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2008

05/04/2005 - 봄 운동회에서 생긴 일

어제는 강산이와 강윤이가 다니는 마송초등학교 봄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소풍만큼 기대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석 주 동안 무용과 경기 연습을 하느라 검어진 강윤이 얼굴을 볼 때마다 그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네번째인 강산이는 그 동안 무용을 제대로 해내서 이번에도 잘 하리라는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더구나 이번 무용은 3, 4학년이 함께 한다고 하여 강윤이를 통해 형이 연습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강산이는 준비물에 대한 전달이 되지 않아 이리저리 알아보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무용 준비물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강윤이와 똑같이 준비하면 되니까요.

이 곳 운동회에서는 부지런해야합니다.
그늘지고 아이들이 잘 보이는 자리를 잡으려면 말입니다.
집사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우리는 넓은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옆집 엄마가 아이들과 8시30분쯤 먼저 출발하셨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보니 좋은(?) 자리는 새벽 6,7시부터 돗자리가 깔려 있었답니다.
저는 그 보다 조금 늦게 학교에 도착해보니 엄마와 집사님들도 그런대로 괜찮은 운동장이 잘 보이는 관중석 맨 뒷줄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점심으로 준비한 밥과 돼지불고기를 바쁘게 내려놓는데 옆을 흘깃보니 강산이가 앉아있었습니다.
"어, 너 왜 여기 있어? 너네 반 자리로 가야지!"가 시작이었습니다.
벌써 4학년 경기 하나가 있었는데 할머니 옆에만 있으려고 해서 특수학급 최선생님이 달래고 엄마가 협박을 해서 겨우 경기에 참여시켰다는 것입니다.
"너 저기 안가면 할머니 집에 못올줄 알어. 정말 안가? 집에 가서 아주 혼날줄 알어. 얼른 가!"
고강도(高强度) 으름장이 있었다고 엄마가 알려줍니다.

순서지를 보니 곧 4학년 단체 경기가 있을 것 같아 강산이를 슬슬 구슬리고 있는데 마침 최선생님이 오셨습니다.
4학년 아이들이 경기 준비를 위해 운동장 뒤쪽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동시에 보였습니다.

"야, 얼른 가자. 강산이 하는 거 할머니랑 엄마한테 보여드리자. 강산이 연습 많이 했지? 강산이 잘 하잖아...."
"강산이 저기 안가면 핏자 못먹어! 조금 있으면 점심 먹을건데. 고기도 있다."
"가 하구 와. 강산이 하는 것 좀 보자!"
최선생님과 저, 집사님들까지 강산이를 움직일만한 말을 한마디씩 보탰습니다.

한참을 들은 척도 안하고 있더니 어찌 어찌 해서 겨우 운동장으로 내려가 최선생님과 함께 자기 반 줄로 갑니다.
"휴~"

한숨을 돌리며 강산이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자, 와 줬지!' 하듯이 몸을 돌려 혼자 다시 돌아옵니다.
강산이가 관중석 우리 자리로 올라오기 전에 얼른 내려갑니다.
말로는 되지 않을듯 싶어 강산이 뒤에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밀어봅니다.
그런데 "이잉~"하면서 무거운 몸을 뒤흔들어 내 손을 빠져나와 축구 골대 앞에 앉아버리고 맙니다.
'뒤에는 관람석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하긴 우리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겠지.'
뒤엣 시선은 애써 외면하고 강산이 옆에 같이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흙만 만지작 만지작.
최선생님도 다시 오셔서 강산이 옆에 앉으셨습니다.

"선생님, 강산이 그냥 여기 있으면 안될까요?"
"안돼요. 그러면 다른 것도 다 안하려고 할 것 아네요. 안돼요 가야 돼요."

강산이는 땅바닥에 '김강윤 김강윤'을 썼다 지웠다 합니다.
이럴 때 왠 김강윤?
그러더니 이번에는 '이은주 바보'를 썼다 지웠다 하며 혼자 웃습니다.

도대체 강산이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과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땅에 무언가 쓰시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나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웃었겠지'

결국 담임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담임 선생님을 따라 자기 반으로 가서 섭니다.
강산이가 경기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최선생님은 강산이 바로 뒤에 서 계셨습니다.

그래도 경기는 못했습니다.
자리에서 안 일어나서.
답답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은 3,4학년 무용시간.

강산이가 또 안한다고 할까봐 얼른 달려가서 무용할 때 껴야되는 흰장갑을 꺼내옵니다.
동기유발이 될까 싶어서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와 율동을 좋아하는 강산이는 장갑을 선뜻 받아들더니 자기 줄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아이들과 장난을 칩니다.
차례를 기다리는 20 여분 가까운 시간을 엄마에게 눈길 한번 주지않고 아이들과 어울립니다.


이때다 싶어 강윤이를 찾아봅니다.
어찌 내 아이는 그리 빨리도 눈에 띄는지요.
마침 강윤이 담임 선생님이 지나가시길래 강윤이와 함께 사진도 찰칵.
"잘해. 이따 엄마가 강윤이 무용하는 거 사진 찍어줄게."
그리고는 또 강산이를 찾습니다.
기대했던대로 강산이는 즐겁게 무용을 잘했습니다.
아이들 속에 어울려 한껏 웃으면서.

강윤이에게로 달려가 무용 동작이 바뀔 때마다 셔터를 눌러댑니다.
제 할 일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이 아들이 있어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늘 강산이에게 모아지고,형은 못해도 괜찮은데 자기에게는 늘 잘하라고 하는 것이 불만스러운 강윤이.
그래서 마음과는 달리 비뚤어진 말을 해대는 강윤이.
엄마는 이 아들이 자랑스럽고 든든한대 아직 강윤이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점심 시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많습니다.
점심도 그렇습니다.

그 때 제가 살던 곳에는패스트 푸드 파는 가게도 없었거니와 집집마다 최고로 맛난 반찬을 자랑하듯 도시락을 싸 왔습니다.
한술 더 떠 고향이 강화인 집사님은 가마솥 걸어놓고 동네 잔치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핏자와 치킨, 밥과 과일을 준비해 먹고 싶은대로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식사 준비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심 시간이 끝나자 바로 5,6학년 여자 아이들의 고전무용이 이어졌습니다.
비슷한 색의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드라마 대장금 시그널 음악에 맞추어 운동장으로 들어옵니다.
단아하게 인사를 하고 무용 음악이 흘러 나오는데 집사님들과 함께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무용 배경 음악은 '아리랑 목동'.
어찌 빠르고 경쾌하던지 고전 무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산이와 강윤이는 모두 백군인데 올 해는 어찌되 일인지 백군이 영 시원치않습니다.
경기마다 계속 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학부모 줄다리기와 남자 이이들 청백계주만 남겨 놓았습니다.
이 두 경기만 이기면 점수를 뒤집을 수도 있는데...

"학부모 줄다리기에 참가할 분은 모이라"고 방송을 합니다.
저는 나가지도 않으면서 힘 좀 쓸 것 같은 이웃 엄마에게 나가서 백군에 힘 좀 보태라고 떠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선생님이 어느새 오셔서 "강산이 엄마, 종남이 엄마, 얼른 나가세요. 얼른" 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까지 일부러 오셔서 나가라고 하시는 선생님 마음을 몇 초간 헤아려봅니다.
아마도 특수학급 학부모도 학교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라고, 또 그런 엄마들의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일꺼라고 넘겨짚어 봅니다.

이왕 나가는거 이기면 아들들도 좋아할 것이기에 못이기는 척 나섭니다.


이겨보리라는 마음에 "으쌰!" "영차!" 소리를 내질러봅니다.
세 판 했는데 백군이 또 졌습니다.
마지막 경기 계주에 기대를 걸고 힘껏 응원했는데 이상하게(??) 또 졌습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정리체조에 이어 교장선생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흐느적 거리나! 차렷. 열중 쉬어. 아침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경기에 임한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 박수!'"
"운동회를 위해 지도하시고 지금까지 수고하신 선생님을 위해 박수!"
"우리를 지켜봐주시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을 위해 박수!"
초여름 같은 날씨에 조금은 지친 아이들 박수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치는듯 마는듯 합니다.

"이상 끝!"
교장 선생님의 짧은 말씀에 모두 환한 얼굴로 "새로 오신 분"이라는 둥 분위기가 밝아졌습니다.

짐들을 정리하고 우리를 데리러 오라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교역자회의를 마치고 아직 고촌에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출발하지 않고 있다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침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되살아나며 남편을 향한 심술궂은 짜증이 되어 몰려옵니다.

한쪽 구석에 앉아 남편을 기다리며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바라보니 학교 안은 빨리빨리 정리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선생님들도 거의 사라지고 운동장은 휑하니 비었습니다.

엄마는 "오늘 몇 시간 바라보니 알겠다. 강산이에 대해 욕심내지 말자구. 학교나 오고가면 다행이지" 하십니다.
욕심이라...

강산이는 학교라는 제도적인 울타리와 선생님의 책임 아래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앞으론 자기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살아야 할 더 넓고 험한 세상이 있는데 단체 생활을 위한 작은 규칙 지키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은 게 제 심정입니다.
그런데 욕심이라니, 차라리 욕심이나 맘껏 부려보았다면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지만 자꾸 더 답답해집니다.

집으로 돌아와 강산이는 엄마가 씻기겠다며 데리고 가셨습니다.
다음 날 상품을 타기 때문에 손등에 찍힌 달리기 2등 도장이 지워지면 안된다고, 머리감기 싫다고 소리지르는 강윤이를 달래서 깨끗이 씻겼습니다.

학교에 가지고 갔던 그릇을 닦고 흙묻은 옷들을 세탁기에 돌립니다.
다 치우고 나면 내 마음도 조금 가벼워지리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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