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2008

01/11/2008 - 마지막을 사는 사람처럼



온라인 책방에 들렸는데 처음 화면 한 모퉁이에 청소년 성장소설 <리버보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리버보이?
제목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그 책이 청소년 성장소설이라는 것에 관심이 갔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책 사주고 싶은 마음에서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언제부턴가 내용을 살피곤 했습니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미 구입한 몇 권의 성장소설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 읽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읽고는 혼자 감동받아 가슴 먹먹해 하곤 했습니다.

일단 책 제목에 마우스를 들이대고 클릭을 합니다.
“1997년 해리포터와 함께 영국 카네기 메달 상에 후보로 노미네이트 됐으며, 풍부하고 서정적인 묘사와 깊은 주제의식으로 해리포터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메달을 수상했다”는 책 소개가 나옵니다.
그 동안 해리포터 6탄까지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치밀한 전개에 엄청 재미있게 읽어온지라-영국 문화도 잘 모르고 내용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그 해리포터를 제쳤다는 말에 책 내용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청소년 성장소설이고 해리포터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책이라니 다시 생각할 여지없이 신청을 했고 해마다 그렇듯이 별일 없이 조용한 새해 둘째 날 쭉 읽어내려 갔습니다.

<리버보이>의 주인공 제스는 열다섯 살의 소녀입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살면서 자신의 버팀목이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게 되고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슬픔을 겪게 됩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기 전에 계획된 가족 휴가를 할아버지 뜻에 따라 강행하게 됩니다.
휴가를 가기로 한 곳은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크지 않은 강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제스는 화가인 할아버지가 강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완성하도록 돕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영을 좋아하는 제스는 강에서 리버보이(River-boy)라는 신비로운 한 소년을 만나게 되고 제스와 할아버지와 리버보이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설 거의 끝 부분에 보면, 제스와 소년은 강이 시작되는 계곡 높은 곳에서 만납니다.
그들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소년은 제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아.”
또 “삶이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이고 강한 햇살을 만나 도중에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이 없어.”라고 말합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리버보이>를 읽고 마음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제스는 할아버지의 유골을 강물에 흩뿌리며 할아버지의 영혼이 할아버지를 아는 모든 사람들 안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제스가 겪는 이별의 슬픔도 삶의 한부분이 되어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제가 결혼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고 철도 들지 않아 제대로 섬겨드리지도 못한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던 그 때 그리고 지금도 제스와 비슷한 생각입니다.
함께 살면서 줏대 있게 살라고 늘 말씀하시며 최고의 축복을 해주시고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셨던 할머니가 엄청 보고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제스는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빠져버린 할아버지의 팔이 되어 마지막 작품을 마무리 하도록 도우며, 할아버지는 손녀를 의지하여 최후의 그림 “리버보이”를 완성합니다.
제스는 할아버지의 그림에 보이는 강물이 바다에 이르기 전에 스스로 멈추지 않도록 돕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림을 완성한 그날 밤 할아버지와 제스는 서로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마지막 삶을 채워가는 그들을 보며 애틋한 사랑과 신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금요 속회를 마칠 즈음이었습니다.
“용서받은 죄인과 하나님 사랑”에 대해 말씀과 삶을 입으로 나누는데 마음속에서는 자꾸 뜨뜻한 기운이 올라옵니다.
말씀의 적용에 쓰여 있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기 힘든 사람, 비위를 상하게 하는 친척, 귀찮은 이웃, 불쾌감을 주는 동료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를 읽고 나서, 우리도 용서받은 죄인인데 그리고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늘 마지막을 사는 사람처럼 사랑하며 살도록 기도하자고 제안합니다.

새벽부터 마음에 맴도는 생각들 때문에 그렇게 기도를 제안한 것 같습니다.
제 삶이 어떤 안락과 고난에도 멈추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흘러갈 것이라는 것과 삶의 끝을 사는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을 사는 사람이라면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우리 속도원들은 생각을 같이 했습니다.
우리 속도원들은 함께 기도하며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각자의 연약함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얼마나 기도에 집중했던지 기도가 끝나자 분위기가 짧은 시간 동안 가라앉는 듯 했지만 서로의 얼굴을 다시 마주보는 순간 웃음이 얼굴에 가득 찹니다.
즐거운 교제 시간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11/29/2007 - 가만히있으렵니다/친구들에게 감사를


어느새 세밑에 와 있습니다.
돌아오는 주일부터 대강절이 시작되면 곧 성탄절이 되고, 거기서 몇 일이 더 지나면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게 될 것입니다.
시간의 끝과 시작을 예배로 모이는 송구영신 예배 순서 가운데 '나에게 주시는 올 해의 말씀'을 뽑는 시간이 있습니다.
문득 지난 3년 동안 제게 주신 말씀을 보니 모두 사랑과 관련된 구절들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요일3:18/05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06년)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1:22/07년)

제비 뽑듯 많은 말씀 카드 가운데 내 손에 잡힌 말씀이기에 그 의미를 나름 헤아려 보곤 하면 늘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제 사랑의 그릇이 작음을 알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누군가 관심을 갖고 다가오거나 이런 저런 관계가 이어지다 보면 친밀해지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면 제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어디쯤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저에게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실 때마다 사랑의 그릇을 넓히라는 명령처럼 들렸습니다.
살아온 대로 살지 말고, 애쓰고 힘써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고 그래서 부담스러웠습니다.

얼마 전 대학 여동기 모임이 있어 갔더랬습니다.
목사가 된 친구들은 주로 기관에서 일하고 있고,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공부를 더 하는 친구도 있고, 목사인 남편과 더불어 동역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사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데 목사 남편과 동역하면서 자신의 달란트대로 어린이 부흥강사를 하는 친구가 껄껄 웃으며 한 마디 합니다.
“나 같은 게 사모 안했으면 어땠을까 몰라. 교회 안에서 저 잘났다고 잘난 척만 하고 목사한테 들이받기나 하고. 그래서 사모 시키셨나봐.”
아무도 거기에 대꾸하는 친구가 없습니다.
저마다 마음에 품은 이런 고백들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사모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어쨌거나 매일 새벽기도도 하고 예배 시간마다 예배하니 말이예요. 아마 사모 안됐으면 게을러서 그렇게 못했을거야” 하는 어느 사모님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면 저한테는 사랑하라고, 뜨겁게 사랑하라고 목사 아내 되게 하셨나본데 아직도 저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지 몰라 헤매고 있나 봅니다.
목회 생활 17년차가 되다 보니 조금 나아진 면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차분하다, 조용하다, 침착하다, 소극적이다....
이런 평가에 익숙한 제가 목사 아내가 되어 제일 어려웠던 것은 교우들에게 전화하는 것입니다.
교우들의 개인적인 일이나 교회 일과 관련된 것이나 일일이 만나는 것도 아니고 전화로 확인하고 권면하고 하는 것인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전화해서 안부 묻는 것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일 얘기만 딱하고 끊기도 그렇고, 기도 부탁 받으면 뭐라고 권면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목회 초기에 비해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교우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고, 한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지체로 느껴보고, 얘기를 잘 들어주되 마음으로 해보려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제가 해 놓고도 여전히 겸연쩍은 것들도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아는 체하기, 눈 마주치고 인사하기, 궂은 일 마다하지 않기 따위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저 즐겁게 하고 그 뿐이라 여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반응이 차갑게 느껴질 때는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어디 구석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관계 맺음이 어려울 때도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돼 있다’ 믿으며 친절함을 잃지 않으려 했고, 이런 것들이 저의 1차 집단인 교회 안에서 사랑함이었습니다.

지나간 몇 달을 돌아볼 때 저에게 주신 사랑하라는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명령처럼 여겨져 지켜야만 하는 의무였나 봅니다.
더 사랑하지 못함에 자의 타의로 느끼는 죄의식과 내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방을 사랑한답시고 미워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런 제 자신을 관찰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제 자신을 변호하려는 욕망이 일어남을 봅니다.
인격의 성숙, 그거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만히 있기로 마음먹습니다.
마음이 가는대로 일이 되는대로 잠자코 따라가 보렵니다.
한편 가만히 지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기대해봅니다.
어느 목사님이 쓰신 책에 심리학자 롤로 메이(Rollo May)가 말한 것이 여러 번 인용되어 있어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것이 다 지나가지 않고 새 시대가 도래하지 않은 전환기에 필요한 것은 창조하는 용기(Courage to Create)"라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창조하는 용기를 갖기 위해 순결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든 저기든, 마른 자리건 진 자리건, 하라시는대로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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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살아갈 힘을 준 모든 친구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지난 10월 끝자락부터 보름 동안 미국에서 만났던 오랜 벗들-정확히 말하면 제게는 거의 선배님이시죠-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그 곳에 있는 동안 받은 환대는 오랜 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정성이 가득 담긴 식사, 편안한 잠 자리, 추억에 담아갈 곳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려는 열의, 멋진 노래, 조금은 외로워 보였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들....
지금 생각해도 눈물나도록 감동입니다.




그리고 20대 전반에 배움을 함께 했고 삶의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긴 설명 필요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대학 동기들이 있어 고맙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10)

09/20/2007 - 그 다음 날


영성훈련 72 시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앞집에 사시는 엄마가 준비해 놓으신 저녁을 편하게 먹고 바로 저녁 기도회에 나갔습니다.
9월 한 달 동안 육신이 연약한 자들을 위한 기도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겪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채 기도를 하는데 ‘자신을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울어주는 사모와 함께 하는 교인들은 행복할 것’이라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느껴보며 다른 때보다 더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하룻밤을 자고 나니 두 아들이 5,6학년 수련활동을 월요일에 2박3일로 떠나는데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엠마오에 있는 동안 강윤이는 “엄마 운동화 사 줘”하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아빠에게 사 달라고 해” 답장을 보냈는데 현관에 새 운동화가 보이질 않습니다.

토요일 아침이 바쁘게 시작됩니다.
운동화를 사려면 오후 4시에 교회 청소가 있으니 그 안에 시내를 다녀와야 합니다.
밀린 빨래를 두 번 돌리고 나니 조금 있으면 점심 때입니다.
시간이 어정쩡하여 점심을 먹고 나서기로 합니다.
교회 차는 남편이 볼 일이 있어 가지고 나갔기에 강산이는 앞집 엄마네 두고 강윤이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합니다.
한 20여분을 기다려도 버스가 한 대도 오질 않아 결국은 직장에 오후 출근하는 동생 차를 얻어탑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바쁩니다.
강윤이 운동화 사고 은행에 들려 돈을 좀 찾습니다.
아침에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길래 큰 치킨 집 앞에서 “사 줄까?” 했더니 됐다고 합니다.
“그럼 도너츠 사 가지고 갈까?” 해도 언제 도너츠 좋아했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지 운동화랑 운동복을 사야하니 엄마가 돈이 많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돈 없다고 궁색을 자주 떨었나? 남편과 얘기할 때 돈 얘기를 많이 했나?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보통 주부가 그렇듯이 저도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면 꼼꼼하게 가격비교를 하는 편입니다.
강윤이도 가끔 쇼핑에 함께 갈 때가 있는데 가격을 살피느라 쇼핑 시간이 길어지면 “대충 사!” 그러다가도 “그래야 돈 아끼지?” 합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그런 것인지 강윤이의 이런 마음이 느껴질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진정한 부자로 살지 못하고 진정한 부자로 살고 싶은 마음만 있나 봅니다.

수련 활동을 하려면 운동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편한 옷을 입어도 되련만 강윤이는 알림장을 보여주며 “운동복은 따로 적혀있다”고 자꾸 강조하기에 “사 주마”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정거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옷집으로 가서 형 것까지 두 벌을 삽니다.
강윤이는 기분이 좋은지 물건이 든 가방을 들고 가라해도 싫다 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보니 청소를 시작했을 시간입니다.
건널목에서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저쪽 자동차 대기 선에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서있습니다.
강윤이와 저는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버스가 오는 지 뒤돌아보며 정거장을 향하여 뛰어 갑니다.
버스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을 하고 여유 있게 버스에 올라 타고 보니 참 재미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뛸 수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 하루가 또 지나 주일 저녁에는 외사촌 동생 아들의 돌잔치에 가야 합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잔치에 가기 전에 아이들이 가지고 갈 간식과 선생님 드릴 음료를 준비합니다.
간식꺼리를 자기가 고르겠다고 강윤이가 따라 나섰는데 가만 보니 강윤이가 수련활동 가는 것 때문에 들떠 있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저녁 예배였으면 잔치에 못 갔을텐데 오랜만에 가족 모임에 참여하여 두루두루 인사도 나누고 사촌 동생들 얼굴도 보니 가족이 주는 편안함도 맘껏 느껴봅니다.

### 아이들이 수련 활동을 떠나는 월요일 새벽.
새벽기도가 끝나고 김밥집에 들러 강산이와 학습 도움반 선생님 몫을 삽니다.
강윤이는 김밥 먹으면 멀미를 더 하는지 그냥 밥과 반찬으로 싸달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깨우고 어젯밤에 챙긴 여행 짐에 빠진 것은 없는지 준비물 목록을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꺼내야 할 것들도 다 내놓습니다.
아차! 먹을 물이 빠졌습니다.
가져갈 음료가 이온음료이니 그것으로 됐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줍니다.
강윤이는 다른 날처럼 학원 차를 타러 먼저 나가고 강산이는 다른 날 보다 서둘러 교회 차를 타러 뒤따라 나갑니다.

운동 가방을 메고 있는 남편의 비어있는 손에 강산이 학습 도움반 선생님 도시락을 쥐어 주었습니다.
강산이가 작년 수련 활동 떠날 때와 올 해 수학여행 갈 때는 학교까지 가서 배웅하고 왔는데 별탈없이 잘 갔다 오기에, 이번에는 피곤하기도 하고 아이들 준비시키느라 세수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 그만두기로 합니다.
제가 따라나서지 않자 남편은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궁시렁 궁시렁거리며 갑니다.

아이들이 여행 떠난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9시 15, 10분 전쯤 휴대폰이 울려서 보니 모르는 전화번호입니다.
격양된 여자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내용인즉 강산이가 버스에 타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고 있어 선생님 몇 사람이 버스로 태워보려고 했으나 강산이가 힘이 세서 되지 않으며 자신의 팔찌도 끊어졌고 이미 버스 3대가 출발해서 뒤따라 가야 하는데 강산이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는 어느 학부모의 전화입니다.
“......”
‘강산이를 설득하러 가려면....
교회 차는 남편이 운동하러 타고 갔고 버스를 타고 간다면 2,30분은 걸릴 것이고....’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는데 그 학부모는 강산이를 바꿔주겠다고 합니다.
“강산아, 강산아!”
“응~”
“강산아 버스 타고 여행 갔다 와.”
그리고 뭐라고 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나 싫어. 여행 안갈꺼야.” 울먹울먹 대답을 합니다.

뭔가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것이 느껴집니다.
버스가 출발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만을 전달하는 그 분에게 “그럼 제가 어떻게 할까요?” 했습니다.
이미 버스가 앞서서 출발했다는 대답만 들려옵니다.
“그럼 강산이 두고 출발하세요.”
“알았어요.”
마치 그 대답을 기다린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녀석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합니다.
‘강산이가 고집 부린 이유를 알게 되면 그 때 보자.’

앞집 엄마네로 가서 동생이 출근했는지 물어보니 아직 잔다고 합니다.
동생에게 다짜고짜 강산이 학교에 가는데 운전 하라고 깨웁니다.
착한 동생은 하라는대로 들어줍니다.
학교로 가면서 동생에게 학교 가는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을 합니다.

학교 정문.
정문 앞에 관광 버스 서는 곳도 운동장도 텅비어 있습니다.
강산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버스를 떠나보내고 어딘가 혼자 있을 강산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본관 건물 앞을 살펴보다가 여행을 함께 가기로 한 도움반 선생님한테 전화를 합니다.
“선생님, 강산이 어디 있나요.”
“저랑 같이 5학년 7반에 있어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3반, 4반까지 밖에 없고 7반은 학습 도움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반 학급과 도움반과는 꽤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선생님도 함께 떠나지 못했고 강산이가 어딘가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선생님을 만나 아까의 상황 이야기를 듣습니다.
현명하신 선생님은 누구도 탓하지 않으셨고 저를 위로해주십니다.
고집을 세게 부릴 때의 강산이 태도 그리고 도움반 보조 선생님만 떠난 상황이라 도움반 다른 아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선생님 입장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강산이는 먼저 교실을 떠났고 저도 얼른 학교를 벗어나고픈 마음뿐입니다.
다시 학교 본관 건물 앞으로 내려와 보니 강산이가 없습니다.
놀이터에도 없습니다.
동생 차는 본관 옆에 세워져 있는데 교회 차를 타는 곳으로 갔나봅니다.
학교 안에서 허둥대는 제 모습이 너무 싫습니다.
강산이는 교회 차가 늘 서는 곳, 신도시 건설을 위해 길게 쳐놓은 흰 철제 담장 밑에 조그맣게 쪼그리고 앉아있습니다.
선생님 드릴 도시락은 자기 바로 옆 땅바닥에 놓고 배낭을 그대로 메고 있는 강산이를 보니 또 속상합니다.

집에 돌아와 하다 말고 간 청소를 계속합니다.
강산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고요.
강산이도 무척 속상할텐데....
강산이도 아무 말없이 집에서 입는 옷을 옷장에서 꺼내 갈아입고는 나가버립니다.
‘내가 따라갔어야 했는데 그런 건가?
그럼 따라간 아빠는 뭐 한거야.
내가 안갔다고 아이한테 짜증낸거야?
강산이가 특별한 아이이기는 하지만 학교 행사 때마다 꼭 부모가 챙겨야 하는거야?
언제까지.
선생님은 뭐하고?
그리고 그 엄마는 무슨 자격으로 전화한거지?’
하지만 이런 물음들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압니다.
강산이가 고집 부린 이유를 저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 모두 최선을 다한 거야.’
생각을 바꾸어 봅니다.
이번 일은 강산이처럼 특별한 아이를 이 지역 사회와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얼마큼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보게 해주었다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리고는 이런 맘이 들 때 얼른 저에게 전화를 주었던 어머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강산이를 위해 애써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해드릴 것은 없지만 즐거운 여행 되세요” 라고.

저녁기도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강산이는 이 날도 참석합니다.
교우들이 왜 강산이가 여기 있냐고 묻습니다.
무슨 일인지 고집부려서 선생님들도 강산이를 당해내지 못하고 떠났노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 강산이가 수련 활동을 떠나지 않은 다음 날 아침, 도움반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속상하냐고.
하지만 제게 전해지는 느낌은 이번 일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으면 하는 행정적인 절차로 여겨졌습니다.
게다가 교장 선생님은 “아빠가 왜 야단은 쳐 가지고” 합니다.
‘차라리 그냥 내버려두지.
마음 속 그 놈이 비집고 올라올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전화를 끊고 거의 방 한 구석에 있는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한 시간 동안 눈감고 앉아있습니다.
호흡을 고르게 해보려 합니다.
방에서 나올 때까지 거실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무슨 전화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 때다’ 싶어 감정은 있는대로 누르고 “당신이 강산이 야단쳤어?”로 답합니다.
“아니.”
“그런데 왜 교장은 그렇게 말하는거야? 책임회피 하는거야 뭐야 도대체....”
제 말을 듣던 남편은 “당신은 다 정리된 게 아니네” 합니다.
나름대로는 판단하려는 마음을 잘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 말을 듣는 순간 찬 물을 확 끼얹는 기분입니다.
아마도 겨우 겨우 참고 있던 모양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드러낼 수 없는 속마음을 남편에게는 마음대로 털어놓기도 하지만 언제나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정화되지 않은 속마음을 내놓으면 남편에게도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데 영향을 주기도 하니까요.
다시 제 속마음의 방향을 바꾸어 봅니다.
‘맞는 말이잖아.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조금만 더 말을 아끼고 있는 그대로 보자.’



이 날 저녁기도회도 은비, 광호 그리고 강산이가 어김없이 함께 합니다.
목사님은 오늘은 자기 아이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자고 하십니다.
저는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할 준비를 하고 있는 강산이 뒤로 가서 등에 손을 올려놓습니다.
“하나님, 우리 강산이가 하나님 사랑하는 맘이 날로 자라고 커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도 하나님 사랑의 빛이되고 영광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 강산이에게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를 주세요....” 하는데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아버지, 아버지” 소리지르며 눈물로 하소연합니다.
어느새 15 살이 되어 넓어진 등에 얼굴을 대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기도가 끝날 때까지 강산이는 엄마가 기댈 수 있도록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강산이가 수련 활동에 가지 않은 것은 저녁기도회에서 그 만큼 간절히 기도하라고, 그리고 내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으로 여기라고 망월 어머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도 비슷한 마음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엠마오를 통해 주신 은혜가 제 영혼을 깨어있도록 붙잡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저를 가만히 바라보니 의식은 확장되고 있으며 영적 능력이 깊어져간다고 더욱 믿게 됩니다.
누구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저보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제 안의 서로 다른 모습들이 싸우는 것도, 누구의 손을 들어 승리하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하십니다.
그런 저를 맑고 평온한 눈동자로 지켜보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6-19)

09/19/2007 - 엠마오에 다녀와서


“SWE 15기 마리아 테이블 이은주 자매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아래에는 엠마오라 할게요)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마지막 멘트였습니다.

우리 가족을 사랑과 친절로 늘 보살펴 주시는 목사님의 추천으로 엠마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가고 싶은 사모님이 있으면 추천해 보라고 하셔서 서너명 알아보았더니 이미 경험을 했거나 전도사인데 사모가 아닌 친구이거나 시간이 없거나....
그래서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또 추천해 주신 목사님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남편이 데려다 준다고 하여 엠마오가 열리는 감리회 교육훈련원인 일영연수원에 도착해 보니 1시간쯤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요즘 남편이 공부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아내 이야기 1시간 들어주기가 있었는데 그 동안 저에게 이야기 듣는 것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할 마음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숙제하듯이 들이대서 제가 얄밉게 거절하곤 했습니다.
남편은 1시간의 여유를 확인하고서는 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엠마오에 오면서 평안, 행복 담을 넉넉한 마음 그릇을 준비하고 있는 터라 웃음 한번 웃고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5년 단위로 끊어 25살까지 이야기를 엮다보니 45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시계를 보고 있었는지 그 다음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이제 그만 들어가 보라고 합니다.
기억을 되짚어가며 얼굴 벌개지며 얘기하고 있는데 나중에 듣자고 하니 조금 맥이 풀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모임에 늦지않게 마음을 쓰고 있던 남편의 배려와 엠마오에 대한 기대로 마음을 얼른 바꾸고는 배낭을 메고 연수원 건물 앞쪽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건물을 돌아서는 순간 그 낯설음이란....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건물을 따라 늘어놓은 의자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죽 앉아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 등록하는 곳까지 2,30미터 걸어가는 동안 아주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배정된 방에다 가방을 두고 나와서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어찌나 서먹서먹 하던지요.
‘아, 이래서 같이 갈 사람 있느냐고 하신건가? 이 낯설음을 어쩌지? 건물 뒤편으로 다시 가있을까? 시간이 다된 것 같은데’ 하고 있는데 저쪽에 몇 번 뵈었던 목사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번 영성훈련의 첫 번째 과제는 낯설음을 극복하기다.
아니 사람들과 친밀해지기다.’
그 목사님에게 다가가서 혹 나를 기억 못하실까 싶어 내가 누구인지를 알리자 기억을 더듬어 알아보십니다.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물어주시고 현재 장애우와 관련된 사역하고 계심도 차분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장애우와 함께 하는 사역은 우리 부부의 꿈이기도 한데....
그래서 내 걸음이 목사님에게 끌린 것 같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데 강화에서 목회할 때 같은 지방에 계시던 목사님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사모님과는 학교 다닐 때부터 잘 아는 사이인지라 얼른 가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엠마오 기간 동안 그 사모님을 뵐 수도 있다고 하시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제 수첩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 ‘적극적인 나’가 주는 기쁨 누리기”라고.

엠마오로 가는 길을 함께 갈 테이블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둘러보니 테이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여성 이름들로 되어 있고 마리아 이름도 있습니다.
얼마 전 여성회관에서 영어 회화 공부할 때 닉네임을 만들라고 하여 마리아로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마리아” 하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어머니로서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며 한편으로는 성령으로 잉태되는데 기꺼이 응답한 당당한 여성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또 영어 회화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마리아가 얼마나 자주 나오던지 부르기 편한 이름인 것도 분명합니다.
이래저래 마리아에 마음이 끌리고 있는데 그 테이블에 속한 사람 가운데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른 날 묵상 시간에 마리아에 대한 본문을 읽어주실 때는 마치 저의 영혼을 깨우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첫째 날을 시작하여 시간 시간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사랑과 섬김이 이어졌고 엠마오 72시간이 물 흐르듯이 지나갔습니다.

엠마오를 마무리 하는 시간에는 아직도 주님께 저를 고스란히 내어드리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얼마나 울었던지 이번에는 울지 않고 웃으면서 은혜를 경험해 보자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동이 살짝 살짝 밀려왔지만 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깨물었습니다.(웃음 조금)
그러나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완악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울든지 웃든지 은혜 주시는대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을 제 멋대로 은혜를 편집한 것입니다.
고집스런 제 모습을 또 한번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고 다듬어 주시며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엠마오 여정이 끝날 무렵 15기 팀멤버들로부터 받은 메세지는 저를 설레이게 했습니다.
사랑으로 축복하는 메세지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앞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봐주신 목사님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후배로 기억해 주신 분과 오랜만에 만난 선배 부부의 따뜻한 격려에 제 가슴은 벌렁벌렁 했습니다.
영성훈련이라는 귀한 사역을 하시는 분들의 눈에 띄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벅차던지요.
또 다른 사역의 비전을 보여주시는 것인지....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설레임은 쉽게 가라앉질 않습니다.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긴 호흡을 해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겸손히 그리고 남편과 협력하여 순종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1:35,38)

08/24/2007 - 드라마 같은 가족 나들이


이번 주 월요일(20일)부터 수요일(22일)까지 여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올 휴가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드라마 같은 여행이었습니다.

7월 언젠가 서방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휴가 계획이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없다고 했더니 설악 한화 리조트가 8월 20일부터 비수기라 숙박비가 할인이 되고 또 서방님과 동서가 교사이기에 교원공제회에서 또 할인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부모님 모시고 가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추첨으로 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니 한번 응모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옆에서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남편에서 어떠냐는 눈짓을 했더니 괜찮다고 합니다.
얼핏 한화 리조트에 물놀이 시설인 워터피아가 있던 것이 생각이 났고 가족 나들이 장소로는 그만이라 여겨졌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서방님으로부터 갈 수 있게 되었으니 방학하면 망월에서 만나 의논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7월 말 강화 부모님 댁에 내려온 동서네가 아이들과 망둥이 낚시하러 가자고 합니다.
때마침 저의 막내 동생네 조카가 놀러와 있었기에 함께 데리고 낚시 가게에서 갯지렁이를 사서 망월에 갔습니다.
밀물 때를 기다려 오후 서너시쯤 망월 바닷가 둑으로 나가 망둥이와 철없는 새우들-아이들에게 잡히다니-을 몇 마리 잡고 어머님네로 돌아와 마당에 불을 피워 돼지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이렇게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 앉아서 먹는 풍경도 무척 여유롭고 즐겁습니다.
시간을 내서 낚시와 저녁 식사 꺼리를 준비하고 가족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보태지면 은은한 행복 향기가 풍겨나게 마련이지 싶습니다.

시장한 배를 어느 정도 채우고는 나들이 계획을 세웁니다.
망월 부모님, 동서 어머님, 인천(아이들이 옆집 할머니라 했더니 남 같다고 싫다고 하셔서 원래대로 인천 할머니라 부르기로 했답니다) 부모님 그리고 동서네와 우리 가족 모두 같이 가기로 합니다.
숙박비와 물놀이 시설을 이용하는 것만 어림잡아 보니 80여만 원.
적지 않은 휴가비용입니다.
어머님은 “야, 그러면 넉넉하게 100만원 잡아” 하십니다.
농사 지어 추수하신 것으로 한 해를 검소하게 사시는 어머님이 이렇게 넉넉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가족 여행을 계획해 보라고 이르신 까닭도 있고, 또 휴가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목사 아들네를 마음에 두셨던 것은 아닐까 제 나름대로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얼마를 내시느냐에 따라 우리가 정해지겠는데요?” 서방님이 눙치십니다.“아버님 아까 59만원 내신다고 하신 것 같은데요” 동서가 거듭니다.
“그럼 59만원이 뭐냐, 야. 50만원이면 돼지?”
아버님은 얼른 9만원을 깍으십니다.
먹을 것과 필요한 물건들은 서로 적당히 나누기로 하고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처음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헤어졌습니다.

8월20일(월)
엄마네와 우리 집은 직장 때문에 여행에 함께 못가는 동생에게 맡기고, 교회는 교우들이 수시로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새벽기도회는 각자 개인 기도 하시라 했더니 새벽에 나와 기도하고 가겠다고 하십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준비물을 챙겨 7시쯤 길을 나섰습니다.
차를 긴 시간 타고 가면서 부모님들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시던 중에 어머님은 어젯밤에 잠을 못주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어린애같이 소풍간다고 잠을 못잤구먼” 하십니다.
사실은 저도 밤 2시쯤 깨어 잠을 설쳤던 터라 웃음이 납니다.알고 보니 엄마는 밤 1시 30분 까지 여행 준비하다 주무셨다고 합니다.

강릉으로 넘어가는 새로 난 고속도로를 따라 제한 속도를 지키며 달려 한화 리조트에 오후 2시 반쯤 도착해 조금 전에 온 동서네와 만났습니다.
리조트 42평형이라 생각보다 좁은듯 했지만 방이 3개에 화장실 2개, 우리 13명이 묵기에 딱 좋았습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거실에 둘러앉아 찬송을 부릅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와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오늘 오후 일정은 속초 해수욕장을 둘러만 보고 생선회와 매운탕 꺼리를 마련하여 푸짐한 저녁 식사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강릉에서 속초 쪽으로 가며 해변가에 있는 해수욕장들이 대부분 한산하여 휴가철이 끝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속초 해수욕장에 가보니 전혀 아닙니다.
올 여름 뒤늦은 폭염으로 해수욕장에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파도도 제법 쳐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습니다.

“엄마, 물에 들어가면 안돼? 옷 젖으면 안되지?”
안될 이유가 없는데 갈아 입을 옷이며 준비를 못했기에 대답을 미루고 있는데 강윤이가 허벅지를 가리키며 “엄마 요기까지는 젖어도 되지?” 합니다.
“응 괜찮아.”
얼씨구나 하며 강윤이, 동서 큰 딸 예희가 첨벙첨벙 바다로 들어 가고 강산이와 엄마가 그 뒤를 따릅니다.
그러더니 엄마는 아예 바닷물에 첨벙 앉아버립니다.
파도가 제법 세서 바다 끝인데도 몸을 흔들어 놓습니다.
엄마와 아이들이 깔깔대며 물속에 넘어지기도 하며 물장난을 칩니다.
저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 사진 찍어준다며 다리까지만 담그고는 아이들처럼 더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아쉽지만 내일 물놀이 할 것을 기약하며 겨우 해수욕장을 떠났습니다.




속초 해수욕장 가까이에 있는 동명항으로 가보니 횟집이 즐비합니다.
망월 어머님은 입구에서 제일 끝에 있는 집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그 집까지는 사람들이 잘 안가니 끝집에서 팔아주자는 것입니다.
끝집에 이르자 주인 아주머니는 손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본 광어에 오징어와 못생긴 삼식이(?)와 새우를 뜸뿍 얹어주며 회 떠주는 비용 만원을 보태 11만원 어치를 안겨줍니다.
그 날 저녁 매운탕은 엄마가 끓였는데 서로 “맛있다 맜있다” 하며 요리사가 있어 걱정 없다고 합니다.
동해에 와있는 기분을 한껏 내며 넉넉한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8월21일(화)
둘째 날은 하루 종일 온천과 물놀이 시설이 있는 워터피아에서 놀기로 합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건강한 몸매와 가지각색의 화려한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 입니다.
참 예쁩니다.
수영복을 거의 10여 년만에 입어보는 것이라 어찌할까 싶었는데 거울에 비추어 보기 전에는 내 모습의 실루엣을 볼 수 없으니 문제없고, 나도 건강하고 예뻐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자신있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 두 분은 가고 싶은대로 각자 다니시고 어머님 세 분은 꼭 붙어 다니시며 스파와 온천욕을 즐기십니다.
아이들은 워터피아 곳곳을 누비며 아쉽지 않게 놉니다.
흩어져 있다가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모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후 시간에는 아버님들만 빼고 모두 파도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야외 파도풀 파도치는 시간이 끝나서 실내 파도풀로 가면 파도치기가 다시 시작 됩니다.
출렁거리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좋아라 소리 지르는 파도타기는 30 분 동안 이어집니다.
파도치는 시간에 맞추어 오고 가기를 세 번은 한 것 같습니다.
내가 물을 이렇게 좋아했나 싶습니다.
아니면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지루한줄 모르고 시간이 흘러 오후 4시가 되어 워터피아를 나섭니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으며 아빠는 서방님께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아, 추진위원장님(서방님) 참 고마워요. 가족끼리 이런데 와서 휴가 보내는 거 드라마에서나 보던 건데 오늘 참 즐거웠어요. 내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아빠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 아이들 기분을 맞춰가며 보드게임인 모노폴리 게임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어머님은 3일 동안 한 방을 쓰셨는데 3일 내내 이야기 보따리가 닫힐 줄 몰랐습니다.
어디에 그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는지 소곤소곤 하시다가 까르르 웃어 넘어지기도 하시면서요.


8월22일(수)
수요 예배에 늦지 않게 돌아오기 위해 아침만 먹고 체크 아웃을 하기로 합니다.
한화 리조트 바로 옆에 설악 씨네라마 라고 하는 대조영 촬영장을 돌아봅니다.
한 나라를 건국하는 대조영의 리더십에 관심을 갖고 그 동안 시청해오던 드라마라 기대를 했는데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정교함과 화려함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도 드라마에서 봤던 것과 촬영장 세트를 연결시켜보려고 애를 조금 써봅니다.

설악산 아래에서의 여행은 대조영 촬영장 관람을 끝으로 하고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동서네 차가 앞장서서 미시령 쪽으로 길을 잡습니다.

동서네가 사는 하남 가까운 곳에 아주 유명한 비빔국수 집에서 백김치로 맛을 낸 화끈한-저는 너무 매워서 말을 잘 할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점심으로 2007년 여름 가족 나들이를 확실하게 마무리합니다.

교회에 돌아와보니 낮으로 밤으로 교회를 돌아보고 새벽기도도 끊이지 않은 교우들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가족 나들이의 행복함이 배로 커지는 순간입니다.
마음으로만 그리던 행복한 모습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족의 것이 되었습니다.
더 즐겁고 행복한 가족을 꿈꿔야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시112:1-3)

07/19/2007 -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하여

샘솟는 교회의 전신(前身)인 마송교회에 부임하고서는 왜 그런지 기도하려고 눈만 감으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전에는 강산이를 위한 기도를 하려면 목부터 메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마송교회에 부임하고 나서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려고 마음만 먹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금 돌아보아도 적어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내 신세를 한탄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교회를 살려 달라”고만 했습니다.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하다가 방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 앞에 와르르 쏟아놓고 싶어서 방언을 사모했더니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감정의 절제를 잘한다고 여겼습니다-슬픈 감정은 빼고요.
그래서 방언은 신비주의자(!$&*?)들이 하는 것으로 밀어놓았는데, 마송교회에 온 어느 때부터인가 머릿속에 입력된 단어로만 기도하던 것이 마음으로 아뢰는 기도를 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영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딱딱한 머리를 가진 저에게 주신 하나님 은혜를 찬송합니다.

2003년 1,2월쯤 되는 것 같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이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는 소리가 마음속에 울렸습니다.
얼른 “교회 지을 조그만 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네 소원이 무엇이냐”는 두 번째 소리가 들립니다.
‘잘못 구했나, 왜 또 물으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다시 얼른 “김성은 목사가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며 크게 쓰임 받는 목자가 되게 해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기대할 수도 없었고 기대도 안했는데 또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십니다.
이번에는 짧게 생각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올해에 강윤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강산이와 더불어 학교 생활 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할까 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교회에 일꾼이 많게 해주세요.”
마지막 울림은 그 날 새벽기도회를 잊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다 이루리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동화 같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한테는 엄청 감격스럽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아주 분명한 음성이었기에 남편과 시어머님께 떨리는 마음으로 이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이 경험에 앞서서는 성경을 읽다가 “빈 땅에 건축하리라”(겔36:10)는 말씀을 레마로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찌나 믿음이 없는지 이렇게 놀라운 경험을 하고 나서도 아무 변함없는 주변 상황을 보면서 그 약속은 다 잊어버리고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의 목회를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 쪽으로 너무 치우친 생각을 할 때면 미쁘신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새 힘을 낼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 주시곤 하셨습니다.
CBS <새롭게 하소서> 가정의 달 특집에 출연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전 해에는 <빛과 소금>에 우리 가정이 소개되는 기회를 주시기도 하셨구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내용으로 어찌 출연을 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 방송 출연을 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라 얼마 동안 활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어설픈 방송 출연과 다른 길 찾기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있을 즈음 샘솟는 교회를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조용하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샘솟는 교회를 보면서 우리는 겨자씨만한 믿음일지라도 하나님 은혜 안에 놓여질 때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기적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을 내 몸에 새기고 산 증인되기를 지금도 다짐하곤 합니다.

그리고 7월 첫 주 창립 3주년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 창립 3주년.
돌아보니 5년 전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들이 이루어졌으며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빈 땅에 교회를 건축했으며 김성은 목사님은 믿음의 말씀 위에 목사님 자신을 향한 시대적인 부름에 응답하려는 노력을 쉬지 않고 있음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믿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셔서 교회의 지체가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3주년을 보내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요즈음 제게도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3주년, 3주년, 3주년...
뜬금없이 숫자 “3”에 관심이 갑니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3은 창조성, 이원성을 극복한 전진운동, 성장, 통합 따위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세 가지 예물, 공생애 시작에 앞서 사탄의 세 가지 유혹, 베드로의 예수님 세 번 부인, 골고다의 십자가 세 개, 사흘 만에 부활하심, 성삼위일체...
3주년이 되고 보니 이제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인가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해봅니다.
목사님은 올해 들어 우리 교회에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시고, 영적인 측면에서는 말씀에 대한 이해가 증가되어 믿음이 더욱 자라나고 능력으로 나타날 것이며, 교회와 성도의 재정이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자주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렇게 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목사님 말씀처럼 되길 기도하며 이루어주심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있는데 저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으리라고 예상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제 사역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계신듯 합니다.
지난 반 년 동안 말씀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게 하시고 믿음이 한 단계 성숙해지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동시에 믿음에 대한 시험도 있어서 녹녹치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 어릴 적부터 대학을 정하기 전까지 꿈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장래 희망을 선생님이라고 얘기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할 것이라는 격려를 많이 들었습니다.
신학생이 되어서는 하나님 일을 한다는 사명감에 내 꿈은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농촌에 있는 첫 목회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 꿈이 아주 오래 전에 실현되었으며 더욱 귀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가르치는 일은 제게 주신 은사라고 지금까지 믿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중2 때 유치부 보조 교사로 시작하여 둘째 강윤이 출산하고 3년쯤을 빼고는 지금까지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습니다.
말씀에 푹 빠져있는 아이들 얼굴을 보며 더욱 신이 나서 성경 이야기를 해줄 적도 있었고, 평상시에는 남들 앞에 서면 얼굴부터 빨개져서 어느 선생님이 <얼굴 빨개지는 아이>,장 자끄 상페(고2 때) 라는 책을 사 줄 정도였는데, 아이들 앞에서는 온몸을 흔들어가며 율동을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도 교사가 나 혼자 밖에 없어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야만 할 때는 힘도 안나고 불평도 했습니다.

교회학교 사역은 제게 머리감기와 같습니다.
저는 머리를 자주 감지 않습니다.
머리를 감고 나면 상쾌하고 머리 모양도 예뻐지는데 그래도 한 3일에 한 번쯤 감습니다.
늘 세련되거나 폼 나진 않지만 머리를 꼭 감듯이 교회학교 사역을 그렇게 해왔습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샘솟는 교회에 와서는 아이들의 영혼을 품을 수 있는 사랑과 열정을 갖게 해달라고 더욱 기도했습니다.
주일에는 20명 안팎의 아이들이 예배를 드렸고 세 번의 여름성경학교에는 해마다 50여명의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걷다보면 우리 교회에서 만난 아이들을 예닐곱 명은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주일에 교회에 와” “방학하는 날 여름성경학교에 와~” 합니다.
이제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제 사역이 변화되어야 할 지점에 와 있는듯 합니다.
교회학교 사역은 내려놓고 다른 사역에 더욱 힘쓰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머리감기처럼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사역이라 그 사역을 내려놓는 것이 정말 힘이 듭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새로운 영적 성장을 위한 고통이라 여기고 기도에 더욱 힘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터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사랑으로 그 터를 다지려 합니다.
믿음의 능력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어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5-16)

지난 날 교회학교 교사로서의 경험과 지식을 다 내려놓고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겸손히 순종할 때 저를 새롭게 빚어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제게 주신 은사도 새로운 사역 현장에서 쓰여질 것을 기대하며 말씀의 검을 갈고 닦는 일에도 부지런하려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5/29/2008

05/28/2007 - 이것이 살아가는 재미인가요


5월 마지막 토요일 어와나 시간이었습니다.
게임, 핸드북시간을 잘 보내고 어와나를 맡고 있는 감독으로서 교제 시간 마무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와나에 새로 온 친구를 소개하고, 내일은 인라인 스케이트 가족모임이 오후 3시에 있으며, 다음 주에는 교제 시간 끝나고 간식으로 떡꼬치 만들어 먹기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이어서 상을 주는 시간입니다.
강산이와 명철이가 T&T 핸드북 8단원을 끝냈기에 완성 씰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어와나는 지난해 가을 학기(한 학기는 20주)에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성경말씀을 배우며 암송하는데 도움을 주는 핸드북은 보통 1년 동안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핸드북은 8단원까지 있는데 두 번째 학기 12주차에서 강산이와 명철이가 핸드북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핸드북을 마친 아이들이나 시상을 하시는 목사님이나 저도 함께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자, 이제 어와나 구호 외치고 마치겠습니다.”
“...”
“모두 일어서서 하겠습니다.”
“...”
“어? 강윤이 일어나세요. 함께 외치고 끝내야지요!”
“...”
모두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냥 버티고 있을 수 없겠다고 판단되었는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삐딱하게 앉아 있던 강윤이가 한마디 합니다.
“형은 쓰니까 쉽잖아!”
“...”

그 순간 불편해지고 있던 마음이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성큼 건너뛰고 있었습니다.
강윤이가 몇 번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고 어떤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기에, 또 자기 때문에 어와나를 끝내지 못하고 모두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시위하듯 앉아있는 무례함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강산이 말고 다른 아이들은 핸드북 한 과를 통과하려면 질문에 대한 답과 두어 개의 성경구절과 Word Wise라고 해서 그 성경 구절 안에 들어있는 낱말들의 뜻을 한두 개 암기해야 합니다.
한번 암송을 시작하면 두 번의 도움을 받아 그 자리에서 통과를 해야 한 과를 마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성경을 읽고 질문에 대한 답을 핸드북에 직접 적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어와나를 하려고 교사 교육을 처음 받을 때 강산이 같은 장애우들은 어떻게 어와나에 함께 할 수 있는지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은지 가르치시던 전도사님은 머뭇하시다가 핸드북에 있어서 암송 대신 쓰는 것으로 하기도 한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 때 제 기억으로는 그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강산이는 암송해야 될 부분들을 모두 공책에 쓰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외우는 것을 마뜩잖게 여기는 몇 몇 아이들이 불평을 했습니다.
자기들도 쓰면 빨리 통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강윤이였습니다.
그 때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서 대답해 주었어야 하는데 저는 강윤이가 형이랑 자기가 다르다는 것을 다 알면서 외우는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이라고만 여기고 가벼이 넘겼습니다.
또 강산이 진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누군가 얘기할 때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만 여겼습니다.
그렇게 지난 학기 강산이는 자기 반 선생님의 지시대로 잘 따라 썼고 다른 아이들 보다 조금 못한 3단원 까지 마쳤습니다.

이번 봄 학기에도 강산이는 지난 학기와 같은 방법으로 핸드북을 했습니다.
강산이는 토요일에 어와나 끝나고 집에 오면 “다음 주 토요일에 어와나 해? 토요일에 어와나 갈거야” 합니다.
무엇이 그리도 강산이를 어와나에 가고 싶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와나 시간을 일주일 내내 기다리고, 핸드북 하자고 조르기까지 합니다.
어디를 써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고 답을 찾아내 보고 쓸 수 있도록 적어주어야 합니다.
한 시간 쯤 하고 나서도 계속 하자고 합니다.
제가 그만 하자고 부탁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어와나 시간에 핸드북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강윤이 엄마로서는 불편한 마음이지만 감독으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잘 넘어갈 수 있을까 눈 깜빡할 사이에 나름 고민을 하고 나서는 “모두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자, 강윤이 일어나자” 합니다.
아니 이럴수가...
그래도 강윤이는 일어서지 않습니다.

감독이 지 엄마니까 보란듯이 심술을 부리고 있는 줄은 알겠지만 이대로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다음 주에 강윤이 팀이 이겨도 강윤이는 달란트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아! 이게 아닌데... 점수를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닌데.'
그렇지만 벌써 말은 해버렸고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얼른 스스로 변명 해놓고는 교제시간을 끝냈습니다.

아이들은 간식을 받으러 조르르 달려 나가고 강윤이는 아까보다 더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앉아있습니다.
고 선생님이 강윤이에게 다가가 위로를 하는듯 합니다.
제 마음에는 그 녀석을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회의를 하러 방송실에 모였습니다.

강윤이 얘기가 먼저 나옵니다.
선생님들은 “강윤이도 승부욕이 있고 그런데 형이 먼저 핸드북을 끝내서 그런 것 아니냐”, “사모님은 장애우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장애우를 형제로 둔 형제의 마음은 잘 모르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저는 더 단호하게 선생님들에게 말했습니다.
“강산이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강산이만 편애했다던가 하면 지금 하신 말씀에 대해서 저도 할 말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강산이나 강윤이나 저에겐 똑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강윤이 자신이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잘한 것(방법)에 대해 문제 삼는다면 자기 발전이 없는 거예요.
암송하는 게 쉽지 않은 줄은 알아요.
저는 강윤이에게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교사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강윤이가 쌩하니 일어나 나갑니다.
송 선생님은 “이따 5시까지 와야 해. 찬양 연습해야 되니까” 합니다.
듣는 척도 안하고 나가버립니다.

교회청소를 마칠 즈음 쓰레기 정리를 하고 있는데 자전거 서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강윤이가 집에 갔다가 온 모양입니다.
시계를 보니 5시가 다 되어있습니다.






강윤이는 그런 아이입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합니다.
시간 약속을 비롯하여 약속을 잘 지킵니다.
몇 달에 한 번씩 키를 재어보면 벽에 그어놓은 막대가 머리에 가려 새로 그어야 할 만큼 쑥쑥 크는 건강한 아이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알아주지도 않는데 학교 재활용 분리수거 하시는 선생님을 지난해부터 도와 드리고 있는 훌륭한 아이입니다.
어찌하다가 요즘 제가 알게 되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던 휴대폰(행사용)을 기꺼이 사주었고, 그 휴대폰 사용 요금(12,500원)은 집에서 하는 월요일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면 한번에 3,000원씩 계산해서 채우기로 하고 4주째 강윤이가 스스로 알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분리수거를 한 날에는 달력에다 강윤이 얼굴을 그려놓았더니 좋아라 하며 오늘도 그려놓으라 하고 학교에 갑니다.
또 지지난 주에 강화 부모님네 모내기가 있었습니다.
학교에는 체험학습으로 말해놓고 아이들도 함께 갔습니다.
아이들에게 그저 모내기 하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너무나 일을 잘하였습니다.
제가 들어도 무거운 모판을 들어 옮겨주는가 하면 모를 내고 빈 모판을 던져놓으면 알아서 정리하고 또 경운기에 옮겨 싣기도 하였습니다.
부모님들은 저보고 아들 다 키웠다며 이제 편한 일만 남았다고 하십니다.

웃음이 납니다.
청소하는 동안 조금 아까 속상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듯 합니다.

저녁 먹으며 강윤이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한 흔적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말을 꺼냅니다.
“강윤아, 엄마가 새롭게 안 사실이 하나 있어. 아까 보니까 강윤이가 핸드북을 잘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는 걸 알았어.”
“아니거든요. 외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니가 그렇게 말해도 엄마는 다 알아.”
저녁을 다 먹고 텔레비전에만 눈길을 주고 있는 강윤이에게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는 말들을 다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칫 선생님같이 설득하고 가르치려 할 것 같아서요.



‘강윤이가 이 엄마한테는 큰 기쁨이고 자랑이야.
많이 부족하고 실수도 많지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강윤이도 조금만 노력해 줘.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해.
그래야 열매가 있는 거야.
엄마도 강윤이를 도울 준비가 돼있어.
그리고 형은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고 강윤이는 큰 선물이야.
강윤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사람이고 형은 그런 강윤이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2007년 강윤이에게 주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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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학교에서 막 돌아온 강윤이가 불쑥 오늘 교장실에 갔었다고 합니다.
"왜?"
"나 분리수거 하는 거 착하다고~~. 오늘 조회 시간에도 교장 선생님이 내 얘기를 하잖아~ 부끄부끄."

04/17/2007 - 즐거운 대화 두 가지


아침에 아이들을 기분 좋게 학교에 보내고 나면 엄마로서 하루를 잘 시작한 것 같아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 남편까지 교회로 가는 날은 아침 시간이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습니다.
서둘러서 아침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에 빨래를 불려놓고 청소기를 돌려도 9시가 넘지 않습니다.

아! 이 짧은 아침의 여유로움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넓은 창문으로 봄볕이라도 부드럽게 내리비치는 날이라면 이 나른한 행복은 곱절이 됩니다.
아주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런 날이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제 월요일 아침도 물 흐르듯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주일에 교우들과 강화 고려산 진달래 보기 위해 등산하고도 가뿐하게 새벽기도와 운동을 하고, 아침 식사도 하고, 강윤이는 먼저 학교에 갔습니다.
강산이도 스스로 이 닦고 세수하고 가방을 챙기고 있습니다.
요즘 강산이는 그 날의 요일도 알고 그에 맞게 시간표대로 책을 챙기기도 합니다.
"오늘은 월요일, 6교시."
학교에서 요일을 배우는 것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강산이가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았습니다.
강산이가 늦으면 교회차를 함께 타고 가는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게 될 테니까요.
"강산아, 엄마가 가방 마저 챙길 테니까 가서 옷 입어."
"싫어!"
다그친다고 행동이 빨라질 까닭이 없기에 강산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모른 척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동생 방에 갔다 오더니 제 눈치를 살살 살핍니다.
왜 그러나 봤더니 강윤이 카드를 찾아와서는 자기 카드하고 합쳐서 가방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윤이가 자기 물건에 손대는 것을 무척 싫어할 뿐만 아니라 싫은 소리를 저와 형에게 잘 때까지 할 것이 분명하기에 강산이를 막아야만 했습니다.

“강산, 안돼! 강윤이가 만지지 말랬잖아. 이리 줘.”
강산이는 카드 든 손을 뒤로 뺍니다.
‘가져가면 다 잃어버리고 오면서. 선생님이 학교에 가져오지 말랬잖아’는 입 속으로 꾹 삼키고는 “얼른!!!”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몸까지 뒤로 돌리며 카드를 꼭 가져갈 태세입니다.
시계를 보니 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 벌써 지났습니다.
강윤이 카드를 과감하게 빼앗아 제자리에 갔다 놓고 와보니 강산이는 방에 주저앉아 “안 가!” 합니다.

강산이의 등,하교를 돕는 것은 남편의 몫입니다.
귀찮기도 하련만 남편은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아빠요 고마운 남편입니다.
그런 줄 알지만 이 시간까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남편도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늦은 줄 알면 좀 참고 갔다 오든지 아니면 빨리 일을 마치고 나오든지....
생리적인 것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아침에 화장실에서 책보며 긴 시간 앉아있는 습관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인지....

남편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것 같기에 나 몰라라 하고는 하던 설거지를 마저 합니다.
“강산아, 왜 그래? 얘, 왜 그러는 거야?”
볼멘소리로 대충 설명을 해 주고는 이번엔 제가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안에서 들어보니 어르고 달래고, 결국은 큰소리로 야단치는 것 아니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믿음의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이루어주실 줄 믿고 마음을 집중해서 말입니다.
“하나님, 강산이가 지금 상황을 끝내고 곧 학교에 갈 것을 믿습니다. 기쁘게 집을 나설 것을 믿습니다. 그리 되도록 도우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화장실을 나와 보니 자기 방에서 거실까지 카드를 휙 던져놓고 울고 있습니다.
“강산아, 이따가 학교 6교시 끝나고 방과 후 그림 그리고 아빠 만날 때, 아빠가 강산이 카드 사준대. 다운문방구에서 떡볶이하고 카드하고 다 사준대. 이거 안 가져가도 돼. 알았지?”
남편과 의논해서 한 말도 아닙니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오늘 강산이가 해야 할 일을 몽땅 싸잡아 카드 사는 것에 디밀어버리는 말을 했습니다.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제 스스로 카드 사준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카드가 아무 유익이 없으며 그래서 그런 것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것은 아깝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카드를 사주겠다고 말하다니...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기꺼운 마음으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작은 일이지만 제 생각과 삶에 뭔가 변화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 변화가 무엇인지는 앞으로 더 확증해 나가려 합니다.
신기하게도 강산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옷을 입습니다.
열다섯 살이나 된 녀석이 카드 때문에 그 잘난 카드 때문에 울다니, 눈물을 닦아주며 한 번 더 상기시켜줍니다.
“강산아, 이따 그림 다 그리고 집에 올 때 아빠보고 카드 꼭 사주세요 해?”


강산이가 신발을 신고 일어섭니다.
그러더니 강윤이 신발을 냅다 걷어찹니다.
“바--보.”
이제는 카드를 뺏은 엄마가 미운 것이 아니라 강윤이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잘 갔다 와.”
강산이는 얼굴을 돌려 씩 웃더니 집을 나섭니다.
"Oh, Jesus thank you!"

좀 더 좋은 엄마이려면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강산이에게 물어보아야 하겠지요.
“강산이가 카드를 학교에 갖고 가고 싶었구나. 이 카드 가져가서 어떻게 하려는 거야?”
대답을 하지 않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이면 강산이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을 생각해서 다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친구들하고 놀려구? 누구하고 약속했어? 그냥 가져가고 싶어? 가지고만 있을 거야?”
강산이와 원활한 의사소통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긍정적이고 진지하게 읽어주려고 할 때 강산이와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강산이는 소정 엄마 얘기를 많이 합니다.
엊그제 주일에 고려산 갔다가 돌아오는 내내 차에서 강산이가 좋아하는 소정 엄마와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강산이가 태어나서 그렇게 긴 시간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을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어찌나 수다스럽고 웃기던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니까요.

오늘은 아이들 다니는 학교에서 장애체험을 합니다.
장애우 가족이 아닌 학부모가 장애체험 도우미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도움반 선생님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정 엄마와 고은미 집사님을 추천했고 두 분은 흔쾌히 “그러마” 하셨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강산이가 소정 엄마를 만나면 좋아라 할 것을 생각하니 저도 좋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온 남편이 강산이 하교를 저한테 맡기고 외출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강산이를 데리러 가기까지 남은 한 시간여 동안 이 글을 마무리해서 홈피에 올려야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
***강산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습니다.
강산이는 교회차를 보고 반가워하며 올라탑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학교~ 밥 먹었다. 그리고(정확한 발음으로) 소정 엄마 봤다!"
소정 엄마와 고 집사님의 봉사가 다 끝났으면 함께 집에 오려고 전화를 해봤더니 뒷정리가 한참 남았다고 합니다.
힘든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으며 아주 바쁜듯 했습니다.

01/25/2007 - 하얀 사랑을 만나다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 소요산으로 가는 길을 온통 하얗게 덮고 있는 함박눈을 보며 알지 못할 야릇한 감정에 휩싸여 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리랑신학동지회, 겨울 나들이, 소요산, 민박 집...

대학원 다닐 때 있던 두 개의 학회 가운데 하나였던 아리랑신학동지회에서 소요산으로 겨울 나들이를 갔습니다.
하루 일정 가운데 마지막으로 모두가 둘러 앉아 자기의 꿈이나 계획을 얘기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차례입니다.
신학공부를 더 하고 싶고 그런 다음 결혼은 하든지 말든지,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회원들의 반응은 무덤덤해 보입니다.
다만 한 사람만은 머리가 방바닥에 닿을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눔의 시간이 끝나기 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의 무게가 고스란히 저에게 전해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 새해 아리랑의 임원으로 같이 일하게 되었기에 그 말없음의 의미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나오려는 그를 민박 집 밖으로 불러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더 용감한 것 같습니다.
그를 불러내기는 했으나 무슨 말부터 해야 될 지 모르겠고 한밤중이라 무지 춥기도 해서 소요산 입구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그 때 1월의 소요산은 언젠가 온 눈이 녹았다가 다시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어두워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터라 걷는데는 자신이 있지만 미끄러운 길에서는 유난히 둔해지는 저였습니다.
함께 일하기 위해 불편한 관계를 풀어야만 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당당하게 그 사람의 팔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자신을 의지해서 걷는 제가 싫지는 않았는지 그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난 일년 반 동안 가슴앓이를 해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봐 주지도 않는 사람을 연모해 온 것입니다.
그 사람의 사랑이 어찌 대단했는지 주변 사람이 다 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대상이 바로 저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묘해서 말로하지 않아도 드러나게 된다고 지금까지 믿고 있는 나로서는 그 사람의 말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당사자인 나만 모르는 사랑이 있을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내 몸 어딘가로부터 떨려오는 느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들이 일정을 모두 마치고 민박 집을 나서는데 함박눈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습니다.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보면 발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이고 있습니다.
하얀 세상이 주는 신비로움을 간직하려는듯 회원들은 둘, 셋씩 모여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과 나를 붙여놓더니 사진을 찍어줍니다.
서먹서먹한 그 모습 그대로 사진 속에 담겼고 그 사람 자취 방에 내내 걸려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이 지금은 남편의 청년 시절 앨범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꽉 찬 15년의 결혼 생활을 넘기며 저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하반기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영적 전쟁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편과의 갈등이었습니다.
부부로 살면서 시시때때로 말다툼 하며 살아도 우리는 그런대로 잘 맞는 부부라 여겼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다툼은 했어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체 쌓여가고 있었고 우리가 잘 맞는 것은 인생의 큰 틀(세계관)이었습니다.

상처받기 싫어 꾹꾹 눌러가며 쌓아두던 문제들이 하나님과 좀 더 가까워지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은 틈을 비집고 꾸물꾸물 기어나온 것입니다.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인 부부가 어떻게 그다지도 무시무시한 말들로 상처를 줄 수 있을까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처음엔 분노가 폭풍치듯 밀려옵니다.
'이러면 안되지. 이따위 감정에 내가 질 수는 없지.
이럴 때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나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잖아.
서로 채워주라고 가장 알맞은 베필을 하나님이 정해주신거야.
그런거야.'
나름대로 마음을 다스리고 숨도 크게 한번 내쉬고 다시 대화를 시도해 봅니다.

그러나...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절망에 가슴이 무너져내립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부딪침이 서로 잘해보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남편은 제가 일년 반 전부터 기도하던 아버지학교에 등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눈물로 채워진 영혼을 가지고 인카운터 수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남편, 부모님 그리고 교우들과의 관계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신, 용서하지 못함, 분리의 영을 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가셨습니다.

인카운터 수양회에는 기도사역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다 가깝게 경험하길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던 중 멈출 수 없는 통곡이 터져나왔습니다.
강산이가 떠올랐습니다.
강산이를 낳은 저를 남편이 거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를 온전히 내어주지 못했으며 나를 지킬 수단으로 남편도 침범치 못할 마음의 제한구역을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를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엉엉 울다가 멈추었다가 또 흐느끼다가...

그러다 문득 이 문제를 하나님이 어떻게 해결하실까 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그 순간 "네 남편은 내가 세운 신실한 나의 종이다" 는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의 울림이 나를 일으켜세웠습니다.
일어나보니 기도하던 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뜨고 없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제2의 신혼기를 맞은듯 합니다.

지난 해 12월 엄마가 관절수술로 입원해 계실 때 몇 일 간호를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잘잤어? 당신없는 새벽이 너무 추워 몸이 따뜻해지려면 한참걸려 당신도 그랬어? 오후에 봐"
남편은 문자 메세지를 통해 연애시절에도 맛보지 못한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남들은 닭살이라고 하겠지만요.

얼마 전에는 남편이 5일 동안 정회원 연수교육으로 교회를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를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첫 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남편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어제 잘 못잤어 새벽기도에 늦을까봐 이럴 때면 목회에 대한 당신의 수고를 한번 더 생각하게 돼 편안히 있다 와요"
남편의 답장, "주몽 보고 일찍 자구려 새벽에 모닝콜 해줄까? 기도하겠슴"
"오늘 저녁 예배 잘 드리도록 기도할게 신실하게 진실하게 오늘도 당신은 잘할거야"

남들이 말하는 모범적인 부부가 아니라 우리끼리 그냥 행복한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에게 진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보려 합니다.
이 겨울 좀 더 깊어진 마음으로 16년 전 하얀 사랑을 다시 만나고 있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12/01/2005 - 사랑을 꿰매는 아이


강윤이가 밤늦게 까지 바느질을 합니다.
'샘'에게 드릴 하트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학교에서 바느질 한다고 준비물을 챙겨 달랬습니다.
뭐 할거냐고 물으니 책을 펼쳐 보여줍니다.
홈질, 박음질...바느질 상자를 열어 새 바늘과 실, 쪽가위를 챙깁니다.

바느질 천으로는 오래 전 생활한복 만들고 남은 천을 아낌없이 잘라줍니다.
그 천 조각들은 왠지 언젠가 꼭 쓸 곳이 있을 것 같아 잘 보관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윤이가 바느질 연습을 한다니까 다른 천 조각들도 많이 있는데 이상하게 맘에 들어 아끼던 그 천으로 손이 갑니다.
빈 화장품 상자에 바느질 도구들을 담아 주니 강윤이가 조금 신이나는 것 같습니다.
학교 준비물을 엄마가 정성껏 챙겨줄 때면 강윤이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엄마, 애들이 하트 만들어달래."
"무슨 하트?"
"저기 저런 거. 내일 까지 세 개나 해야 되는데. 엄마가 도와 주면 안돼?"

언젠가 바느질 할 때 옆에서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하여 천을 주었더니 "엄마 사랑해" 하며 만들어 놓은 하트 무늬를 말하는 것입니다.
"재규는 하트를 쿠션으로 해달래."
학교가서 뭐라고 했길래 그런 주문을 받아왔는지....


요즘 우리 속회에서는 모임이 끝나고 퀼트를 배우고 있습니다.
퀼트 강사를 했던 지연 자매가 자기가 모아두었던 천을 거저 내어주며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퀼트를 좋아하는 나도 얼씨구나 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핀쿠션을 만들었고 다음으로는 하트 바구니입니다.
하트 바구니는 동서 생일이 가까이 있기에 선물로 주려고 만들었습니다.
엄마가 하트 바구니 만드는 것을 지켜보던 터에 학교에서 바느질 한다니까 아이들에게 '하트 쿠션 어쩌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이 무심한 엄마는 "야, 언제 3개씩이나 만들어! 그 시간에 기말시험 공부나 하지!!." 했습니다.
학원에 안다니는 대신 우리는 기말시험 문제집을 사서 저녁마다 풀기로 하고 시작한 것이 바로 어제입니다.
강윤이는 멋쩍게 있다가 "에이, 잘래" 하며 방으로 들어갑니다.

두 아이가 모두 방으로 들어가고 9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두꺼운 종이에 하트를 그려 오려내고 강윤이에게 준 천에 하트를 3개 그려넣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강윤, 하트 3개 그려놨어."


이 날 강윤이는 저녁을 먹고는 열심히 바느질을 합니다.
뭐 하나 봤더니 하트 모양을 홈질하고 그 가운데에 '사랑 샘' 이라고 바느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야?"나는 샘솟는교회의 '샘'을 떠올리며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나 홈질 잘한대. 선생님 드릴려구."
아! 사랑스러운 내 아들.

어제 일도 미안하고 하여 강윤이 기를 살려주기로 합니다.
"강윤아, 평면으로 하지 말고 하트 쿠션으로 만들어 드릴까? 니가 앞에 글씨 홈질하면 엄마가 쿠션 만들어줄게."
"정말? 솜 넣어서?"
엄마가 만드는 것을 보고 자겠다기에 잠잘 시간을 뒤로 미뤄 주는 아량도 보여주며 꼼꼼하게 하트 쿠션을 마무리 합니다.

무슨 때도 아닌데 강윤이 선물을 받은 선생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 지 자못 궁금합니다.
"선생님이 뭐라셔?"
"고맙대."
"또 뭐라고 하셔?"
"고맙다고 그랬다니까. 앞에는 내가 하고 뒤에는 엄마가 했다고 했어. 그랬더니 고맙대."

난 뭘 기대하고 자꾸 물어보는지...

선생님에게 뭔가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래서 뭔가를 마련하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선생님과의 관계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강윤이 담임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을 종이 위에 드러내는 것은 서툴지라도, 봉사 정신이 있는 아이로, 리코더를 제일 잘 부는 아이로, 홈질을 잘 하는 아이로 인정해 주시니 말입니다.

선생님의 인정과 엄마, 아빠의 관심이 강윤이 자신에 대해 기분좋게 여기면서 자신감을 갖게 하나 봅니다.
하나님, 엄마, 아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강윤이 삶에 튼튼하게 꿰매어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빌어봅니다.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한 아이는 다음과 같은 것은 갖는다고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정체성이 확립된다.
-건전하지 못한 인간관계로 뻐져들지 않는다.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이 생긴다.
-도전을 피하지 않고 환영하면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일하는 방법을 배운다.
-지능이 발달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폭력, 성적인 접촉, 극단적인 행동, 약물 남용 들 위험한 행동을 피한다.

월트 래리모어,<세상에서 가장 독한 엄마가 되라> 가운데서

10/25/2005 - 덕분에

*만남 하나.
지난 주에는 두 분의 생신 축하가 있었습니다.
사돈지간인 아빠와 어머님 생신이 음력으로 같은 날입니다.
해를 달리 하여 강화에 한 번, 인천에 한번 가다가 우리 가족이 김포로 이사온 뒤로는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직계 가족과 동서 어머니까지 모두 김포에서 모이는 날로 정하였습니다.
만나면 생신 선물도 드리고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서 음식도 대접하곤 합니다.
그리고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그 아이들이 커가면서 믿음이 자라고 제 역할들을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올해는 하남에 사는 동서네가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하여 그리로 나들이 했습니다.
집에서 꽤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는 음식점에 이르러 생신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느새 네 살이 된 예람(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와 예희(예수님의 기쁨)가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아빠와 어머님은 나란히 앉아 촛불을 힘차게 끄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을 지켜주시고 우리 가족이 믿음 안에서 더욱 든든해지길 기도했습니다.


정겨운 식사가 끝나고 아빠는 동서와 서방님에게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어머님은 "야, 나도 너희 덕분에 맛난 것 잘 먹었다" 하십니다.
동서 어머니는 " 왠걸요? 이렇게 먼 데까지 오시라 해놓고." 하십니다.
그러자 엄마는 " 덕분에 이렇게 좋은 데도 와보잖아요" 하십니다.
오고가는 시간보다 더 짧은 만남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느끼지 못합니다.
뿌듯하고 따뜻한 기운만이 잔잔하게 우리를 싸고도는듯 합니다.

우리 집에 다와서 제가 얼른 내려 차 뒷문을 열어드립니다.
어머님이 내리시길래 "어머님 덕분에 좋은 시간이었어요!" 했습니다.
어머님은 "얘는~".
말을 하고보니 우리는 모두 오늘의 즐거움을 서로의 '덕(德)'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5:18)


*만남 둘.
'아차, 사진을 안찍었네!'
송정역에서 김포로 돌아오는 시외버스를 타고서야 알았습니다.
어제 신학교 동기들을 만났는데 사진기만 무겁게 들고 다녔지 정작 사진은 찍지못한 것입니다.
그리운 얼굴들을 사진에 꼭 담아오고 싶었는데 앞으로도 마음으로만 그려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김포 들판을 스쳐 지나가며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느낌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풍성함, 감사함, 신선함, 고독, 그리움...혹은 허탈함, 좌절감.
우리네 생활 흐름이 한 해 단위로 짜여진다고 할 때, 이 가을은 한 해의 열매를 볼 수 있는 계절인듯 싶습니다.
그 열매를 보며 크든 작든 감사할 수 있다면 풍성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을 것이고그 열매에 만족할 수 없다면 답답하고 힘빠지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또 가을은 감성을 자극하는 계절이지 싶습니다.
햇빛이 강렬했던 여름과는 달리 활동하기 좋은 기온과 신선한 공기가 사물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인으로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우울해져서 모든 일이 텁텁하게만 여겨집니다.
뇌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은 인간의 행동이나 기분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이 멜리토닌은 여러가지 환경에 영향을 받아 분비되는데 그 가운데 햇빛도 주요한 요인이라고 합니다.
일조량이 적은 북반구나 미국 시카고에 계절성 우울증 환자가 많고,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에 우울증 환자가 많아지는 것도 그 이유랍니다.

모든 일이 심드렁해지고 힘이 없다고 느낄 때 햇빛을 찾아 나들이 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구요.
지구에 발딛고 사는 저도 이래저래 올해를 마감하기까지 한층 열심을 내야겠다는 다짐도 해보고, 소중한 사람들도 더 가까이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서 그랬는지 동기모임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는 할 일을 제쳐두고 가겠다고 약속을 해두었습니다.
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입학할 때 신학과 180명 가운데 여성은 18명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어엿한 감리교 목사가 되기도 하고 목회 동역자가 되기도 하고, 전도사로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 교계에서 어느 정도 알아주는 기획사 사장도 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고 젊었던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이렇게 편안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습니다.
"이제는 자주 보자"는 말을 가장 많이 남겨놓고 돌아왔습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가족들과의 만남도 밋밋한 이 가을을 넉넉하게 해주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롬15:33)

08/12/2005 - 바다 낚시


"어? 걸린 것 같은데!"
"그럼 건져봐."
"야, 4 마리다. 어떻게 넣자마자 잡냐!"
"강윤이 처음 낚시 할 때도 2 마리를 한 번에 잡더니. 강윤이, 할아버질 닮아서 낚시할 줄 아나본데~~"

주변에서 휴가를 가네 오네 합니다.
우리는 휴가가 언제냐고 강윤이가 묻지만 우리는 "글쎄" 합니다.
친구 목사와 이런저런 일로 전화를 하다보니 휴가는 언제 가냐는 질문을 또 받습니다.
"아직 계획이 없는데."
그러자 친구 목사는 답답하다는듯이 "그럼 계속 그렇게 살어" 합니다.

남편은 친구의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낚시꾼이신 옆집 아빠에게 여쭈어봅니다.
"식구구들하고 아버님 잘 가시는 바다 낚시 가면 어떨까요?"
"좋지! 그렇지 않아도 방학 동안 아이들 데리고 낚시 한 번 가야되는데 했어."

어느새 옆집 아빠는 낚시 달력 앞으로 가셔서 자세히 보시더니 손가락을 꼽으며 돌아오십니다.
"음, 이번 주 목요일, 다음 주 월요일, 화요일 괜찮겠는데. 물이 많을 때가 고기가 잘 잡히거든."
"그럼 아이들 학원 방학이 이번 주까지니까 목요일(4일)에 가시죠?"
"알았어."

하루에 갔다와야 하는 일정이기에 새벽기도 끝나자 마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새벽기도 나가면서 아이들을 깨워 세수하고 옷입고 있으라고 해놓았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 가족 즐겁고 행복한 시간되도록 함께해 주세요. 오고 가는 길도 안전하게 지켜주시구요.'
우리의 급한 마음을 아는지 교회 식구들이 보통 때보다 10분이나 일찍 기도를 끝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집에 와보니 강산이는 간식을 봉투 몇 개에 나누어 어설프게 담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윤이는 옷입고 다시 자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가자!"
벌떡 벌떡.
잠 자리를 그 까잇껏 대~충 정리하는 동안 아이들과 옆집 부모님은 벌써 1층에 내려가 계셨습니다.

저와 우리 아이들은 그 단조로운 고속도로 달리는 것을 좋아합니다-운전하는 남편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누리는 '쉼'의 맛을 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목적지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휴게소가 주는 기쁨을 뒤로 하고 서해안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려갑니다.

홍성 나들목을 지나 태안, 안면도 쪽으로 가다 보니 천수만이 나옵니다.
바다를 갈라 만든 길 오른쪽은 논이고 왼쪽은 바다인데 길에서 멀지 않은 바다 위에 여러 낚시터 좌대가 떠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일기예보에서 흐리고 약간의 비가 온다고 해서 오히려 바다낚시 하기에 좋겠다 했는데 이 곳에 와 보니 파란 하늘에 엄청 큰 뭉게구름이 한여름 날씨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만길호' 라고 쓴 배가 우리 앞에 와서 닿습니다.
"어이, 김사장."
이 낚시터 단골이신 아빠가 배 키를 잡고 있는 분께 손을 들어 인사를 하십니다.
"인천 사장님 오셨어요."
낚시터 사장님의 인사입니다.
여기서는 호칭이 사장님으로 통하나봅니다.

삼형제가 운영하는 만길호 낚시터에 도착해보니 이른 8시30분 쯤 되었고 손님은 우리 뿐이었습니다.
주말에는 30 여명의 손님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그러면 낚시터가 꽉차서 정신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낚시터 사장님은 손님이 많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자리도 널찍하게 차지할 수 있고 낚시터가 한가해서 더욱 좋았습니다.


낚시터 사용료는 성인 남성는 3 만원, 성인 여성은 1 만원, 아이들은 무료입니다.
아빠는 사용료가 아깝지 않게 숭어를 30 여 마리씩 잡으시곤 하셨습니다.
오늘은 초보 낚시잡이 남편이 잘해보려는듯 떡밥에 낚시 바늘 끼우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낚시터 사장님 설명에 집중을 합니다.

저는 아빠를 따라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번 낚시터를 다녀봤습니다.
낚시동호회에서 가는 것이기에 모두 아저씨들 뿐이고 어쩌다 아내하고 같이 오는 아저씨가 한 분 정도 있었습니다.
낚시에 따라가서는 하루 종일 낚시 찌만 바라보다 왔습니다.
때로는 낚시터 주변에 동네가 있으면 혼자 둘러보곤 했습니다.
낚시꾼 딸답게 말없이 홀로 있는 시간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 낚시터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무척 기대가 됩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아빠에게 2 대씩 주어진 낚시대 가운데 하나씩을 꿰차고 앉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 강윤이는 질문을 연이어 해댈테고 강산이는 물고기가 입질을 해도 다른 사람은 낚시대 만지지도 못하게 할텐데.'
아니나 다를까 조금만 옆으로 가라는둥 어른들과 아이들이 자리 다툼을 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큰 사장님은 작은 사장님에게 소리를 칩니다.
"야, 전어 끼워서 두 개 가져와."
전어를 잡는 낚시 바늘을 끼운 낚시대를 가져오라는 말입니다.


어른들 낚시 자리와 다른 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시더니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닐낚시 줄을 바다 바닥에 닿을 때까지 풀어주고 조금씩 들었다 놨다 하면 멸치가 잡힐 거라고 하셨습니다.
강산이와 강윤이는 자기 낚시대가 생겨 좋아라 하며 그럴듯한 자세로 낚시대를 드리웁니다.

그러기를 1분이나 지났을까.
강윤이 낚시대에 은색 왕멸치가 4 마리나 잡힌 것입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멸치잡이는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게 했습니다.

새우 모양을 한 낚시 바늘이 7 개 달려 있는데 한번 내려보내면 보통 서너 마리씩 올라오고 7 마리가 잡힐 때도 있습니다.
낚시 줄을 풀자마자 거두어 들여야 할 정도로 신나게 잡혔습니다.
옆집 엄마는 하루 동안 잡은 멸치를 보시더니 올 김장은 충분히 하겠다고 하십니다.


숭어잡이는 멸치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다른 때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잡으시던 아빠에게도 잘 잡히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작은 것 두어 마리와 제법 큰 것 서너 마리가 전부입니다.
남편은 아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빠 낚시에 걸린 숭어를 끌어 올리는 '손맛'을 겨우 느껴보았습니다.


이른 10시 반 쯤 되어서는 아이들이 출출한 지 컵라면을 먹겠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장님은 물을 끓여주시더니 그 동안 잡은 숭어를 회로 쳐오셨습니다.
숭어회가 고급 횟감은 아니지만 바다 위에서 먹는 맛이 더해져서 그런지 아주 맛나게 먹었습니다.

옆집 엄마가 준비해 간 밥과 반찬들, 그리고 음식점 하시던 솜씨를 발휘해서 끓인 숭어 매운탕은 달디 달았습니다.
싸가지고 간 반찬과 과일, 간식은 낚시터 사장님들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 중요한 준비물 한가지.
바로 물입니다.
바다 위라 깨끗한 물이 귀합니다.
마시기도 하고, 커피, 라면, 찌개를 끓이기도 하고, 나중에 씻을 물로도 사용하면 좋습니다.


살이 벌겋게 익는 줄도 모르고 하루가 갔습니다.
늦은 6시면 낚시터가 파장을 한다고 합니다.
뒷정리 할 시간으로 한 시간쯤 여유를 두고 낚시대를 접었습니다.

우리가 잡은 숭어가 많지 않아 낚시터 사장님들이 잡아놓은 숭어를 보태어 가지고 가기 좋게 손질을 해주십니다.
남편과 아빠, 엄마는 다음에 또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만길호에 올라 먼저 뭍으로 가셨습니다.

두 번째 배에 탄 아이들은 올 때는 미처 못보았는지 배 옆으로 갈라지는 파도를 보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배를 더욱 세게 몰아 더 큰 파도를 보여주셨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릴수록 낚시터 하늘 끝에 걸려 있던 뭉게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얗고 뽀얀 구름은 어느새 청회색이 되어 멀리 보이는 산 위로 흘러 내리는듯 합니다.
저녁을 먹으려고 세간에 말많은 어느 휴게소에 이르자마자 온통 먹구름이더니 쏟아붓듯 비가 옵니다.
갑자기 오는 비에 사람들이 술렁거립니다.
마치 우리가 그 비를 몰고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녁 먹는 사이에 그 소나기는 지나가고 어둑어둑한 하늘과 조금은 서늘해진 기운이 집으로 돌아가 쉬라고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소란스럽거나 지나치게 피곤하지 않으면서도 낯선 풍경 속에서 가진 새로운 경험들이 행복한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하시는도다"(시103:5)

5/28/2008

07/28/2005 - 다 너희들 꺼야


강화 어머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삼계탕 먹게 모두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학교 때 수고도 했고 이것 저것 가져갈 것도 있다고 하십니다.
무슨 날인가...남편은 어림잡아 "중복 아냐?" 합니다.

옆집 부모님과 모두 강화로 출발.
엄마는 강화 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가자고 하십니다.
엄마는 강화에 가져갈 과일로 제일 좋은 포도를 고르셨습니다.
이웃과 나누기를 너무 좋아하는 엄마다운 선택입니다.

어머님은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추어 삼계탕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제대로 된 삼계탕이었습니다.
적당한 크기의 영계에 어머님이 농사 지은 찹쌀을 가득 넣고 뒷마당에서 따놓은 대추와 강화 인삼과 황기가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한상에 둘러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특별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남편이 식사기도를 하고 모두 숟가락을 들고 나서는 오랜만에 영양보충 하려는 사람들처럼 말없이 먹기만 했습니다.
옆집 엄마만 삼계탕과 반찬들을 가리키며 어머님에게 "아주 맛있어요.
이것도 맛있고 이것도 맛있고" 하셨습니다.

양쪽 부모님 모두 부지런하셔서 먹고 난 상을 그냥 두고 보는 사람들이 없는지라 저녁 먹는 일이 끝나고 상이 순식간에 치워졌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남자 어른들은 포도를 드시며 얘기를 나누십니다.
여자들은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가져갈 것들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쌈으로 먹을 수 있는 깻잎, 상추, 호박순을 땄습니다.
바다 둑에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오고 텃밭 일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할머니들을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합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깻잎을 따서는 한손에 차근히 모으시는 어머님을 바라보던 강윤이는 "할머니는 손이 큰가봐. 이거 봐. 이렇게 많은걸 한손으로 잡잖아" 합니다.
강윤이한테는 농사 전문가인 강화 할머니라기 보다는 손 큰 할머니로 보였나봅니다.
마늘도 가져가기 편하게, 쓰레기 된다고 줄기와 뿌리를 떼어냅니다.
마늘을 담고 있는 것을 보더니 강윤이가 또 한마디 합니다.
"가져오는 것은 별로 없는데 집에 갈 때는 엄청 많이 가져가!"
순간 이런 상황에서 강윤이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
강윤이 대답이 이번에는 시시하다고 여기고 있는데 옆집 엄마는 이 때를 놓칠세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할머니한테 늘 감사해야 돼. 이게 다 얼마나 귀한 건대."
나는 '오늘 가져갈 것이 많지 않은가 보다' 싶어 손톱에 물들일 봉숭아를 따러 가자고 했습니다.
어머님은 "그래라" 하시고 아이들은 얼른 가자고 재촉을 합니다.
옆에 옆집 할머니 권사님네 마당에 봉숭아 꽃이 풍성하게 피어있습니다.
해마다 봉숭아 꽃을 부탁해도 언제나 마련해 주시는 어머님이 좋습니다.
"자, 이제는 가시죠?" 남편이 말하자 덧붙이는 말 한마디 없이 모두들 일어섭니다.
사돈끼리는 그리 긴 말이 필요없나 봅니다.
나는 집 안에 있는 오이 김치와 깻잎 무침을 가지러 들어갔다 나오니 식구 모두가 창고에서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옵니다.
새로 찧은 쌀, 옆집 엄마 야채스프를 위한 무, 오이, 참외, 토마토, 콩, 아까 다듬어 놓은 마늘과 쌈...
강윤이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일을 같이 하다보면 어머님은 "이게 다 너희들 꺼지 뭐냐?" 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 자녀에게 헌신적일 수 있는지 내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위한 강화 부모님의 사랑을 마음 가득 채워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인돌 유적지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옆집 부모님이 강화에 여러 번 왔어도 고인돌을 아직 못보았다고 하셔서 잠깐 둘러보았습니다.
남편은 강화 사람답게 고인돌에 대해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가는 고인돌은 뒷부분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고인돌은 앞쪽(북쪽)에서 바라봐야 더욱 웅장한 모습과 조형의 신비함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밤은 열대야가 두렵지 않습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강화 부모님과 어릴 적 한밤 중에 일어나보니 모기를 쫓느라 당신들은 잠을 설치던 옆집 부모님 사랑에 겨워 한 여름 열기쯤은 거뜬히 이겨낼 듯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