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2008

10/02/2004 - 작은 천국에서 보낸 추석

올해 우리 가족이 보낸 추석은 차분하면서도 알찼습니다.
"차분했다"는 것은 추석 음식의 가지 수를 줄여 음식 만드느라 피곤하지 않고 음식 만드는 동안 더 많은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알찼다"는 것은 '가족됨'의 의미를 되새기고 가족이 함께 모일 때의 즐거움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추석은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 했습니다.
추석 음식 가운데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송편빚기 입니다.
곱게 빻은 쌀가루를 서방님이 힘을 꾹꾹 주어 치대어 찰지게 반죽이 되었습니다.
반죽하는데도 아이들이 함께 주물주물 했음은 물론이고 송편 만드는 일에도 한몫을 합니다.

작은 집 예희는 우주선떡, 꽃떡, 네모난 주사위떡을 만들고 강산이는 모양은 송편인데 속으로 넣은 깨가 밖에도 묻어 깨버무리떡이 됩니다.
강윤이는 크게 빚어 왕떡을 만듭니다.
어머님은 이게 뭐냐고 하시면서도 말리지 않았고 동서와 나는 아이들이 만든 떡은 손님상에 놓지 않고 우리가 먹으면 된다며 그냥 놔누었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떡만드는 즐거움을 누릴 뿐 아니라 떡 만드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서?!?!

옆에서 지켜보시던 아버님은 강산이의 깨버무리 송편이 점점 많아지자 솔잎 뜯으러 가자며 아이들을 몰고 나가십니다.
아이들은 좋아라 우르르 마당으로 달려 나갑니다.

점심은 자기가 만든 떡을 찾아 먹는 재미와 송편속이 밤인지 깨인지 맞추며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점심 먹고 특별한 저녁 식사를 위해 서방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읍으로 시장보러 갔다왔습니다.
그러더니 아이들에게 망둥이 낚시 가자고 합니다.
아이들은 펄쩍펄쩍 뛰고 서두르는 모양이 무척 신이 나는가 봅니다.
시댁 마을은 강화에서도 서쪽 거의 끝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다가 가깝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수로에는 제법 고기가 잡히기도 합니다.
어느새 서방님은 그곳을 눈여겨 보셨나 봅니다.

서방님은 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이고 컵스카웃 지도교사 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레크레이션, 체육 부문에 관심이 많고 공부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올 추석에는 서방님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도 서방님도 아이들을 몰고 다니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하는 엄마들 옆에서 귀찮게 할까봐 그래서 일하는 것이 더 힘들까봐 그런 것입니다.
어머님과 동서, 저는 아이들이 나가서 노니 일하기 편하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놀아주니 좋고 그렇습니다.
아직 예람(생후16개월)이가 어려 동서의 품을 떠나지 않지만 가끔 '예쁜짓'을 해서 웃음을 자아내곤 합니다.

저녁 먹을 때가 다되어 들어온 아이들은 엉망이었습니다.
낚시를 온몸으로 했는지 다 젖어 들어옵니다.
아이들을 씻기는 것은 아버님이 하십니다.
여자들은 계속 주방에 있었으므로...

추석빔으로 마련해 놓은 옷으로 죄다 갈아입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엄마들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망둥이는 8마리 잡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낚시하는 장소에서는 잡히지가 않아 물속으로 들어가 했더니 잡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미 옷은 젖었으니 갯펄에서 맘껏 놀다 온 것입니다.
아이들 얘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어렷을 적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 고향이 일영유원지로 유명한 그곳입니다.
엄마의 할머니 일명 시골할머니 생신이 겨울이었는데 생신 때면 외삼촌 가족과 해마다 찾아 뵈었습니다.
서울 서부역에서 서둘러 기차를 타던 일, 일영역에서 시골할머니댁까지 하얗게 싸인 눈을 밟으며 걸어가던 일.
지금은 콘크리트 다리가 놓였지만 그 때는 솔잎에 진흙을 섞어 놓은 다리가 있었고, 깜깜한 저녁 집앞 다리 아래로 얼어붙은 계곡에서 돌맹이로 축구하며 미끄러져 넘어지던 일...
아주 오랜된 일인데도 생각해보면 마음이 참 푸근해집니다.
우리 아이들도 커서 강화할머니댁을 추억하는 일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아이들에게 신나는 일이 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전에는 시댁 넓은 마당을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이번에는 조그마한 그릴도 준비해서 저녁식사를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어 보기로 했습니다.
갯펄에서 한참 놀고온 아이들은 배가 고픈지 구운 고기와 밥 한그릇을 뚝딱 헤치우고 맙니다.

추석 아침,푸짐한 아침을 먹은 다음 가족이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대표기도는 둘째네.
서방님이 마다하시니 예희가 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모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음음..."
6살 예희는 몸을 앞뒤로 흔들며 얼마나 정성스레 기도하는지 예배가 마친후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희기도가 끝나자 어머님은 눈도 안뜨시고 "예희엄마 기도해라" 하십니다.
동서는 어머님과 아버님, 강산이네를 위해 기도하더니 어느새 동서는 울먹울먹 합니다.
"부족한 제가 믿음의 가족을 만나 한가족을 이루게 하신 것 참 감사합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우리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시듯 우리도 아이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부모가 되게 하여 주세요."
예희가 기도 칭찬을 받은 것처럼 어머님은 동서의 기도가 은혜스러웠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끼리 서로 배려하고 칭찬하고 놀아주고 게다가 믿음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는 모습은 마치 작은 천국 같았습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허락하신 하나님 나라를 누리니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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