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2008

01/25/2007 - 하얀 사랑을 만나다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 소요산으로 가는 길을 온통 하얗게 덮고 있는 함박눈을 보며 알지 못할 야릇한 감정에 휩싸여 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리랑신학동지회, 겨울 나들이, 소요산, 민박 집...

대학원 다닐 때 있던 두 개의 학회 가운데 하나였던 아리랑신학동지회에서 소요산으로 겨울 나들이를 갔습니다.
하루 일정 가운데 마지막으로 모두가 둘러 앉아 자기의 꿈이나 계획을 얘기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차례입니다.
신학공부를 더 하고 싶고 그런 다음 결혼은 하든지 말든지,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회원들의 반응은 무덤덤해 보입니다.
다만 한 사람만은 머리가 방바닥에 닿을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눔의 시간이 끝나기 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의 무게가 고스란히 저에게 전해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 새해 아리랑의 임원으로 같이 일하게 되었기에 그 말없음의 의미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나오려는 그를 민박 집 밖으로 불러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더 용감한 것 같습니다.
그를 불러내기는 했으나 무슨 말부터 해야 될 지 모르겠고 한밤중이라 무지 춥기도 해서 소요산 입구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그 때 1월의 소요산은 언젠가 온 눈이 녹았다가 다시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어두워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터라 걷는데는 자신이 있지만 미끄러운 길에서는 유난히 둔해지는 저였습니다.
함께 일하기 위해 불편한 관계를 풀어야만 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당당하게 그 사람의 팔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자신을 의지해서 걷는 제가 싫지는 않았는지 그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난 일년 반 동안 가슴앓이를 해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봐 주지도 않는 사람을 연모해 온 것입니다.
그 사람의 사랑이 어찌 대단했는지 주변 사람이 다 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대상이 바로 저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묘해서 말로하지 않아도 드러나게 된다고 지금까지 믿고 있는 나로서는 그 사람의 말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당사자인 나만 모르는 사랑이 있을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내 몸 어딘가로부터 떨려오는 느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들이 일정을 모두 마치고 민박 집을 나서는데 함박눈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습니다.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보면 발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이고 있습니다.
하얀 세상이 주는 신비로움을 간직하려는듯 회원들은 둘, 셋씩 모여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과 나를 붙여놓더니 사진을 찍어줍니다.
서먹서먹한 그 모습 그대로 사진 속에 담겼고 그 사람 자취 방에 내내 걸려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이 지금은 남편의 청년 시절 앨범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꽉 찬 15년의 결혼 생활을 넘기며 저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하반기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영적 전쟁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편과의 갈등이었습니다.
부부로 살면서 시시때때로 말다툼 하며 살아도 우리는 그런대로 잘 맞는 부부라 여겼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다툼은 했어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체 쌓여가고 있었고 우리가 잘 맞는 것은 인생의 큰 틀(세계관)이었습니다.

상처받기 싫어 꾹꾹 눌러가며 쌓아두던 문제들이 하나님과 좀 더 가까워지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은 틈을 비집고 꾸물꾸물 기어나온 것입니다.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인 부부가 어떻게 그다지도 무시무시한 말들로 상처를 줄 수 있을까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처음엔 분노가 폭풍치듯 밀려옵니다.
'이러면 안되지. 이따위 감정에 내가 질 수는 없지.
이럴 때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나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잖아.
서로 채워주라고 가장 알맞은 베필을 하나님이 정해주신거야.
그런거야.'
나름대로 마음을 다스리고 숨도 크게 한번 내쉬고 다시 대화를 시도해 봅니다.

그러나...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절망에 가슴이 무너져내립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부딪침이 서로 잘해보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남편은 제가 일년 반 전부터 기도하던 아버지학교에 등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눈물로 채워진 영혼을 가지고 인카운터 수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남편, 부모님 그리고 교우들과의 관계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신, 용서하지 못함, 분리의 영을 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가셨습니다.

인카운터 수양회에는 기도사역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다 가깝게 경험하길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던 중 멈출 수 없는 통곡이 터져나왔습니다.
강산이가 떠올랐습니다.
강산이를 낳은 저를 남편이 거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를 온전히 내어주지 못했으며 나를 지킬 수단으로 남편도 침범치 못할 마음의 제한구역을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를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엉엉 울다가 멈추었다가 또 흐느끼다가...

그러다 문득 이 문제를 하나님이 어떻게 해결하실까 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그 순간 "네 남편은 내가 세운 신실한 나의 종이다" 는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의 울림이 나를 일으켜세웠습니다.
일어나보니 기도하던 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뜨고 없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제2의 신혼기를 맞은듯 합니다.

지난 해 12월 엄마가 관절수술로 입원해 계실 때 몇 일 간호를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잘잤어? 당신없는 새벽이 너무 추워 몸이 따뜻해지려면 한참걸려 당신도 그랬어? 오후에 봐"
남편은 문자 메세지를 통해 연애시절에도 맛보지 못한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남들은 닭살이라고 하겠지만요.

얼마 전에는 남편이 5일 동안 정회원 연수교육으로 교회를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를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첫 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남편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어제 잘 못잤어 새벽기도에 늦을까봐 이럴 때면 목회에 대한 당신의 수고를 한번 더 생각하게 돼 편안히 있다 와요"
남편의 답장, "주몽 보고 일찍 자구려 새벽에 모닝콜 해줄까? 기도하겠슴"
"오늘 저녁 예배 잘 드리도록 기도할게 신실하게 진실하게 오늘도 당신은 잘할거야"

남들이 말하는 모범적인 부부가 아니라 우리끼리 그냥 행복한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에게 진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보려 합니다.
이 겨울 좀 더 깊어진 마음으로 16년 전 하얀 사랑을 다시 만나고 있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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