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2008

08/14/2004 - 봉숭아 물을 곱게 들였어요

엊그제 밤에는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습니다.
해마다 이 맘 때 온 식구가 손톱, 발톱에 꽃물을 들이고, 남은 꽃은 이웃과 나누어 함께 들이곤 했습니다.
봉숭아 꽃과 잎사귀는 강화에 사시는 어머님께서 구해 주십니다.
지난 해까지는 어머님 동네 다른 집에서 꽃을 따다 주셨는데 올해는 우리를 위해 마당 한켠에 심어두신 것을 따 주셨습니다.
평상시에도 자녀를 위해 많은 사랑을 몸소 보여주시는 어머님이신데, 봉숭아를 심어 놓으셨다는 말씀에 자녀를 생각하시는 세심한 마음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봉숭아 물 들이는 것을 좋아하고 기다립니다.
밤새 손발이 묶여 있어 불편할텐데 그런 불편함을 얘기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언제 할꺼냐, 빨리 하자 조르기 까지 합니다.
봉숭아 물을 들이기 위해서는 봉숭아 꽃과 그 잎, 백반 혹은 소금이 필요합니다.
봉숭아 꽃과 잎은 반나절 정도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서 말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꽃을 찧을 때 나오는 물이 줄어, 손에서 흐르는 것을 조금 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님이 가르쳐 주신 삶의 지혜 입니다.

꽃을 찧을 때 백반과 소금을 넣으면 색이 더 진하게 든다고 생각하고 올해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백반이 사람에게 안 좋다고 합니다.
뭐 화학물질이니 그럴만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소금만 넣어도 효과는 비슷하다고 하니 돌아오는 해부터는 소금만 넣고 해봐야 겠습니다.


꽃과 잎을 찧는 일은 아이들이 서로 하려고 합니다.
강윤이에게 맡겨 놓아도 이제는 제법 잘 합니다.
거의 다 찧은 다음 마무리 찧는 것은 형에게 하라고 하며 사이좋게 준비를 합니다.

그 동안 나는 일회용 비닐 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필요한 만큼 잘라놓고 종이테입을 찾아다 놓습니다.
종이테입은 실 대신 입니다.
종이테입으로 감아주면 손가락이 아프지도 않고 꽃물이 흐르는 것도 막아줍니다.

자, 준비는 다 되었고...
그 다음 역할은 남편의 몫 입니다.
강산, 강윤이 손톱과 엄지 발톱, 그리고 내 손톱까지 모두 묶어 주어야 합니다.
먼저 시작한 강윤이는 "아빠 진짜 꼼꼼하다!"며 아주 만족해 합니다.
다음 사람 강산이는 손을 자꾸 움직여 가만히 좀 있으라고 남편은 궁시렁 거립니다.
그래도 강산이는 아빠의 말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움직여서 남편을 땀나게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저러다 나는 안해준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대충해. 두 개만 해줘"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거 두개만 하면 이뻐? 이상하지 않아?" 합니다.
남편의 그 말 한방에 내 걱정은 싹 날아가고 "그럼 마저 해줘" 했답니다.
그리고 내 양 손가락 세 개씩에도 테입이 칭칭 감겼습니다.

거실에 미리 넓게 깔아놓은 이불에 아이들이 신나하며 눕습니다.
지난 해를 미루어 보건대 아무리 꼼꼼하게 손가락을 싸놓아도 꽃물이 이불에 묻곤 했는데 어찌하면 좋지?
그러다 문득 아이들 손과 발에 비닐 봉투를 씌워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한테 제안을 했습니다.
답답해서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고 좋다고 하면 해 보리라 하면서 말입니다.
아이들은 좋다고 합니다.
비닐봉투를 묶어주니 더 재미있어 합니다.
괜찮겠지...
내 손에도 묶어보고...

한 10 여분 뒤척이더니 아이들이 잠이 들었습니다.
봉숭아 물들이기는 밤 늦게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드는데 밤11시 넘어 봉숭아 물들이기가 끝나니 금방 잠들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손발에 비닐봉투를 감고 자는 모습이 너무 웃겼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꽃물이 곱게 물들었을 손톱을 기대하며 저 불편함을 감수하는 아이들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우리 놀이문화가 찾으면 많아도 애써 찾지 않으면 사라지고 잊혀진 것이 많습니다.
그나마 강산이가 가끔하는 공기와 구슬치기, 강윤이가 하는 실뜨기와 노란 고무줄로 이리꼬고 저리꼬아 모양 만들기 따위가 요즘하는 것 입니다.
봉숭아 물들이기는 일년에 한번 하는 것이지만 우리 놀이문화를 지킨다는 넓은 시각과 가족 사이에 서로의 손을 만져주며 예쁘게 꾸며주는 다정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 아빠가 품은 이런 큰(?)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천사같이 잠들어 있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이는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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