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2008

09/20/2007 - 그 다음 날


영성훈련 72 시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앞집에 사시는 엄마가 준비해 놓으신 저녁을 편하게 먹고 바로 저녁 기도회에 나갔습니다.
9월 한 달 동안 육신이 연약한 자들을 위한 기도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겪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채 기도를 하는데 ‘자신을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울어주는 사모와 함께 하는 교인들은 행복할 것’이라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느껴보며 다른 때보다 더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하룻밤을 자고 나니 두 아들이 5,6학년 수련활동을 월요일에 2박3일로 떠나는데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엠마오에 있는 동안 강윤이는 “엄마 운동화 사 줘”하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아빠에게 사 달라고 해” 답장을 보냈는데 현관에 새 운동화가 보이질 않습니다.

토요일 아침이 바쁘게 시작됩니다.
운동화를 사려면 오후 4시에 교회 청소가 있으니 그 안에 시내를 다녀와야 합니다.
밀린 빨래를 두 번 돌리고 나니 조금 있으면 점심 때입니다.
시간이 어정쩡하여 점심을 먹고 나서기로 합니다.
교회 차는 남편이 볼 일이 있어 가지고 나갔기에 강산이는 앞집 엄마네 두고 강윤이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합니다.
한 20여분을 기다려도 버스가 한 대도 오질 않아 결국은 직장에 오후 출근하는 동생 차를 얻어탑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바쁩니다.
강윤이 운동화 사고 은행에 들려 돈을 좀 찾습니다.
아침에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길래 큰 치킨 집 앞에서 “사 줄까?” 했더니 됐다고 합니다.
“그럼 도너츠 사 가지고 갈까?” 해도 언제 도너츠 좋아했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지 운동화랑 운동복을 사야하니 엄마가 돈이 많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돈 없다고 궁색을 자주 떨었나? 남편과 얘기할 때 돈 얘기를 많이 했나?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보통 주부가 그렇듯이 저도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면 꼼꼼하게 가격비교를 하는 편입니다.
강윤이도 가끔 쇼핑에 함께 갈 때가 있는데 가격을 살피느라 쇼핑 시간이 길어지면 “대충 사!” 그러다가도 “그래야 돈 아끼지?” 합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그런 것인지 강윤이의 이런 마음이 느껴질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진정한 부자로 살지 못하고 진정한 부자로 살고 싶은 마음만 있나 봅니다.

수련 활동을 하려면 운동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편한 옷을 입어도 되련만 강윤이는 알림장을 보여주며 “운동복은 따로 적혀있다”고 자꾸 강조하기에 “사 주마”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정거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옷집으로 가서 형 것까지 두 벌을 삽니다.
강윤이는 기분이 좋은지 물건이 든 가방을 들고 가라해도 싫다 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보니 청소를 시작했을 시간입니다.
건널목에서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저쪽 자동차 대기 선에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서있습니다.
강윤이와 저는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버스가 오는 지 뒤돌아보며 정거장을 향하여 뛰어 갑니다.
버스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을 하고 여유 있게 버스에 올라 타고 보니 참 재미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뛸 수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 하루가 또 지나 주일 저녁에는 외사촌 동생 아들의 돌잔치에 가야 합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잔치에 가기 전에 아이들이 가지고 갈 간식과 선생님 드릴 음료를 준비합니다.
간식꺼리를 자기가 고르겠다고 강윤이가 따라 나섰는데 가만 보니 강윤이가 수련활동 가는 것 때문에 들떠 있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저녁 예배였으면 잔치에 못 갔을텐데 오랜만에 가족 모임에 참여하여 두루두루 인사도 나누고 사촌 동생들 얼굴도 보니 가족이 주는 편안함도 맘껏 느껴봅니다.

### 아이들이 수련 활동을 떠나는 월요일 새벽.
새벽기도가 끝나고 김밥집에 들러 강산이와 학습 도움반 선생님 몫을 삽니다.
강윤이는 김밥 먹으면 멀미를 더 하는지 그냥 밥과 반찬으로 싸달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깨우고 어젯밤에 챙긴 여행 짐에 빠진 것은 없는지 준비물 목록을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꺼내야 할 것들도 다 내놓습니다.
아차! 먹을 물이 빠졌습니다.
가져갈 음료가 이온음료이니 그것으로 됐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줍니다.
강윤이는 다른 날처럼 학원 차를 타러 먼저 나가고 강산이는 다른 날 보다 서둘러 교회 차를 타러 뒤따라 나갑니다.

운동 가방을 메고 있는 남편의 비어있는 손에 강산이 학습 도움반 선생님 도시락을 쥐어 주었습니다.
강산이가 작년 수련 활동 떠날 때와 올 해 수학여행 갈 때는 학교까지 가서 배웅하고 왔는데 별탈없이 잘 갔다 오기에, 이번에는 피곤하기도 하고 아이들 준비시키느라 세수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 그만두기로 합니다.
제가 따라나서지 않자 남편은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궁시렁 궁시렁거리며 갑니다.

아이들이 여행 떠난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9시 15, 10분 전쯤 휴대폰이 울려서 보니 모르는 전화번호입니다.
격양된 여자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내용인즉 강산이가 버스에 타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고 있어 선생님 몇 사람이 버스로 태워보려고 했으나 강산이가 힘이 세서 되지 않으며 자신의 팔찌도 끊어졌고 이미 버스 3대가 출발해서 뒤따라 가야 하는데 강산이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는 어느 학부모의 전화입니다.
“......”
‘강산이를 설득하러 가려면....
교회 차는 남편이 운동하러 타고 갔고 버스를 타고 간다면 2,30분은 걸릴 것이고....’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는데 그 학부모는 강산이를 바꿔주겠다고 합니다.
“강산아, 강산아!”
“응~”
“강산아 버스 타고 여행 갔다 와.”
그리고 뭐라고 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나 싫어. 여행 안갈꺼야.” 울먹울먹 대답을 합니다.

뭔가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것이 느껴집니다.
버스가 출발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만을 전달하는 그 분에게 “그럼 제가 어떻게 할까요?” 했습니다.
이미 버스가 앞서서 출발했다는 대답만 들려옵니다.
“그럼 강산이 두고 출발하세요.”
“알았어요.”
마치 그 대답을 기다린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녀석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합니다.
‘강산이가 고집 부린 이유를 알게 되면 그 때 보자.’

앞집 엄마네로 가서 동생이 출근했는지 물어보니 아직 잔다고 합니다.
동생에게 다짜고짜 강산이 학교에 가는데 운전 하라고 깨웁니다.
착한 동생은 하라는대로 들어줍니다.
학교로 가면서 동생에게 학교 가는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을 합니다.

학교 정문.
정문 앞에 관광 버스 서는 곳도 운동장도 텅비어 있습니다.
강산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버스를 떠나보내고 어딘가 혼자 있을 강산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본관 건물 앞을 살펴보다가 여행을 함께 가기로 한 도움반 선생님한테 전화를 합니다.
“선생님, 강산이 어디 있나요.”
“저랑 같이 5학년 7반에 있어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3반, 4반까지 밖에 없고 7반은 학습 도움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반 학급과 도움반과는 꽤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선생님도 함께 떠나지 못했고 강산이가 어딘가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선생님을 만나 아까의 상황 이야기를 듣습니다.
현명하신 선생님은 누구도 탓하지 않으셨고 저를 위로해주십니다.
고집을 세게 부릴 때의 강산이 태도 그리고 도움반 보조 선생님만 떠난 상황이라 도움반 다른 아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선생님 입장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강산이는 먼저 교실을 떠났고 저도 얼른 학교를 벗어나고픈 마음뿐입니다.
다시 학교 본관 건물 앞으로 내려와 보니 강산이가 없습니다.
놀이터에도 없습니다.
동생 차는 본관 옆에 세워져 있는데 교회 차를 타는 곳으로 갔나봅니다.
학교 안에서 허둥대는 제 모습이 너무 싫습니다.
강산이는 교회 차가 늘 서는 곳, 신도시 건설을 위해 길게 쳐놓은 흰 철제 담장 밑에 조그맣게 쪼그리고 앉아있습니다.
선생님 드릴 도시락은 자기 바로 옆 땅바닥에 놓고 배낭을 그대로 메고 있는 강산이를 보니 또 속상합니다.

집에 돌아와 하다 말고 간 청소를 계속합니다.
강산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고요.
강산이도 무척 속상할텐데....
강산이도 아무 말없이 집에서 입는 옷을 옷장에서 꺼내 갈아입고는 나가버립니다.
‘내가 따라갔어야 했는데 그런 건가?
그럼 따라간 아빠는 뭐 한거야.
내가 안갔다고 아이한테 짜증낸거야?
강산이가 특별한 아이이기는 하지만 학교 행사 때마다 꼭 부모가 챙겨야 하는거야?
언제까지.
선생님은 뭐하고?
그리고 그 엄마는 무슨 자격으로 전화한거지?’
하지만 이런 물음들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압니다.
강산이가 고집 부린 이유를 저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 모두 최선을 다한 거야.’
생각을 바꾸어 봅니다.
이번 일은 강산이처럼 특별한 아이를 이 지역 사회와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얼마큼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보게 해주었다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리고는 이런 맘이 들 때 얼른 저에게 전화를 주었던 어머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강산이를 위해 애써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해드릴 것은 없지만 즐거운 여행 되세요” 라고.

저녁기도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강산이는 이 날도 참석합니다.
교우들이 왜 강산이가 여기 있냐고 묻습니다.
무슨 일인지 고집부려서 선생님들도 강산이를 당해내지 못하고 떠났노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 강산이가 수련 활동을 떠나지 않은 다음 날 아침, 도움반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속상하냐고.
하지만 제게 전해지는 느낌은 이번 일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으면 하는 행정적인 절차로 여겨졌습니다.
게다가 교장 선생님은 “아빠가 왜 야단은 쳐 가지고” 합니다.
‘차라리 그냥 내버려두지.
마음 속 그 놈이 비집고 올라올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전화를 끊고 거의 방 한 구석에 있는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한 시간 동안 눈감고 앉아있습니다.
호흡을 고르게 해보려 합니다.
방에서 나올 때까지 거실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무슨 전화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 때다’ 싶어 감정은 있는대로 누르고 “당신이 강산이 야단쳤어?”로 답합니다.
“아니.”
“그런데 왜 교장은 그렇게 말하는거야? 책임회피 하는거야 뭐야 도대체....”
제 말을 듣던 남편은 “당신은 다 정리된 게 아니네” 합니다.
나름대로는 판단하려는 마음을 잘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 말을 듣는 순간 찬 물을 확 끼얹는 기분입니다.
아마도 겨우 겨우 참고 있던 모양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드러낼 수 없는 속마음을 남편에게는 마음대로 털어놓기도 하지만 언제나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정화되지 않은 속마음을 내놓으면 남편에게도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데 영향을 주기도 하니까요.
다시 제 속마음의 방향을 바꾸어 봅니다.
‘맞는 말이잖아.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조금만 더 말을 아끼고 있는 그대로 보자.’



이 날 저녁기도회도 은비, 광호 그리고 강산이가 어김없이 함께 합니다.
목사님은 오늘은 자기 아이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자고 하십니다.
저는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할 준비를 하고 있는 강산이 뒤로 가서 등에 손을 올려놓습니다.
“하나님, 우리 강산이가 하나님 사랑하는 맘이 날로 자라고 커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도 하나님 사랑의 빛이되고 영광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 강산이에게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를 주세요....” 하는데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아버지, 아버지” 소리지르며 눈물로 하소연합니다.
어느새 15 살이 되어 넓어진 등에 얼굴을 대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기도가 끝날 때까지 강산이는 엄마가 기댈 수 있도록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강산이가 수련 활동에 가지 않은 것은 저녁기도회에서 그 만큼 간절히 기도하라고, 그리고 내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으로 여기라고 망월 어머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도 비슷한 마음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엠마오를 통해 주신 은혜가 제 영혼을 깨어있도록 붙잡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저를 가만히 바라보니 의식은 확장되고 있으며 영적 능력이 깊어져간다고 더욱 믿게 됩니다.
누구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저보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제 안의 서로 다른 모습들이 싸우는 것도, 누구의 손을 들어 승리하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하십니다.
그런 저를 맑고 평온한 눈동자로 지켜보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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