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8/2004 - 길 위의 가족

입주자 전도 18일째다.
오늘 함께 전도하던 이은경 집사님이 집으로 막 떠나고 강산이와 둘이 남았다.
300 여장 되는 전도지를 강산이와 정리하고 있었다.

두어 명 되는 남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아 눈을 들어보니 긴 장대 끝에 매단 낫으로 샘솟는 교회 입당.봉헌예배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었다.
순간 어찌해야 할 지 몰라 가까이 다가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상황을 가만 보니 철거한 현수막은 수거해 가는 모양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떼어진 현수막을 지키는 일 뿐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낫으로 끈을 뚝뚝 끊어 떨어진 현수막을 치우려 했다.
나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이거 교회 쪽에 붙일테니까 그냥 주세요' 했다.
말하면서도 '주지 않고 가져가면 달라고 다시 말해야 하나 어쩌나' 생각이 많았다.
다행히도 철거원은 교회꺼냐며 가져가라고 했다.

교회 안쪽에 현수막을 가져다 놓고 전도 파라솔로 돌아와 앉은 나는 기분이 침울해졌다.
그곳에 현수막을 건 것이 불법이면 철거당하는 것이 당연한 거라 달래도 보고, 상가나 공사인부 등 주변에 많은 시선들이 있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척 표정관리도 해보지만 잘 안된다.
강산아빠가 있으면 지금 어서 파라솔을 정리하고 싶지만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강산이가 같이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학원차가 아이들을 싣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걸보면 얼추 '차 봉사'를 파장할 시간인듯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강산아빠가 왔고 현수막이 없어진 경위를 간단히 설명하고 꿀꿀(?)한 기분으로 파라솔이며 의자를 얼른얼른 정리하여 나르기 시작했다.
그 때 아파트를 돌아나오는 학원차가 있었다.
그 자동차를 운전하시는 분이 차에 앉아 생수를 줄 수 있냐고 한다.
그래서 냉수통에 남아 있는 물을 따르고 있는데학원차 안에 타고 있던 어느 아이가 "야! 장애인" 하고 강산이를 부른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야! 장애인"하고 소리를 지른다.
또 다른 아이는 "김강산" 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운전하는 분께 물을 갖다주며 열려 있는 창문으로 아이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 쟤 이름은 장애인이 아니고 김강산이야. 쟤 이름이 장애인이니?"
그러자 "나, 쟤 몰라요" "쟤 김강산이야" "나 쟤 봤어" 말들이 많다.
운전하는 분은 상황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음을 그제야 깨달았는지 "주의주겠습니다" 하고는 우회전해서 가버린다.

의자를 교회 앞에 갖다놓고 다시 온 강산아빠에게 지금 일어난 일을 또 간단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강산이와 집에 왔다.
강산아빠는 샘솟는 교회 공사를 봐야한다며 바쁘게 나갔다.
문닫는 소리와 함께 조금 전 일이 눈앞에 확 펼쳐지며 가슴이 무너진다.
철없는 아이들이 모르고 한 소리라고 또 달래보지만 그래도 서글프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날이 흐려서 그런가 자꾸 눈물이 나온다.
강산이에게 안들키게 울려고 하니 더 흐느끼게 된다.
별 수 있겠는가 강산이 강윤이와 먼 길 가야 하는 나를 추스리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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