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2008

08/28/2004 - 어둑한 공원의 추억

아이들 여름방학이 다 끝났습니다.
월요일이면 개학 입니다.

제가 어렷을 적에도 그랬지만 우리 아이들도 방학 내내 놀다가 소나기 몰아치듯 방학 숙제를 합니다.
그나마 방학 선택 과제 가운데 일상 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정했기 때문에 부담이 덜 되었나 봅니다.

강산이는 특수학급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신 국어, 수학 문제집을 제발 그만 하자고 할 때까지 좋아라 하며 풀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공부하자고 하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강산이 입니다.
강윤이는 운동하기(태권도), 만들기, 부족한 교과 학습하기, 오카리나 배우기를 선택 했습니다.
태권도는 학교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하던 것을 방학 중에도 계속 하는 것으로 활동적인 강윤이가 무척 좋아하는 시간 입니다.
만들기는 여름성경학교 만들기 나라에서 한 것 가운데 하나를 제출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교과 학습은 수학 문제집을 풀기로 했는데 오분의 일 정도 한 것 같습니다.
오카리나는 강윤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서 방학 특강으로 신청한 것 입니다.
교과를 복습하는 것을 제외 하고는 자연스럽게 숙제를 하게 된 것 입니다.

공통 과제는 4 가지 인데, 일기 쓰기, 교육방송 기록하기, 독후감 쓰기, 가족신문 만들기 입니다.날마다 해야 하는 두 가지는 관두고 독후감 쓰기와 방학 때 마다 하는 가족신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가족신문은 부모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학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염두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막상 신문을 만들려고 하니 이번 여름에는 산이나 바다를 간 적도 없고 누구를 찾아가 만난 일도 없고 아이들이 신날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교회 첫 여름성경학교, 집 이사, 예배와 새가족에 온통 마음을 쓰고 있는 남편 덕분 입니다.
남편에게 휴가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데라도 하루 다녀오자 해도 대꾸도 안합니다.
아이들 방학이 일주일 남자, 날마다 집에만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지 않냐며 동정을 사 볼 요량으로 말을 꺼내 보았습니다.

그러자 내 말을 듣고 있다가 그러면 이천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네 들려 보자고 합니다.
친구도 만나고 아이들 끼리도 친하니 나는 얼른 좋다고 했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친구네 갈 수 있는 날 선약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친구와 만나는 것을 빨리 포기 했습니다.
못 만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꾸 생각하면 속이 더 상할 것 같아서...

강산이에게 물어봤습니다.
"강산이는 어디에 놀러 가고 싶어?"
강산이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손바닥으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흉내를 내며 놀.이.공.원. 합니다.
이틀쯤 지난 후 남편은 '롯데월드는 얼마면 갈 수 있어? 내일 오후에 시간 내보지 뭐' 합니다.
그런데...못 갔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못 갔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쉬는 것을 가장 좋은 휴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디 낯선 곳으로 휴가를 안간 지 5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휴가 없냐고 투덜대기도 하지만 남편은 요지부동 입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隋)라고 어느새 남편 생각이 제 생각이 되고 말았나 봅니다.
우리 부부는 그렇다쳐도 아이들에게 이번 여름은 너무 심심하게 지나갔습니다.

이런 저런 궁리만 하다 방학 마지막 한 주간 절반이 지난 목요일, '뭐 재미난 일 없을까?' 강윤이에게 물었습니다.
강윤이는 강화 바다를 바라보며 사발면을 먹고 싶다고 합니다.
올 초 바람이 많이 불어 춥던 날, 강화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다가 길가 쉼터 한 켠에서 팔던 사발면을 먹었던 것이 강윤이에게는 아주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봄에는 김밥과 평상시에는 전혀 먹지 않는 사발면을 사들고 강화 배터가 있는 외포리 쪽으로 드라이브를 갔었습니다.
하루 일들을 마무리 하고 길을 나섰기 때문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만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안 보일 뿐만 아니라 그 날도 바람이 많이 불어 가지고 간 사발면은 차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강윤이는 이 날의 일들을 너무나 재미 있었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래, 가자!
목요일 오후.강윤이 학원 갔다 오고, 교회 주방 설치하는 것 보고, 부족한 주방 기구 보러 김포 시내에 다녀오고...
어느새 오후 7시가 넘어가고 있네.
햇님은 제 집으로 찾아가는 손님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 시간표대로 강화 바다로 돌아가고 있잖아.

남편은 지금 가도 바다는 못 볼 것 같으니 옆 동네 태산가족공원으로 가면 어떠냐고 제안을 합니다.
강윤이는 사발면 먹을 생각에 그랬는지 얼떨결에 그랬는지 공원 연못을 바다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자, 조금 더 서두르자.
김밥집에 들려서 얼른 김밥 몇 줄 사고, 사발면은 가다가 가게가 보이면 사자.

8시쯤 도착.
어! 왜 이렇게 어둡지?
가로등이 몇 개 밖에 안켜있네.
서늘한 밤공기 쐬러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데이트하는 중고생만 서너명.
바닥은 공사 중이라 다 파헤쳐 놓고.

나는 이럴 때 왜 화장실을 가고 싶은 건지.
남편과 아이들에게 지켜달라며 공중 화장실로 가 더듬더듬 전등 스위치를 찾아 켜보니 불이 안들어 오네.
문 열어 놓고 볼 일 보라며 남편과 아이들은 여자 화장실 입구에 죽 늘어서 뭐라고 속닥속닥.
나는 급해서 무슨 말을 하는 지 들리지도 않습니다.

가족공원에 왔던 기억을 살려 긴 의자가 있는 곳을 찾다보니 매점 옆으로 음료수 자판기 불빛이 보입니다.
그 불빛에 사발면을 비추어보며 스프를 넣고, 그런대도 어느 사발면에는 스프가 두 개 들어가고.
우리 집 저녁식사 시간인 6시가 지난 지 한참이라 모두가 정신없이 사발면과 김밥을 먹었습니다.
아이들도 제 몫의 사발면을 다 먹어 치웠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습니다.
이게 뭐야?
오자마자 먹고만 가네.
연못가에서 바다를 상상해 볼 생각도 못하고 말입니다.
추억, 낭만, 여유. 모두 엉터리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강윤이는 다음에는 진짜 바다로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말 속에 바다 구경 하지 못한 서운함이 배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싱겁지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서로를 의지하여 필요를 채워주고, 한 그릇에 스프를 두 개 넣은 아빠를 용서하고 맛있게 먹어주는 너그러움을 담아 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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