주신 김치와 음식들이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
첫 목회를 했던 강화 성은교회.
그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뭉클합니다.

첫 목회지를 떠난 다음부터 미국에 오기 전까지 어머님이 김치를 끊이지 않고 보내주셨습니다.
김치를 다 먹을 때쯤 되었다 생각하시면 떨어지기 전에 말이예요.
그래서 정말 단 한 번도 김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부끄러운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복(福)인 것 같기도 하고.
김치 만들어 볼 틈을 주지 않으신 어머님 탓인 것도 같고???
김치뿐이 아닙니다.
쌀과 잡곡, 야채, 도토리 묵 가루, 온갖 나물들.....

얼핏 듣기로는 아들네 사는 이 미국에 다녀가실 계획을 가지고 나물들을 말리고 계신다고 합니다.
“강산 어미가 질경이 나물을 좋아하는데” 하시면서요.
자꾸 눈이 뜨듯해지네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 거리감이 그리움에 사무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찌할 도리 없이 김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잘 없어지지도 않던 김치를 이곳에 와서는 왜 그리 빨리 먹는지 벌써 세 번째입니다.
어머님과 엄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을 ‘먹고 살아온’ 세월이 헛것은 아니었는지 음식 맛을 그런대로 흉내내 봅니다.

그리고 집 뒷쪽에 아주 조그마한 빈터가 있기에 깨 모종을 심어보았습니다.
밀알에 갔다가 어느 어르신이 손수 길러온 모종을 나누어 주시길래 얼른 받아온 것입니다.
모종 삽이 없어 부러진 나뭇가지로 흙을 파고 다섯 개를 심었습니다.
심은지 몇일이 안되어 잘 자라고 있는지 아침마다 눈길이 저절로 갑니다.
지난 토요일에 심었는데 밤새 어찌나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지 정말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곡식과 채소 키워 자식들에 나누줄 마음으로 논과 밭을 살피시던 아버님과 아빠의 마음도 헤아려봅니다.

“어머님 그리고 엄마.
남편과 아이들이 먹을만 하다니 너무 걱정마세요.
잘 살게요.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댓글 3개:

  1. 누나가 담근 김치 먹어 보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누나가 영어가 익숙해져서 이런 글을 영어로 쓰게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게 될 것 같아. 그리고 기왕이면 전에 교회 홈페이지에 썼던 가족관련 글들도 모두 가져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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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어로 쓰기 조오치~~~
    영어 열심히 해보려고 마음은 먹고 있어.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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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열무물김치 맛있게 담그는 법.
    오늘 가족 모두 함께 식사했던 곳 주인아주머니께 열무물김치가 맛나길래 담근 법을 어머님들이 물어봤어요. 그래서 김장 걸음마를 시작한 언니에게 도움을 주고자 비법을 적어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물이라네요. 그곳에서는 약수물로 담그었다는데 미국에도 약수물이 있기는 한지...
    금방 뽑은 연하고 싱싱한 열무로 다듬은 후 저리지 않고,
    배를 갈아 즙을 내고 양파도 갈아 즙을 낸 후 물에 두가지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자신의 입에 맛게 맞춘후 설탕을 조금 첨가.쪽파 넣고 마늘과 생강을 얇게 저며 넣고 입맛에 따라 청량고추를 넣어도 됨.
    모든 재료를 넣은 물에 열무를 넣어 맛을 들이면 된다고 하네요.
    어찌되었던 어머니들이 오늘 열무물김치가 맛좋다고 하시니 이 방법으로 한번 담그어 봐요. 언니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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